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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년의 관계적 차원, 고엘
[319호 커버스토리] 희년은행의 지난 1년과 교회의 사명
[319호] 2017년 05월 24일 (수) 15:39:13 이성영 희년함께 학술기획팀장 goscon@goscon.co.kr
   
▲ 희년은행 출범식 (사진: 희년함께 제공)

새 시대의 개막, 남겨진 과제들
300여 명의 아이들이 수장되었는데도 자신들의 권력 보전이 최우선인 이들에게서 실재하는 악을 보았습니다. 측은지심이 거세된 이들은 돈과 권력을 향한 폭주를 일삼다가 결국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사탄에 사로잡혔던 가룟 유다가 그러했던 것처럼 악에 사로잡힌 이들의 전형적인 결말을 맞았습니다.

악이 횡횡하던 시대는 잠시 저물었습니다. 하나님의 통치 원리인 공평과 정의가 지나간 9년보다는 대한민국 국가 시스템에 더 많이 스며들 것으로 기대합니다. 하지만 악은 집요합니다. 언제 다시 사람들의 마음을 뒤흔들어 시스템을 역행시킬지 모릅니다.

하여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인 변화를 꿈꿉니다. 사랑과 진실이 만나고 정의와 평화가 입 맞추는 세상으로 느리더라도 후퇴하지 않고 전진하길 소망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소망은 정권의 의지만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촛불집회가 보여준 것처럼 도덕적으로 고양된 시민들의 의지가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시민들의 도덕적 고양이 지속되기 위해서는 각 계층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정당민주주의 시스템만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나의 이익 추구를 넘어 이웃을 사랑하고 정의를 추구하고 자비를 베푸는 삶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종교의 역할이 필요합니다. 자아실현을 넘어 자기를 절제하며 이 땅의 뭇 생명과 함께 공존하는 삶으로 나아가도록 독려하는 종교의 역할이 필요합니다. 한국교회가 새 시대를 역행하려는 세력 편에 서는 것이 아니라 새 시대를 공고히 하며 ‘불가역적’인 변화로 나아가는 데 힘을 보태기를 기원합니다. 

새 시대를 공고히 하며 정의와 평화가 입 맞추는 세상으로 나아가는 일에 교회는 어떻게 역할을 감당할 수 있을까요? 지난 1년 동안 ‘희년은행’을 통해 동시대를 살아가는 청년들의 고단한 현실을 보았습니다. 헐벗고 굶주리고 나그네 된 이 시대의 지극히 작은 자라 할 수 있는 청년들의 현실을 보며 느낀 교회의 역할을 나누고자 합니다.         

고단한 청년 현실, 제도적 대안과 교회의 과제
경제력 있는 부모를 만나지 않는 한 교육, 의료, 주거 등 삶의 모든 필수재들을 부채에 의존해야 하는 한국사회에서 고군분투하는 청년들은 우리 시대의 ‘지극히 작은 자’라 할 수 있습니다.

인생의 출발부터 부채에 짓눌려 시작하는 청년들에게 희망을 돌려주기 위해 뜻있는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의 십시일반 무이자 저축을 기반삼아 희년은행은 2016년 4월 29일 출범하였습니다. 지난 1년 간 삶의 나락 앞에서 지푸라기라도 잡고자 희년은행에 대출을 신청하는 많은 청년들의 사정을 들었습니다. 적은 소득과 수도권의 높은 주거비, 열악한 주거 환경이 시너지효과를 일으키며 청년들의 삶을 더욱 고단하게 만드는 대한민국의 현실을 보았습니다. 

새 정부가 들어서면 청년들의 현실은 조금씩 개선되어 가리라 믿습니다. 임대주택 및 사회주택 공급으로 주거비가 절감되고 반지하, 옥탑방, 고시원과 같은 최저주거기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주거 환경은 조금씩 개선되리라 기대합니다. 청년기본소득은 청년들이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찾아가고 취업을 준비하는 데 조금이나마 기댈 언덕이 되어줄 것입니다. 새 정부는 청년들의 생활비를 낮추고, 주거 환경을 개선하고, 소득도 조금씩 올라가는 방향으로 제도를 바꾸어 나가리라 믿습니다.

