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7호 사람과 상황] 큰빗이끼벌레 최초 발견·보도한 ‘금강 지킴이’ 김종술 시민기자

   
▲ ⓒ복음과상황 이범진

이명박 정부가 수질 개선, 홍수 예방, 농업용수 확보를 목적으로 4대강사업을 진행한 금강의 보 일대는 작년에 이어 올 여름에도 ‘큰빗이끼벌레’가 창궐하고 ‘녹조라떼’가 수면을 뒤덮었다. 이끼벌레의 흉측한 외모와 ‘떡진’ 녹조라떼가 강을 장악한 풍경은 굳이 직접 가보지 않아도 인터넷 공간을 통해 넉넉히 실감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 틈에 자칫 잊혀질 법한 ‘4대강 보 유역 큰빗이끼벌레 출현 사건’의 핵심은 강이 더 이상 강이 아니게 된 점이다.

수심 6m가 된 강바닥은 사람이 빠지면 죽는다. 그러니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여름이면 시민들이 찾아와 발을 담그고 고기를 잡던 풍경은 더 이상 볼 수 없다. 고인 물은 여울의 소리를 잃었고, 썩는 냄새인지 모를 하수구 냄새를 풍겼다. 투명했던 금강의 색은, 색칠 마친 붓을 며칠 담궈 둔 물통의 물을 연상케 했다.

4대강사업 시작 때부터 ‘금강 지킴이’를 자청하고 나선 이가 있다. 서울에서 무역업을 하다가 금강에 반해 10년 전부터 금강 가로 이사해 살면서, 4대강사업으로 인한 강의 변화를 꾸준히 기록해온 시민기자 김종술(50) 씨다. 공사는 끝났어도 강의 상황은 여전히 남아 있기에 그는 현재진행형인 4대강사업 후속 모니터링을 계속해오고 있다. 강에서는 듣도 보도 못한 큰빗이끼벌레를 처음 발견한 것도 그고, 올해는 오염 지표 종인 실지렁이와 깔따구 유충을 금강에서 발견하여 이슈화했다.
 
한때 지역신문인 〈백제신문〉 대표 기자였으나, 4대강 이슈를 두고 ‘빨대 기사’ 아닌 소신 기사를 썼다가 쫄딱 망했다. 〈오마이뉴스〉에 기고한 4대강 관련 기사만도 600건을 훌쩍 넘긴 그는 〈오마이뉴스〉 특종상과 올해의 뉴스게릴라상, 충남 민언련 민주언론인상을 받았다. 4대강으로 망했으나 4대강으로 다시 산 셈이다. 대한민국에 그만큼 지독한 근성과 열의로 4대강 문제를 감시할 수는 이가 몇이나 될까. 갈수록 가늠키 어려운 4대강의 변화를 좇아 끈질기게 기록하고 있는 그의 하루를 따라다니며 그가 바라 본 금강과 4대강사업 이야기를 들었다.

― 금강 전문 시민기자로 활동하면서 대중의 관심에서 점점 멀어져가는 4대강 문제를 끈질기게 다루고 있다. 5년간 기고한 기사만도 600건이 넘는다. 직업기자도 아닌데, 대체 뭐하시는 분인지 궁금했다.
원래는 서울에서 무역업을 했는데, 시민운동을 하던 매형이 지역 언론을 함께 해보자고 하면서 10년 전에 이 동네로 옮겨오게 됐다. 내려갈까 말까 고민했는데 원래 강을 좋아하기도 하고 금강이 너무 아름다워서 내려왔다. 어느 강이나 그렇지만 그땐 금강의 3분의 1이 모래톱이었다. 아기자기하고 아름다웠다. 비단강[錦江]이라고도 불리는 이유가 그래서다. 부여 쪽에서는 백마강이라고도 불리고. 여기서 지역신문사 기자로 활동하면서 주로 석산, 골프장, 산업폐기물장 등 환경 관련 취재를 했다. 

