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5호 사람과 상황] 부동산 문제 전문가 이태경 토지정의시민연대 사무처장

   
▲ ⓒ김승범

바야흐로 가계부채 대란, 전·월세 대란, 청년실업 대란의 때다. 대란의 근원에는 부동산 투기 심리가 있다. 다른 말로 불로소득(不勞所得)의 욕망이다. 누구에게나 불로소득의 유혹은 있기 마련이다. 노동의 가치는 시간이 지날수록 하찮아져 노동자들은 불안하다. 노동이 나와 우리 가족을 보호해주지 못한다는 불안과 공포가 불로소득의 욕망을 부추긴다. 정치인들은 이런 서민들의 욕망과 불안을 이용해 정권을 잡고, 정책과 제도를 만든다. 이런 제도는 다시 불로소득의 악령에 휘둘리는 병적 인간을 양산한다. 지독한 악순환이다.   

악한 고리를 어떻게 끊을 수 있을까? 출범 10년째를 맞은 시민단체 토지정의시민연대의 이태경 사무처장(44)을 만났다. 그는 <허핑턴포스트> <프레시안> <오마이뉴스> 등에 부동산 관련 칼럼을 올리는 칼럼니스트이자 시민운동가다. 2003년부터 토지정의 문제에 천착해 글을 쓰기 시작했고, 지금은 부동산 관련 이슈가 터질 때마다 주요 언론사들이 그의 칼럼을 주목한다. 바람이 거세게 불던 5월 4일, 합정역 인근 고층빌딩의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그는 “부동산 문제가 국가 경쟁력 약화, 사회 양극화, 근로의식 저하 등의 뿌리”라고 했다. 

- 토지정의시민연대가 올해로 10년을 맞았습니다. 어떤 곳인가요? 
토지는 인간이 만든 것이 아니죠. 그럼에도 토지를 소유했다는 이유만으로 개인이 그 부가가치를 독점합니다. 토지는 물론 모든 자연자원을 개인이 독점하면서 더더욱 정의롭지 않은 사회가 되고 있습니다. 이것을 정의롭게 바꾸는 것이 우리 활동의 목표입니다. 무주택 세입자, 철거민 등 소외계층이 이 땅에서 소외되지 않고 이 땅의 권리를 되찾게 하는 거지요. 토지보유세 강화를 통한 불로소득 환수 운동, 토지가치공유 기반 마을 만들기 운동 등을 하고 있습니다. 세금을 통해 땅의 가치를 누구나 향유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런 가치에 동의하는 시민들과 함께 10년째 활동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 토지정의시민연대 홈페이지(www.landjustice.or.kr)에 들어가 보니 ‘토지 보유 불평등 현황’이 나와 있었습니다. 한국을 100명이 사는 마을이라고 했을 때, 단 5.5명이 전국토의 74%를 소유하고 있더군요. 
2007년 행정자치부에서 내놓은 자료입니다. 지금도 비슷할 겁니다. 이제는 공개를 잘 안 해요. 워낙에 심각한 상황이니까요. 현황을 보면 100분의 1에 해당하는 면적을 33% 국민이 나눠 쓰고 있고, 40% 국민은 아예 땅이 없죠. 이런 토지 불평등 현상은 모든 사회문제의 근원이 되고 있습니다. 사회 양극화의 주된 원인이지요. 토지문제는 내수 위축, 기업 경쟁력 약화, 실업, 무분별한 난개발, 각종 부정과 비리 등의 주요 원인이기도 합니다. 토지문제의 근본적 해결 없이 각종 사회문제나 양극화 문제를 해소할 수 없는 거죠. 

