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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지식인’ 박명림이 말하는 광화문 혁명, 세월호, 그리고 희망
기독교 매체와 최초 인터뷰하는 정치학자 박명림 연세대 국제대학원 교수
[314호] 2016년 12월 28일 (수) 11:01:52 이범진 기자 poemgene@goscon.co.kr
   
▲박명림(54) 연세대 교수. 서른네 살 때 박사학위 논문을 확장해 《한국전쟁의 발발과 기원 1, 2》을 냈고, 한국전쟁 관련 국제 논쟁에서 ‘한국 학계의 자존심을 세워준 학자’로 평가받는다.  ⓒ김승범

지난해 말 광화문 광장은 ‘박근혜 퇴진’을 외치는 촛불들로 가득했다. 10월 29일 2만 명으로 시작된 촛불집회는 2주일 만에 100만 명, 12월 3일에는 230만 명을 넘겼다. 이런 폭발적인 촛불의 팽창을 ‘광화문 혁명’이라 일컬으며, ‘세계 평화의 정신’으로 계승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정치학자가 있다. 박명림(54) 연세대 교수다. 서른네 살 때 박사학위 논문을 확장해 《한국전쟁의 발발과 기원 1, 2》을 냈고, 한국전쟁 관련 국제 논쟁에서 ‘한국 학계의 자존심을 세워준 학자’로 평가받는다. 그는 사회 구조와 인간 행동을 함께 견주어 보고, 그 관계의 긴밀함을 통해 ‘역사적 사건’을 재구성한다. 이른바 원근법적 분석. 사회 이론과 더불어 사료 발굴, 현장 취재를 통해 역사적 사실에 더욱 가깝게 다가가는 것이다.

박 교수가 늘 현장으로 가는 이유다. 제주 4·3 사건, 한국전쟁, 광주항쟁 연구 때도 늘 현장에 발을 딛고 그곳의 증언을 들었다. 가깝게는 세월호가 가라앉았을 때에도 그는 팽목항에서 밤을 지새웠다. ‘골든타임’이 무의미하게 흘러가던 그 밤, 청년들에게 “나라를 발본적으로 뜯어고치라. 이 패덕의 세대, 야만의 국가를 부디 광정하라”고 울부짖었다. 지난해 촛불집회 때도 시민들에 파묻혀 촛불을 들었다. 때로는 멀리서, 때로는 가까이서 보았다. 지나가는 집회 참가자들의 옷깃을 붙잡았고 그들의 말로 노트 한 권을 다 채웠다. 최근 그의 말과 글에는 ‘희망’이 짙게 배어난다. 심지어 그 희망은 인간의 깊은 심연을 향하고 있다.

지난 12월 13일 희망의 근거를 확인하고자 그의 연구실을 찾았다. 참살 현장을 두루 다니며 인류의 잔혹사를 기록해온 그에게 ‘헬조선’의 희망을 묻는 것은 아이러니였다. 모순을 푸는 열쇠는 그의 웅숭깊은 영성에서부터 나왔다. 전혀 예상치 못한 대답이었다.

 

― 인터뷰가 어렵게 성사되었습니다. 기독교 매체와 이 인터뷰가 처음이라고 들었습니다.
사실 신앙 관련 인터뷰는 크게 부담스럽습니다. 신앙도 부족하고 신앙대로 살지도 못하니 마음이 무겁습니다. 어디에서도 한 적이 없습니다. 몇몇 이유가 있는데, 하나는 믿음이 깊은 분들에 대한 부끄러움 때문입니다. 교회에서 훌륭한 믿음을 가진 선진들을 많이 봐왔기 때문에, 그렇게 빛도 이름도 없이 헌신한 분들에 비하여 제 신앙은 너무 부족하여 그분들께 누가 되는 것 아닌가 죄송스러웠습니다. 또 다른 이유는 제가 사회과학도로서 글을 쓰고 활동하는 것은 분명 ‘학자의 혀’(사 50:4), 즉 훈련된 말로써 곤고한 자들을 위로하고 약자의 편에 서고자 함이지만, 그 신앙을 드러내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 하는 고민이었습니다. 크리스천은 기본적으로 옳은 것을 추구하는 영원한 죄인으로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옳음을 추구하는 영원히 죄지은 자가 크리스천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늘 거절할 수밖에 없었죠.

― 그간 감춰두셨던(?) 교수님의 신앙 여정이 궁금합니다.
그리 깊은 믿음도 아닌데 신앙고백은 처음이라 겁이 납니다. 저는 박정희·전두환시대에 고등학교와 대학을 다녔습니다. 고등학교는 운이 좋게도 기독교학교를 다녔습니다. 물론 당시에는 반항심이 강한 사춘기 시절이라 아직 신앙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대학 입학 후에는 정치학을 전공하게 되어 민주주의, 헌법, 구조, 역사, 제도 등을 공부하면서, 사회의 본질은 ‘사건’으로 드러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행위가 인간의지의 표현이듯 사건은 한 체제의 표출인 것이죠. 이때 제가 공부하며 주목한 사건은 ‘광주항쟁’, ‘제주 4·3 사건’과 ‘한국전쟁’이었습니다. (박명림 교수는 〈제주도 4·3민중항쟁에 관한 연구〉와 〈한국전쟁의 발발과 기원〉을 각각 석사·박사 논문으로 썼다. - 편집자) 공부하면서 젊은 날에 큰 충격에 빠져들게 되었습니다. 인간은 인간의 절대비극을 위로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제주 4·3 사건과 한국전쟁의 학살 현장을 답사하다 보니 인간의 언어가 얼마나 무력하고 나약한지 깨닫고는 깊은 절망에 빠졌습니다. 이성적으로 열심히 연구하면 할수록 영혼은 더 고갈되고 점점 더 깊은 절망상태로 빠져드는 체험을 반복하였습니다. 학살 현장에 다녀오면 너무 많이 앓았습니다.

   
▲"어느 날 한 기관으로부터 논문에 필요한 비밀 자료를 얻어서 돌아오는 어두운 밤길에서 온몸이 피투성이가 되도록 얻어맞았습니다. 얼마나 맞았는지 며칠 동안 앞도 못 보고 말도 못할 정도였지요." ⓒ김승범

― 앓으셨다고요?
네. 많이 앓았어요. 시체와 죽음의 현장들이잖아요. 학살 현장들을 다녀오면 밤에 잠을 못 잤습니다. 종종 헛소리도 하고 며칠 동안은 신열에 시달렸어요. 마구 헛소리를 지르다가 땀범벅이 되어 깬 적도 제법 됩니다. 이런 때 제 영혼의 알 수 없는 고갈, 핍진함을 채워준 사람이 지금의 제 아내입니다. 연애를 할 때인데 제가 알 수 없는 방식과 언어로 저를 위로해주었습니다. 그러면서 아내가 “사회과학은 조금 아는지 모르지만 바탕이 빠져 있다”면서 제게 신앙을 가질 것을 진심으로 권했어요. 그때가 박사논문 준비할 때입니다. 어느 날 한 기관으로부터 논문에 필요한 비밀 자료를 얻어서 돌아오는 어두운 밤길에서 온몸이 피투성이가 되도록 얻어맞았습니다. 얼마나 맞았는지 며칠 동안 앞도 못 보고 말도 못할 정도였지요. 귀한 자료들은 가방 채 빼앗겼죠. 그 가방은 은사님께서 오랫동안 쓰시던 것을 제게 물려주신 소중한 유산 같은 거였어요. 저는 당시 연애 중이던 아내가 무서워서 떠날 줄 알았어요. 그런데 투박하고 정제되지 않은 제 곁을 지키면서 정성스레 약을 지어오고는 간호해주며 하나님 믿어야 한다고 그래요. 그리고 하나님을 믿지 않으면 결혼을 안 하겠다고. 그때 나이도 좀 있었고 결혼도 하고 싶고 전국을 쏘다니느라 지친 영혼의 안식도 얻고 싶고, 아내 말을 따라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인간이 얼마나 완악한지 신앙을 받아들이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교회는 다녔지만 ‘선데이 크리스천’이었던 거죠. 그러다가 또 하나의 사건이 터집니다.

