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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과 ‘밥벌이’라는 두 마리 토끼
[287호 커버스토리]
[287호] 2014년 09월 25일 (목) 11:36:40 원유진 플라잉트리 문화기획자 goscon@goscon.co.kr

명절이어서는 아니었다. ‘세월호 특별법’으로 시작한 이야기의 끝이 하필이면 “네 앞가림이나 잘하라”였을 뿐이다. 그 한마디에 나는 차곡차곡 쌓아나가던 논리고 나발이고 없이, 눈물을 뚝뚝 흘리며 안방토론무대에서 퇴장했다. 서른셋이나 되어서도 ‘지속 가능한 밥벌이’를 못 하는 내 상황이 마뜩잖은 데에는 이견이 없었던 것이다.

하루를 꼬박 울고 펼쳐 든 책은 엄기호의 《우리가 잘못 산 게 아니었어》였다. ‘생활이 아닌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것이 우리 현실’인지라, ‘밥벌이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어떤 굴욕과 모욕도 기꺼이 감수하고 살겠다’는 이 시대에 ‘자아실현 따위가 들어설 여지’는 없다. 그래, 내가 봐도 없어 보인다. 다음 달 통신비도 못 내게 생겼는데, ‘자아실현’이 웬 말이야? 그딴 거 개나 줘버려라!

우리가 좀 승승장구하긴 했다
지난 8월, 3일간 벌인 행사 〈2014 윤영선 작가전〉은 플라잉트리가 두 달여간 준비한 제법 큰 프로젝트였다. 취재가 나온 것은 물론, 전회 만석이었다. 준비해둔 소책자가 동나서 재인쇄를 했을 만큼, 기대 이상의 반응과 성과였다. ‘어떻게 하면 연극을 영화처럼 낯설지 않게 할까?’를 고민하며 시작한 플라잉트리는 전도양양한 문화예술창작단체가 되었다.

2014년 상반기, 셰익스피어의 희곡 세 작품을 같이 읽으며 연극에 관심을 두게 하는 〈희곡이 들린다〉는 대체로 반응이 좋았다. 특히, 연극한다는 사람들이 더 좋게 만들고 싶어서 아이디어를 마구 쏟아낼 정도로 뜨거운 반응을 보여줬다. 카페에서 차를 마시며 연극을 보자는 살롱극 프로젝트 〈키스 프로젝트〉도 마찬가지였다. 참여하고 싶은 사람이 많아 일을 키울 만큼의 반응이 있었고, 재관람률도 높았다. 이러니 문화소외지역에 찾아가 연극을 하고 이야기 나누는 야심 찬 기획인 〈사방팔방 프로젝트〉도 기분 좋게 다녀올 수밖에! 게다가 이 세 프로젝트의 활동을 인정받아 우리 플라잉트리는 ‘2014 (예비) 사회적 기업가 육성사업’ 중간평가에서 하반기 지원금을 가장 많이 준다는 S그룹에도 들었다.

“건강한 공연 생태계를 만들어 연극인도 밥 굶지 않게 하겠다”는 우리의 최종 목표에 맞게, 참여한 사람들에게 때마다 인건비를 꼬박꼬박 줬다. 그러고도 돈이 남았다. 만세! ‘적자를 면했다’고 좋아했다. 다른 경쟁팀에 비해 턱없이 적은 수입을 보고받은 중간평가 심사위원들의 안색이 달라졌을 때에도, 우리는 해맑은 얼굴로 설명해줬다.

“빚 안지고 연극하는 사람을 손에 꼽을 만큼 적자가 일상인 곳에서 적자를 면했다니까요! 이건 정말 대단한 거예요!”

이렇게 방긋방긋 웃던 내가 ‘내 앞가림’에 무너진 것이다. 공연을 마치고 정산을 할 때마다 겁이 났다. 어쩌자고 나는 꼬박꼬박 월급 주는 직장에서 나와서 ‘카드결제일은 돌아오지만, 월급날은 영영 돌아오지 않는 삶’을 선택한 것일까! 두려움이 쌓이고 쌓이다 보면 어느 순간 터져버린다. 아니, 내가 왜? 내가 뭘 그렇게 흥청망청 살았다고 쪼그라들어 있어야 해? 나도 손 떨지 않고 커피 시켜 마시고 싶어! 때 되면 옷 사 입고 싶고, 영화 보고 싶고, 작은 거라도 사서 선물하고 싶다구! 아니, 그게 아니라도 누구 결혼한다는데 축의금이 없어서 못 가는 것만 피하면 좋겠다. 친구가 애를 낳았는데 말로만이 아니라 기저귀라도 사서 안기며 축하하고 싶다. 여행 중에 돈 떨어졌다는 친구에게 빵이라도 사먹으라고 돈 부치고 싶다. 부모님 생신 때, 밥이라도 한번 사고 싶다! 이런 상황에서 돌아오는 말은 대체로 같다.