   
▲ 토지 불평등 현황 (토지정의시민연대 제공)

- 토지공개념이나 희년사상 등은 본지에서도 종종 다뤄왔는데요. 오늘은 조금 더 현실적인 질문들을 드려볼까 합니다. 최근 전세난에 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전세가가 매매가에 육박하거나 심지어 웃도는 현상에 빚을 내서라도 집을 사야 하는 것 아닌가 고민하는 사람이 늘고 있습니다.
올해 초 주택 거래량이 실제로 늘었지요. 동시에 1, 2월 주택담보대출이 작년보다 8배 폭증했습니다. 그런데 주거의 질은 아파트에서 연립, 다세대, 다가구로 낮아지고 있고요. 가계대출이 1,100조 원을 넘어섰습니다. 이것은 박근혜정부의 ‘최소주의적 전세대책을 통한 극단적인 집값 떠받치기 정책’이 일으키고 있는 재앙입니다. 중산층과 서민들이 주거비를 마련하느라 빚 폭탄에 시달리고 있는 겁니다. 지금의 주택가격이 유지되려면 저금리, 양질의 일자리, 실질소득 증가, 생산가능인구 증가 등의 조건이 충족되어야 하는데요. 어느 것 하나 충족되기 어려운 현실 아닌가요? 곧 미국의 연준(FRB, 연방준비제도이사회)이 거품 예방차원에서 기준금리를 과격하게 올릴 것이라는 게 확실시되고 있습니다. 지금의 저금리 현상이 지속되지 않는다는 거지요. 그러면 감당할 수 없는 가계부채만 남는 겁니다. 가만 보면 ‘폭탄 돌리기’가 떠올라요.     

- 집을 사지 말고 버티라는 건가요? 
집이 없는 분들의 괴로운 심정은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전세가는 치솟았고, 월세는 부담이 크니까요. 대출을 받아서라도 집을 사려는 유혹을 이기기 힘들 거예요. 소액대출은 괜찮지만 통제 불가능한 대출을 받으면서까지 집을 사진 않았으면 해요. 대출이자를 내느라 가처분소득(실소득)이 급격하게 줄어들 수 있어요. 점점 더 힘들어지는 거죠. 미국의 기준금리가 인상되고 그 여파가 어떻게 작용하는지 보고 판단해도 늦지 않습니다.  

- 특별히 친한 분들에게 해주는 조언이 있나요?
처음엔 차라리 월세를 살라고 조언했습니다. 그런데 소득의 거의 절반을 월세로 지불하며 살아야 하더라고요. 그런 삶을 고려했을 때는 좀 무책임한 조언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난감합니다. 선택의 여지가 거의 없습니다. 여기에 자녀 교육 문제까지 겹치면 더 복잡해집니다. 지금은 혹독한 인내의 시기예요. 

- 투기 목적이 아니더라도 ‘부동산’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사람들이 늘어난 것 같습니다. 가처분소득은 줄고, 대출이자는 오르고…. 집값이 올라야만 노후대비가 되는 사람들 말입니다.
90년대 외환위기 직후 집값이 떨어진 적이 없어요. 그러니 부동산 가격이 떨어진다는 건 일반 국민으로서는 상상조차 못하는 일입니다. 아울러 2006년 집값이 올랐던 기억이 워낙 강렬할 겁니다. 그때 팔았으면 좋았을 걸 하면서 단념이 잘 안 되는 거죠. 사실상 다른 방법도 없어요. 일자리는 불안하고, 정년은 점점 낮아지고, 자영업은 망해가니까요. 유동성 있는 부동산에 투자하거나, 집값이 오르길 바라는 거죠. 그럼 당연히 집값 올리겠다는 정당을 지지하게 됩니다. 새누리당의 안상수 후보가 이번 4·29 재보선에서 당선(인천 서·강화을)된 것을 보세요. 인천시장으로 있을 때 인천시에 수조 원의 빚을 안긴 인물입니다. 그럼에도 인천시민은 그를 택했습니다. “땅값 올리겠다”는 그의 공략이 어김없이 통한 것이죠. 

