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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야를 넓혀서 계시사관으로 역사를 봐야 합니다”
[318호 ] ‘태극기 집회’ 지지하는 정기구독자 김영택 선생
[318호] 2017년 04월 21일 (금) 14:43:38 옥명호 편집장 lewisist@goscon.co.kr
   
ⓒ복음과상황 이범진

지난 3월말, 본지 연재중인 ‘시사잰걸음’ 코너 “당신에게 대통령을 권합니다”(4월호)를 읽은 독자 김영택(80) 선생으로부터 이메일이 한 통 왔다. 2011년부터 잡지를 구독해온 선생은 “이제 살 만큼 산 노인으로서 자식과 손자들을 위해, 내가 지킨 자유와 민주를 잃지 않기 위해 태극기를 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했다. 자신은 “품위 있게 노후를 즐기려는 중산층”으로서, “태극기를 든 노인들 대부분은 경제적인 여유를 누리는 이들이며, ‘노인들의 인정 투쟁’이라는 관점에 동의하기 어렵고, 나라 앞날이 걱정되어 태극기를 든 노인들의 진심을 왜곡하는 데 절망”한다고도 했다. 마음을 담아 쓴 독자글을 읽고 짧은 답글로 끝내기에는 모자람이 있다 싶어 인터뷰를 요청했다. 서울 잠실새내역 인근 카페에서 만난 선생은 젊은 기자들을 진심으로 반겨 맞았고, 자기만의 분명한 역사관으로 체험적 현대사를 얘기했으며, 열의를 담아 질의에 응답했다.

― 먼저, 독자들을 위해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지금 아내와 둘이 살고 있는데, 아들 둘이 분가하여 일가를 이루었어요. 큰 아들은 한 기업에서 디자인 일을 하고 있고, 둘째는 대학에서 교수로 역시 디자인을 가르치고 있지요. 나는 1956년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해서 1960년에 졸업(16기)했습니다. 임관 후에는 최전방에서 후방까지 전국을 누볐어요. 그러다 월남전(베트남전)에 중대장으로 파병되어 참전했고요. 내가 무슨 대단한 사람도 아닌데 이렇게 젊은 분들이 찾아와서 이야기를 듣겠다고 하니 정말 고맙습니다.

―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오히려 저희가 감사합니다. 복상 독자로서는 아주 드문 고령이신데요.
나는 1937년에 태어났어요. 일제가 만주에서 중국 본토로 진격할 때였지요. 그때 서울 영등포에서 태어났습니다. 선영은 충남 부여에 있는데, 나는 줄곧 영등포 샛강 가에서 자란 탓에 스스로 ‘샛강의 후예’라 하지요. 당시 여의도와 영등포 사이에 샛강이 있었거든요.

― 지금까지 살아오시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무엇인지요?
1966년 11월에 베트남에 가서 중대장으로 전투하다 1968년 2월에 귀국했습니다. 그해 1월에 북한 무장공비 김신조 일당이 청와대를 기습하지 않았습니까? 1968년은 베트남전 특수에 힘입어서 한국 경제가 발돋음하는 해였는데, 남북 경제 수준이 전도되는 징후가 보이니까, 김일성이 ‘이걸 그냥 두면 남한이 경제적으로 북한을 앞지르게 될 것이다’ 하는 생각을 했겠지요. 그래서 남한 사회의 경제적 토대를 무너뜨릴겸 적화통일 가능성을 진단해보려고 대대적인 무장간첩을 남파했던 해입니다. 휴전 후 무장간첩 출현 현황을 보면, 1968년에 수치가 절정에 이르렀다가 다시 내려옵니다.

