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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의 세습권력이 드러낸 명확한 한계들
종교권력과 교회 세습 톺아보기(1) - 성서 속 종교권력과 세습
[0호] 2017년 06월 27일 (화) 16:05:51 설훈 hoondosa@paran.com

지난 6월호 '사람과 상황'에서 소개한 설훈 목사의 박사 논문 <한국 개신교회의 종교권력과 교회 세습에 대한 비판적 고찰>을 필자가 편집하여 4~5회에 걸쳐 연재합니다. 

 

종교권력의 관점에서 보면 성서는 권력의 역사이며, 또한 강력한 위계질서 간의 투쟁과 갈등의 역사이다. 성서는 주로 예루살렘의 야훼 하나님에 대한 성전 제의와 관련된 문서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 제의의 목적은 예루살렘 통치자들을 합법적으로 인정하려는 것이었으며, 성서가 의도했던 바는 기득권층의 정당성 확보였다.

   
▲ 물론 성서 속에는 제국에 대한 대항과 결의나 일반 민중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내용을 포함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 당시 문자 자체가 귀족들의 것이었으며 부자들이 성서의 소비자들이었기 때문에 큰 틀에서 본다면 성서는 지극히 지배자의 입장에서 구성되어 있으며 다수의 백성들이 아닌 부유한 지배자들의 권력 투쟁으로부터 형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성서 속에는 제국에 대한 대항과 결의나 일반 민중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내용을 포함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 당시 문자 자체가 귀족들의 것이었으며 부자들이 성서의 소비자들이었기 때문에 큰 틀에서 본다면 성서는 지극히 지배자의 입장에서 구성되어 있으며 다수의 백성들이 아닌 부유한 지배자들의 권력 투쟁으로부터 형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권력 투쟁은 세습으로 귀결되어 지는데 성서에서 ‘세습’이라는 원래 의미는 농사지을 땅을 물려주는 것을 의미한다. 대를 이어 토지를 경작하고 그 땅을 지키고 가꾸는 것이 세습의 목적이었다. 그러나 이스라엘 공동체는 유목 공동체로서 정해진 토지를 점유하고 경작하는 무리가 아니었다. 평등 공동체의 가장 큰 특징은 한 곳에 정주하지 않고 계속해서 이동한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이동은 계층 간 세대 간, 격차를 유동적이게 만들어 서열화 구조가 발생하기 어렵다. 종교에 대한 개념도 마찬가지로 성막은 이동하는 성역으로 어디에서든지 거룩한 곳이며 그러하기에 신에 대한 접근성 또한 용이하다. 제사장 영역도 직종의 차이만 있을 뿐 상층계급으로 인식되지 않았다.

그러나 가나안 정착시대가 시작되면서 가장 중요해진 것이 영토에 대한 점유권 획득이었다. 토지를 보존하고 확장시키는 것은 지파시대에 들어 가장 중차대한 일이 되었다. 같은 집단 안에서는 더욱 결속력이 증대되지만 다른 집단이라는 구분이 생기면 철저히 배타적인 자세로 돌변하게 되는 이유다. 땅을 더 얻기위해 집단 간 지파 간 경쟁과 살육이 일어나며 그럴수록 집안의 결속력은 점점 더 강해졌다. 결국 내 땅을 지키고 유지시킬 자는 오직 내 가족 밖에 없다는 가족중심적 집단체제가 나타나게 되었다. 이러한 가족주의는 곧 세습으로 이어지며 권력화 계층화로 구조화되었다. 

이러한 성서 속의 종교권력을 통한 세습의 결정판은 구약의 사독가문과 신약의 사두개파일 것이다.

 

사독가문의 종교권력 독점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지기 전 360년 동안 다윗 가문에는 21명의 왕이 통치했는데 이 기간 동안에 제사장은 18명으로 모두 사독계열이었다. 

다윗왕이 예루살렘을 정복한 후 그곳 원주민들과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의 융화를 도모하기 위해 여부스족 성소의 제사장이었던 사독을 이스라엘 제사장직에 기용하여 아비아달과 공동 제사장으로 직무를 수행케 했다.  다윗은 자신의 왕권 강화에 다소 부정적인 시각을 지닌 아비아달을 견제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고 그에 따라 여부스족 사독을 공동 제사장으로 기용했다. 그런 이유로 다윗은 고대 근동의 왕권 유형에 익숙한 사독에게 보다 호의적이었다.