― 원래 환경 쪽에 관심이 있었나.
고향이 전남 장성인데, 집 뒤 시멘트 공장 채석장이 있었다. 어릴 땐 문제를 못 느꼈다. 발파하면 생기는 돌가루가 아침마다 집으로 날아들어 어머니가 장독이며 마루며 걸레질하는 게 일상이었으니까. 그런데 내가 21살에 아버지가 폐암으로 돌아가시고, 동네사람들도 계속 죽기 시작했다. 당시엔 뭐가 문제인줄 잘 몰랐는데, 내가 금강으로 오게 된 10년 전쯤 우리 시골 마을에 산재 판정이 났다. 채석장의 돌가루로 인한 죽음이었던 거다. 우리 어머니는 아직도 호흡기 질환으로 병원을 다니신다. 동네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환경 문제가 벌어질 때 사람들은 당장 어떤 피해가 있는지 잘 모른다. 그러니 별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인다. 결국은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 목숨을 앗아가는 일까지 생기는데 말이다. 같은 조건의 수족관 두 개에 각각 물고기를 넣고 벽돌을 집어넣는 실험을 하면, 세 개를 한꺼번에 넣은 수족관 물고기는 죽지만 벽돌을 매일 하나씩 넣은 수족관 물고기는 독소에 적응해 살아간다. 그게 무서운 거다. 물고기에 축적된 독은 먹이사슬에 의해 모든 생명을 앗아갈 수 있다. 

― 지역에서 환경 전문이었으니, 4대강사업 첫 삽 뜰 때부터 지켜보았겠다.
2008년에 지역신문인 〈백제신문〉을 인수해서 운영하게 됐는데, 그때가 대운하 사업 중단 발표 나오고 나서 이후에 4대강사업 이야기가 본격화하던 시기다. 당시에 4대강사업 홍보를 위해서 중학생들을 강으로 불러 청소시키면서 홍보한 일이 있었다. 봉사 점수 주겠다면서. 그래서 그런 문제를 기사화했는데 지역자치단체에서 ‘지역신문이 이러면 곤란하지 않냐’고 연락이 오더라. 대전, 공주, 충남 많은 지역 신문들 사이에서 당시 4대강사업 관련 기사는 금기시되는 분위기였다. 나는 “4대강사업이 곧 우리 동네 이야기인데 기사 쓰는 게 뭐가 문제냐”면서 또 썼다. 신문사에 광고 압박이 들어왔고, 후원자들 반응도 마찬가지로 거칠었다. 당시 우리 신문사가 지역신문 치고는 꽤 컸다. 기자가 12명이나 됐으니까. 서울에 큰 언론들은 기자도 자기 분야에서 전문가가 되는데, 지역 신문 상황을 보니까 기자생활 20~30년 해도 전문 분야가 없더라. 전문 기자들을 기르고 싶었다. 그래서 기자를 많이 두고 담당 분야도 지정해주고 80만 원이던 월급도 150만 원으로 올려서 촌지도 못 받게 했다. 그런데 광고와 후원자 압박이 들어오면서 결단을 내려야겠더라. 당시 내 통장들을 직원들 앞에 내놓고 광고 폐쇄 선언을 하면서 이 돈 바닥날 때까지 하고 신문사 문 닫으니까 나갈 사람은 나가라고 했다. 대부분 나가고 8명, 그리고 다시 6명이 남았다. 수익도 안 나는데 일을 하니 한 달에 2,000만 원 적자더라. 1년 넘게 버티다 결국 문 닫았다. 어차피 망할 길이었으니 오히려 홀가분했고, 4대강사업이나 원 없이 취재해보자는 마음이었다. 문 닫기 전에도 4대강은 내가 취재하던 일이었다. 강에 나가면 삽자루 날라 오고 파이프 날라 오는 게 일상이라 위험해서 다른 기자들은 강에 얼씬도 못하게 했었다. 취재 자체가 힘들었다.

― “4대강사업 기사는 금기시되는 분위기였다”고 했는데.
당시 언론들이 4대강에 다 달라붙었는데, 무슨 거리 하나 잡아서 살짝 기사화하려고 하면 소위 ‘쇼부를 봤다.’ 정부 입맛에 맞게 기사 쓰고 광고 따고 후원 받고 저녁 얻어먹는 식이었다. 당연히 제대로 된 기사가 안 나왔다. 그때 이쪽에서 나간 기사 90퍼센트 이상이 ‘빨대 기사’라고 보면 된다. 어느 신문사는 상도 받고, 직원이 국토부에 특채까지 되더라. 이걸 영광으로 생각할 정도였다.

