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0호 김기석 목사의 욥기 특강]

안녕하십니까? 오늘부터는 사람들이 자주 인용하지만 실은 깊이 이해하지 못하는 성경의 한 책 이야기를 해나가려 합니다. 욥기입니다.

욥 하면 뭐가 떠오르시나요? ‘무고한 자가 겪는 고난’ ‘흠이 없고 정직하며,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을 멀리하는 사람’ ‘세 친구’ ‘욥의 아내’ ‘비슷한 말이 끝도 없이 반복된다’ 등 대개 이 정도입니다. 결말이 어처구니가 없다거나, 그를 생각하면 위로가 된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극단적인 고통을 겪은 욥을 생각하면 지금 자신이 겪는 고통은 견딜만 하더라는 것이겠지요.

욥기 하면 떠오르는 구절이 있습니까?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8:7).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1:21). “지금 나의 증인이 하늘에 계시고 나의 중보자가 높은 데 계시니라”(16:19). 대개 이 정도입니다. 또 있나요?

사람들은 어떤 텍스트를 읽든 그 텍스트가 감추고 있는 보물에 접근하기보다는 자기 삶의 정황에 필요한 말들만 발췌하여 기억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작고한 시인 기형도는 〈우리 동네 목사님〉이라는 시에서 목사 하면 떠오르는 전형적인 이미지와 좀 다른 목사 한 분을 소개합니다. 그 목사는 큰 소리로 기도하거나 손뼉을 치며 찬송하는 법이 없습니다. 손 노동을 좋아하는 그는 폐렴으로 둘째 아이를 잃기도 했습니다. 학생회 소년들과 목사관 뒤터에 푸성귀를 심다가 저녁 예배에 늦은 적도 있었습니다. 그런 그가 교인들에게 강조한 것이 있습니다. “성경이 아니라 생활에 밑줄을 그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의 말은 집사들 사이에 맹렬한 분노를 자아냈습니다. 그게 왜 분노해야 할 일인지 저는 모르겠습니다. 고백과 삶이 분열되어 있는 자기 자신의 모습을 보기 싫어서였을까요?

저는 그 말을 성경 읽기는 삶을 통해 완성된다는 의미로 받아들입니다. 욥기의 세계를 산책하면서 우리 삶의 실상과 만나고, 세계를 바라보는 우리 시선이 깊어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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