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명한 피 / 플래너리 오코너 / 허명수 옮김 / IVP 펴냄

“‘Jesus’나 ‘My Jesus’ 등이 욕으로 쓰이는 경우에는 주로 ‘젠장’으로 번역했다.”(18쪽)

소설 시작에 앞서 마주한 이 유일한 ‘일러두기’는 마치 단단히 각오하고 읽으라며 독자에게 미리 경고하는 것 같다. ‘예수’가 ‘젠장’으로 주로 번역되는 소설이라니.

이 소설과 저자를 두고, 영성가 토머스 머튼은 “인간의 몰락과 불명예를 보여 주는 그녀의 모든 진실과 기교에, 나는 예를 다해 그녀의 이름을 쓴다”라 했고, 소설가 정이현은 “말로만 듣던 전설적인 소설”이라 했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소설 100권’(가디언)에 선정되기도 했으니, 믿고 봐도 시간 낭비하는 일은 없겠다 싶었다. 

▲ IVP 펴냄, 13,000원

소설의 주제는 무려 삶과 죽음, 죄와 구원이다. 저자 플래너리 오코너(1925-1964)는 이야기 속 가짜 목사, 가짜 맹인, 음탕한 소녀, 폭력 경찰관 등의 엽기적인 행동을 통해 그 어마어마한 주제 “구원의 순간”을 추출하고 있다. 그녀가 칭송받는 이유일 것이다.(오코너는 개신교 근본주의자가 득세하던 미국 남부 조지아에서 대부분의 생을 보냈고, 25세에 오래 살지 못할 거라는 진단을 받은 채 12년을 더 살았다.) 

이 모든 찬사에도 불구하고, 이야기 속으로 쉽게 빠져들지 못해 당혹스러웠다. 등장인물들의 광기를 쉽게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몇 번 이야기 밖으로 튕겨지고 나서야 “이 책은 심혈을 기울여 쓴 것이므로, 가능하면 그렇게 읽어야 한다”라는 저자 서문이 떠올랐다. 이야기에 빠져들지 못한 건 그녀의 ‘일러두기’를 가벼이 여긴 탓이다.

그렇다면 ‘심혈(心血)을 기울여 읽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극단적 비극을 겪는 광인들 생애에서 심혈을 다해 우리 민낯을 발견하고, 그래야 은총의 순간도 누릴 수 있다는 것일까? 결코, 그런 일에 마음과 힘을 써본 적 없는 나로서는 소설 속 설교자의 외침이 무섭게 다가온다.

“지금 여러분 자신 안이 여러분이 갈 수 있는 전부입니다.”

 

이범진 기자 poemgene@gosco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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