   
▲ 지난 6월 23일 당시의 금강 녹조 (사진: 김종술 제공)

― 그런 상황에서 혈혈단신으로 취재하기 어렵지 않았나.
4대강 취재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 강에서 처음 할 수 있었던 건 공사를 법대로 하는지 감시하는 일이었다. 예를 들어 골재채취 감시 같은 거. 4대강사업은 특별법으로 공사가 진행됐는데 그 법이라도 지키면서 해야 할 거 아닌가. 세종보 준설선에서 기름이 유출된 적이 있는데, 강을 뒤덮고 하류로 15km를 흘러내려갔다. 악취 때문에 차 창문도 못 열고 다닐 정도인데도 당시 환경부는 겨우 4.5ℓ 유출됐다고 발표했다. 황당했다. 그 정도 유출로 15km까지 흐를 수는 없다. 게다가 공사하는 과정에 강에 사진 찍으러 가면, 당연히 누구라도 취재하면서 사진 찍을 수 있는 걸 못 찍게 막았다. 공사 중에는 위험하다며 공사가 끝나면 오라고 하더라. 내가 취재 구걸하러 간 것도 아닌데 매번 그런 식이었다.

― 16개 보가 세워지면서 결국 4대강사업은 마무리됐고, 금강엔 상류부터 세종보-공주보-백제보가 세워졌다. 발로 다니며 직접 눈으로 보는 보와 강의 현재 상황을 설명해달라.
일단 준설한 강바닥의 재퇴적이 심하다. 세종보는 토사가 뻘을 이루어서 보의 수문이 잘 안 열릴 정도다. 12월 1월에는 잠수부가 잠수해서 2~3개월간 보 주변을 청소하고서야 수문을 열었다. 작년에도 그랬고 해마다 반복된다. 보 자체가 잘 작동 안 되고 있다는 증거다. 16개였던 수문을 용접해서 3개로 줄였는데도 효과가 별로 없고 문을 열지 않았어도 물이 새기도 한다. 보 하부에 물받이공 콘크리트가 있고 그 아래엔 교각 보호를 위한 사석보호공이 있고 그 아래가 모래다. 이미 기사가 많이 나갔듯이 물받이공 누수에 사석보호공 유실에 매번 국민 혈세로 보강공사를 한다. 해마다 그런 식이다. 수자원공사(수공)와 환경부에서는 생각보다 많이 토사가 내려온다는 식으로 공식발표를 하면서 계속 정비 수리를 한다. 본래 강은 유속에 의해 토사가 내려오는 게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걸 보로 막아 놨으니 그 주변에 퇴적이 생길 수밖에 없지 않나. 강에 이렇게 대규모로 보를 세운 건 최초다. 그런데 시뮬레이션(모의실험)조차 공사를 하는 중에 진행했을 정도로 졸속으로 공사를 했다. 각 분야의 공무원들이 엉덩이 붙이고 책상에 앉아서 수치 잡아 그림 그려보면서 밀어붙인 거다. 수치와 현실은 굉장히 다른데 말이다.

― 정부가 홍보하던 강 주변의 신축 레저 시설들은 제대로 이용·관리 되고 있나.
지금 보면서도 느끼겠지만, 상식적으로 그늘도 없는 강변이나 더러워진 물에 들어가서 놀 사람이 있겠나. 상류인 세종보에서 400~500m 지점에 선착장을 만들었고 모든 보의 400~500m 주변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원래 보 상하 1km 지역은 안전 때문에 법으로 수상레저가 금지된다. 불법 지역에 만들어 놓고 수상레저 즐기라니. 말 그대로 전시행정사업이다. 게다가 재퇴적이 되면서 선착장 강바닥이 높아져 배도 못 들어오니까, 세종시 수장스키 연합회는 재퇴적 때문에 오히려 노는 장소를 옮겼다. 웃기는 노릇이다. 요트선착장도 있는데 요트 갖고 오는 사람 한 번도 못 봤다. 이 더러운 물에 비싼 요트 띄웠다가는 요트 세척비가 더 든다. 강으로 진입하는 길 대부분에 쇠말뚝을 채워놔서 자가용도 못 들어간다. 4대강사업은 정부가 벌였지만 유지 관리는 자치단체의 몫인데, 정부가 나눠준 이권과 지원금으로 사람도 없는 강 주변에 오토캠핑장이나 체육시설 같은 불필요한 시설이나 짓고, 각 자치단체에 강변 시설 관리 담당 공무원 겨우 한 명씩이다. 어떻게 관리가 될 수 있겠나. 그러니까 아예 이용을 못 하게 길을 끊었다. 심지어는 담당 공무원은 자기 자리가 좌천 부서라면서 좀 그만 괴롭히라고도 했다.