그런데 이렇게만 가면 새 시대는 공고해지고 우리 사회의 지극히 작은 자들이 온전한 회복을 경험할 수 있을까요? 청년들이 최소한의 인간적 삶을 누릴 수 있는 물질적 조건을 만들어가는 것은 필수적입니다. 하지만 충분하지는 않습니다. 한 가지가 부족합니다. 물질적 지원만이 아닌 인격적 관계에 기초한 사랑이 필요합니다.

지난 1년간 많은 청년들을 만나보면서 의아한 점이 있었습니다. 부채 문제나 일자리 문제로 어려움을 겪는 청년에게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합리적인 해결책을 제시해도 선뜻 받아들여지지 않는 상황을 몇 차례 경험했습니다. 처음에는 이해가 되지 않고 답답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왜 그런지 비로소 이해가 되었습니다. 필요한 해결책을 선뜻 수용하지 못하는 다수의 청년들에게는 가정환경의 어려움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사랑’이었습니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각자 채워져야 할 사랑의 분량이 있습니다. 사랑의 분량이 채워지지 않으면 삶의 의지가 생기기가 쉽지 않고, 자신의 삶을 다스려갈 절제력이 만들어지기가 쉽지 않습니다. 충분한 사랑과 정서적 지지가 채워지지 않으면 하나님의 형상을 온전히 구현하며 살아가기는 쉽지 않습니다. 가정으로부터 충분히 채워지지 못한 사랑은 어딘가로부터 채워져야 합니다. 


아픈 이들과 마음을 같이 하는 것은 제도로만 해결되는 영역은 아닙니다. 제도에도 사랑과 연민을 담겨야겠지만 조선말기-일제강점기-한국전쟁-독재정권을 거치며 누적된 거대한 적폐 속에서 상처가 덧난 이들을 보듬는 일이 필요합니다. 개인을 향한 엄청난 인격적인 사랑의 투여가 필요합니다. 여기에 교회의 역할이 있습니다. 세대를 이어 내려오는 상처와 아픔을 끊어내는 일은 교회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풀어가야 할 과제입니다.

교회, 또 하나의 가족
레위기 25장의 희년은 두 가지 중요한 함의를 품고 있습니다. 경제적 불평등을 근원적으로 차단하고 하나님 나라의 근사치인 희년을 실현하는 방안으로 안식일/안식년/희년이라는 제도적 차원과, 희년이 되기 전에 친족이 빚을 대신 갚아주거나 땅을 사서 돌려주는 ‘고엘’(גאל)이라는 관계적 차원을 함께 제시하고 있습니다.

50년마다 한 번씩 돌아오는 희년은 삶의 필수재인 토지를 각 가족에게 되돌려 줍니다. 이스라엘의 모든 세대는 일생에 한 번은 희년을 경험하고 토지를 회복하여 가난에서 벗어날 기회를 얻게 됩니다. 희년제도는 삶의 필수재인 땅을 담보로 사람이 사람을 지배하고 착취하는 것을 근원적으로 차단합니다. 희년제도는 이웃을 노예로 삼아 지배하고 착취하는 애굽의 파라오 체제와 근원적으로 다른 하나님 나라의 모델을 제시하려는 하나님의 뜻이 담겨 있습니다.

세상 속의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우리들은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를 아끼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가진 정치인, 이 땅에 고통 받는 이들과 마음을 같이 하는 정치인을 지지하고 희년정신에 가까운 정책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며 이 땅에 공평과 정의가 확장되어 가도록 애써야 합니다. 새로운 정부가 고통 받는 이들의 눈물을 닦아주고 가난한 이들에게 경제적 토대를 제공하는 정책을 펼칠 수 있도록 더욱 독려해야 합니다. 

이와 함께 교회가 힘써 행해야 할 일은 이 땅의 지극히 작은 자들의 친족이 되어주는 것입니다. 100여 년의 수탈과 억압의 체제 속에서 세대를 이어 상처를 물려받은 수많은 사람들의 친족이 되어주어 그 상처에 마음을 같이하는 누군가가 필요합니다. 통합과 화해를 이야기하지만 경청과 공감을 통해 마음을 같이하는 이들이 없이는 통합과 화해는 공염불에 그치고 말 것입니다.