사독계열이 제사장으로 등장함과 동시에 종교 정책에도 큰 변화가 일어난다. 이방민족인 여부스족의 저항없는 동화를 유도하기 위하여 이스라엘 제의 속에 가나안 제의 요소가 유입하는 것을 금하지 않았다. 이러한 혼합주의적 제의 정책은 다윗왕의 신임을 얻게 된 사독과 그의 측근들을 통해 진행되었다.

다수 지파의 지지를 받았던 사울과는 달리 다윗의 지지층은 그보다 적었다. 그러나 다윗은 사울왕이 다수의 지지를 받고 있었음에도 제사장 세력과의 충돌로 인해 타격을 입은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제사장과 왕의 대결구도보다 제사장 대 제사장 간의 경쟁구도로 왕권에 집중할 수 있다는 것을 직시했던 것이다. 결국 다윗의 왕위계승에서 사독계열의 지지를 받은 솔로몬이 후왕으로 결정되고 경쟁구도에 있던 아비아달의 전통파 제사장은 척결되었다. 사독은 다윗 통치시에 누렸던 제사장의 입지를 계속 유지 할 수 있었으며 더욱 확고해졌다. 나아가 사독계열은 독주의 터전을 잡고 권력을 세습하게 되었다. 사독에 의해 기름 부음을 받고 왕이 된 솔로몬은 사독이 죽은 후에도 그의 후손을 여전히 측근으로 두고 친가나안 정책을 수행하였다. 

   
▲ "사독에 의해 기름 부음을 받고 왕이 된 솔로몬은 사독이 죽은 후에도 그의 후손을 여전히 측근으로 두고 친가나안 정책을 수행하였다. 사독은 솔로몬의 일등 공신이 되었고, 집권 후 사독의 아들들은 행정관료의 최고 제사장 명단에 올랐다." (The anointing of Solomon by Cornelis de Vos)

사독은 솔로몬의 일등 공신이 되었고, 집권 후 사독의 아들들은 행정관료의 최고 제사장 명단에 올랐다. 열왕기상 4장 3∼6절에는 솔로몬의 행정 관리들이 나오는데, 사독의 아들 아사리아는 제사장, 아히야는 서기관, 여호사밧은 역사기록관이 되었다. 사독은 솔로몬의 국가 안보 보좌관으로서 제의 전문가들의 국가 제사장직을 제정했다. 사독 사후에는 그의 아들 아사리아가 대제사장직을 세습했는데(왕상 4:2), 솔로몬의 중반기 왕실 각료 명단에 제일 먼저 아사리아가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여전히 사독의 후손이 솔로몬의 측근으로 남아 그에게 지속적으로 협력한 것으로 추측된다. 그의 가족들은 아론의 후손들, 군대의 고위층과 같은 사회적 지위로 세습되어 내려갔다. 이러한 지위는 기원전 175년까지 약 800년간 긴 세월을 사독의 후손들이 독점하여 누렸다. 
 

사두개파의 종교권력

새로운 지배자로 등장한 하스몬 가문의 유다는 종교권력을 독점했던 사독가문을 성전 제사장의 고위직에서 해임하고 새로운 계층을 임명했다. 그들이 바로 새로운 종교권력으로 등장한 사두개인들이었다. 그들은 사독의 자손(Zadokites, 그리스어로 ‘사두개인들’)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었으며, 하스몬 가문의 지지를 등에 업고 권력을 장악했고, 곧 그 수와 부가 확장되었다. 면직된 전임 사제그룹인 사독 가문들은 죽음을 피해 그들의 지도자 오니아스 4세를 따라 이집트로 망명을 갔으며, 그곳에서 자신들이 성전 제의의 전통 계승자임을 내세우면서 성전을 다시 건축했다.

하스몬 가문은 초창기 대사제사장을 맡아 유대를 다스렸지만, 그들은 점차적으로 자신들의 권력과 자치권에 왕의 특권들을 부여했으며, 자신들의 자식들에게 헬라식 왕족의 이름들을 지어 주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새롭게 임명한 고위 사제계급인 사두개인들과 함께 헬레니즘 정책을 추구했다. 하스몬 정권과 그 정권의 새로운 사제들을 정당화하려는 문서들은 마카비 상하서의 성서들로 형성되었다.