― 4대강의 저수지화에 따른 변화도 많이 보도됐는데, 특히 크게 문제가 됐던 4대강 이슈는 물고기 떼죽음과 녹조라떼, 큰빗이끼벌레였다.
강 환경이 급변하면서 생태계 교란이 일어나고 있고, 흐르는 물엔 번성할 수 없는 이끼벌레가 확산될 만큼 강이 나빠졌다. 이젠 강이 아니다. 가장 큰 문제는 수질이다. 7, 8월이면 떡진 녹조가 강 위를 덮은 상태로 썩는다. 북한 문제, DMZ(비무장지대) 문제만을 주로 취재하는 호주 국영방송사가 나서서 4대강 녹조 다큐를 찍어 갔을 정도로 심각하다. 녹조 중에 가장 해로운 게 마이크로시스틴이라는 독소를 분비하는 남조류인데, 아프리카 물소 떼죽음 및 동물 떼죽음이 일어나는 것도 이 성분 때문이다. 나도 녹조 만진 뒤에는 빨리 씻어낸다. 피부에 닿으면 따갑다. 작년에 남조류 수치가 급격히 올라가면서 조류 경보가 내려졌고, 올해에도 발생했다. 환경부에서 녹조 수치를 발표하면 정부는 늘 기준치 이하라고 떠드는데, 저수지나 댐 지역에서나 발표하던 거다. 4대강사업 전에는 강에서 그런 수치를 잴 필요가 없었다. 나타나지 않았으니까. 또한 조류 경보의 경우, 물 사용자들인 지역민과 낚시꾼들에게 먼저 알리고 사용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 그런데 홈페이지에 올려놓는 것으로 그만이다. 부여에 취재하러 간 적이 있는데, 농사꾼 할아버지들이 ‘나는 괜찮은데 이 물로 지은 농산물을 서울의 자식들에게 보내도 괜찮겠느냐’고 걱정스럽게 물어보시더라.

   
▲ 세종보 상류의 마리나 선착장. 재퇴적으로 수심이 1m도 되지 않아 배가 들어올 수 없다. 사진은 강 바닥의 뻘을 펴낸 모습 ⓒ복음과상황 이범진

― 이끼벌레 최초 보도자이기도 했다. 지속적으로 살피고 있던데.
이끼벌레가 금강에서 가장 심했다. 걔네들은 수온 떨어지면 사멸하는데, 그게 한꺼번에 썩으면 용존산소량이 급격히 줄어들어 주변 물고기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한다. 작년에 내가 처음 발견해서 환경부에 전화했을 때 수질담당자가 이끼벌레가 뭐냐고 나한테 도리어 묻더라. 아무튼 문제없다는 식이다. 정부부처도 예상치 못한 일일 거다. 수공에서 배타고 다니면서 이끼벌레 수거하기도 했다. 아무 문제없다고 발표한 강의 생물을 수거하는 것도 불법이거니와, 문제없다면서 왜 몰래 걷어내나? 환경부에서도 이끼벌레 관련 연구 용역을 실시하면서 분포도 조사까지 한다는데, 수공이 수거해가면 업무 방해다. 수거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니까 그런 적 없다고 잡아뗐다. 증거 자료를 보여줬더니 그제서야 인정하더라. 내내 지켜보고 있지 않으면 잡아내기 어려운 문제들이다.

