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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왕’은 아니지만, 매력 있는 일이에요!”
[319호 그들이 사는 세상]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이름 올린 원유진 씨
[319호] 2017년 05월 25일 (목) 14:13:21 오지은 기자 ohjieun317@goscon.co.kr

본지 편집 디자인을 담당하고 있는 원유진(35) 씨는 후원 독자이기도 하다. 본업은 공연기획자지만, 보험 설계사와 디자인 일도 병행한다. 그는 이전 박근혜 정부의 ‘문화계 블랙리스트 파문’과 연관이 있다. 리스트에 중복으로 이름이 오른 것이다. 정권이 바뀐 소감을 묻는 것을 시작으로 사소한 대화를 나누었다.

   
▲ 원유진 씨

―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이름을 올린 사람으로서 정권 교체가 되니 기분이 어떤가?
너무 당연한 결과라서 감흥이 없다. 사실은 나는 크게 탄압을 받지도 않고 운동에 참여하지도 않아서 그렇게 불리기가 좀 남사스럽다.

― 블랙리스트에 이름이 오른 건 왜인가?
아마도 같이 공연을 준비하던 사람들과 함께 세월호 참사 관련 연설에 동의하고 참여한 적이 있는데 그 때문인 것 같다. 어떤 사안에는 또 온라인으로 연설을 한 적도 있다. ‘공연기획’과 ‘기획’으로 나뉘어서 동명이인처럼 이름이 올랐는데, ‘그쪽’ 사람들 일 참 못한다는 생각이 들더라. 당시 보수단체 쪽에서 세월호 지지한 문화계 인사 리스트를 수합해서 돌렸다던데, 그게 고스란히 블랙리스트로 간 거다. 그냥 ‘이 사람들 참 허술하게 일하네’ 싶었다. 

― “남사스럽다”는 건 무슨 뜻인가?
그 허술한 블랙리스트 때문에 정말 탄압을 제대로 받은 사람이 있었다. 서울연극제도 망하게 하려고 치사한 짓들을 참 많이 했던데…. 예를 들면, 공연을 위해 대관을 했는데 공연일 하루 전에 보수 공사한다고 공연장 폐쇄 통보를 하는 식이었다. 공공기관에 있는 지인에게 듣기로는, 행사 명단을 상부에 올리면 블랙리스트 이름을 체크해서 반려되어 온다고 했다. 그러면 자기는 그 이름을 지워서 다시 올린다면서, 자기도 ‘부역자’라며 힘겨워 하더라. 내가 블랙리스트에 올라갔는데도 별다른 불이익이 없었던 건, 우리 공연단이 잠시 쉬는 상태여서다. 당시 6개월 연속 무급 상황이었던지라 팀원들 생활이 파탄 날 지경이어서 부득이한 일이었다. 탄압 받을 건수가 없었다. 

― 연극 일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원래는 고등학교 때부터 의료선교를 가려고 약대 준비를 열심히 했었다. 그런데 약대 갈 성적까진 안 나왔다. 열심히 공부했지만 하나님 뜻이 아니었나보다. 이왕 이렇게 된 거, 교회에서 성극 하면서 연극배우에 대한 꿈이 생겨 배우가 되려고 연기학원으로 갔다. 넣으라는 대로 4년에 연극학과에 넣었는데 다 떨어지고 서울예대만 남았었다. 극작과 출신 중에 배우가 많다는 이야길 듣고 극작과에 지원했는데 붙었다. 학교 다니면서 담당 교수님 극단에서 일한 게 첫 시작이었다. 1년 반 정도 하다가 못해본 재수를 하고 싶어서, 그리고 다시 공부가 하고 싶기도 해서 수능을 준비했다. 한동대에 진학해서 언론정보문화학부 공연영상과 국제어문학부 국제지역학을 전공했지만 복병인 영어 성적 때문에 졸업을 못하고 수료했다. 덕분에 딸이 대학을 졸업 못한 게 우리 엄마 평생 설움으로 남았다.(웃음)

― 극단 일은 어떻게 다시 시작하게 되었나.
서울예대 다닐 때 하던 극단 일을 그만 두니 다시 대학로 쪽으로 들어갈 방법이 없더라. 해온 것도 딱히 없고, 기독교 문화선교연구원 산하 문화매거진 〈오늘〉에 입사했다. 2년쯤 지나니 연극이 하고 싶어져서 연기학원에서 알게 된 친구와 윤영선의 〈키스〉로 프로젝트를 했다. 대학 교회에서 만난 친구가 ‘프로젝트 노아’라는 공간 사업을 하고 있던 터라 거기서 뭐라도 해보라길래 연극을 한 편 한 거다. 두 사람의 사는 이야기, 관계에 대한 이야기였다. 2인극이었고, 친구가 연출, 내가 여배우, 친구 남자친구가 남배우를 맡았다. 끝나고 잡지로 돌아가려고 했는데 셋이 팀워크가 너무 잘 맞아서  ‘플라잉트리’라는 이름의 극단 하나를 만들고, 지금도 하고 있다. 나무는 날 수 없지 않은가. 그런데 ‘나는 나무’로 이름을 지었다. 만들고 나니 이번엔 주변에서 사회적 기업을 해보자는 제안이 들어왔다. 사회적 기업가 육성사업에 신청을 했는데 들어가게 됐다. 1년간 정말 힘들게 일했다. ‘1년 지나면 잘되겠지’ 하면서 세 개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살롱극> <희곡이 들린다>와 함께, 극장 없는 지역에 가서 연극하는 ‘사방팔방프로젝트’를 했다.