― 또 하나의 사건이요?
학위를 마치고 미국 하버드-옌칭연구소에 방문연구원으로 가 있을 때입니다. 그때 한국전쟁연구의 제2부에 해당되는 《한국 1950:전쟁과 평화》 원고를 최종 정리하고 있었어요. 오래 연구한 내용이라 곧 출판사에 넘기기 직전이었습니다. 크리스마스 때 여러 가정들이 모여서 우리 집에서 파티를 했는데, 아이들이 제 노트북을 갖고 놀다가 모든 자료가 사라지는 사고가 난 겁니다. 하버드대학 컴퓨터센터에 맡겨도 복구가 안 되고, 컴퓨터 제조사 복구센터에까지 보냈는데도 모든 파일이 완전히 삭제되어 살릴 수가 없다는 겁니다. 청천벽력이었죠. 충격이 너무 커서 보스턴의 겨울밤, 그 살을 에는 추위 속에서 왕복 수 시간 거리의 월든 폰드 부근까지 걸어갔다 왔습니다. 하얗게 얼음꽃에 덮인 채 새벽에야 들어오는 저를 보고는 네 살배기 아들이 침대 다리를 붙잡은 채 “하나님 우리 아빠 살려주세요”라고 기도하던 모습이 생생합니다.

아내는 그때 위로 대신 강력하게 경고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번에는 당신이 소중히 여기는 원고를 가져가셨지만, 다음에는 당신이나 가족의 팔다리를 다치게 하실지도 모른다’고요. 그러면서 저를 위해 기도하는데 그 눈물이 아직도 선합니다. 더 놀라웠던 것은 그다음이었어요. 객원교수로 와 계셨던 서강대의 한 교수님이 갑자기 저희 집으로 찾아온 거예요. 그리고는 “하나님이 당신이 예수를 맞을 준비가 되었다고 찾아가라”고 했다는 겁니다. 사영리와 성경을 들고 오셨어요. 그때 제가 완전히 무너졌고 제 입술로 영접을 하였습니다. 크리스천이 된다는 것은 축복인 동시에 고난의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 죽음의 현장을 다니고 죽음의 역사를 연구하면서 영혼의 핍진함을 느끼셨다고 했는데, 신앙을 가지면서 극복이 되던가요?
사회과학은 현실에 대한 비판과 대안을 추구하기 때문에 분노와 불만도 함께 갖게 합니다. 저 같은 사회과학도는 번다한 생활로 인해 여러 잔병들을 달고 살죠. 저의 경우 수면 부족으로 만성 피로, 위염, 요통은 평생 동행하는 편입니다. 저는 신앙이 아니었다면 건강부터 무너졌을 겁니다. 신앙생활은 제 삶을 단순하게 만들어 주었고, 한국적 사회생활에 필수적인 술 문화와 단절을 시켜주었고, 용서와 관용을 통한 육체건강과 정신건강 회복에도 결정적인 도움을 주었습니다. 범사에 대한 감사와 긍정의 마음도 고단한 제 삶에 큰 힘이 되었죠. 무엇보다 타인들을 위한 기도를 드리게 된 뒤 영적 평안이 찾아오면서 앞서 말씀드린 불면과 신열의 증상도 거짓말처럼 없어졌고요.

지금도 제가 우리 사회의 그릇된 현실을 지적하는 글을 쓰고 고통의 현장을 계속 다녀도 영적 핍진함을 채우는 자양분을 공급받는 근원은 성경입니다. 저는 인간과 세계의 문제들에 대한 정답과 정도는 성서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통해 정도와 정답을 주셨는데 그 시대 그 상황에, 또 자기에게 맞는 해답과 해법으로 만드는 지혜와 능력은 인간들에게 달려있다고 봅니다. 저나 우리는 그게 부족하다고 봅니다.

― 세월호 참사 당시 곧바로 팽목항으로 달려가셨습니다. 그 고통의 현장에서 쓴 ‘통곡의 바다, 절망의 대한민국’ 연재(〈한겨레〉 2014년 4월 24일, 5월 6일)는 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리고 분노케 했습니다.
제가 썼다기보다는 어머니들의 음성을 제가 대신 전해드린 것에 불과합니다. 세월호 침몰의 현장인 팽목항은 이 시대 가장 슬픈 비극의 현장이었습니다. 어머니들의 울음은 제가 들었던 인간의 가장 슬픈 음성이었습니다. 아이를 살려내라는 단말마적 외침들을 들으면서 저는 인간의 음성이 저렇게 처절할 수 있는가 되물었습니다. 팽목항에서 바다 저쪽으로는 어둠 속에 구조 작업을 하는 작은 불빛들이 보였습니다. 그런데 어떤 어머니들은 자기도 모르게 아이 이름을 부르면서 그냥 칠흑의 바다로 걸어 들어갑니다. 어머니로서는 그게 정상이죠. 가장 사랑하는 자기 아이를 살려야 하잖아요. 거기서 어머니를 붙들고…, 어머니는 지구 상의 가장 슬픈 울음을 터뜨리고…, 삶과 죽음을 가르는 그 절체절명의 순간에 인간의 지식과 직업이 무슨 소용인가요? 너무도 하찮을 뿐이지요. 

   
▲"팽목항에서 바다 저쪽으로는 어둠 속에 구조 작업을 하는 작은 불빛들이 보였습니다. 그런데 어떤 어머니들은 자기도 모르게 아이 이름을 부르면서 그냥 칠흑의 바다로 걸어 들어갑니다. 어머니로서는 그게 정상이죠. 가장 사랑하는 자기 아이를 살려야 하잖아요." ⓒ복음과상황 이범진

― 굳이 현장에 직접 가신 이유가 있습니까?
현장 방문은 제가 공부하는 근본 자세입니다. 제주 4·3과 한국전쟁을 공부할 당시는 우리 사회에 아직 답사 개념 같은 것은 있지도 않을 때였습니다. 특히 이념적으로 민감한 현대사 문제를 현장 방문과 인터뷰로 다루는 것은 매우 위험한 때였습니다. 저는 신앙을 가진 뒤로는 어떤 사건이 터지면 몸부터 그곳으로 옮기려 합니다. 세월호 때도 아이들이 배 안에 갇혀 죽어가자 밥을 먹어도 자꾸 넘어왔습니다. 결국 현장으로 달려갔습니다. 인간들은 개인이건 국가이건 물질에 대한 욕심이 사람을 사망에 이르게 한다는 것을 반드시 깨달아야 합니다. 물질 욕심이 크면 인간 생명이 보이질 않습니다. 생명민감성, 영혼민감성이 사라집니다. 아이들이 배 안에 있으면 즉시 망치로라도 깨고 어떻게든 들어가야 했는데, 다들 상부 명령만 마냥 기다리고 있었잖아요. 인터넷 보급이 세계 1위이고, 전자정부 지수가 1위이면 무엇합니까? 그걸 작동할 사람들의 생명민감성이 낮다면 아이들이 아무리 살려달라고 신호를 보내도 무반응일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통탄할 일입니다. 