“그래도 넌, 하고 싶은 일 하며 살잖아.”

하고 싶은 일 하며 사는 게 뭐라고
2012년 여름, 인디밴드 불나방스타쏘세지클럽의 김간지는 인디음악 전문잡지 〈칼방귀〉에 ‘열정 페이(임금) 계산법’을 소개한다. 열정·재능·재주가 있는 자에게는 돈을 조금만 줘도 된다는 것으로, 그 예로는 “넌 사진을 잘 찍으니까 이번 행사 사진 좀 찍어줘”가 있다. 알량하게 돌려 말하면 재능기부, 경력, 실전 경험 때문이다.

한 해 앞서 등장한 책 《열정은 어떻게 노동이 되는가》는 열정과 노동에 대한 사회의 시선을 드러내어 ‘열정노동’이라는 말을 만들어냈다. 이렇게 등장한 ‘열정노동자’는 다른 ‘노동자’와 구별된다. 하고 싶은 일을 하니까. 아니 도대체 ‘하고 싶은 일’과 ‘임금(돈)’에는 어떤 관계가 있길래, 등가교환이 된다고 생각하는 거야? 그냥 단순 작업을 해도 시급이 낮은 이 나라는, 재능을 덧붙이면 시급이 더 줄어드는 놀라운 셈법을 보여준다.

처음 극단에 들어갔을 때, 어느 선배는 “배우가 무대에 제대로 발을 딛는 데 10년이 걸린다”는 말을 해줬다. 당장 제 연기에 만족하지 못해도 지치지 말라는 뜻일 테다. 그런데 자신이 무대에서 어떻게 서 있는지 확인할 시간도 채우지 못한 채 배우들이 빠져나간다. 나도 그랬다. 무대에 서는 것만으로도 한없이 기뻤던 마음이 무색하게 두 해를 버티지 못하고 극단을 그만뒀다. 교통비도 못할 만큼 적은 페이를 받아 온 걸로 변명할 수 있었지만, 다같이 적은 페이를 받았는데 나만 쏙 나온 것은 내내 마음에 남았다. 쑥과 마늘로는 버티지 못한 호랑이가 된 것 같았다.

그런데 이런 내가 다시 연극을 하게 되었으니 이 얼마나 어리둥절하고 기쁜가. 그러니 마음이라도 다잡아야 했다. 플라잉트리가 사회적기업 육성사업을 신청할 때, 내 목표는 확실했다. 사회 환원에 무게를 두기 위해서가 아닌, 예술 한다는 사람에게는 금기처럼 여겨지는 ‘이윤 추구’를 배우는 것.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도 밥벌이가 되는 환경을 만들고 싶었다. 나는 이것을 ‘낭만적 밥벌이’라 배웠다.

‘낭만적 밥벌이’의 환상
2008년, 카피라이터 키키봉(조한웅)은 시행착오 가득한 카페 창업기 《낭만적 밥벌이》를 썼다. 하지만 알고 보니, 그 낭만적 밥벌이는 카페 운영이 아니었다. 카페 운영은 돈벌이 수단일 뿐, 진짜 하고 싶은 일은 책을 내는 거였단다. 응? 글 써서 돈 버는 게 낭만이었어? 그래, 책도 읽고 글도 쓰겠다고 카페를 시작했던 지인이 청소하다가 음료를 만들고, 주문을 받다가, 설거지하느라 온 하루를 다 바치고 지쳐서 잠드는 카페노동자가 된 것을 구경해놓고도 깜빡 속았다. 카페 운영에 낭만을 더하려면 대신 일 해줄 아르바이트생을 구해야 한다. 작가가 돈을 벌려면, 다른 벌이가 있어야 한다. 연극이라고 다를 것이 없다. 직업란에는 연극인이라 쓰면서도 제대로 된 생계를 꾸릴 수 없어 다른 밥벌이 수단을 찾는 이 기형적인 구조가 오래 뿌리를 내려 당연한 것이 됐다.

마케팅 수업을 듣고, 멘토에게 조언을 구하며 그나마 ‘덜 부끄러운 인건비’를 주면서도 적자를 면하는 구조를 만들었지만, 여전히 나는 제 앞가림을 못 한다. 나 좋자고 뛰어들어 놓고도 대책이 없으니, 면이 서질 않아 차마 하나님께 돈 달라는 기도도 못 했다. 내 생활을 아는 사람이 안타까운 마음을 담아 건네는 ‘하나님이 채워 주실 거야’ ‘먹이시고 입히시는 하나님이시잖아’ 식의 위로는, 그 마음을 알기에 더 속이 쓰리다. 내가 이렇게 살면서 채운 것이라고는 가족에게 끼친 민폐와 걱정근심뿐인데, 얼마나 더 채워야 할까.