   
▲ ⓒ김승범

- 국민 대다수가 부동산을 통한 불로소득을 기대한다는 것은 그만큼 영혼이 피폐해졌다는 방증이 아닌가 싶습니다.
오로지 집값 올리는 후보에게 표를 주는 유권자들의 욕망을 보면서 실망도 많이 했습니다. 예측도 많이 틀렸고요. 반면에 이것이 또 인간의 모습이구나 깨달아요. 인간의 악함이죠. 인간의 근본을 정확히 알려면 진화생물학 관점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보는데요. 지금의 사람들이 스마트폰을 쓰면서 꽤 지혜로운 교양인인양 보이지만 사실 그 안의 인간 욕망은 호모사피엔스 출현 이후부터 변하지 않았다고 봅니다. 

대다수 사람들은 ‘공포’와 ‘욕망’에 따라 움직여요. 욕망의 노예가 왜 되지요? 불안(공포)에서 기인하는 거죠. 국가나 사회가 개인에게 해주는 게 없다고 여기니까 불안은 증폭되고 각자도생(各自圖生)해야 해요. 이런 삶이 60년 이상 확산되고 지속되면서 사람들은 점점 더 공고하게 욕망의 노예가 됩니다. 경제 상황은 더 안 좋아지고, 임금은 오르지 않고, 불안하죠. 그러니 대다수 시민들이 부동산으로 노후를 대비하고 자녀를 교육하려고 하는 거죠. 

- 자녀 교육을 위해서 강남권을 고집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역시 공포와 욕망 때문입니다. 한국사회에서 중요한 키워드 두 개가 ‘돈’과 ‘공부’입니다. 돈, 돈, 돈 하면서 자녀들에게 공부하라고 전전긍긍 염려하면서 삽니다. 제 경우를 보면 공부라는 게 별로 중요하지 않아요. 다 살아집니다.(웃음) 내 자식 좋은 대학 보내야지, 유학 보내야지 하면서 세속적 성공을 바라는 마음처럼 믿음 없는 삶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 공부가 살아가는 데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개인적인 경험으로 깨달은 건가요?
제 경험을 일반화할 수는 없겠죠. 제 어린 시절은 정말 잿빛이었어요. 한국사회의 기준으로 보면 정말 보잘것없는 인생이었습니다. 아무런 소망도 계획도 없었고요. 제가 신앙은 정말 보잘것없습니다. 그런데 돌이켜 보면 절체절명의 위기 때마다 하나님의 보살핌이 있었습니다. 소천하신 어머니의 기도 덕분인 것 같아요. 어릴 때부터 워낙 시원찮았던 저를 위해 어머니께서 기도를 정말 많이 하셨거든요. 어쨌든 개인 실존의 문제에서도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었다면 제가 지금까지 어떻게 살았을까 싶어요. 사람이 살아가는 데 중요한 건 공부나 돈이 아니라 선하고 정의로운 마음이 아닐까요? 자녀가 선하고 정의로운 마음을 갖게 된다면 하나님께서 어떻게든 쓰실 겁니다. 저처럼요. 제가 엘리트코스 밟은 사람보다, 부자들보다 칼럼 더 잘 쓰거든요. 제가 잘났다는 게 아니라, 누구에게나 하나님이 쓸 만한 재능이 감추어져 있다는 겁니다. 

- 변화가 미미하거나 오히려 정의의 관점에서 퇴보하는 사회를 목격할 때면 힘들지 않습니까?
저는 교회를 다닌 지는 35년이 되었지만 믿음은 정말 없습니다. 신앙에 관해선 별로 말씀드릴 만한 게 없어요. 다만 나처럼 보잘것없는 사람도 하나님께서 쓰시려고 지금까지 보살펴주셨다는 신념은 있습니다. 정의로운 세상, 토지의 가치가 가난한 사람들에게까지 골고루 공유되는 세상은 아마 안 오겠지요. 이런 생각을 하면 문득문득 내가 뭐하는 건가 싶어요. 그런데 어차피 우리는 다 죽고 썩어 없어질 텐데 잘먹고 잘사는 삶이 뭐 그리 중요한가 요. 조금이라도 선하고 정의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살다가 죽는 게 신앙 아닐까요? 그런 세상을 위해 자기의 생각과 삶을 변화시키는 것,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라고 생각해요.

