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가 소처럼 여물을 먹고 / 한완상 / 후마니타스

 

▲ 후마니타스 펴냄, 17,000원

일평생 ‘사회의사’(social doctor)의 소명을 품고 ‘사자가 소처럼 여물을 먹는’(사 11:7) 새로운 세상을 꿈꾸어온 한 기독지성인의 회고록이 나왔다. 한국 사회학계의 거목이자 실천적 지식인으로 존경받는 한완상 전 부총리(새길교회 장로)의 여든 해 삶을 반추한 자전적 기록이다. 

책은 개인적 회고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일제 치하로부터 해방 정국을 거쳐 한국전쟁과 군부독재, 최근의 촛불 정국에 이르기까지, 역사에 내던져진 한 인간의 실존적 삶뿐 아니라 그가 헤쳐온 역사와 시대에 대한 성찰을 아우른다. 그렇기에 개인 생애사가 주는 도전과 감동을 넘어, 특히 “젊은 벗들”에게 역사와 사회에 대한 안목과 시야를 열어주는 유익이 있다. 

편안히 이야기를 건네는 듯, 편지를 띄우는 듯 다가오는 글투는, 독자로 하여금 ‘젊은 벗’의 한 사람이 되어 이 회고록을 더욱 경청하게 만든다. 그가 ‘사회의사’를 꿈꾸게 된 계기는 YMCA 고등부 모임에서 세계적 성서신학자이자 오르간 연주자였던 슈바이처 이야기를 접하고 나서다. 30세에 세계적 신학자 반열에 올랐지만 기독교 선교가 서구 제국주의의 첨병 노릇을 하는 현실에 분개한 슈바이처가 모든 명성을 버리고 오직 예수의 삶을 실천하고자 의사가 되어 식민지(아프리카)로 떠난 삶을 인생의 본보기로 삼은 것이다.

책 말미에서 지난날 “시장의 갑들과 카르텔을 형성해 민주 집권 세력의 성공을 끈질기게 방해”하려 한 ‘냉전 수구 세력’에 대한 경계와 함께, 새로 들어선 민주당 정부의 과제와 관련하여 들려주는 말이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적폐 청산과 화해 통합은 결코 별개의 과제가 아닙니다. 청산해야만 바람직한 통합이 가능합니다. … 묵은 적폐를 과감하게 청산하는 과정에서 반드시 새로운 대안이 나오게 된다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 청산 없는 통합은 마치 냄새나는 쓰레기와 배설물을 껴안고 사는 것과 같이 참으로 어리석은 짓입니다. 아무리 좋은 집으로 이사를 간들 쓰레기를 안고 가면 뭐하겠습니까.”(331쪽)

 

옥명호 편집장 lewisist@gosco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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