성서가 저한테 가르쳐준 것은 “지식보다 몸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막 8:36) 이 말씀의 ‘목숨’은 ‘영혼’이라는 뜻입니다. 영혼을 잃으면 죽은 삶이지요. 영혼은 그만큼 중요하여 항상 살아있어야 하는데, 나중에 심판 날에 하나님께서 네가 어디에 있었느냐 물으실 때, 제가 권세 있는 자 옆에 있었는지 눈물 흘리는 자 옆에 있었는지 물으실 때에 자신 있게 말하진 못하더라도 ‘약자들 옆에 있으려고 노력했습니다’라고 말할 수는 있어야 하잖아요. 고전을 보면 “결국 마지막 전장은 네 몸이다.”(“The last battle ground is your body.”)라는 말이 나옵니다. 너의 믿음도 생각도 중요하지만 네가 정말 믿는다면 내 가르침대로 네 몸이 정말 거기에 가 있어야 한다는 뜻이겠죠. 눈물 흘리는 자 옆에, 성문 밖에 있었느냐 물으시겠죠. 부족한 대로 저는 제 몸이 먼저 현장으로 가서 듣고 느끼려고 합니다. 몸이 느끼지 못하면 글은 관념적이고 추상적이 된다고 봅니다. 제가 한국과 세계의 비극의 현장을 찾아다니는 이유입니다.

― 굉장히 신앙적인 이유였네요?
나름대로는 그렇습니다. 팽목항에 내려갈 때도 성경을 들고 갔습니다. 밤중에는 진도체육관에 들어가 귀퉁이에 앉았습니다. 가족들은 울고 있고 저도 구석에서 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성경을 읽고 기도하며 묵상했습니다. 한 학교, 한 가족, 한 아이의 절대슬픔이 온 나라, 온 학교, 온 가족의 슬픔이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예수께서 왜 한 마리의 양을 그렇게 소중하게 여기셨는지, 저 자신이 아이들을 둔 부모로서 더 절절히 깨달았습니다.

― 팽목항 현장에서 쓴 첫 번째 글의 마지막을 “청년들은 이 못난 세대, 불행한 조국의 현실을 기필코 혁신하라.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나라를 발본적으로 뜯어고치라. 이 패덕의 세대, 야만의 국가를 부디 광정하라.” 하고 끝맺으셨는데요.
세월호는 무엇보다 기성세대의 청년들에 대한 범죄행위였습니다. 그때 현장에서 깨달은 것을 통해 우리 사회에 문제제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기성세대로서 죽어가는 청년들을 구하지 못하는 우리 세대를 본받지 말라는 회개와 자성의 외침이었습니다. 우리 몸에서 가장 중요한 곳은 심장이나 뇌가 아니라 ‘지금 아픈 곳’입니다. 가정 안에서도 아픈 사람이 중심입니다. 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대통령, 장관, 교수, 목사가 국가의 중심이 아니라 아픈 사람, 눈물 흘리는 사람이 중심입니다. 그런데 팽목항 현장에는 죽어가는 청년들을 위한 국가는 없었습니다. 제대로 된 기성세대도 없었습니다. ‘국가의 실종’이었고, ‘어른의 실종’이었습니다. 팽목항의 아픈 현장을 무시하고는 한국의 모든 청년들과 온 대한민국이 정말 아프게 될 거라 말하고 싶었습니다.

   
▲"여러 비극들을 연구하면서 느꼈던 것이지만 한 공동체가 바로 서 있는지 아닌지는 위기의 순간에 드러납니다. 위기의 순간에 공동체 성원들이 목숨민감성, 생명연대성을 갖고 있느냐가 한 생명과 국가 공동체의 운명을 결정합니다."  ⓒ김승범

― ‘이게 과연 나라냐?’라는 문제제기를 가장 먼저 강하게 하셨습니다.
네. 당시 제가 팽목에서 던진 위의 말은 이후 여러 언론과 인터넷, 심지어 국회의 대정부질문에서까지 언급되면서 우리 사회의 중심 담론이 되었습니다. 저의 문제제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 너무도 심각해진 ‘국가 실종’ 때문이었다고 봅니다. 한 공동체에서 나라의 머리, 곧 ‘제사장’은 정말 중요합니다. 세월호 참사는 제사장의 실종이 가져온 재앙입니다. 그게 참극의 시작이었습니다. 대통령이 긴급한 자기 역할을 수행해야 할 때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았어요. 생명 구출은 늘 촌각을 다투는 문제입니다. 그런데 대통령이 실종되었으니 온 국민이 눈을 뜨고 아이들이 죽어가는 장면을 지켜볼 뿐 그들을 어떻게 살릴 수 있었겠습니까? 

― 최근 많은 사람들이 ‘세월호 7시간’에 관한 보도를 보면서 분노합니다. ‘머리의 실종’에 관한 분노겠지요.
여러 비극들을 연구하면서 느꼈던 것이지만 한 공동체가 바로 서 있는지 아닌지는 위기의 순간에 드러납니다. 위기의 순간에 공동체 성원들이 목숨민감성, 생명연대성을 갖고 있느냐가 한 생명과 국가 공동체의 운명을 결정합니다. 자기 앞에 있는 사람도 피와 가족이 있고, 그가 죽으면 그의 가족이 슬퍼할 것이고, 자기와 똑같이 하나님에 의해 창조된 동등한 생명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특별히 지도자들의 인식과 대처는 중요합니다. 이런 기준에서 보면 대한민국은 반드시 개조되어야 합니다. 이렇게 물욕이 지배하여 생명에 대해 둔감하고 끝까지 외면하면 팽목항은 대한민국으로 확산될 것이고 세월호는 대한민국호가 될 것이라고 외쳤습니다. 세월호 유가족이 당하는 ‘예외성’이 대한민국 모든 국민이 당하는 보편적 현상으로 확산될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세월호 가족의 절규를 내 가족의 절규로 받아들여야 했습니다. 그래서 그때 ‘이게 과연 나라냐’는 문제를 제기한 거죠. 사실 당시 마지막 글은 언론에 싣지를 못했습니다.

― 왜 싣지 못했나요?
헌법과 법률에 비추어 대통령 탄핵소추를 주장하는 글이었어요. 언론이 부담스러워하기도 했고, 저도 주위 여러 분들께 조언을 구했는데 싣지 않는 게 좋겠다고 하더라고요. 세월호 슬픔을 정쟁에 휘말리게 하는 단초가 될 수 있다는 우려들이 컸어요. 돌아보니 당시에 게재하는 게 차라리 낫지 않았을까 합니다.