바리새인들은 하스몬 가문의 대제사장들이 평범한 제사장 가문의 자손들이라는 이유로 이들을 신뢰하지 않았고, 그 권리에 문제를 제기하였다. 사두개파와 성전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그 당시 성전은 단순한 예배와 희생제사의 장소만이 아니라 유대 전체의 부가 집약된 곳이었음을 기억할 때, 유대의 부유층을 대표하는 사두개파가 성전의 운영에 큰 영향을 끼쳤을 것임을 알 수 있다. 돈이 융통되고 예금되는 장소로서의 성전에 대하여 성전의 재정이 성전에 봉헌된 곡식 등과, 그것에 해당되는 등가물들, 성전세 뿐만 아니라 보물과 보석, 부동산과 같이 성전에 맡겨진 증서본까지 포함하며, 이를 위해 많은 관리들이 필요했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

팔레스틴의 기득권층으로서 사두개파는 그 권력의 기반과 존속이 로마 제국에 있었으므로, 항상 그들과 상호 도모했다. 당시 유대교의 종교적 억압과 착취는 결코 로마제국의 식민지에 대한 착취보다 덜하지 않았다. 3가지 종류의 종교적 세금이 지배적이었는데 농부들은 대략 소출의 21∼23%의 종교세를 매년 지불해야 했다. 특히 흉년이나 가뭄이 들었을 때 로마에 세금을 내고 나면 그들의 현실은 아사의 위기였다. 성전과 결탁한 유대의 종교지도자들은 결코 어떤 경우도 이 세금의 부담을 줄여줄 생각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러한 세금은 신명기에 따라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기회로 강요되었다.

부와 권력을 누리고 있던 사두개파는 그 혜택을 누리는 데 있어 죄책감이 없었다. 의로운 사람에 대한 보상을 받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현재 누리고 있는 축복에 따라 영적인 상태를 평가했다.

사독에서 사두개인들로 가문의 이름만 바뀌었을 뿐 종교권력은 끊임없이 유지되어 왔다. 두 가문 모두 지배권력과의 친밀한 유대를 통해 권력을 유지했으며 자신들의 정당성을 위해 율법과 역사를 왜곡시키기도 했다. 또한 자신들의 기득권을 위해 혈통 중심의 가문 세습을 고착화 시켰으며 다른 세력들은 철저히 배제시켜 지배권을 장악하였다. 이를 통해 성서 속에서 나타나는 세습권력의 한계를 5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성서 속 세습권력의 한계

1) 소통의 부재

세습된 권력은 다른 집단에 대해 배타적이고 강압적이다. 세습을 유지시키기위해서 자신들만의 결집된 힘을 과시하고 상대편에게 그 힘으로 억압하는 것이 성서에서 보여지는 세습권력의 모습이다. 대표적인 예가 이스라엘의 분열을 가져온 여로보암 왕의 모습이다. 솔로몬에게 권력을 이양받은 여로보암은 북쪽 지파의 요구를 거절하고 더욱 억압하여 분열을 초래한다. 그 결정적인 역할을 한 자들은 여로보암을 중심으로 한 세습권력의 패거리들이다. 이러한 이너서클은 상대방과의 대화를 단절시키고 자신이 가진 힘으로 배척을 일삼는다. 오로지 하나님과의 소통만을 중요시하고 하나님의 뜻을 이행하는 자라고 말하나 결국 하나님과의 소통 역시 자신의 입장을 관철시키는 수단에 불과하다.

건강한 권력의 필수요소는 견제 세력이 반드시 필요함에도 권력은 그것을 용인하지 않고 독점적 지위를 획득하고자 애쓴다. 여로보암이 분열을 감수하고도 권력을 남용한 것이나 사독계 제사장 집단이 다른 제사장 그룹을 무차별 제거하여 진입할 수 없도록 막아버린 모습들 역시 누구의 방해도 거부하는 절대적 권력을 누리고자 했던 것이다. 이러한 소통의 부재는 계층 간의 단절을 일으켰다. 남과 북으로 나뉘어진 이스라엘은 결국 유대 혈통과 혼혈 사마리아 혈통이라는 깊은 골을 만들어 버렸다. 세습권력은 화합과 관용을 용납하지 못하고 나누고 구분하여 자신들만의 정통성을 구축해갔다.

이러한 사상은 유대사회 전반에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유대인이 수 천년 동안 유랑하며 미움을 받게 된 가장 큰 원인은 자신들의 혈통을 지킨다는 목적으로 상대방을 적대시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세습권력의 폐단에서 시작된 소통의 부재라는 맥락에서 파악할 수 있다. 