작년에 이끼벌레 때문에 취재가 난리도 아니었는데, 이후에 주요 언론들에서 이끼벌레는 녹조 먹고 사니까 수질이 좋아진다는 둥, 독소 없다고 발표했는데 왜 난리냐는 식의 보도를 내놓았다. 논점을 흐리는 거다. 이끼벌레 창궐의 핵심은 이제 강이 더 이상 흐르지 않는 호수가 되었다는 증거라는 점이다.

   
▲ 강 바닥의 뻘에서 발견된 실지렁이와 깔따구 유충들 (사진: 김종술 제공)

― 수질 개선, 농업용수 확보, 홍수 예방 등 정부가 말했던 4대강사업의 목적이 어느 정도 성과가 있다고 보나.
수질은 최근 기사에 쓴 대로 강바닥에 4급수 오염 지표 종인 실지렁이와 깔따구 유충들이 살 정도로 심각하게 오염됐다. 바닥을 파서 수량을 더 많이 담수해서 용수로 쓰고, 비가 올 땐 수문 열어서 강 깊이를 더 낮춰서 홍수 예방하겠다는 논리였는데, 앞서도 말했듯이 퇴적 문제, 보 누수 문제, 거기에 세굴(강물에 의해 강바닥이나 강둑이 패이는 현상) 문제까지 더해 수문도 열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런 상태에서 문 잘못 열면 보 바닥이 깎여나가니까 보까지 취약해질 수 있다. 물이 많이 차도 이렇게 못 여는 상황이라면 홍수가 발생할 가능성이 더 높아진다. 정말 위험하다. 그리고 용수로 쓰려고 했으면 물을 끌어 쓸 펌프장 같은 관계시설을 지었어야 하는데 4대강사업 전구간에 그런 시설은 없었다. (농어촌공사에서 그 사업을 하겠다는 말이 있는데, 사실 잘못되면 주변 지역 수질까지 망칠 수도 있다.) 정부 주장이 애초에 허구였던 건 이제 많이 알려지지 않았나.

― 4대강사업으로 나빠진 게 환경만일까? 멀쩡히 농사짓던 땅을 사람들이 찾아오지도 않는 풀밭으로 만들지 않았나.
농사짓던 땅에 보상금이 쏟아지면서 가정이 파탄 나고, 지역공동체가 말도 못하게 깨졌다. 대부분이 떠났다. 그분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알고 싶어서 금강, 낙동강, 한강 유역에 살던 분들을 1년 반 정도 추적했었다. 충남 부여군에는 토지보상금이 거의 2천억 원 쏟아졌었고, 그 지역에 전국의 꽃뱀과 노름꾼이 다 몰렸다고 할 정도로 지역이 파탄 지경이었다. 

국가하천에 농사를 짓고 살던 한 가정은 4대강사업으로 5억 원 정도 보상을 받았다. 수박농사꾼이었는데 국가 땅에 짓던 농사니 다른 곳 토지 사서 하려면 이전 농사의 10분의 1 정도 밖에 못할 형편이었다. 농지는 줄었는데 농지 찾는 사람들은 그대로니 주변까지 땅 값이 막 폭등했다. 싼 땅 정보 얻으러 여기저기 다니다가 꽃뱀한테 걸려서 보상금 5억을 다 털렸다. 인터뷰 할 당시 그는 부여 시내 일용직 근로자로 공사현장에서 대충 먹고 자면서 살고 있었다. 부인과 딸 하나에, 농사지으면서 이장을 겸할 정도로 성실하게 오순도순 살던 가정이 순식간에 깨졌다. 고민하다가 뒤늦게 기사화했는데 부인한테서 연락이 왔다. 왜 잊은 일을 되새겨서 사람 속 못살게 구냐고. 내가 나쁜 사람이다. 그런 부분에서 딜레마에 빠진다. 그러다 보니 기사로 쓰지 못한 사례도 많다. 