나는 당시 월남전 중대장 경험이 고려되어 최전방 15사단 수색대 중대장으로 보직되었는데, 그 1년간 비무장지대(DMZ) 일대에서 결코 월남전 못지않은 전투를 했습니다. 매일 밤 매복 나가면 때때로 침투하는 무장간첩들과 총격전을 벌이는 전투상황이 계속되었어요. 요새 젊은이들은 전혀 모르지요. 그해 말 중대장 임무를 마치고 후방으로 보직되어 이듬해 결혼을 했어요. 그런데 결혼한 지 6개월 만에 고엽제 후유증으로 급성 췌장염을 앓았습니다. 그때 죽는 줄 알았지요. 의사인 아내가 나를 급히 병원에 입원시키고 직접 치료했죠. 정말 아내 덕에 구사일생으로 살아났어요. 그때 병상에 누워서 많은 생각을 하면서 인생의 목표를 전환했지요. 입원 경력과 건강상의 이유로 퇴역을 결심한 거죠. 이 기간이 내 인생에서 가장 크고도 아픈 기억으로 자리 잡고 있는 부분입니다. 그 뒤 중앙정보부(현 국정원)로 가서 30년 동안 북한 문제를 다뤘어요.

― 인생에서 잘했다고 생각하시는 일 세 가지를 꼽으신다면요?
내가 고등학교 들어갔을 때는 책도 별로 없었고, 공부도 제대로 못했어요. 그런데 육사에 진학한 이후에 학문적인 기초를 비로소 다질 수 있었어요. 매일 매시간 시험을 보고, 한 달 후 장말시험, 그리고 학기말마다 시험을 봤어요. 미국 사관학교에서 도입해온 제도로 데일리 시스템(Daily System)이라고 하지요. 그러니까 1분1초를 허송할 수 없을 정도로 공부와 심신단련에만 전념하는 생활이었어요. 그 4년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졸업한 것을 저는 인생에서 제일 잘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전역해서 정보기관에서 일한 일도요. 지금 돌아보니 하나님이 나에게 허락하신 은사는 야전 지휘관이 아니었나 봅니다. 그래서 정보기관으로 보내시지 않았나 싶어요. 내 인생에서 세 번째 잘한 일은, 공직생활 후 20년 동안은 나름으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는 한편 신앙 관련 서적을 많이 읽고 또 글도 썼다는 점입니다.

― 혹시 만학도로 신학 공부를 하신 건가요?

   
ⓒ복음과상황 이범진

학교를 간 게 아니라 독학을 한 셈이지요. 2006년부터 미국에 3년을 체류한 적이 있는데, 그때 유용한 시간을 보냈어요. 둘째 아들이 미국에서 공부한 뒤 거기서 디자인 회사를 다녔습니다. 그런데 8년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갑자기 신학교에 가서 목사가 되겠다는 거예요. 처음엔 반대하다가 나중엔 한 번 해보라 했어요. 내가 한국 집을 전세로 놓고 장기체류 여권을 만들어서 미국으로 건너가 두 집 살림을 하나로 합쳤어요. 며느리랑 손자들과 한 집에서 살았지요. 그렇게 3년을 보내던 첫 해에 교회에서 요한계시록 특강을 들었는데, 강의가 마음에 차지 않아요. 그래서 아들 서가에서 계시록 강해서 15권과 관련 서적 30여 권을 전부 내 방으로 가져가서 읽기 시작했지요. 그렇게 2년 반을 하루종일 요한계시록과 관련 서적을 읽고 강해 노트를 만들었습니다. 요한계시록을 통달하려면 성경 전체를 다 섭렵해야 하는데, 이 계시록 공부를 혼자 하면서 강해 노트를 만든 게 세 번째 잘한 일이에요. 미국에서 돌아온 뒤 10년 동안은 주로 한국을 포함한 세계기독교회사를 중심으로 공부했지요. 그 결과물로서 《유교와 기독교의 만남》이라는 책을 1년여에 걸쳐 집필해서 작년에 출판했습니다.

