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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인들에게 빚진 자로 살아갑니다”
‘인도 종교’ 전문가이자 15년 차 인도 선교사, 주성학 독자
[321호] 2017년 07월 25일 (화) 14:00:06 이범진 기자 poemgene@goscon.co.kr

6월 말, 복상 애독자라며 말끔하게 차려입은 40대 중년 남성이 사무실을 방문했다. 10년째 구독중인 인도 선교사 주성학(47) 목사였다. “안주하고픈 자신의 나태함을 깨워주는 데 복상이 큰 역할을 하고 있다”며 고마운 마음에 들른 것이었다. 제발로 ‘굴러들어온’(?) 인터뷰이를 놓칠세라, 인도에서 15년째 사역 중인 그에게 현지 이야기를 비롯하여 소명에 관한 이야기를 물었다. 약속된 1시간 30분간 ‘종교학자’의 깊고 오묘한 특강을 듣는 듯했다. 

 

― 인도에는 언제, 어떻게 가게 된 건가? 
고등학생 때부터 선교사가 꿈이었는데, 20년 전 장신대 신대원 재학중에 인도에 가서 고아들을 돌보는 일을 했다. 인도에서 지낸 1년의 세월은 ‘내가 과연 선교사로서 견딜 수 있을까?’ 스스로를 점검하는 기간이었고, 아이들과 먹고 자고 함께 생활하면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확신할 수 있었다. 그리고 부교역자 생활을 하다 15년 전 인도에 장기 선교사로(PCK, 대한예수교장로회) 파송을 받아 현재까지 사역하고 있다. 
 

   
▲ 주성학 선교사 ⓒ복음과상황


― 고등학생 때 선교사를 꿈꾸게 된 계기가 있었나. 
내가 전남 신안군 어의도라는 작은 섬 출신이다. 전기도 잘 들어오지 않았다. 고3 때 진로를 놓고 기도하는데 하나님이 내게 ‘언젠가 바다 건너 먼 나라에 가 영어로 말씀을 전할 날이 올 것’이라는 강력한 확신을 주셨다. 나 같은 촌놈이 과연 그런 날이 올까 싶었는데, 지금 그러고 있으니 하나님의 부르심은 정확했다. 감사할 뿐이다. 

 

― 현재 인도에서 영어로 설교하고 있나? 현장이 어떤 곳인지 궁금하다. 
현재 사역하는 지역은 예수님의 제자 도마가 순교했다고 알려진 첸나이란 곳이다. 첸나이한인장로교회를 개척해 한국인 주재원들과 또 인도 현지의 엘리트 그룹을 대상으로 목회하고 있다. 한국어와 영어를 함께 쓰는 2중 언어 예배를 드린다. 그리고 신학교육을 받지 못한 오지 전도자들을 위한 ‘코너스톤 목회자 평생교육원’을 운영하면서 신학, 성경, 목회와 관련한 훈련프로그램을 제공한다. 특히 평생교육원 설립 과정에서 현지 기독교인들이 사역에 써달라며 재산을 헌납하는 일들이 여러 차례 있었고, 현재 교육원 운영에 필요한 재정도 인도인들의 참여로 채워지고 있다. 

 

― 카스트 제도가 워낙 견고한 곳이라 교회 공동체가 잘 이뤄질지 의문이 든다. 
현지 교회와 기독교인들에게도 카스트 제도가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당연히 교회 선택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데 우리 교회에서는 카스트가 무의미하다. 그리스도의 떡 상에서는 문화적, 언어적, 인종적, 경제적 배경을 넘어 형제와 자매가 된다는 믿음의 고백을 드린다. 그래서인지 인도의 엘리트 그리스도인들과 신앙의 본질을 고민하는 현지인들이 찾아오는 듯하다. 

 

― 15년 가까이 겪어본 인도 사람들은 어떤가? 
정이 많다. 그들은 기본적으로 손님과 나그네를 환대한다. 우리가 잃어버린 정(情)의 문화, 그 따뜻함을 아직 간직하고 있다. 인도 사람들이 카스트 때문에 벽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지만, 일반적으로 외지인들을 환대하는 마음이 있다. 십수 년 동안 오지 목회자들과 같이 먹고, 같이 기도하고, 같이 성경을 읽으면서 신뢰가 쌓였다. 
3년 전에는 어느 신혼부부가 전당포에 결혼 패물을 판 돈을 교회 세우라고 헌금했다. 현지 목회자 한 사람은 내가 아플 때 치료비 하라고 10년 동안 모았던 돈 20만 원을 선뜻 가져다주었다. 그 집 숟가락이 몇 개인지 다 알고, 가난한 형편인 것 뻔히 아는데 어떻게 받나? 안 받으려고 하니까 화를 내더라. “주 목사님은 왜 우리에게는 사랑을 주면서 우리의 사랑은 안 받아 줍니까?” 하고. 나도 낙심하고 절망할 때가 있었지만… 그때마다 이런 현지인들의 사랑과 격려로 회복된다. 나는 그들에게 빚진 자다. 