대부분은 1억 원 미만의 작은 보상금을 받고 쫓겨나듯 나가서 곧바로 도시 빈민으로 전락한다. 금강은 그나마 인근에 큰 도시가 없는데, 주변에 대도시가 있는 낙동강에서 그 문제가 가장 심각했다. 되돌아오려는 농민들도 있고, 이미 몰래 불법농사 짓는 분들도 있다. 그리고 보상과 무관한 주변지역 농사가 망한 사례도 많다. 물 수위가 마을보다 높아지면서 지하수 높이도 상승하니까 농산물이 썩는 거다. 그래서 시멘트 깔고 소를 키우려는 농가도 있었는데 (지하수) 습기가 올라와서 그것도 안 됐다. 돈 있는 사람은 복토해서 버티는 경우도 있지만, 돈 없는 사람은 복토한 농가보다도 더 땅이 낮아지니까 계속 물 먹는다.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은 더 가난해지는 일이 또 발생한다. 군청에서도 알지만, 정부가 해줘야 하는 일이니 딱히 움직임이 없다.

― 4대강 문제를 정말 다각도로 끈질기게 취재하신다는 느낌이 든다.
원래 생겨먹은 게 끈질기다. 무슨 일이든 내가 지든 이기든 끝장을 볼 때까지 하는 편이라서 함부로 시작하지도 않는다.

― 욕도 많이 먹었을 것 같다.
“너 혼자 뒤지게 뛰어다닌다고 세상이 바뀔 거 같아?”라는 말 많이 들었다. 당장 바뀌지 않는다는 거 안다. 세상을 한 번에 바꾸는 것은 쿠데타지, 그건 바꾸는 게 아니다. 난 쿠데타를 바라는 게 아니다. 하나하나 잘못된 거 밝혀내다 보면 조금씩 변하는 게 민주주의라고 생각한다. 꿈이 있다면, 4대강 찬성론자들과도 지칠 때까지 토론해보는 거다. 

― 그동안 힘든 일이 많았겠다.
4대강사업 초기에는 시공사 직원이 기자를 사칭하며 접근해서 내가 모은 자료를 빼가는 일도 있었고, 사무실이랑 집이 (컴퓨터 하드디스크가) 털린 적도 있었다. 아는 경찰들이 사람들이 날 지켜보고 있으니까 조심하라고, 국정원에서 당신 이야기 나온다며 조심하라고 이야기해준 적도 있다. 재산 다 팔고 집까지 전세로 돌리고, 다시 월세로 돌리고, 결국 보증금까지 다 까먹고 쫓겨날 정도가 되었다. 그런데도 강에 무슨 문제 생기면 빚까지 내서 취재 하고, 그러다 보니 그 빚에 채이고…. 시민기자 원고료가 그나마 수입이다. 최소한의 지출을 해야 하니까 술은 입에도 안 대고 담배 하나 사는 게 나를 위해 쓰는 돈 전부다. 그래도 큰 걱정 안 한다. 타고난 게 긍정적이라 눈에 보이는 위험도 대충 통과하는 성격이다. 넘어질 거 같은 곳도 어쨌든 가고 본다. 무슨 일이든 안 된다는 생각을 잘 안 한다. 

― 그만두고 싶던 적은 없었나.
작년 6월말에 차 기름도 없고 돈이라고는 주머니에 딱 5천 원이 남았는데, 정말 암울했다. 그래서 그 5천 원어치만 4대강 취재에 쓰고 이제 그만 할 생각으로 배낭에 빵 5천 원어치 사서 물 두 통 채우고 카메라 메고 강 길을 계속 걸었었다. 감정이 밑바닥까지 떨어졌었다. ‘내가 이 짓을 왜 했을까’부터 시작해서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다. 걷다가 지치면 자고. 3일째 되던 날엔 진짜 파김치가 됐다. 앉아서 쉬는데 강물 속에 이상한 놈이 있더라. 자세하게 봐야 보이는데, 그게 큰빗이끼벌레였다. 얘 정체가 뭘지 호기심 있게 보고 사진 찍고 그동안 알게 된 학자들, 시민단체, 환경단체에 싹 다 보냈는데 모른다는 답변만 연속으로 와서 힘들었다. 일을 그만두기는커녕, 주무르고 만져보고 문질러 봐도 잘 모르겠으니까 결국 먹어보기까지 했다. 온 몸에 두드러기가 났다 가라앉았고, 3개월간 두통으로 고생했다. 그리고 첫 기사에 이어 두 번째 기사를 쓰고 나자 파장이 일었다. 평생 듣도 보도 못한 언론들까지 다 이끼벌레에 달라붙을 정도로 떠들썩했다. 

