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1호 거꾸로 읽는 성경]

얼마 전 온 대한민국이 한 항공사 임원 때문에 난리였다. 국민들이 분노하고, 언론들은 연일 관련 기사들을 쏟아냈다. 일명 ‘땅콩 회항’으로 불리는 이 사건의 본질은 을에 대한 갑의 횡포였다. 사회경제적으로 우월적 지위에 있는 사람이 상대적으로 그렇지 못한 사람에게 언어적 물리적 폭력을 가한 것이다. 보통 폭력은 계몽된 민주 사회에서는 허용되지 않는 의사표현 방식이지만, 갑과 을이라는 특수 관계 내에서는 용인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번 사건도 항공 게이트를 떠난 비행기를 되돌리는 악수만 없었다면, 매일 일어나는 수많은 갑질 중 하나처럼 조용히 묻혔을 것이다.

그런데 이 ‘땅콩 회항’ 사건이 왜 그렇게 큰 국민적 분노를 불러일으켰을까? 아마 대다수 국민들이 자신도 갑질의 피해자 혹은 최소한 잠재적 피해자라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부당함을 알아도 소리 내어 저항할 수 없던 갑질이 언론을 통해 공적 논의의 대상이 되자, 평소 억눌러 두었던 갑질에 대한 생각이 온라인 공간과 오프라인의 대화 석상에서 봇물처럼 표출되어 나왔던 것이다.

그러나 땅콩 회항 사건이 일으킨 반향의 이면에는 더 우울한 현실이 들어있다. 자신을 갑질의 (잠재적) 피해자라고 여기는 대다수 사람들이 언제든 갑질의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 말이다. 누군가의 을이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갑이 될 수 있는 것이 우리 사회이다. 문제는 이런 갑질의 악순환이 끝나지 않을 것 같다는 데 있다. 이 악순환을 끊기 위한 첫걸음은 약자에 대한 갑질이 우리 사회를 공멸에 이르게 하는 매우 심각한 질병임을 공감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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