2) 역사의 왜곡과 단절 

세습된 권력은 계승의 역사적 전통성을 강조한다. 선대로부터 내려오는 정신과 가풍이 자연스럽게 자손에게 흘러들어가기에 세습만큼 순수성과 온전성을 유지하는 좋은 방법이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정신적 유산이 혈족에 의해 계승되어야 한다는 원칙은 절대화 할 수 없을뿐더러 구약 속에서도 직계가 아닌 계승은 심심치 않다.

구약성서에서 계승의 메카니즘은 혈족이 아닌 은사(카리스마)적 계승이었다. 이러한 점에 비추어 볼 때 세습을 전통성과 결부시키는 것은 부절적하며 오히려 세습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역사성의 훼손이라고 봐야 한다. 새롭게 권력을 얻은 자는 그 권력을 세습하기위해 정통성을 부여하고자 한다. 그래야만 세습 권력의 안정과 입지를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존의 전통에 부합하는 세습 권력은 많지 않다. 대표적으로 사독은 이스라엘 지파와 거리가 먼 가나안 여부스족의 제사장이었다.

이런 배경은 세습의 약화를 가져올 수도 있기에 전통에 근거한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새로운 역사는 역사를 조작하거나 왜곡시키는 것이었다. 사독계는 자신들이 아론계 레위인이라고 슬쩍 끼워 넣기를 하며 역사를 왜곡시킨다. 그에 앞서 사무엘 역시 에브라임 지파 출신이나 후에 대제사장 자리에 오른 뒤에는 레위지파로 호적을 세탁하게 된다. 세습을 하기 위한 역사적 근거와 정당성이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역사를 왜곡시키면서까지 자녀에게 권력을 이양하고자 했던 것이다.

이러한 모습은 지금의 한국교회도 별반 다르지 않다. 마치 교회의 정신과 역사를 이어갈 인물로 유일한 존재인 것처럼 세습을 정당화시킨다. 그러나 교회는 목사 개인의 정신을 이어가는 곳이 아니다. 교회는 개인이 사유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자신의 철학과 정신을 투영하는 곳도 아니다. 그럼에도 자녀에게 교회와 그에 수반된 갖가지 권력들을 이양하는 것은 자신이 누리던 지위와 권세를 자녀를 통해 계속해서 누리겠다는 의지 표명에 불과하다.

그 결과는 교회의 역사성을 심하게 훼손시키고 왜곡하게 만든다. 그것은 공교회의 역사가 아니다. 그렇다고 성도들의 기도와 눈물의 역사도 아니다. 목사 개인의 역사다. 교회에 대한 공동체의 역사는 변질되고 사라져 오직 담임목사와 그것을 이어받을 자녀만이 역사로 남게 되는 현실이 만연하고 있다. 

   
▲ "그것은 공교회의 역사가 아니다. 그렇다고 성도들의 기도와 눈물의 역사도 아니다. 목사 개인의 역사다. 교회에 대한 공동체의 역사는 변질되고 사라져 오직 담임목사와 그것을 이어받을 자녀만이 역사로 남게 되는 현실이 만연하고 있다." 지난 3월 11일 명성교회(김삼환 원로목사)가 당회를 열어 새노래명성교회(김하나 목사)와 합병하기로 결의했다. 김삼환 목사의 아들 김하나 목사에게 세습을 하기 위한 단계로 추정된다. (사진: 명성교회 홈페이지)

3) 새로운 인적 자원을 통한 창조력의 부재 

세습은 혈족 외에 새로운 인재가 등용될 수 없는 체제이다. 고인물은 썩을 수 밖에 없듯이 세습 권력의 한계는 급속도로 타락할 수밖에 없다. 그러한 맥락에서 구약성서는 세습에 대해 호의적이지 않고 오히려 부정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세습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보다는 자신의 유익을 구하다가 징계를 받았다는 패턴이다. 또한 고착된 권력은 통제와 규율을 증가시킨다. 세습된 권력을 유지하고 저항세력으로부터 방어하기 위해서 힘으로 제압할 수밖에 없다. 이로 인해 경직된 사회의 피로도는 급격히 올라가고 백성들의 불만은 권력유지에 위험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 기득권이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퇴폐적 유희나 놀이문화를 활성화 시키는 방법이 자주 사용되었다.