   
▲ 공주보가 있는 금강 중류. 비가 와서 물이 상당히 불었다. ⓒ복음과상황 이범진

― 그때와 비교해서 4대강 상황은 그대론데, 또다시 관심에서 멀어지고 있는 것 같다.
가장 힘든 점이기도 하다. 이끼벌레, 녹조 때면 언론이 우르르 모였다가 또 우르르 흩어진다. 누군가는 계속 감시하고 찾아내야 또 우르르 몰려올 기회라도 있지 않겠나. 아무도 관심 갖지 않으면 정부도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아무 문제없다고 했던 게 ‘정말 문제없네’로 끝날 거다. 언제까지일지 모르지만 계속 기록할 거다. 결국 수문이 열리든, 내가 나가떨어지든. 시간이 걸리겠지만 자연은 결국 되돌아온다. 수문 열리고, 보 철거되고, 내가 아름다움을 봤던 금강 본래 모습이 회복 될 때까지 하고 싶은 마음이다. 5년, 10년이 걸릴 수도 있고 1, 2년 안에 될 수도 있다. 희망을 갖고 있다. ‘이번 주엔 진짜 강에 안 나가야지’ 생각해도 사람들이 찾으면 또 나가게 되고 그게 스트레스가 되기도 하지만, 사람들이 강에 더 이상 오지 않는다 생각하면 그게 더 슬프다. 벌써 다 잊은 건가 싶어서. 4대강, 특히 금강 기사로는 중복도 많다 보니 독자 입장에서는 어차피 끝난 일에다가 피로감도 느끼는 것 같다. 기사 조회 수 떨어지는 만큼 관심도도 떨어졌다는 거고. 

― 직업기자로 전환하고 싶은 마음은 없나.

제안 온 적은 있다. 그런데 직업기자가 되면 내가 쓰고 싶은 거 자유롭게 찾아다니며 쓸 수 있을까. 아닐 거다. 난 아직 강을 계속 돌아다녀야 하는데, 그럴 수 없을 거다. 그렇다면 돈 때문일 텐데, 돈 벌려면 아예 이 일 그만두고 장사꾼을 하는 게 낫지 않겠나.

― 돈에 초월한 사람 같다.
돈 벌어서 부자 되고, 그렇게 나 혼자 잘살고 싶은 맘이 없다. “누구나 행복해지는 그날까지”가 내 삶의 좌우명이다. 사람들이 직업, 재산 이런 거 상관없이 그냥 웃을 수 있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 돈 없어서 병원이나 학교를 못가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으면 좋겠고, 돈 때문에 하기 싫은 걸 억지로 하는 사람도 없었으면 좋겠다.

   
▲ ⓒ복음과상황 이범진

― 4대강 문제에 매달리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인가.
개인과 사회의 고통과 갈등은 까놓고 보면 대부분 아주 사소한 것이지 않나. 아마 4대강 문제도 사소할 거다. 내 주장만 다 맞는 것도, 수공 의견이 다 맞는 것도 아니니까 개개인들이 스스로 보고, 듣고, 판단하고, 그리고 토론으로 문제를 풀어나간다면 말이다. 4대강사업을 강행 전에 국민대토론에 붙였더라면이렇게 갈등이 심했을까? 강을 보는 시각에 따라서 다른 견해를 서로 내놓고 이야기하고, 국민적인 결론을 이끌어내는 그런 공간 말이다. 싸우다보면 타협점이 나온다. 그럼 지역이 건강해지고 나라도 건강해지지 않겠나.
 
보만 해도, 당장 강물이 갇혀서 발생하는 문제 해결을 위해서 수문은 시급히 열어야 하지만 보를 없애는 문제는 또 다르다. 내가 4대강사업을 반대했다고 해서 무조건 보 해체하라고 밀어붙이면, 그 사업 밀어붙였던 사람들과 결국 같은 논리인 거다. 게다가 강의 환경이 사업 이전과 달라진 상태여서 보를 무조건 없애면 또 하나의 위험한 문제를 불러올지 모른다. 충분히 토론하고 국민적 공감대를 얻어서 풀어나갈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진행_오지은 기자 ohjieun317@gosco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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