― 이미 그때부터 탄핵을 생각하셨군요. 두 번째 글에서는 “대통령은 하야를 각오할 정도의 ‘책임윤리’를 보여야 한다”고 주장하셨습니다.
저로서는 ‘하야’라는 표현을 써야 할 정도로 세월호는 엄청난 사건이었습니다. 돌아보니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의 초기 전조가 세월호 사태였던 것 같습니다. 그때 국회에서 탄핵소추 과정을 밟아보았더라면, 또 대통령이 최소한의 생명민감성을 갖고 대처했다면 이렇게까지 공동체가 위기에 직면하지는 않았을 텐데요. 앞으로 머리된 자들을 뽑을 때에는 정말 철저하게 검증하고 뽑힌 뒤에는 엄히 감시해야 합니다.

― 어떤 기준으로 검증하고 감시해야 할까요?
공공성과 책임윤리가 기준이라고 봅니다. 지위·직임(office)의 어원(officium/opus)을 살피면 기독교적인 뜻을 갖고 있습니다. 사무실이라는 개념은 사제나 공무원들이 공적인 임무를 처리하는 공간을 뜻했습니다. 그 공간에서 사적 개입은 허용될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사도, 국민의 심부름꾼으로서 보편타당하게 직분을 수행하는 곳이 공적 직임입니다. 사도는 하나님의 말씀을, 공무원은 국민의 뜻을 가장 중요하게 받드는 자리입니다. 그래서 공적 윤리와 책임의식을 가장 중시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번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은 공공성과 책임윤리의 반복 일탈을 보여주었습니다. 가장 모범적으로 공적 임무를 수행해야 할 대통령이 사적 연줄을 국가업무에 불법적으로 활용했습니다. 사적 일탈을 견제하고 감시하던 국가 공직들은 외려 억압과 피해를 당했습니다. 이제 우리는 엄정한 시민의식에 바탕해 사회 구성원 모두를 위해 일할 높은 공공의식과 책임윤리를 갖는 머리된 자를 뽑아야겠지요. 뽑고 난 뒤로도 한편에서는 연대하고 지지하면서도 철저히 감시하고 비판해야 하고요.

― 그동안 이해되지 않던 국가의 공동체적 결정들이 비선 개입에 따른 판단이었다는 보도들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정말로 민주공화국에서는 존재하기 힘든 상황들입니다. 사적 영역이 국가의 공적 부문을 좌우하였습니다. 국가가 정책 방향을 갑자기 뒤집는 방식을 정치학에서는 ‘발작적 결정’이라고 합니다. 박근혜 정부 들어 결정의 내용 못지않게 결정의 과정을 보면 갑자기 뒤집힌 경우가 많습니다. 국정교과서, 개성공단 폐쇄, 사드 배치, 12·28 위안부 합의 과정을 보면 국가 공식기구들의 공적 결정 과정은 알려지지도 않은 채, 일종의 발작현상처럼 갑자기 뒤집혔습니다. 박근혜 정부의 특징입니다. 군주의 발작적 정책 결정을 막는 게 근대 공화주의 등장 원인 중 하나였습니다. 군주 개인의 심기가 과도하게 국정에 영향을 끼치니까 이것을 막기 위해 공화주의로 오면서 공적 결정 과정을 따르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세월호를 포함해 공적 결정 과정이 작동하지 않은 사례는 빈발했습니다.

― 많은 시민들이 ‘박근혜 퇴진’을 외치며 광장으로 나왔습니다. 촛불집회가 대통령 탄핵안을 가결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음에도, ‘광장정치’라 해서 이를 경계하는 정치인들과 학자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교수님께서 <네이버 열린 연단>(openlectures.naver.com)에 쓴 ‘광화문 항쟁, 광화문 세대, 광화문 정신’을 보니 이를 굉장히 높이 평가하는 것 같습니다.
저는 늘 시민과 제도, 광장과 국가의 결합을 주장해왔습니다. 제도는 문제를 틀에 집어넣어서 해결한다는 뜻을 갖습니다. 그 결과 안정을 제공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틀 자체가 문제를 해결하지도 못하고 국민들에게 안정을 주지도 못하면 시민의 직접 참여는 불가피합니다. 이때는 국가가 광장의 의견을 충분히 들을 필요가 있습니다. 민주공화국에서 ‘주권자’는 헌법 제정 주체인 국민이고, 주권자의 두 대의기구는 의회와 대통령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대통령이 주권자인 국민으로부터 탄핵을 당했으니 집행부에 대한 주권은 회수된 상태죠. 국민과 의회가 함께 권한을 행사해야 하는 상황인 겁니다. 헌법의 가치를 복원하고, 적폐를 청산하고, 사회를 개혁하는 데 시민사회가 참여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주권자들이 광화문에 모여 시대를 관통하는 철학, 즉 시대정신을 빚어냈습니다. 이들의 요구와 열망을 제외한 채 나라의 개혁 방향을 정한다면 성공하기 어렵다고 봅니다.  

― 시민들을 신뢰하시는 것 같습니다.
저는 인간의 몽매를 비판하는 동시에 인간의 이성을 신뢰합니다. 특히 시대정신을 실천하는 시민들을 신뢰합니다. 10월 29일 2만 시민의 참여가 2주 만에 100만 명으로 팽창했습니다. 다시 3주 만에 230만을 넘었습니다. 이런 폭발적인 시민 참여는 세계적으로도 희귀한 사례입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모든 도시에서 완벽한 평화 행진이 유지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광화문과 전국 광장의 평화를 저는 ‘완전평화’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지금 세계의 모습을 보면, 유럽에서는 테러가 빈발하고 극우파가 부상하고 있지요. 영국의 브렉시트,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당선, 그리고 중국, 일본, 북한의 민족주의, 우경화, 군사주의는 동아시아에 반(反)평화 흐름을 거세게 합니다. 세계의 이런 역진 속에서 100만~200만 평화 행진은 커다란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저는 ‘광화문 평화정신’이 지속되어 국경을 넘기 시작하면 한반도 평화는 물론 21세기 동아시아와 세계 평화의 초석을 놓을 수 있을 것으로 봅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세계시민으로서 만든 시민 평화, 광장 평화가 동아시아 평화와 세계 평화를 정초하는 것이지요.

― 매주 광화문 현장에 나가셨는데, 그때 몸으로 느낀 것들인가요? 
그렇습니다. 외국 강의 때를 빼고는 매주 나갔습니다. 진보·보수 한 쪽만 편드는 집회였다면 그리 열심히 참여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저는 집회에 참석한 분들을 인터뷰하면서 이번 광화문 항쟁은 세밀하게 기록되고 분석되어야 할 시대정신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70~80대 어르신들도 있고, 3대(代)가 함께 나오기도 하였습니다. 이것은 좌파-우파, 진보-보수, 여-야의 문제가 아니라 공공과 사사, 정의와 불의의 문제이기에 이리 많이 참여하였던 것으로 보였습니다. 대통령의 잘못에 대한 주권자들의 엄중한 퇴진 명령이었습니다. 광범위하게 인터뷰를 하면서 광장을 어떻게 제도화할 것인지 고민했습니다.(이에 관한 후속 논의는 <네이버 열린연단>을 통해 연재될 예정이다.-편집자) 이런 고민은 기독교적인 정의와 관용의 신념 때문이기도 합니다. ‘정의’의 어원을 살펴보면 ‘하나님의 눈으로 봤을 때에 좌로나 우로 치우치지 않는다’는 뜻을 내포합니다.