- 어디를 가나 부동산 통해 큰돈을 번 사람들의 이야기가 회자됩니다. 적지 않은 크리스천들이 자신들에게도 그런 일이 일어나길 기도하고 있고요. 
확실한 건 이제 부동산으로 큰돈을 벌기는 어렵습니다. 구조적으로 불가능해요. 극소수에겐 가능하겠지만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봐야 합니다. 기대를 접어야죠. 그런 기도를 하는 신앙이라면 정말 시시한 믿음 아닌가요?  

- 어느 칼럼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을 ‘불로소득의 수호신’이라 표현했는데요.
MB정부의 부동산 활성화 대책은 재건축 규제 완화, 분양가 상한제 개선, 신도시 추가 건설, 수도권 전매제한 완화, 건설업체들에 대한 종부세 완화, 2주택 소유자 양도세 완화, 미분양 주택에 대한 공적 자금 투입 등 다양합니다. 그런데 다양해 보이는 이 대책들이 하나의 코드로 관통되는데 그게 ‘투기심리 조장 및 불로소득 보장’입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불로소득의 수호신’이라고 한 건, 2008년 ‘8·21부동산 활성화 대책’이 발표될 때 MB정부의 이러한 코드를 보고 붙였던 표현입니다. 부동산 문제는 경쟁력 약화, 사회 양극화, 근로의식 저하 등의 뿌리예요. 만악의 근원입니다. 

   
▲ 사진: 이태경 페이스북

- 많은 신앙인이 ‘불로소득의 수혜자’가 되기를 갈망하는 현상을 어떻게 봐야 할까요?

인간은 원래 추악함과 악마성을 지닌 존재입니다. 중요한 건 이런 제도가 생겨났다는 겁니다. 즉 제도가 병들었다는 것은 그 제도를 만든 국민들이 병들었다는 증거입니다. 성경 말씀이 무엇인가요? 골수를 쪼개는 것 아닌가요? 그런데 불로소득 생기는 걸 보며 ‘복 받았다’고 해요. 병든 인간들이죠.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지 못하고 불로소득 추구하는 시시한 믿음의 신앙인들이 교회를 더 나쁘게 만들어요. 한국사회를 가장 잘 포착하는 키워드가 불로소득이거든요. 교회가 오히려 이런 사회에 면죄부를 주고 있네요.       

- ‘한국사회를 가장 잘 포착한 키워드가 불로소득’이라는 말을 더 구체적으로 해주신다면요?
삼성을 보세요. 작년 말 삼성SDS와 제일모직이 상장되면서 이재용 등 삼남매가 700배가 넘는 차익을 올렸잖아요? 10조 원이 넘는 금액입니다. ‘합법적인 도둑질’을 하는 날강도들 아닙니까? 그들이 무엇을 했습니까? 가치 생산에 기여하는 사람이 노동의 대가를 가져가는 게 최소한의 정의일 텐데요. 그런 게 다 무너졌습니다. 삼성이 지금 의료민영화에 관심을 갖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삼성 일가를 부러워해요. 모두 불로소득의 노예가 되어서 그렇습니다. 지금 가장 중요해진 게 ‘출생’이잖아요. 어떤 부모를 만나는가에 따라서 아이의 ‘계급’이 정해지지 않습니까? 그러니 불로소득을 옹호하고 부러워해요. 자본주의사회가 아니라 봉건사회입니다.   

