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7호 커버스토리]

봄에 맞이하는 부활절은 축복
부활절을 봄에 맞이한다는 것은 적어도 지구 북반구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큰 축복이다. 계절의 변화가 자연스레 부활의 의미를 상기해주기 때문이다. 호주 같은 남반구나 적도 또는 중동 지역에서 부활절을 보낸 적이 없는 나로서는 봄이 아닌 다른 계절에 부활절을 맞이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들다.

한편, 회색 도시에 사는 사람들에게 계절의 변화란 어떤 의미일까. 새 옷을 사고 외양을 다르게 꾸미면서 변화를 줄 수는 있지만, ‘새로 태어남’으로서의 봄과는 그 느낌이 같을 수 없을 것이다.

내가 사는 영국은 봄이 길다. 영국의 봄은 1월 중순에 시작하여 거의 5월말까지 이르니 한국처럼 ‘겨울·봄 일주일·여름’ 식으로 봄이 순식간에 지나가지 않는다. 여기 봄에도 절정이 있으니 4월 중순이다. 이 시기는 꽃나무가 만개하고 따사로운 햇볕에 선선한 바람이 부니 누구라도 가벼운 옷차림으로 산과 들로 마냥 싸돌아다니고만 싶어진다.

그 봄에 마주하는 자연의 변화 중에서 나무들의 변화는 부활과 가장 가깝다. 잎이 다 떨어진 겨울나무는 앙상하고 볼품없는 반면, 물이 올라 파란 새순을 틔운 봄의 나뭇가지는 나무가 죽지 않고 살아 있음을 증거한다. 나는 이제 갓나온 새순을 보며 나무에게 말을 건넨다. “너희들 또 왔구나. 정말 반갑다. 세상에 나온 걸 환영해.”

봄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했으니 꽃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영국의 정원과 들에 피는 꽃들은 아름다움에 대한 시와 찬미의 좋은 소재들이다. 특별히 꽃망울이 작은 것들이 사람의 눈과 마음을 사로잡는다. 우리말 이름을 알 수 없는 영국의 꽃들, Snowdrop, Primrose, Celandine, Darfodil, Crocus 등등… 나는 이들의 이름을 하나씩 배워가고 기억하면서 “고향의 봄”을 흥얼거린다. 비록 내 고향은 서울이지만. 봄꽃을 마주하는 순간만은 나도 고향이 있고, 그 고향은 꽃대궐이고 뭔가 아름다운 추억과 사연이 있는 것 같다. 이런 것이 봄기운 아니겠는가?

영국 얘기 하나 더 하면 이 나라는 푸른 초장이 있고 그 위에 한가로이 풀을 뜯는 양들을 상상할 수 있다. 실제로 곁에서 양들을 보면 이들이 얼마나 촘촘하고 부지런히 풀을 뜯고 있는지 그 소리까지 들을 수 있다. 이를 한가해 보인다고 한다면 그저 뭔가 잘 모르는 사람이 하는 이야기일 뿐이다. 봄에는 새끼들이 태어난다.

아, 새끼양! 태어나자마자 매에~ 하고 울며 엄마 젖을 빠는 이놈들이 얼마 지나지 않아 뛰고 달리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생명의 소중함, 경외심 같은 것이 내 안에서 쑥쑥 자란다. 그런 감정은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들에게 말이나 글과 책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너무나 강렬하고 직접적인 감정이다. 그리고 예수님을 가리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란 말을 염두에 두고 새끼양을 보고 있으면 눈송이 같이 순수한 어린양들의 모습이야말로 죄 없으신 예수님에 대한 가장 적절한 표현이다. 누군가 영국에 오신다면 꼭 봄에 오시라고 권하고 싶다. 그것도 시골마을로….

이런 봄기운에 흠뻑 젖게 되면 우리 몸과 마음과 영혼은 부활절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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