   
▲ "인간은 근본으로 다가갈수록 영성이 충만해지며, 모호하고 애매하였던 많은 것들이 분명해지지요. 신앙은 삶의 많은 모호한 것들을 분명하게 해주는 기능을 갖는다고 봅니다." ⓒ김승범

― ‘기독교적인 신념’이라 언급하셨는데요. 교수님께서는 ‘기독교적’이라는 용어를 어떻게 정의하고 계신지요.
저는 ‘보편적’ ‘전체적’의 뜻으로 이해합니다. 이스라엘 종족의 부족종교가 로마의 종교로, 다시 유럽의 종교로, 끝내는 세계의 종교로 확장되었잖아요. 이 과정에서 인간들의 많은 죄악이 있었지만 그 죄악을 벗어나서 보면, 기독교의 확장 과정은 인간 누구에게나 보편적으로 다가가는 무언가가 있다는 거겠죠. 저는 북한 방문 때도 성경을 가져갔습니다. 가장 어둡고 인권이 억압된 형제의 나라가 우리 옆에 있는 것은 인간 보편의 관점에서 더 많이 아파하고 더 눈물 흘리라는 하나님의 뜻이 있는 거라 믿습니다.

다른 한편 ‘기독교적’이라는 의미는 ‘근본적인’ 것이라고 이해합니다. 인간은 근본으로 다가갈수록 영성이 충만해지며, 모호하고 애매하였던 많은 것들이 분명해지지요. 신앙은 삶의 많은 모호한 것들을 분명하게 해주는 기능을 갖는다고 봅니다. 그래서 저는 ‘기독교적’이라는 뜻을 보편을 추구하여 근본을 비춰주는 존재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 교수님께서 생각하는 의미와는 달리, 조롱의 의미로도 읽히고 있습니다.
오늘날 기독교가 물질, 대형화, 보수화, 파벌투쟁, 기득권을 좇고 있기에 비판을 많이 받고 있지요. 더 낮은 곳에 거하기 위해 절대적인 회개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기독교는 더 희생적이며 생명지향적 평화적인 방향으로 나아가 본령을 회복해야 합니다. 교회가 바뀌어야 합니다. 교회가 먼저 바뀌지 않으면 우리 사회의 희망도 점점 멀어지지 않을까 고민입니다.

물론 기독교가 우리 사회에 기여한 바도 큽니다. 근대 초기에 의료와 교육과 빈곤 퇴치에 끼친 영향은 절대적이었습니다. 안중근의 희생은 종교적 순교적 결단의 산물이었습니다. 또 민주화 시대에 기독교의 역할은 막대하였습니다. ‘기독교적’이라는 표현은 그래서 우리 사회에서 ‘희생적’이라는 뜻이기도 했습니다. 남북관계에서도 상당 기간 북한의 낮은 자들을 위해 구제하고자 나선 것은 기독교인들입니다. 북한 주민들이 눈물 흘릴 때 식품과 의약품을 가장 많이 지원한 게 기독교인들입니다.

― 앞서 ‘눈물 흘리는 자들이 있는 곳이 국가의 중심이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신앙적 관점이 반영된 것 같습니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약자와 사회의 약자는 같다고 생각합니다. 기독교는 항상 그들 편에 서야 한다고 믿습니다. 권력과 물질이 아닌 인간의 편에 서는 기독교가 되어야 합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온통 상층으로 권력과 물질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기업, 대학, 금융, 언론, 병원, 유통, 로펌, 심지어 인터넷 포털과 서점도 ‘대형’으로 초집중되고 있습니다. 교회조차 몇몇 대형교회로 몰리고 있지요. 그러나 교회는 사회 조직들과는 다른 존재 양식을 가져야 한다고 봅니다. 한 영혼, 한 사람의 곁에서 위치하며 동네교회와 마을교회로서 어려운 사람들 가까이 있어야 합니다. 약자는 여성, 노인, 실업자, 비정규직, 빈곤계층, 최저임금 이하 계층 등이 존재하는데, 기독교는 이들의 편에서 낮은 자들과 함께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끌다’(lead), ‘지도력’(leadership)은 원래 앞에서 이끈다는 뜻이 아니라 “함께 가게 하다”는 의미입니다. 더 낮아질수록 낮은 자들을 더 많이 함께 가게 할 수 있지요. 즉 더 낮아지는 게 더 큰 리더십이지요. 그게 리더십의 본질이고 예수가 가르치는 기독교의 본령입니다.

― 팽목항에서 예수의 잃어버린 어린 양 비유를 깨달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아이를 잃은 어머니들의 절규를 들으면서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까지 함께 끌고 갈 수 있는 시야가 핵심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리더십’이 ‘함께 가게 하는 능력’이라고 했을 때, 이것을 가장 잘 보여준 사람이 예수가 아닌가 합니다. 한 개인으로서 예수만큼 인류 역사를 바꾼 사람이 없습니다. 이것은 크리스천이 아니더라도 인정할 수밖에 없지요. 예수 이전에도 없었고, 이후에도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가 가장 낮은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낮아질수록 낮은 자들이 더 많이 보이니까 그들과 함께 갈 수 있는 능력이 그만큼 높아지는 겁니다. 인간사회의 밑바닥으로 내려갈수록 사람들이 더 많이 보이니까 더 큰 ‘리더십’이 생기는 거지요.

저는 이것이 기독교의 놀라운 비밀이라고 혼자 뒤늦게 깨달았어요.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독생자가 죽어가는 과정을 끝까지 무력하게 그저 바라만 보시잖아요. 전능자의 이 무력함은 대체 무엇일까?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기독교의 최고 비밀이 아닌가 싶습니다. 분명히 독생자를 구하고도 남을 전지전능한 존재가 무력하게 바라만 볼 정도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사랑하시는구나, 우리를 구원하고자 독생자를 보냈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하나님께서 저리 무력해지는구나 하는….

― 우리 사회에서 ‘약자’들은 더욱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특별히 교수님께서는 대한민국 사회의 심각한 양극화 현상을 다양한 통계를 분석해 입증하신 바 있는데요. 
너무도 많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이야기를 해도 인정 안 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상세한 통계를 분석해서 인정하도록 한 거죠. 우리 사회의 비정규직, 여성, 청년실업자, 빈민 계층 등 많은 약자들은 국가의 잘못된 분배정책, 즉 구조적 폭력 때문에 약자가 된 경우가 대다수입니다. 국가경제는 발전했는데 인간지표는 최악입니다. 자살률, 저출산율, 비정규직 비율, 자영업 비율, 남녀임금 격차, 교통사고사망률, 산업재해 사망률, 직계존속살인비율, 직계비속살인비율… 모두 무서울 정도로 높습니다. 국가의 제도들이 국민 삶을 안정되게 해주지 못하는 거지요. 인간지표가 이토록 파괴된 최악의 사회이니 약자가 급증할 수밖에 없어요. 모든 자원이 소수의 상층 강자들에게 집중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모든 물질과 권세가 상층에만 집중되다가는 인간 공동체가 끝내 소멸되고 말 겁니다.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모든 인간들이 전부 약자가 되고 말 것입니다. 