가족도 아닌 사람과 함께 아파하고 마음을 같이하는 이 지난하고 고단한 과업을 누가 감당할 수 있을까요? 먼저 고엘을 경험한 이들이 해야 하지 않을까요? 근족(近族), ‘기업 무를 자’를 의미하는 히브리어 고엘은 우리말로 ‘대속자’ ‘구속자’라고 번역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죄를 대신 지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어 우리가 구속(救贖) 또는 대속(代贖)받았다는 것은 예수께서 우리의 고엘이 되어주셨다는 의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은 아담의 범죄 이후 세대를 거쳐 면면히 이어져오던 죄악의 고리를 예수께서 온몸으로 끊어내신 사건입니다. 예수께서 우리의 고엘이 되어주신 것처럼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는 상처받고 신음하는 이 땅의 뭇 생명들을 향해 고엘이 되어주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가 상처받고 소외된 이들에게 또 하나의 가족이 되어준다면 사랑과 진실이 만나고 정의와 평화가 입 맞추는 세상을 만드는 견고한 기반이 될 것이라 믿습니다.  

   
 

교회의 사명 1. 희년 선포와 실천을 통한 시대의 전위 역할
카나리아는 공기에 민감해서 광부들이 탄광 내 산소량을 확인하기 위해 데려가곤 했던 새입니다. ‘탄광 속 카나리아’처럼 구약의 선지자들은 누구보다 시대의 불의를 민감하게 인식하고 목숨을 걸고 권력자들에게 간언하였습니다. 헤롯 왕의 옳지 못함을 간언하다 죽음을 당했던 세례 요한처럼, 히틀러의 파시즘을 막으려 했던 본회퍼 목사처럼 오늘날에도 불의한 세상 권력자들을 향한 예언자적 외침이 교회에 있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권력자들을 향한 비판을 넘어 신약의 교회는 사랑과 진실이 만나고 정의와 평화가 입 맞추는 하나님 나라를 먼저 보여줄 필요가 있습니다. 지극히 작은 자를 섬기기 원하시는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우리 시대의 소외받고 고통 받는 이들을 향해 희년을 선포하고 실천해야 합니다.

난파되어 가는 배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희년정신을 실천하며 다양한 실험을 펼쳐가고 있는 남은 그루터기와 같은 교회들이 우리 사회 곳곳에 있습니다. 교회 자체적으로 기금을 마련하여 기본소득 실험을 진행하고, 희년기금을 만들어 교회 내 어려운 청년들에게 자율 상환을 전제로 대출해주는 교회도 있습니다.

뜻있는 교회들과 기독교인들이 무이자로 저축해주신 돈으로 운영하는 희년은행은 20% 이상의 고금리부채에 시달리는 청년들에게 무이자전환대출, 청년들의 주거환경을 개선하는 공동주거지원대출을 실시했습니다. 지난 1년 동안 희년은행은 1억 6천여만 원의 출자금을 모았고 7천만 원 가량을 대출했습니다. 보는 이에 따라 크다면 크고, 미미하다면 미미할 수 있는 금액입니다.

하지만 희년은행은 자체적인 대출뿐 아니라 그에 따른 부수적인 효과에 더욱 주목합니다. 희년은행의 무이자전환대출 시도는 대형교회와 나아가 지방정부에서도 적용해보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습니다. 겨자씨 한 알 같은 작은 시도이지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시도라면 나비효과가 일어나리라 믿습니다.

로마 변방의 작은 집단이었던 초대교회가 수백 년 만에 로마제국이 위협을 느낄 정도의 세력이 된 이유 역시 교회 안과 밖의 고아와 과부를 환난 중에 돌보고 제국의 폭력과 음란 문화에 동화되지 않는 참된 경건을 실천했던 저력에 있었습니다. 비록 제국 권력의 회유에 넘어가 기득권의 종교가 되어 주님의 재림이 미루어지고 있지만 초대교회 사례는 희년의 선포와 실천을 통해 시대의 전위 역할을 교회가 감당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잘 보여줍니다. 오늘날에도 희년 선포와 실천을 하는 곳곳의 교회들을 통해 난파되어 가는 한국교회와 세상 가운데 어떤 나비효과를 일으킬지 기대하게 됩니다.

