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8호 커버스토리] ‘인간은 패하나 하나님은 승리하신다’

성서에 나오는 예수님의 삶은 참으로 고단하다. 어쩌면 그분의 고단함은 창조의 하늘에서부터 피조의 시간과 공간을 뚫고 낙하하신 성육신에서부터 시작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소년가장으로서 어머니 마리아와 동생들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 그리고 누이들까지 건사하면서 보냈던 시절이나 그리스도로서 공생애를 보냈던 시절 모두 그에게 고단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어디 고단하기만 했는가? 그가 전했던 하나님 나라 복음과 메시아적 삶은 ‘불법자의 동류’(눅 22:37) 취급을 받았고, 당대 권력자들은 자신들의 자리를 위태롭게 하는 그 불법자를 묵인하지 않았다. 친구들에게 들려 온 중풍 병자를 치유하시며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눅 2:5) 선포하셨을 때, 안식일에 손 마른 자의 손을 낫게 하셨을 때(마 12:13), 성전 안에서의 상행위를 꾸짖으시고 그들을 내쫓으셨을 때(마 21:12~17)마다 예수님을 향한 그들의 증오와 적개심은 드높아갔다. 예수님의 삶은 고단함을 넘어 이제는 죽음의 위협까지도 감내해야 했다. 마지막에는 그렇게도 피하고 싶었던(마 26:39) ‘죽음의 잔’을 피하지 않으시고, 제자들마저 다 떠나버린 채 외롭고 고독한 십자가를 홀로 지셨다. 

예수님의 삶을 이렇게만 놓고 보면 참으로 비극적이다. 마치 마지막 남은 피 한 방울 다 쥐어짜면서까지 자기에게 주어진 길을 걸어가고자 했던 철저히 외롭고 고독한 비운의 영웅을 보는 듯하다. 하지만 예수님의 삶이 그러했는가? 그렇지 않다. 그분에게는 이 땅의 고단함을 다 상쇄하고도 남을 하늘의 안락함이 있었다. 그분에게는 자신을 겨냥한 이 땅의 불의와 불법의 칼끝을 부러뜨리고도 남을 하늘의 찬란한 평화가 있었다. 그분에게는 패색 짙은 이 땅의 절망을 가볍게 웃어넘길 수 있는 하늘의 희망이 있었다. 무엇이 예수님으로 하여금 그것을 가능하게 했을까? 그분이 하나님이어서?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이어서? 아니다(히4:15). 예수님으로 하여금 이 땅의 고단함을 넘어 하늘의 평화를 맛보고 살아가도록 했던 것은 다름 아닌 그분의 기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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