- “출생이 곧 계급이 되는 사회”라면, 결국 국가 차원의 대책이 필요한 거 아닌가요? 
앞서 말씀드렸듯이 MB정부와 박근혜정부는 금리를 낮추고 대출을 권장하면서 부동산경제를 ‘떠받치는’ 정책입니다. 사실 정책이랄 게 없습니다. 의도적으로 방임하고 있어요. 그래야 임대차 세입자들이 어쩔 수 없이 매매시장으로 들어가 집값이 유지되거든요. 극악한 범죄지요. 서민들의 삶을 완전히 망가뜨리는 겁니다. 

- ‘행복주택’이나 ‘안심전환대출’ 등 나름의 정책을 내놓고 있는데요.
‘행복주택’은 좋은 정책입니다. 말만 하고 시행을 안 하거나 축소하는 게 문제지요. ‘안심전환대출’도 괜찮습니다. 다만 문제의 핵심은 떠받쳐진 부동산 가격이 언젠가는 내려간다는 거예요. 정부가 아무리 애를 써도 더 이상 떠받칠 수 없는 상황이 결국 옵니다. 미국 금리가 오르면 우리나라도 올라요. 대출 많이 받아서 집을 산 사람들이 가장 걱정입니다. 

- 집값 폭락이 부동산 시장 왜곡을 바로잡을 수 있다고 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특별히 무주택자들이 집값 폭락론을 지지하는데요. 집값이 폭락하면 무주택자들이 가장 큰 피해를 입어요. 자산도 적고, 소득도 적잖아요. 그런 사람들부터 직장에서 해고될 겁니다. 왜냐하면, 부동산은 연관 산업이 대단히 많아요. 건설사는 물론이고 금융기관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어요. 부동산 폭락하면 금융기관은 담보를 빨리 팔아서 유동(현금)화하려고 할 거예요. 그럼 시장에 매물이 더 나오죠. 폭락이 가속화된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금융은 부동산 담보 대출과 기업에 준 여신을 회수하겠죠. 멀쩡하던 기업이 망하고, 실업자가 양산되고, IMF 시절로 가는 거죠. IMF 때 우리가 봤잖아요. 부자들은 별로 타격이 없어요. 집값은 떨어져야 합니다. 그래도 폭락은 안 됩니다. 집값은 시장에 맡기는 게 맞아요. 다만 지금은 정부에서 억지로 떠받치려고 하니까 문제가 더 심각해지는 거예요. 

- 2009년에 출간한 칼럼 모음집 《투기 공화국의 풍경》(한국학술정보)의 많은 지면이 ‘종부세’(종합부동산세) 이야기로 채워졌습니다.  
참여정부가 내놓은 부동산 정책 중 특별히 종부세가 논란이 되었는데요. ‘종부세를 둘러싼 싸움의 기록’이라는 제목으로 한 챕터를 꾸렸습니다. 종부세는 보수 언론들의 비판과는 달리 좋은 세금입니다. 국민들이 자신의 능력에 맞게 부동산을 소유하도록 유도하고, 투기수요를 억제하고 국토균형발전과 취약 지역의 복지·교육 재정에 도움을 주고요. 시장경제 아래서 노동소득에는 감세하고 불로소득에는 과세하는 것이 조세정의 아니겠습니까? 부동산 불로소득이라는 악성 불로소득을 환수해 조세정의를 실현하려 했던 수단이 종부세였습니다. 대한민국 건국 이래 정의의 관점에 가장 부합하는 제도를 꼽으라면 저는 종부세를 꼽습니다.

- ‘좋은 세금’임에도 보수 언론들의 거센 비판을 받았습니다. 결국 MB정부와 박근혜정부를 거치면서 거의 유명무실해졌는데요.
종부세를 가장 많이 걷었을 때가 3조 원입니다. 상위 2% 기득권층이 내야 할 세금으로 절대 큰 금액이 아니었어요. 다만 종부세가 그들의 물적 토대를 정면으로 겨냥하는 정책이었기 때문에 지레 알레르기 반응을 보인 거지요. 그들에게 절대 큰돈이 아니었습니다. 한국사회의 모순이 집약된 곳이 곧 자신들의 물적 토대이기에 겨냥되는 것 자체가 두려웠던 거죠. 현재 종부세는 더 이상 완화할 조건이 없을 정도로 과세 대상이 좁혀졌어요.   