버틸 힘이 약해진 틈새로 악과 자존심이 파고든다. 두어 달 전, 비연극인이 모여 만든 뮤지컬을 보러 갔다. 대학로에 있는 중극장 관객석이 반 이상 찼다. 지인의 추천을 받은 공연이니 관객이 많은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작하기가 무섭게, 기본도 지키지 못한 노래와 연기로 진이 빠졌다. 게다가 벌일 만큼 벌여놓은 이야기를 수습도 못한 채로 ‘끝이 좋으면 다 좋아’와 다를 거 없는 신나는 노래와 춤으로 극을 끝내버렸다. 박수가 터져 나왔고, 몇몇은 울었다. 꽃다발을 안기며 서로 기뻐했다. 부아가 났다. 저렇게 만듦새가 떨어지게 공연을 만들어도 사람들이 좋아하는데, 나는 도대체 무얼 위해서 까탈부리며 연습을 강요한 거지?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머리가 어지러웠다. 그냥 좀 축하해주면 될 걸, 고생했다고 말해주면 될 걸, 나는 왜 이다지도 비뚤어져서 씩씩거리고 있을까! 화를 삭이겠다고 동료에게 종알거려도 쉽게 풀리지 않아 내질렀다.

“형편없게 만들어도 좋다는데, 연극은 해서 뭘 해! 좋은 거 만든다고 기를 써봐야 나는 늘 부족하고 염치없는데!”

말로 꺼내고 나서야 깨달았다. 속에 담아두어 몰랐던 사실을. 돈이 채우지 못한 자리를 ‘아집’으로 메우고 있었다. 말 한마디에도 산산이 부서질 파리한 ‘아집’으론 모자라서, 내 잘난 맛으로 살지 않으면 안 되는 그 길에 발을 들이고 만 것이다! 이렇게 하염없이 억울하고 분했던 감정의 시원(始原)이 바로 ‘낭만’이었다.

낭만, 좀 추구하면 안 돼?
‘이상’과 ‘감상’이 현실에서 멀어질수록 ‘낭만’은 가까워진다. 반년, 정확히는 5개월의 노력만으로도 우리는 이전보다 더 많은 관심을 받고 가능성을 보였다. 우스갯소리처럼 흘렸던 말이지만 “다 좋아. 이제 돈만 벌면 돼”는 거짓말이 아니었다. 밥벌이가 되지 않는 생활을 버텨보려고 아르바이트 중개 사이트를 뒤적거리고, 이력서를 고쳐보고, 고용센터에서 제공하는 프로그램에 참여할수록 확실해진다. 좋아하는 일과 생계를 이어붙일 방도가 요원하더라도, 나는 이 일이 하고 싶다. 같은 일을 하는 사람에게 인정받는 그 기분은 치명적이게 달콤하다. 지칠 때마다 불쑥불쑥 튀어나와 내 등을 떠민다. 환장할 노릇이다.

하는 수 없이 낭만을 꺼내 든 내가 발랄히 걷고 뛰는 것은, 고맙게도 손을 내밀어 준 친구들이 있어서다. 예술가입네 고매한 척 고립을 선택하지 말자고, ‘돈’ 앞에서 영민해야 한다고 말해주는 동료들. 돈머리도 없고, 쉽게 굽힐 줄도 몰라 가시만 돋친 나를 어르고 달래주는 걸로 부족해 발 벗고 나서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그리고 며칠 전, 살가운 이에게 이 말도 들었다. 내가 읽는 책의 제목을 확인하고 크게 웃고는, 나지막이 말해줬다.

“넌, 잘못 살지 않았어.”

하…, 그 말이 뭐라고 다시 힘이 났다. (말 한마디에 무너진 삶이 말 한마디에 재건되는 느낌이라니. 여러분, 말이라는 게 이렇게 무서운 겁니다!)

일과 사랑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다 둘 다 놓칠 거란 말에, “토끼가 일도 하고 사랑도 하는 게 아니라, 일하는 토끼가 사랑도 하고 그런 거 아닌가?”라고 받아치던 유경(드라마 〈파스타〉의 공효진)처럼 낭만과 밥벌이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한다고 뻥을 치는 세상에게 천연덕스럽게 저 대사를 날려보자. 힘이 들고 지칠 때, 곁을 내어 줄 손이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그러니 플라잉트리를 응원하고 싶으시다면, 신한은행 110-352……. 

원유진
요 몇 년 부딪치고 깨지며 ‘성격이 팔자’라는 말을 믿어버려, 하나님이 주시는 달란트라는 게 결국 ‘환경’과 ‘성격’이 아닐까 고민하고 있다.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한 개인 프로젝트가 커져 문화창작단체 플라잉트리(flyingtree.co.kr)에서 기획을 주로 하면서 성격 급한 일원을 위한 ‘과속방지턱’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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