― 일제 시대부터 한국전쟁, 베트남전 참전 등 역사를 살아오신 어른으로서, 현재 한국 사회의 가장 큰 과제가 있다면 뭐라고 생각하시는지요?
아주 중요한 질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해방과 6·25전쟁 이후의 폐허 위에서 기독교가 폭발적으로 부흥했잖아요? 세계 기독교 역사에서 유례를 찾아 볼 수 없는 획기적인 부흥이라고 다들 자랑삼아 이야기하지요. 이건 한반도에 뻗친 하나님의 손길, 하나님의 섭리예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계시가 얼마나 크고 중요한지…(선생은 목이 메어 말을 멈췄다), 이걸 알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역사의식이 생기고 목표 감각이 분명해집니다. 개인이나 국가나 지향하는 뚜렷한 목표가 없으면 정신력이 분산되고 약화되기 마련입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갈 무렵 소련이 한반도 전역을 아주 쉽게 점령할 수도 있었어요. 그런데 당시 미국 수뇌부들이 소련 측에 삼팔선을 기준으로 더 이상 남하하지 말라고 경고에 가까운 요구를 했어요. 삼팔선이라는 게 미국이 남한을 점령하기 위해 생긴 게 아니에요. 계시사관의 견지에서, 하나님이 남한의 공산화를 막기 위한 조치였다고 봐야 해요. 기독교적 측면에서 볼 때 지구상의 현대적 우상은 공산주의입니다. 이런 무신론적 유물사관을 신봉하는 세력이 한반도 전체를 장악하지 못하게 하나님이 막으신 거예요. 그래서 남한에서 세계 기독교 역사에서 유례를 찾아 볼 수 없는 폭발적 부흥이 가능했던 겁니다. 어떤 신학자는 기독교의 푯대가 한국으로 옮겨온 것이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한국 기독교가 부흥한 맥락을 잘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20세기 말 소련 연방이 무너지고 난 뒤, 소련보다 더 까다롭고 큰 중국이 무신론적 유물사관의 대표 세력으로 굴기(崛起)하고 있습니다. 21세기 신냉전체제의 개막이라 말할 수도 있겠지요. 그리고 우리는 여전히 이 냉전체제의 최전선에 놓여 있는 겁니다. 내가 30년간 정보기관에서 북한의 전술전략을 다룬 정보감각으로 볼 때, 한국 사회의 정치사회적 혼란은 북한 공산당의 작용 때문이라고 확신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미래지향적인 목표를 잊어서는 안 되지요. 그걸 잊으면 정신적인 방황에 빠지게 되어 있어요. 한국 사회의 미래지향적인 목표이자 푯대는 그 무엇보다 남북통일입니다. 한국교회로서는 남북 교회의 재통일이고요. 이를 위해 북한 지하교회에 희망의 메시지를 전해야 하는 사명이 있어요.

좀 더 멀리, 좀 더 넓게 보자면, 유교문화와 대결하면서 기독교 문화·문명을 지구촌 상생문화 패러다임(이론적인 틀)으로 자리매김하는 데 한국교회가 주도적으로 이바지해야 합니다. 이를 한국교회에 주어진 소명이라고 봐야 해요. 이런 소명의식을 갖고 고난을 헤쳐 가는 기독교가 되어야 하는 거예요.

   
ⓒ복음과상황 이범진


― 복음과상황을 구독하신 계기가 궁금합니다. 아울러 쓴소리도 한 말씀 들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김회권 목사님을 잘 알고 있는데, 그분 글을 좋아했어요. 그런 인연으로 복상을 보기 시작했지요. 복상이 좀 더 시야를 넓혀 계시사관적 입장에서 우리 사회를 다뤄주면 좋겠습니다. 국가우상주의에 관한 글을 읽어 봤는데, 목회자들이나 신학자들이 역사의식이 부족하다고 생각되어 안타까웠습니다. 국가우상주의 운운은, 무신론적 유물사관의 새로운 종주국인 중국과 한판 승부를 벌여야 하는 최전선에 놓인 나라의 학자나 목회자들이 할 소리는 아니지요. 현실감각이 없는 공허한 논리라고 생각합니다. 세속 국가의 입장이나 기독교 입장에서 볼 때, 중국 공산당과의 전쟁이 지구촌의 마지막 대전쟁입니다. 특히 기독교의 견지에서 보면 최대의 마지막 영적 전쟁입니다. 중국 공산당이 무너지면 북한은 자동적으로 변화될 수밖에 없을 겁니다. 다시 말해 유물사관을 기반으로 하는 중국 공산당이 붕괴되고 정치가 민주화되면 그때 비로소 전 세계에 종교의 자유가 넘쳐날 것이며 기독교가 널리 가득해짐으로써 지구촌에 새 하늘과 새 땅의 서광이 깃들 거예요. 복상의 편집 방향은 이런 역사발전 방향에 맞게 바뀌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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