 

   
▲ 인도 현지에서 설교 중인 주성학 선교사 (사진: 주성학 제공)


― 인도에 대해서 많이 알겠다. 복상에 관련 글을 써주면 좋겠다. 
인도 종교에 관해서라면 할 말이 조금 있다. 인도 대학에서 기독교학으로 석사학위를 받았고, 마드라스 대학에서 인도의 고대종교 중 하나인 자이나교 연구로 박사 논문을 썼다. 한국 선교사들이 인도 종교에 대해 이해가 필요할 땐 단기 과정으로 인도 종교에 관한 집중 강의를 하기도 한다. 현지에서도 지속적으로 종교학자들과 교류한다. 

 

― 선교만으로도 힘들 텐데 공부까지, 대단하다. 
비자 때문에 했다.(웃음) ‘공부해서 남 주자’가 모토다. 인도에서 선교하려면 그들의 종교적 행동과 삶의 모습들을 해석하고 의미를 이해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현지인들의 종교에 대한 공부가 필요하다고 본다. 종교는 현재의 삶과 내세와 관련된 선택과 행동을 만들어가고 세계관 형성에 많은 영향을 준다. 선교지에서는 현지 종교에 대한 공부가 꼭 필요하다. 인도 선교 초기에 서구 선교사들 대다수가 인도 종교 전문가들이었다. 나도 인도에서 다양한 종교 전통을 알아가면서 예수를 더 사랑하게 되었다. 인도 종교는 카르마(업보)에 사로잡힌 인간이 목샤(해탈)에 이르기 위해 다양한 길들을 제시하는데, 사람을 자유케 하기보다는 수많은 계명과 율법으로 사람을 묶고, 차별을 인정하며, 본인도 기억하지 못하는 전생에 사람들의 현재를 묶어 놓는다. 자이나교 수도자들과 함께 공부한 적이 있는데 그들의 금욕적 삶과 고행의 모습은 참으로 존경스러웠다. 그들을 보면서 구원을 열망하는 가련한 인간의 모습을 보았고, 인간의 선행과 노력이 아니라 우리를 찾아와 만나주시고 죽어주시는 예수의 사랑이 얼마나 크고 귀한지를 단순한 고백을 넘어 또 다른 차원으로 깨닫게 되었다. 인도에서 종교 공부를 하면서 사람에 대한 이해와 사랑의 마음이 더욱 자랐고, 복음만이 사람을 살릴 수 있다는 믿음의 고백도 더 확고해졌다. 

 

― 카스트 문제는 이제 심각하지 않은 건가? 
물론 심각하다. 인도 말로 ‘바르나’라고, 피부색을 의미한다. 주전 15세기 아리안들이 인도아대륙(印度亞大陸)을 정복하면서 피부색으로 지배계층과 피지배계층을 차별하기 시작했다. 대부분 브라만, 크샤트리아, 바이샤, 수드라만 알고 있는데 인도에는 4계급에 들지 못하는 제5계급이 존재한다. 불가촉천민이라고 불리는 ‘달릿’ 혹은 ‘아드바시’들이다. 다섯 계급은 또 다양한 하부 계급으로 나뉘어 현재 약 3천 개의 계급이 존재한다고 한다. 인도인들에게는 결혼을 하거나 학교와 직장을 선택하는 데 카스트가 결정적 요인이 된다. 
지겐발그를 포함한 초기 기독교 선교사들은 카스트 제도를 ‘사회적 악’(social evil)으로 규정하고 카스트 제도에 강력하게 저항했다. 그 결과 하위 카스트 계급의 사람들이 집단 개종을 하거나, 하위 계급을 중심으로 복음이 빠르게 전파되었다. 반면에 가톨릭 선교는 위로부터의 선교를 지향해 상위 카스트를 복음화함으로 하위 계급까지 복음이 전파될 수 있을 거로 생각했는데 현실의 벽은 높았다. 카스트 제도와 관련해 간디도 긍정적인 부분을 많이 수용했다. 그는 카스트 제도를 ‘사회 구조’(social structure)로 보았기 때문에 해방 이후 카스트 제도를 없애기보다는 현재의 구조를 유지하면서 하위 카스트들의 사회적 진출을 위한 쿼터제를 두자는 데 찬성했다. 이것은 계급이 낮은 사람들이 대학에 진학하거나, 공직자가 되는 길을 열어 놓음으로 카스트 제도를 완화하자는 취지였다. 그러나 이 역시 역차별과 더불어 또 다른 기득권의 세습으로 이어졌다. 