이스라엘의 이방문화 유입이 문제가 된 것은 이방문화 중에서도 퇴폐적이고 중독적인 저급문화가 일반 백성들에게 유입되었기 때문이다. 백성들이 세습 권력의 부당함에 관심을 쏟지 못하도록 규율로 통제하고 한편으로는 퇴폐적 향락문화로 권력독점을 유지해 나갔다. 또한 새로운 인재가 지도층으로 진입하지 못하도록 철저히 배척함으로 변화하는 세계판도에 민첩하게 대응하지 못하고 사회를 이끌어 갈 창조력을 상실해 버렸다. 특히 분열된 북이스라엘 백성들을 혼혈민족이 되었다는 이유로 이방인으로 격하시켜버렸다. 종교적 순혈주의에 입각한 배제라고 볼 수도 있으나 새로운 문화와 융합된 북이스라엘인들이 진입하지 못하도록 억제하는 수단이기도 하였다.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폐쇄성은 문명의 퇴보를 가져오게 되며 개방성을 가진 주변 국가의 침입에 대응할 외교적, 군사적 열세도 극복할 수 없게 된다. 국가가 위기에 처했을 때 세습된 지도자들은 백성의 안위를 염려하기보다 자신의 생명을 부지하기에 급급했으며 결국 이스라엘은 파국을 맞이하게 된다.

이러한 폐쇄적 써클문화는 한국교회에 고스란히 유지되고 있다. 세습되었거나 세습을 준비하는 교회에서는 새로운 자원이 유입되는 것을 극도로 거부한다. 담임목사보다 설교 잘하는 부목사는 퇴출대상이 되며, 교회에서 젊고 유능한 성도들이 자발적인 모임을 가지면 불순한 모임으로 몰아세운다. 새로운 사상이나 시대정신을 철저히 배격하고 오히려 저급한 물질문화를 통해 망각을 유도한다. 

4) 기회의 박탈과 현실 부정

사독계의 중앙성소 집권으로 그동안 제사장 지위에 있었던 레위인들은 배제되었다. 더욱이 지방성소와 산당에서 제의를 주관하던 레위인들은 하층민으로 추락하고 중앙성소 진입이 불가하게 되었다. 사독계는 제사장의 계층화를 통해 자신들의 입지를 확고히 하고자 했으며 유다왕조 역시 중앙집권체제에 반감을 가진 레위 제사장들을 억압할 필요성이 있었다. 계층의 고착화는 신분 간의 변화를 차단해 버린다.

세습을 통해 사독계가 구축한 제사장의 지위는 다른 계파의 사람들은 진입이 불가능하였다. 계층의 유연함이 없는 사회는 창조적 능력을 기대하기 어렵다. 계층 간의 단절은 구성원 간의 연합과 일치를 이룰 수 없다. 이러한 부정적 상황을 타계하고자 사독계 예언자들이 내세운 방법은 현세를 부인하고 내세를 지향하게 만드는 것이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이며 이 땅의 고통과 시험은 천국에 더더욱 다다르게 만드는 길이라고 호도한다. 현실 감각이 떨어진 교회로 인해 사회도 무기력하게 변한다. 기득권층으로부터 시작해서 부정과 부패가 일상화되고 불의에 맞서기 보다는 개개인의 신앙에 초점을 맞추게 한다.

겉으로 볼 때는 굉장히 종교성이 강하고 신앙심이 깊어 삶의 문제를 초월한 고차원적인 사회인 듯 보이지만 그 속에는 백성들을 우민화시켜 벼랑 끝으로 모는 권력의 악랄함이 도사리고 있다. 현실을 도피하여 성소로 몰려드는 열성 신자들이 많아질수록 종교권력의 계획은 차질 없이 진행되는 것이다. 세습 권력은 누구보다도 하나님의 뜻을 전한다고 자처한다. 자신은 하나님의 특별한 계시를 받는 대언자이며 백성들은 그 뜻에 무조건 복종하는 것이 복을 받는 길임을 계속해서 주지시킨다. 주변국가의 침입도 자연재해도 갑작스런 사고도 모두 순종이 부족하기에 받는 죄의 댓가라고 말한다. 그러면 그럴수록 백성들은 현실의 상황들을 모두 내면화시키고 종교의 범주로 격하시켜버리고 만다. 곧 나는 사라지고 하나님의 계획에 순응해야 하는 상실된 객체만이 존재할 뿐이다.