   
▲ "저는 그분들이 끝까지 진실 규명을 위해 노력하는 그 동력이 참척의 절대 슬픔을 다른 부모들은 반복하지 않게 하려는 시민성의 발로였다고 생각합니다. 비극을 계기로 공동체적 실존에 눈을 뜨는 것이죠." ⓒ김승범

― 다시 ‘광장’ 이야기로 돌아와서요. ‘헌법의 가치를 복원하고, 적폐를 청산하고, 사회를 개혁할 때 시민사회가 꼭 참여해야 하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그런 약자들의 절실한 목소리를 반영해야 하기 때문이기도 할 텐데요.
광장에서 ‘비폭력’을 외치는 청년들을 보면서 마음이 무겁고 울컥했습니다. 그들 중 다수는 국가의 구조적 폭력의 희생자이기 때문입니다. 예산 농단과 부정부패로 인해 국가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비정규직일 수도 있고 실업자일 수도 있겠죠. 성적이 낮아서 주눅 들었던 학생도 있었을 테지요. 국가의 구조적 폭력과 국정농단에 분노하면서도 똑같이 폭력을 행사하는 것이 아니라 절제하고 자제하고…, 세계적 유례가 없는 평화시위를 이뤄낸 주인공들입니다. 그런 이들 한 사람 한 사람이 모여 장엄한 ‘촛불평화’를 만들었습니다. 세계 근대 인류사의 최초 충격이 아닐까 합니다. 100만~200만의 연속 시위와 참여에도 단 한 건의 폭력, 습격, 약탈, 폭행, 방화가 없는 경이를 연출하였습니다. 집합적 분노 전체가 평화로 비약하는 사건을 전 세계가 목도하였습니다. 그 거대한 촛불 물결이 시대정신의 진수, 절대정신의 현현이 아니면 무엇이겠습니까? 우리는 광장에서 자유, 참여, 연대, 공공성, 평등, 법치, 공화, 평화를 모두 보았습니다. 이것을 정교하게 다듬어 제도화하는 만큼 우리 사회는 발전할 것입니다. 

― 그런 점에서, 우리 사회의 ‘약자’인 세월호 유족의 ‘자기초극의 노력’을 기억해야 한다고 여러 번 강조하신 거군요.
그분들이 얼마나 많은 비난과 조롱을 당했습니까? 그럼에도 특별법 제정을 위해 자신들의 일상을 포기하고 묵묵하게 인내하고 견뎌내었습니다. 이 사회를 향하여 분노하고 폭력을 행사해도 모자랄 판에 그들은 참고 또 참으며 성인군자처럼 행동해야 했습니다. 저는 그분들이 끝까지 진실 규명을 위해 노력하는 그 동력이 참척의 절대 슬픔을 다른 부모들은 반복하지 않게 하려는 시민성의 발로였다고 생각합니다. 비극을 계기로 공동체적 실존에 눈을 뜨는 것이죠.

― 어느 글에서는 “비극은 인간 공동체의 본질을 드러나게 한다”라고 쓰셨는데, 저는 그게 ‘절망’만을 가리키는 표현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제주 4·3 사건, 한국전쟁 등 학살의 비극을 깊이 연구하신 사회과 학자로서 인간 공동체의 민낯에서 ‘희망’도 발견하신 건데요.
학살 현장의 이야기는 정말 끔찍합니다. 어떻게 인간이 인간을 저렇게 죽일 수 있지? 제가 들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잔혹한 장면과 방법들을 머릿속으로 그릴 수는 있지만 글로 자세히 옮길 수는 없습니다. 어떤 광기의 순간이 오면 따라 할 수 있다고도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저 자신도 신앙이 없었다면 인간 비극에 대한 연구를 지속하기 어려웠을 겁니다. 심신이 계속 피폐해졌겠지요. 아내도 늘 얘기합니다. 제가 신앙이 없었다면 일찍 죽었을 거라고요.

인간은 슬픔이 클수록 많이 울고 나면 영혼이 정갈해집니다. 더 이상 슬플 수 없는 바닥에서 치고 올라오는 생의 의지 같은 것이 생기는 것이지요. 기도할 때 종종 체험하는 것인데요. 하루나 일주일 동안 영혼을 건강하게 생활하느냐 여부는 기도할 때 얼마나 절실하게 무릎 꿇어 기도했느냐에 달려있지 않나 싶습니다. 일생도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얼마나 간절하냐에 달려 있지 않을까 싶어요. 그런데 인간은 가장 슬플 때 가장 많이 내려놓게 되고, 그래야 절실한 본질을 보게 되는 것 같습니다. 더 이상 내려갈 곳이 없을 때 하나님은 바닥을 치고 올라오게 하는 용기를 주시는 것 같습니다. 잘 나가고 성공하고 그런 때보다 힘들고 환란에 처했을 때가 개인이든 공동체든 그 본질이 드러나는 때라고 생각합니다. 이럴 때 비로소 생명에 대해 민감해지고 자신과 옆을 돌아보게 되고 타인들과 악수하고 함께 모이고 그렇게 되는 것 같습니다.

― 그것이 제주 4·3 사건, 한국전쟁, 그리고 세월호 사태를 넘어서는 길이라는 말씀인지요?
타인의 아픔에 대한 이해와 포용이 비극을 넘어서는 방법의 하나라고 봅니다. 세월호 사태 이후 한국 사회에서 치유라는 말이 많이 언급됐죠. 당시 저는 안산분향소에 다니면서 치유에 대해 여러 고민을 하게 되었습니다. 치유는 개인상담과 심리치료로도 가능하지만, 과연 그것만으로 온전한 치유라는 게 가능할까? 크게 부족하다고 여겼습니다. 이미 내 아이는 죽었지만, 다시는 자신과 같이 자녀 잃은 부모가 나오지 않는 구조가 마련되어야 진정한 치유가 이뤄지지 않을까? 제주 4·3, 한국전쟁, 광주항쟁도 마찬가지죠. 이념과 폭력으로 발생한 그런 비극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는 전체 질서를 구축해야 그 희생자들은 위로받고 치유된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공동체 전체도 건강한 상태로 복원되고요. 사실 제가 치유를 이야기하게 된 계기는 성서를 공부하다가 나온 것입니다.

   
▲ ⓒ김승범

― 성서를 공부하다가요?
 ‘치유’(healing) ‘건강’(health) ‘전체’(whole)는 같은 말에서 갈라져 나온 단어들입니다. 즉 전체가 복원되는 것이 건강이고 치유이지요. 놀랍지 않습니까? 부분적이고 개인적인 상담으로는 비극과 상처의 치유는 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왜 기독교를 가톨릭으로 불렀나요? ‘Catholic’은 ‘kata’와 ‘holos’의 합성어인데 후자는 ‘전체’라는 뜻이지요. 즉 기독교는 전체를 위한 종교다, 전체를 치유하고 건강하게 하는 종교, 곧 전체 구원이라는 뜻이라고 배웠습니다. 전체 건강, 전체 치유, 전체 구원…. 그래서 하나님께서 나라를 먼저 구하라고 하셨다고 배웠습니다.