 

― 간디 이야기는 굉장히 새롭다. 현지에서 간디의 인지도는 어느 정도인가? 
인적으로 간디는 인도 기득권층이 만들어낸 ‘정치적 아이돌’이라고 생각한다. 간디의 생각과 가치도 미화되고 각색된 측면이 상당하다. 인도 불가촉천민의 의식을 이해하려면 오히려 빔라오 람지 암베드카르(1891-1956)의 사상과 종교관을 공부하는 게 좋다. 그는 불가촉천민 출신이었지만 영국과 미국에서 공부해 인도 건국 헌법 제정을 주관한 인권 운동가이자 독립운동가였다. 간디는 물레로 직접 짠 옷을 입으며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기존 질서를 옹호했지만, 암베드카르는 안경을 쓰고 세련된 양복을 입음으로 기존의 사회 질서와 전통을 거부하면서 변화와 개혁을 요구했다. 간디는 직접 돈을 벌지 않아도 기득권층의 아이콘으로 전국을 돌아다닐 수 있었지만, 암베드카르는 변호사와 교수로 일하면서, 불가촉천민들의 인권을 지키기 위해 애를 썼다. 

   
▲ 빔라오 람지 암베드카르(1891-1956)

― 처음 듣는 이야기다. 암베드카르 외에 잘 알려지지 않은 중요한 인물이 있나? 
소개하고 싶은 사람이 참 많다. 페미니즘이라는 단어가 나오기도 전에 인도에는 여성들의 인권과 삶을 보호하기 위한 여성운동을 시작한 사람이 있다. 판디타 라마바이(1858-1922)는 힌두교 브라만의 딸로 태어나 아버지에게 산스크리트어로 힌두교 경전을 배웠고, 전 인도를 돌며 힌두교 경전을 강해하기도 했다. 라마바이는 영국 선교사의 도움으로 기독교 공동체를 접하게 되었고, 편견과 조건 없이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는 그리스도인들의 영향을 받아 개신교로 개종했다. 후에 라마바이는 인도의 고아와 과부, 나그네들의 친구로 ‘묵띠선교회’를 조직해 전국적으로 사회운동을 일으켰으며 또 자신의 지역 언어로 성경을 번역했다. 한국에는 잘 안 알려졌지만, 인도 교회 역사에서 보석 같은 존재다. 

 

― 인도 여행을 가려는 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한국에 나와 있는 인도에 관한 책을 별로 안 좋아한다. 서구적 관점에서 소개하고 해석한 것들이 대다수다. 인도에 올 땐 편견 없이 왔으면 좋겠다. 인도는 ‘명상과 신비의 나라’ 혹은 ‘현실의 삶을 초월한 사람들이 사는 곳’이 아니다. 인도인들 역시 현실을 치열하게 살아가는 우리와 같은 시대 사람들이다. 나는 인도에 살면서 내 안에 있는 문화적 우월감과 독선, 그리고 오만을 발견하게 되었고, 그것들을 덜어내기 위해 주의를 기울인다. 인도가 여행자들에게 주는 유익이 있다면, 내 안에 있는 편견과 오만을 발견하게 해주기 때문 아닐까.   

 

― 급격한 도시화가 진행되었다고 들었다. 그 폐해가 목격되나? 
인도에서 자살하는 직군 1위가 농부다. 도시 임금이 올라가니까 물가는 확 뛰고, 비료와 농약 사려고 융자를 받는다. 결국, 갚을 능력이 없어서 목숨을 끊는다. 요즘에는 빈부 격차가 심해져 또 다른 사회문제가 되었다. 그래서인지 종교적 계급(caste)과 더불어서 일종의 경제적 계급(class)으로 계층을 구분하는 이들도 있다. 다국적 기업의 진출로 시장이 필요로 하는 기술을 가진 사람들은 중산층으로 빠르게 진입하지만, 단순 노동력만을 제공하는 사람들은 도시 빈민으로 전락한다. 70% 넘는 농민들과 BPL(Below Poverty Line) 밑으로 사는 2억 5천만 명 빈민들 삶은 어쩌면 이전 세대보다 더 궁핍해졌다.

 
― 선교사들의 역할이 막중하겠다. 선교 현장에서 복상이 도움이 좀 되는지. 
고민하는 힘을 준다.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다양한 의견이 있어서 고민하기에 좋다. 10년 동안 한 글자도 빠짐없이 읽으려 했다. 좋은 글귀들은 핸드폰에 저장해두기도 한다. 5월호에 실린 김선욱 교수님 인터뷰(“정치의 아름다움에 대하여”)도 감명 깊게 읽었다. 르네 지라르의 책이 소개된 것을 보고 너무 읽고 싶어져서 샀다. 먼 타지에서 복상을 통해 한국 교회와 사회를 접한다. 더 뜨겁게 기도하게 되더라. 그런데 오히려 한국에 있는 친구 목사들이 교회의 공적 역할이나 역사적 이슈에 대해 고민할 여유가 없는 것 같아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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