   
▲ "아침에는 번동에 있는 보험회사로 출근하고, 일정에 따라 합정동 르프렌치코드 사무실, 봉천동 플라잉트리 작업실, 동교동 복음과상황 사무실에 간다."  ⓒ복음과상황

― 1년 지나고 어땠는지.
2014년이 1년 지난 해였는데 극장 공연 제안이 왔다. 그런데 해보니까, 우리가 할 수 없는 규모더라. 무리했다. 팀원 둘이 결혼하면서 애도 태어나고, 생활고로 다들 시달리던 참에 극단을 일시적으로 파했다. 그때 내가 자존감이 정말 떨어져 있었다. 누가 뭔가를 하자고 하면 거절하지 말자고 마음을 먹었는데, 그때 제안이 온 게 바로 보험이다. 시험 보고 교육도 받고 있는데 친한 친구가 암보험 들겠다고 하더라. 그 친구 때문에 보험에 발을 더 담그게 된 거 같다.(웃음) 이제 만 2년 꽉 채우고 3년차다. 보험회사에서 트레이너까지 맡고 있다. 신입을 교육시키는 일이다 보니 더 잘해야 한다.

― 생업으로 시작한 일인데 적성에는 맞는지 궁금하다.
나름대로 자리를 잡았다. 누가 뭐 물어보면 다 대답할 수 있다. ‘보험왕’이 못되어서 그렇지.(웃음) 비싼 걸 팔던가, 싼 걸 많이 팔던가 해야 하는데 내가 워낙에 누구한테 강요를 잘 못해서 그게 안 된다. 보험왕은 아니지만, 그래도 아직까지 살아 있다. 설계사를 하면서 보람을 느끼는 건, 보험이라는 매개를 통해서 누군가의 삶에 공식적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게 보험 설계사의 매력이다. 서로 관계 속으로 들어가기 어려운 요즘인데 나는 들어갈 수 있는 루트가 있는 거다. 고객들이 나에게 인생에 대한 거의 모든 이야기를 편하게 한다. 얼마 전엔 동갑내기 유부녀인 사촌이 불러서 남양주까지 갔다. 이 친구가 하는 말이, 자기는 애를 키우는 입장이라 내가 하던 연극도 보러 가질 못하고, 글도 잘 못 읽고, 기독교인이 아니어서 잡지를 구독하기도 뭐해서 나에게 연락을 못했었다고 하더라. 그런데 내가 보험을 하니까 드디어 만날 수 있었다면서…. 그간 서운했던 것들이 사라지고 다시 가까워졌다.

― 일이 너무 많은 건 아닌가? 본업과 병행하긴 괜찮은지.
상호보완 되는 부분이 있다. 내가 공연을 만들어도 안 보러 오고, 잡지를 만들어도 안 읽고 하는 것들이 브랜딩과 타겟팅을 잘못해서였구나 싶다. ‘당신 곁에 원플래너’라는 말은 그냥 나온 말이 아니다. 보험의 좋은 역할이 자기가 경제적으로 큰 손해가 났을 때 보완해주는 것 아닌가. 그 사람이 힘들 때 내가 있다는 의미다. 너무 정직한 네이밍이라서 보험왕이 못되는 건지.(웃음) 아무튼 깨닫는 게 많다.

― 연극 일은 주로 밤에 하고 있나.
아침에는 번동에 있는 보험회사로 출근하고, 일정에 따라 합정동 르프렌치코드 사무실, 봉천동 플라잉트리 작업실, 동교동 복음과상황 사무실에 간다. 〈오늘〉에 있을 때 직원이었던 목사님이 공동체 꾸리다가 교회가 필요하다는 생각에 ‘주님의 숲’이라는 교회를 만들고 기독교 문화 공연 장소로 ‘나니아의 옷장’을 운영하는데, 플라잉트리도 거기서 두 달에 한 번씩 〈희곡이 들린다〉를 진행한다. 주님의 숲 교회로 내가 복상을 보내고 있다.

― 돈도 별로 없는데 복상 후원까지 하고 있다.
돈이 없어서 2만 원밖에 못한다. 원래 가난한 사람끼리 돕는 거다. 공연 하는 사람이 공연 보고, 잡지 만드는 사람이 잡지 구독하는 법이다. ‘연극 공연을 제대로 맛본 사람들이라면 다른 연극 공연들도 보러 다니겠지’ 싶어서 희곡을 읽는 프로그램인 ‘희곡이 들린다’도 하고 있다.

― 지금 소박한 꿈이 있다면?
키우는 고양이가 아프지 않고, 가족이 아프지 않으면 좋겠다. 요즘은 매일을 열심히 사는 때라서 꿈에 대한 생각이 복잡하다. 고3 때 의료선교라는 큰 꿈을 기획하고, 다니고 있던 총신 교단 교회 영향인지 뜨거운 비전을 계획했었지만 쓸데없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아무리 멋대로 계획해봐야 하나님이 아니라고 하면 아닌 거다. 그래서 지금은 그냥 매일매일 열심히 산다. 다만 힘들 때 자꾸만 입에서 욕이 팍팍 나온다.(웃음) 욕하는 거 나쁜 거 아니다! 욕먹는 사람은 오래 산다던데, 그들의 만수무강을 빌어주는 셈이니 좋은 거다.

― 문화계 블랙리스트와 관련해서 더 하고픈 말은 없나?
블랙리스트에 걸맞게 제대로 살아보겠다!

― 새 정부에 특별히 바라는 점이 있다면?
꼭 뭘 바라야 하나?(웃음) 그냥 ‘#우리_이니_하고_싶은_거_다_해’ 정도? 하하하. 

 진행 오지은 기자 ohjieun317@gosco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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