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8호 3인 3책] 나를 넘어서는 성경읽기 / 김근주 지음 / 성서유니온선교회 펴냄 / 2017년

식당 맞은편에 앉은 아주머니가 말했다. “우리 어머니가 믿음이 얼마나 좋은지, 손에 지문이 없으셔.”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몰랐는데, 생각을 거듭한 끝에 아주머니의 말을 이해했다. 지문이 닳았다는 말은 기도를 무수히 많이 했다는 이야기였고, 기도를 무수히 많이 했다는 건 믿음이 아주 좋다는 이야기였다.

내 진단을 보충해주듯 아주머니는 말을 덧붙였다. “어머니는 평생 두 가지 기도만 하셨어. 자식들 부자 되는 거랑, 본인 건강하게 해달라는 거랑. 지문이 닳도록 기도를 하셨으니 하나님이 안 들어 주고 배겨?” 그러니까 그분에게 믿음이 좋다는 건 기도를 많이 하는 것이고, 기도를 많이 하면 하나님이 반드시 들어주시는데 어머니의 건강과 자식들의 부가 그 증거라는 얘기였다.

아주머니의 소박한 자부심을 뭉개긴 싫었기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속으로는 ‘기도’ ‘믿음’ ‘하나님’이라는 세 단어를 두고 온갖 생각의 가지가 뻗어 나갔다. 우리는 무엇을 믿고, 무엇을 위해 기도하는가. 그 ‘무엇’을 고민하지 않은 채 기도만 많이 하면 좋은 믿음인가? 따지지도 않고 많이 기도한 바가 이뤄진 것이 정말 하나님의 응답이라 할 수 있는가? 많이 기도하기만 하면 곧바로 ‘좋은 믿음’이 되는가? 그게 정말 그리스도인이 가져야 할 삶의 태도란 말인가?

그러고 보면 한국교회가 열정을 담아 하는 활동들은 아주머니가 한 말과 크게 다르지 않다. 어느 집사님은 성경을 ‘형광펜으로 줄 안 친 곳이 없을’ 정도로 열심히 읽었다고 했다. 이에 질세라 어느 장로님은 밥 먹는 시간 빼고는 늘 성경을 읽어 평생 ‘1만 독’을 하셨다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두 분 다 성경을 ‘어떻게’ 읽었는지, 성경에서 ‘무엇’을 발견했는지, 좀 더 근본적으로는 ‘왜’ 그렇게 읽어야만 했는지는 별다른 이야기가 없었다.

내가 만난 이른바 ‘믿음 좋은’ 분들은 대체로 그랬다. 그분들이 하는 경건한 활동에는 대체로 ‘무엇을’ ‘어떻게’ ‘왜’가 빠져 있었다. 그렇기에 수없이 기도를 하고, 수없이 성경을 읽고, 매일매일 예배를 드리는 그들의 모습은 한편으로는 감탄(과 동시에 죄책감)을 불러일으키다가도 이내 불편함을 일으킨다. 껍질을 까고 보면 그 안에 자리 잡은 핵심은 ‘나’라는 존재를 위한 열심일 때가 대다수이기 때문이다. 성경을 읽고 기도를 하고 예배를 드리는 이유는 그 ‘나’를 죽이고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기 위해서인데, 실상은 정반대로 ‘나’를 살리기 위해 그리스도를 죽이고 있지는 않은가?

그런 점에서 《나를 넘어서는 성경읽기》는 성경을 읽는 ‘방법’을 소개해주는 책이기 전에, ‘나를 넘어서는’ 것이야말로 성경 읽기의 기본, 그리스도인 됨의 기본임을 상기시켜 주는 책으로 다가왔다. 저자는 말한다. “비판적으로 성경을 읽는다는 것은 성경의 내용을 의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탐욕으로부터 한 걸음 물러나 정말 성경이 말하는 바가 무엇인지 집중하려는 노력이다.”(48쪽)

‘탐욕’으로부터 벗어난 상태에서 성경을 읽는다는 건, 다른 말로 하면 ‘많은 기도’를 곧바로 ‘좋은 믿음’과 연결하지 않는다는 뜻이자, ‘믿음’과 ‘나’(의 욕구 충족)를 섣불리 연결해선 안 된다는 뜻이기도 할 것이다. 아주머니가 또 다른 소박한 자부심을 갖기 전에, 집사님이나 장로님이 다시금 형광펜으로 성경을 도배하거나 1만 1독을 하시기 전에, 이 책을 먼저 챙겨 읽으시면 좋겠다.


박용희
장신대 구내서점, IVP(한국기독학생회 출판부) ‘산책’ 북마스터로 일했다. 책, 여행, 사람을 좋아한다. 새해 들어 고양시 덕은동에 헌책방 ‘용서점’을 내고 책과 더불어 하루를 열고 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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