- 참여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대해선 어떻게 보시는지요? 
참여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역대 어떤 정부보다 높은 평가를 받을 만해요. 적어도 부동산 문제의 본질을 파고들고자 노력한 정부니까요. 물론 부동산 시장이 요동칠 때마다 대책을 내놔 나중에는 시장에 내성이 생겨 어지간한 대책에는 꿈쩍도 않는 상황을 초래했지만요. 출범 초기의 대책을 끝까지 밀고 나갔더라면 좋았을 뻔했어요. 게다가 노무현 대통령 이하 고위 관료들은 자신들의 정책을 너무 과신했어요. 정부의 호언장담에도 부동산 시장이 불안해지자 국민들의 실망은 더 컸죠. 겸손하게 국민들의 동의와 설득을 구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아요. 부동산 투기를 끝내겠다는 정부가 개발이익에 따른 환수 장치를 마련하지 않은 채 전국 곳곳에 혁신도시, 기업도시 등을 추진한 것도 자기모순이었죠. 

- 참여정부의 집값 억제 정책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폭등했다는 비판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많이 오해하는 부분입니다. 2000년 초반엔 전 세계의 부동산이 폭등했어요. 일본을 제외한 OECD 국가 중 가격 상승률이 낮은 순으로 보면 스위스, 독일 다음이 한국이었어요. 그나마 그것도 ‘버블세븐’(강남 서초 송파 목동 분당 용인 평촌 등 부동산 가격이 급등한 7개 지역)이 올린 겁니다. 
우리가 명심해야 할 부분은 부동산 시장의 불안과 투기의 만연은 정부만의 책임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우리 모두의 책임이죠. 참여정부에 돌을 던질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아요. 모두의 책임을 인정하고 해결을 위해 힘을 모으는 게 우선이죠.

- ‘모두의 책임’이란 건 구체적으로 어떤 걸 말씀하시는 건가요?
우리의 무지(無知)요. “몰라서 그랬다”는 말, 그 자체가 죄입니다. 지금 세월호 유가족 공격하는 사람들 왜 그럴까요? 아는 것 없고 미련해서 그래요. 상식적으로 생각해봅시다. 돈 더 받자고 시위하는 유가족이 어디 있겠어요. 부동산 문제도 마찬가지예요. 이명박 후보, 박근혜 후보 찍지 않았으면 지금 같은 전·월세난은 오지 않았을 겁니다. 부자들에게 좋은 정책 쏟아낼 것 충분히 예측할 수 있었어요. 몰랐다고요? 무지가 죄가 되는 거죠. 세월호 참사에 우리가 분노하는 이유가 뭔가요? 참사 ‘발생’ 때문인가요? 아니죠. 참사 ‘이후’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못한 것 때문이잖아요.

최근에도 기사가 나왔어요. 임차인들이 주거비로 사용하는 비용이 소득의 3분의 1입니다. 저소득층은 소득의 40%를 주거비에 써요. 이런 분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고위관료들은 상상이나 할까요? 저도 상상이 안 가는데요. 이런 절망적인 상황을 정부는 방치하고 있어요. 이걸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요. ‘자살방조정부’라고 표현해야 할까요?

