[287호 커버스토리]
명절이어서는 아니었다. ‘세월호 특별법’으로 시작한 이야기의 끝이 하필이면 “네 앞가림이나 잘하라”였을 뿐이다. 그 한마디에 나는 차곡차곡 쌓아나가던 논리고 나발이고 없이, 눈물을 뚝뚝 흘리며 안방토론무대에서 퇴장했다. 서른셋이나 되어서도 ‘지속 가능한 밥벌이’를 못 하는 내 상황이 마뜩잖은 데에는 이견이 없었던 것이다.
하루를 꼬박 울고 펼쳐 든 책은 엄기호의 《우리가 잘못 산 게 아니었어》였다. ‘생활이 아닌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것이 우리 현실’인지라, ‘밥벌이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어떤 굴욕과 모욕도 기꺼이 감수하고 살겠다’는 이 시대에 ‘자아실현 따위가 들어설 여지’는 없다. 그래, 내가 봐도 없어 보인다. 다음 달 통신비도 못 내게 생겼는데, ‘자아실현’이 웬 말이야? 그딴 거 개나 줘버려라!
관련기사
원유진 플라잉트리 문화기획자
goscon@gosco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