― 한국 기독교는 말씀하신 ‘전체 치유’ ‘전체 건강’ ‘전체 구원’에 얼마나 가까이 갈 수 있을까요?
역사 속의 기독교는 낮아질 때 큰 역할을 하였습니다. 제발 기독교인들이 목사나 장로 직분을 갖고서 정치나 이념 공세나 사업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장로 대통령들이 과연 얼마나 기독교의 가르침을 충실히 따랐나요? 권력과 물질과 진영 논리에 빠진 설교들은 너무도 반기독교적입니다. 통일문제에 대한 양식과 전문성이 없는 분들의 이념적 설교는 기독교에 대한 혐오만 키우지 않나요? 청년들이 교회로 오지 않는 이유는 그 청년들에게 원인이 있는 것이 아니라 기독교 내부에 문제가 있습니다. 저는 한국 기독교는 낮아질수록 큰일을 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물질만능사회에서 기독교가 먼저 바뀌어 물질을 버리지 않으면 이 맘몬의 사회는 대체 어디로 갑니까? 목자와 기독인들의 회개가 절실합니다. 저는 앞으로 변화만 된다면 한국 사회의 발전과 통일의 과정에서 반드시 기독교의 역할이 있을 거라고 확신합니다. 곧 치유, 건강, 구원(전체)의 자리로 돌아오리라 생각합니다.

크리스천으로 살아가는 것은 어렵습니다. 그래서 크리스천의 삶을 ‘천로역정’이라고 말하잖아요. 학생들과 여러 차례 《천로역정》을 읽기도 했는데요. 하늘에 이르는 머나먼 길인 동시에 하늘에 이르는 끝없는 길이기도 하겠죠. 인간은 끝없이 실수하고 길을 잃고 안에서 악이 자라지만, 그래도 하나님 안에서 생명과 구원과 축복을 받았기 때문에 다시 회개하고 교정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닐까요? 저는 기독교의 가장 큰 힘이 회개에 있다고 봅니다. 바로 그 점 때문에 기독교가 사회를 변화시킬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인터뷰를 하다 보니, 신앙이 교수님을 이끌어가는 핵심 동력인 것 같습니다.
저는 죄인이고 한없이 부족합니다. 알 수 없는 신비와 미지의 영역인 삶에서 명확한 것은 없다고 봅니다. 신앙은 오묘한 삶 앞에 선 인간들의 겸손과 겸허의 산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은 스스로 구원에 이를 수 없습니다. 결국 신념과 열정은 개인의 자기 확신이 아니라 신, 자연, 역사와 같은 절대적 존재와의 숙연한 교감 속에서 나옵니다. 저는 크게는 하나님께 속죄하는 마음으로, 작게는 저로 인해 상처받은 사람들에게 사죄하는 심정으로 살아가려고 합니다.

신앙은 제겐 삶의 동력입니다. 학문과 실천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이 없었다면 지금처럼 생명과 세계에 대한 외경을 갖기 어려웠을 겁니다. 삶은 두려움이고 배움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교사’로서 ‘부모’로서 ‘크리스천’으로서 살아가고 있는데요. 크리스천으로서 사는 게 갈수록 어렵습니다. 저는 종종 자문합니다. ‘크리스천이 아니었다면 부모로서 교사로서의 역할을 잘 감당할 수 있었을까?’ ‘부모의 심정이 아니었다면 교사로서 바로 설 수 있었을까?’ 

전에는 오랫동안 학생들에게 지식을 넣어주는 수업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지식에 더해 생각의 폭을 넓혀주는 수업으로 전환하고, 이제는 가능하다면 영혼과 삶을 바꿔주는 수업을 해야겠다고 다짐합니다. 학생들은 지식을 넣어주는 수업을 가장 좋아하고 저도 그게 편합니다. 그러나 생각과 영혼과 삶의 지경을 넓히고 바꾸려 한다면 불편하고 학생들에게 욕먹을 각오를 해야죠.(웃음)

― 삶의 자세뿐만 아니라 연구 방향이나 내용에도 신앙이 큰 변수가 되는 것 같아 거듭 놀랍습니다.
한 가지 오래된 평생의 꿈이 있습니다. 참혹한 전쟁으로 상처받은 이 땅에 평화학·화해학·치유학이 독립 학문으로 존재하지 않고, 그것들을 본격적으로 가르치는 대학이 없다는 것은 정말 안타까운 일입니다. 제가 근무하는 대학에 장차 이들 학문 분야를 설립하여 학생들을 가르치고 싶은 꿈을 놓고 오랫동안 기도드리고 있습니다. 근대 이후 계속되는 전쟁으로 고통받은 이 땅이 평화(학)·화해(학)·치유(학)의 중심이 되어 세계에 그것들을 함께 나누는 때가 오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평화학 구축에 관심이 많기 때문에 예수가 말하는 평화는 무엇이었을까 공부하다가, 예수의 지혜는 정말 엄청나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예수는 내면 평화와 외면 평화, 개인 평화와 국가 평화, 세속 평화와 천국 평화를 다 연결시킵니다. 특별히 제가 근본 평화철학으로 삼은 예화가 있는데 간음한 여인이 예수 앞에 붙잡혀 온 요한복음 8장입니다. 저는 모든 인간 학문은 ‘현장학’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예수는 늘 문제가 되는 현장 속에 있습니다. 예수는 간음하다가 잡혀 온 여인으로 인해 절체절명의 위기에 직면합니다. “돌로 치라” 하면 평소 예수가 가르쳐온 사랑과 용서를 부정하는 것이고, “용서하라” 하면 간음하지 말라는 계명과 율법을 부인하는 것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예수는 이 이중 덫을 지혜롭게 벗어납니다. 인류 최초의 윈-윈-윈 삼중 평화철학이지요.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 합니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도 물러나게 하고, 간음한 여인도 회개하게 하고, 예수 자신도 옳다는 것을 증명하였습니다. 인간으로서는 도달하기 어려운 평화 실천입니다. 제겐 읽을 때마다 전율입니다. 누군가 영화로 꼭 만들어주면 좋겠어요.

― 절망의 역사 저 밑바닥을 목도하신 분이 어떻게 세상을 긍정할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인간 내면의 선함과 악함에 관해서도 많이 고민하셨을 것 같습니다.
중요한 질문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는 학살과 절망의 바닥에서 긍정의 신앙, 긍정의 철학을 끌어내려 노력합니다. 처음부터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선악을 아는 과실을 따먹지 마라’ 하셨는데 여기엔 놀라운 비밀이 숨어 있는 것 같습니다. 인간들이 따먹기 이전에 벌써 선과 악(을 아는 과실)을 하나님이 창조하셨다는 거지요. 게다가 그 과실을 따먹는 인간의 자율적 선택을 그냥 두시잖아요. 선과 악을 다 창조하시고, 인간이 악을 선택할 수 있도록 자유를 허용하신 거죠.

이 창조신화는 인간에겐 무서우리만치 결정적입니다. 선이 얼마나 소중한지, 나아가 인간의 자유 행위가 얼마나 가치 있고 무거운지를 깨닫게 합니다. 기독교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왜 하나님이 굳이 악을 창조했느냐?’고 묻는데, 악이 없으면 그것은 인간이 아니라 신이며, 인간 세상이 아니라 천국이지요. 그래서 인간은 악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살아있는 동안 자유의지로 선을 행해서 천국으로 가려 노력하는 것이지요. 제게 선과 악은 평화와 전쟁처럼 존재의 근원적 목적이고, 인간의 자유의지는 행동과정의 준거입니다.  