   
▲ ⓒ김승범

- 지금까지 말씀하신 내용을 정리해보자면, 욕망의 그릇된 분출이 부동산 가격 상승 및 유지(불로소득)를 지탱해줄 지도자를 뽑는 것으로 나타나고, 그에 기생하는 관료들이 악한 정책을 만든다는 건데요. 악한 정책은 다시 불로소득에 목매는 인간을 양산합니다. 이 지독한 사슬관계를 어떻게 끊을 수 있을까요?     
어떤 정부를 선택하고 구성하느냐에 따라 다르겠지요. 많은 문제가 얽혀 있어서 당장 해결되기에는 힘든 문제입니다만 결국 유권자들의 선택이 중요하다고 봐요. 새누리당 지지자들 보세요. 광신도들입니다. 어떤 잘못을 해도 무조건 지지하잖아요. 반면 진보주의자들은 스펙트럼은 넓지만 속이 좁아요. 지엽적인 부분에서 마음에 안 들면 바로 지지를 철회해요. 인내력이 부족한 거죠. 현실은 냉정해요. 투표의 결과는 ‘전·월세난’과 같은 재앙으로 바로 이어집니다. 4대강 사업에 들어간 30조 원을 공공임대주택에 썼다면 지금과 같은 극단적인 전·월세 대란도 없었을 겁니다. 어느 후보에게 나의 한 표를 주는가가 우리 삶의 운명을 갈라놓는다는 걸 국민들이 뼈저리게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이런 재앙이 오고 나서야 “몰랐다”고 하겠죠. 무지의 죄입니다. 그 죄 때문에 저소득층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상황에 내몰립니다.  
   
- 시민들로 하여금 부동산 가격 상승(불로소득)에 대한 기대와 염원을 내려놓게 하는 방안으로 ‘기본소득’(Basic income)을 제안하셨습니다. 복상도 작년 초부터 기본소득 논의를 지속적으로 이어오고 있습니다.
‘기본소득’ 제도는 국민이라면 누구나 아무런 조건 없이 지급되는 거죠. (전문가들은 현재 한국의 경제구조에서는 월 30~50만 원 정도를 온 국민이 받을 수 있다고 본다. 2014년 3월호 커버스토리 ‘기본소득, 샬롬을 위한 새로운 상상’ 및 2015년 5월호 ‘기본소득 논의의 성경적 토대’(김회권) 참고-편집자) 기본소득은 헌법상의 사회적 기본권을 구체화하는 정책수단입니다. 기본소득의 수령을 통해 국민들이 최소한의 인간적 존엄을 향유할 수 있는 거죠. 토지와 주식, 이자 등에서 발생하는 불로소득에 고율을 과세하고, 환경세 등을 신설하면 기본소득은 물론 무상의료, 무상교육에 필요한 재원도 충분히 마련됩니다. 현실성 있는 정책입니다. 지독한 ‘부동산인질사회’와 결별할 수 있는 혁명인 거죠. 
기본소득은 국가와 개인 간의 깨어진 신뢰관계를 복원하는 데에도 큰 역할을 할 거예요. 우리나라 사람들 버릇처럼 하는 말이 “국가가 나한테 해준 게 뭐 있어!”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해준 거 많아요. 북유럽 국가들보다 적을 뿐이죠. 세금을 적게 걷어서 그래요. 불로소득에 과세하면 기본소득 충분히 실현 가능합니다. 시혜로 받는 돈이 아니고 국민으로서 응당 받아야 할 ‘권리’입니다. 실업 문제가 심화되는 현실에서 매우 적절한 대안입니다. 

- 그렇게만 된다면 우리 노동의 피와 땀이 온전히 대우받는 세상이 오겠네요. 
대한민국의 공교육은 완전히 실패했습니다. 일종의 괴물양산 시스템이 되었어요. ‘지잡대’(지방대를 무시하는 인터넷 신조어)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서열화되었어요. 심지어 같은 서울대 내에서도 ‘수시충’(수시모집 입학생을 정시 합격자와 구분하여 비하하는 표현)을 구분해내잖아요. 인간사회가 아니죠. 서울대를 정점으로 모든 사회적 자원을 독점하는 세상이 되어서 그래요. 기본소득은 이런 모순된 질서를 해체할 겁니다. 고졸자가 열쇠수리공을 하며 먹고살 수 있는 세상, 노동의 가치가 오롯이 인정받는 세상, 모든 노동이 천대받지 않는 세상이 오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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