종교적으로는 열성신자이지만 현실의 문제 앞에서는 방관자가 되어버리고 마는 우민화된 사회가 바로 세습 종교권력이 가장 바라는 모습일 것이다. 그렇게 되면 세습 역시 현실의 잘못된 문제라고 생각하기는커녕 거룩한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들이고 복종하게 된다. 제사장이나 일반백성이나 똑같은 사람임에도 차원이 다른 존재로 인식하고 수렴하도록 만든다.

한국교회도 이같은 종교 우민화 교책을 즐겨 사용한다. 담임목사는 끊임없이 자신이 하늘의 천명을 듣고 대언하는 자라고 세뇌시킨다. 목사에게 대항했다가 천벌을 받은 사례를 열거하며 복종을 강요한다. 교회의 일과 세상의 일을 구분하고 자신의 뜻이 하나님의 뜻인 양 선포한다. 이러한 교회는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세상에 대해 어떠한 영향력도 변화도 끼칠 수 없으며 오히려 세상을 악한 것으로 치부하고 단절시킨다. 

5) 계층 간 분열로 인한 공동체성 상실

세습은 앞서서 언급한대로 계층이 양극화되어 화합과 연대를 이룰 수 없게 되는 한계를 가진다. 사독계가 세습을 통해 권력을 쟁취한 반면 권력 투쟁에서 밀려난 아비아달 제사장 가문은 변방으로 쫓겨나게 되고 만다. 출신성분에 따라 제사장 간에 서열이 매겨지게 되고 계층화된 그룹 안에서 상위계층을 부러워하거나 증오하며 일생을 살아야했다. 계층 간의 간극과 골이 깊어 서로 간에 도저히 융화될 수 없는 적대적 관계로 자리 잡게 되었다. 세습된 왕이었던 솔로몬은 친(親)예루살렘 측근들만 등용하여 배제된 이들에게 분열의 발단을 야기 시켰고 다시 그에게 세습된 여로보암은 더욱 강력한 차별정책과 탄압을 일삼아 결국 나라는 분열의 역사를 갖게 되었다. 분쟁과 암투가 세습이라는 굴레 속에서 끊임없이 발생하고 권력의 승계는 곧 피의 숙청이 동반되었다. 

이렇듯 권력의 독점적 세습은 세습을 하는 당사자나 세습에서 제외된 모두에게 큰 상처를 남기며 모두를 패자로 만들어 버린다. 아무리 성서의 사례를 들어 교회 세습의 정당성을 말하고자 하여도 오히려 성서는 세습의 한계를 명확히 드러내고 있을 뿐이다. 세습이 성서의 역사를 이어가는 한 부분으로서의 역할을 감당했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러나 세습이 필수불가결한 요소였으며 하나님의 완전한 계획이었다고 단정하는 것은 큰 오류일 것이다. 오히려 세습을 통해 양산된 분열과 계층의 단절, 국력의 약화와 이민족의 침입 등은 세습을 정당화시킬 수 없다. 그러므로 세습은 정당하지 않으며 하나님의 뜻도 아닌 지금까지 누려온 독점적 우위를 향존적으로 점유하기 위한 기득권층의 권력유지 수단이라고 정의하는 것이 가장 합당할 것이다.


참고문헌
김은규 외, 《하느님 새로 보기》, 동연,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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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쿠트, 매리 쿠트, 장춘식 옮김, 《성서와 정치 권력》, 한국신학연구소, 2000.
서명수, 《제사장 사독의 기원》, 연세대학교 대학원 신학석사논문, 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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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섭, 《다윗 시대의 제사장 갈등에 관한 연구 : 아비아달과 사독을 중심으로》, 서울기독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논문, 2014.
전성민, 《교회세습에 대한 구약적 고찰》, 세반연 학술심포지엄 자료집,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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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평화, 《사도행전의 사두개파와 바리새파》,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07.


설훈
<한국 개신교회의 종교권력과 교회 세습에 대한 비판적 고찰>(성공회대학교, 2017)로, 교회 세습을 주제로 다룬 최초의 박사 논문을 썼다. 한신대에서 종교학과 신학을 공부했고, 협성대 신대원을 졸업해 감리교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다. 농촌과 섬마을 작은 교회에서부터 대도시와 신도시 교회에서 두루 사역해왔다. 현재는 '건강한 교회를 이루기 위한 주춧돌 모임'(링크)을 일구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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