   
▲"특별히 제가 근본 평화철학으로 삼은 예화가 있는데 간음한 여인이 예수 앞에 붙잡혀 온 요한복음 8장입니다. 저는 모든 인간 학문은 ‘현장학’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예수는 늘 문제가 되는 현장 속에 있습니다."  ⓒ김승범

― “ ‘세월호 정치’의 표층과 심부”라는 글에서 교수님은 ‘유공적 희생’ ‘희생적 유공’을 언급합니다. 더 나은 국가 공동체를 위해서 ‘국가를 위한 유공’과 ‘국가에 의한 희생’의 통합적 접근이 필요함을 역설하신 건데요.
그 언급은 사실 한 문단이 조금 넘는 적은 분량이지만 저의 온 삶과 온 신앙이 압축된 부분입니다. 삶과 세상을 보는 어쭙잖은 제 학문 세계의 알파와 오메가라고 할 수 있어요. ‘국가를 위한 유공(有功)’과 ‘국가에 의한 희생(犧牲)’ 개념은 분명히 다릅니다. 아니 정반대이지요. 그러나 인간 공동체의 영속성과 전체성을 고려할 때 둘은 결국 하나라고 봅니다. 둘을 통합하여 이해하는 것이 인간들에게 어떤 깨달음을 줄 거라고 믿습니다. 인간 사회의 갈등을 해결하는 어떤 궁극적 해법도 도출하게 해줄 것으로 봅니다. 간단하게 말하면 인간의 죽음을 차별하지 않는 역사를 만들어 가자는 겁니다.

― ‘죽음을 차별하지 않는 역사’라면….
인간들은 죽음을 기리는 데서 갈라집니다. 누구는 친구로, 누구는 적으로. 누구는 충성의 편으로 누구는 적대의 편으로. 일찍이 《일리아드》에서도 아킬레스의 엄마 테티스가 아킬레스에게 헥토르를 죽이지 말라고 하잖아요. ‘네가 헥토르를 죽인 뒤 그다음엔 신에 의해서 너도 곧 죽을 텐데. 네가 지금 복수를 안 해도 헥토르는 어차피 신에 의해 죽게 되어 있고, 너도 곧 죽는다. 그러니 안 죽이면 어떻겠느냐’라는 뜻으로 말을 한 거죠. 저자인 호메로스는 아킬레스와 헥토르 모두를 영웅으로 여기는 보편성의 극점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끝내 그곳까지 나아가야 한다고 봅니다. 그래서 저는 그 글에서 “적과 동지 모두를 영웅으로 받아들이는 전 인류적 보편성까지는 아니어도, 한 공동체 내의 유공과 희생조차 인간 가치의 틀 안에 담아내지 못한다면 우리의 인간 이해는 정녕 황폐하고 옹졸한 것이다”라고 쓴 것입니다. 세월호 치유 조치와 사망자 성격 규정을 둘러싼 논란을 계기로 제 오랜 고민의 일단을 조심스레 꺼낸 거죠.

― 죽음을 통합함으로써 삶을 통합하자는 것인지요.
그렇지요. 제 인생관과 역사관과 신앙관의 현재까지의 결론입니다. 현실에서는 조심스러운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역사를 보지요. 고려 입장에서는 정몽주가 충신이고 정도전이 역적이지만, 조선의 입장에서는 정도전이 충신이고 정몽주가 역적이지요. 광주항쟁만 놓고 보더라도 진압 유공자들이 김영삼 정부 들어서면 전부 쿠데타 수괴로 처벌을 받잖아요. 4·3에서 폭도요 빨갱이로 오인되었던 사람들은 오늘날 국가폭력의 희생자로 명명됩니다. 독재 시기 좌경용공으로 조작된 분들은 오늘날 민주화 유공자로 바뀌었습니다. 제겐 너무 중요한 문제입니다. 제주 4·3, 한국전쟁, 광주항쟁, 민주화, 세월호 사태를 보면서 죽음을 차별하지 않는 사회를 만들자는 생각을 더욱 강하게 한 거죠.

한 세대 안에서도 반국가 사범이 민주화 유공자로 바뀌는 시대인데, 유장한 억겁의 역사에 비하면 극히 짧은 한 찰나를 함께 살다 갈 뿐인 동시대의 사람들끼리 특정의 한 시점을 기준으로 유공과 희생을 나누고 충성과 반역을 나눈다는 게 얼마나 완악한가, 얼마나 잘못된 것인가 하는 얘기입니다. 지금 눈앞의 타인이 이념과 생각과 정당이 다르다고, 그 작은 차이로 삶 전체를 평가하는 것은 얼마나 옹졸한 것입니까? 우린 서로 용서하고 사랑하기에도 너무나도 귀하고 짧은 인생을 단 한 번만 살다가 갑니다. 특히 영생까지 생각한다면 더더욱 그래야 한다고 믿습니다.

― 이념과 생각의 갈등은 더 고조되는 것 같습니다.
인간들의 옹졸한 다툼이 결국 전쟁이라는 큰 죄악으로까지 발전하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우리 사회에선 처음으로 오랫동안 ‘6·25 기념식 폐지’를 주장했습니다. 당시 수차 협박과 위협에 시달렸지만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진보-보수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문제였기 때문입니다. 물론 제가 기념식 폐지를 주장한 이유는 사회과학적으로는, 그 안에 내재된 반공주의·국가주의·극우주의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훨씬 더 근본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당시 국가는 반공기념식에 동원만 할 뿐 참전 용사들에게 참전 수당 한 푼 주지 않았습니다.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기념식을 폐지하고 그 예산을 참전자들에게 주자고 주장했습니다. 참전 용사들에게 참전 수당을 처음 지급한 정부는 군사정부도 보수정부도 아닌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부터입니다. 참전 용사들이 ‘빨갱이 정부’라고 비판한 그 정부가 참전 수당을 처음으로 지급한 것입니다. 군사독재와 보수정부들은 그들을 이념적으로 동원하기만 했던 거지요. 저를 비판하고 협박하던 보수단체의 인사들도 참전 수당이 생긴 뒤에는 6·25 기념식 폐지를 주장한 제 참뜻을 알았다면서 진심으로 사과하며 고맙다고 했습니다. 진영이나 이념은 이리도 무가치한 것입니다.

― 결국 죽음을 차별하지 않는 것이 생명과 평화를 위한 길이라는 거군요.
그렇죠. 차별은 인간의 행위입니다. 이념과 진영과 정권과 나라가 다르다고 얼마나 많은 생명을 죽였나요? 이제는 죽음을 차별하지 않음으로써 생명을 차별하지 않는 그런 철학이 이 땅에서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진실과 생명 중에 선택하라면 저는 생명을 택합니다. 생명을 차별하지 않는 철학과 세상을 만드는 것은 제가 공부하는 이유입니다. 제 신앙과 제 삶의 근본이기도 합니다.

 

박명림
연세대학교 대학원 지역학협동과정 교수. 고려대학교 정치학 박사. 고려대 아시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실장 및 하버드대학교 하버드옌칭연구소 협동연구학자를 역임했다. 저서로는 《한국전쟁의 발발과 기원 1, 2》 《역사와 지식과 사회》 《한국 1950: 전쟁과 평화》 《인간 국가의 조건 1, 2》(예정), 공저로는 《해방전후사의 인식 6》 《다음 국가를 말한다》 《세월호 이후의 사회과학》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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