교회의 사명 2. 고엘 되어주기
세대를 이어온 상처와 아픔을 안고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 청년들이 우리 사회 곳곳에 있습니다. 비단 청년들만이 아니라 노년에서 아이들에 이르기까지 홀로 상처와 아픔을 안고 살아가는 수많은 이들이 있습니다. 우리 사회 곳곳에서 일어나는 인륜을 저버리는 사건들은 개인의 일탈이라기보다는 100여 년의 수난으로 인해 덧난 상처의 결과라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예수께서 고엘이 되어 우리를 하나님의 새로운 가족으로 불러주신 것처럼 우리도 주변에 있는 지극히 작은 자들에게 또 하나의 가족이 되어주는 것이 우리를 그리스도의 몸으로 부르신 사명이라 생각합니다. 

희년은행 출범 후 1년 동안은 희년의 제도적 의미에 방점을 두고 금융지원 시스템을 갖추는데 집중을 했다면 희년은행 2년 차에는 청년들에게 고엘이 되어주는 일에 좀 더 집중하려고 합니다. 희년은행에 도움을 청해 오는 청년들 중 사랑과 정서적 지지가 필요한 이들에게는 어른 친구를 소개해주려고 합니다. 희년은행 조합원과 단체조합원 교회에서 멘토를 자원 받아 멘토 전문교육 팀에서 멘토 교육을 받은 후 멘토링을 원하는 청년들에게 1:1 멘토링을 지원하려고 합니다.

전 지구의 고통받는 이들을 사랑하려고 하면 추상적이고 모호하지만 내 곁에 있는 한 사람은 구체적이고 실제적입니다. 각 교회의 성도들이 자기 지역에 있는 취약계층 아이들과 청년들, 노인 한 사람만 꾸준히 만나며 관계가 맺어져도 우리를 놀라게 하고 아프게 만드는 사회의 많은 사건들은 예방될 수 있지 않을까요.

희년은행의 작은 시도가 교회 안팎의 소외되고 고통받는 이들을 돕고자 하는 교회들에게 의미 있는 영감을 촉발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를 기억하시고 아끼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기억하는 교회들이 교회 안팎에 있는 취약계층 아동과 미혼모와 이주노동자에게 관심과 사랑을 베풀길 기대합니다.

누적된 적폐 속에서 신음하는 이들의 눈물을 닦아주며 그들의 상처를 싸매어 주는 교회들이 곳곳에서 일어날 때 정의와 평화가 입 맞추는 세상을 향한 걸음은 역행하지 않으며 새 시대는 더욱 견고해질 것입니다.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길 간구하는 모든 교회에 성령께서 기름 부으셔서 초대교회의 역동적인 역사가 오늘 한국교회에도 일어나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 희년은행이란?
희년은행은 고금리-무이자전환대출, 공동주거지원대출 등 삶의 시작부터 부채의 늪에서 힘겨워 하는 청년들을 위해 조합원들이 저축한 돈을 빌려줍니다. 자본이 일정 정도 쌓이면 고금리 전환대출뿐만 아니라 친환경 재생에너지 사업, 토지가치공유의 다양한 실험인 사회주택, 공동체토지신탁, 토지협동조합 등 다양한 영역에 자본을 빌려주어 하나님나라의 가치가 실현되는 희년생태계를 조성하려고 합니다. 희년생태계 여정의 시작인 무이자저축을 통해 하나님나라 운동에 참여해주세요!

- 조합원 수: 226명
- 출자금액: 155,005,343원 (이상 2017년 5월 15일 기준)
- 문의전화: 02-736-4907
- 홈페이지: jubileetogether.tistory.com

 

 


이성영
희년함께 학술기획팀장. ‘혼자 꾸는 꿈은 단지 꿈일 뿐이지만, 함께 꾸는 꿈은 현실이 된다‘는 믿음을 품고 희년의 꿈을 꾸는 동지들과 함께 꿈을 꾸며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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