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서오세요. 최종편집 : 2017.11.17 금 13:08
기사검색
   
> 뉴스 > 교회 | 교회 언니, \'종교와 여성\'을 말하다
       
마흔넷에 혼자 떠난 유학, 그리고 노리치의 줄리언
[320호 교회 언니, '종교와 여성'을 말하다]
[320호] 2017년 06월 28일 (수) 14:50:54 양혜원 《교회 언니, 여성을 말하다》 저자 goscon@goscon.co.kr

‘노리치의 줄리언’과 나
대학 졸업 후 8년 만에 다시 대학원 공부를 시작한 서른 초반, 수업에 늦지 않으려고 배낭을 지고 뛰면서 생각했다. ‘내가 이 나이에….’ 그로부터 12년 후 마흔 중반의 나이에 미국의 캠퍼스에서 다시 배낭을 지고 뛰면서 생각했다. ‘내가 이 나이에….’

아마도 화요일이었지 싶다. 세 시간짜리 수업이 두 개 연달아 있었다. 그리고 두 강의실 간의 거리는 먼저 수업이 끝난 곳에서 다음 강의실까지 무릎이 아플 정도의 속보로 걸을 경우 약 10분이었다. 두 대가의 강의였다. 한 사람은 여성 신학의 대모인 로즈마리 래드포드 류터(Rosemary Radford Reuther), 또 한 사람은 미국에 단 두 곳밖에 없다는 종교여성학 과정을 내가 다니는 학교에 개설한 캐런 조 토저슨(Karen Jo Torjesen)이었다. (종교여성학 과정이 있는 다른 한 곳은 하버드 대학이다.) 류터 교수는 작년에 뇌출혈로 쓰러진 후 오른쪽이 마비되고 언어 장애가 와서 가족과 동료들의 보살핌을 받으며 지내고 계신다. 토저슨 교수도 2년 전에 뇌출혈이 왔지만 다행히 온전히 회복되었고, 은퇴한 뒤 아프리카에서 또 다른 인생을 시작했다. 나는 두 분의 마지막 학생 중 하나가 된 셈이다. 

두 강의실 간의 거리가 다소 먼 이유는 캠퍼스가 커서가 아니라 류터 교수의 수업이 다른 곳에서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류터 교수는 클레어몬트 신학교 소속이고, 토저슨 교수는 클레어몬트 대학원 대학교 소속이었다. 두 학교는 서로 완전히 다른 학교지만, 클레어몬트 대학원 대학교의 종교학과와 클레어몬트 신학교는 서로 수업과 도서관 자료를 공유한다. 여하튼 그러한 이유로 두 강의실이 서로 멀리 떨어져 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날 나와 같은 강의 스케줄을 가진 학생이 두 명 더 있었는데, 걸어간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이곳은 캘리포니아, 자동차 없이는 생활이 여러 모로 불편한 지역이었던 것이다.

물론 모든 사람이 자동차를 소유한 것은 아니었다. 특히 기숙사 생활을 하는 학생들의 경우 자전거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었다. 차를 소유하는 대신에 회원제로 등록해서 필요할 때마다 빌려 쓰는 렌트카를 이용하는 학생들도 있었다. 그러나 대다수는 차를 가지고 있고, 일단 차를 가진 이상 십분 거리도 걸어다니지 않았다. 그러니까 평생을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뚜벅이로 살아온 나는 이동을 생각할 때 자동적으로 떠오르는 게 ‘걸어서 버스나 지하철 타고’라면, 이 지역의 사람들에게 ‘이동’과 ‘자동차’는 거의 동의어였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워낙 광활한 지역에 시설들이 띄엄띄엄 자리잡고 있어서 자동차가 아니면 이동이 힘들기 때문이다. 모든 생활이나 공간이 자동차를 전제로 돌아가고 배치되는 문화였다.

자동차 이야기를 서두에 이렇게 길게 꺼내는 이유는, 자동차 없이 시작한 (그리고 끝낸) 내 유학 생활이 14세기의 신비가 ‘노리치의 줄리언’(Julian of Norwich)의 생활과 은유적으로 겹쳐져서다. 신비가란 중세 때 책으로 신을 연구하는 대신에 신비한 체험으로 신을 경험한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다. 이들은 자신의 체험을 직접 글로 남기기도 하고, 문맹일 경우 대필로 남기기도 했다. 노리치의 줄리언은 직접 기록을 남겼다. 예상했겠지만, 줄리언은 여자이다. 그리고 그녀는 ‘앵커레스’(anchoress)였다.

‘여성 은자(隱者)’ 혹은 ‘혼자 사는 수녀’ 정도로 번역되는 이 단어는 ‘어디로부터 물러나다’라는 뜻의 그리스어 anakhoretes에서 유래한다. 말하자면 이 세상으로부터 물러난 사람들을 뜻하는 단어로, 남성형은 anchorite, 여성형은 anchoress이다. 그렇다면 이들은 어떠한 조건에서, 왜, 혼자 사는 것일까?

은자의 조건
이 은자의 삶은 4세기 사막 교부 혹은 교모들의 관습에 뿌리를 두고 있다. 기독교가 박해받던 시절이 지나자 금욕적 영성 운동이 크게 일어나기 시작했는데, 그리스도를 본받는 삶의 모범이 순교에서 금욕적 수도 생활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순교가 단번에 죽는 거라면, 금욕적 수도 생활은 날마다 죽는 행위다. 수도 생활은 공동체로 많이 이루어졌지만, 간혹 하나님과 더 가까이 대면하고자 홀로 사막으로 나가는 사람들이 있었다. 영성 훈련의 고급 단계라고나 할까. 개인의 생존을 모여 사는 공동체에 많이 의존하던 시절에 이렇게 홀로 사막으로 나가 금욕 생활을 하며 생존해낸 사람은 영적 능력을 인정받았고, 더 많은 영적 지식 또한 체득한 듯하다.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삶을 택하는 데는 남녀의 구분이 없었다는 사실이다. 금욕 생활을 한 여성들은 생리가 멎기도 하면서 나중에는 그 외형이 남자와 별 구분이 없어졌다고도 한다. 이렇게 영적인 능력은 남녀를 구분하지 않았고, 그것이 여자들에게는 기존의 불평등한 남녀 관계를 벗어나는 길이기도 했다.

남녀 관계에 대해서 성경은 우리에게 많은 혼란을 준다. 어디서는 평등하다고 했다가 어디서는 여자들에게 가만히 앉아서 배우고 아이나 낳으라고 한다. 그런데 성의 구분은 질서와 깊은 연관이 있어 보인다. 바울도 질서가 필요하다고 느낄 때 남자와 여자의 위계에 대해서 언급하기 시작했다. 누가 언제 잡혀가서 죽을지 모르는 소수의 무리일 때는 질서의 문제가 등장하지 않는다. 죽음 앞에서 만인은 평등하다고 했던가. 아마도 첫 그리스도인들은 남녀간의 질서보다는 동지애를 더 키웠을지도 모르겠다. 이러한 동지애의 전통은 수도원 안으로 들어갔고, 교회가 로마제국의 종교 제도로 자리잡으면서 여자들이 교회에서 하는 역할에 많은 제한이 생기고, 수도 생활에서도 남자와는 다른 제약들이 있었지만, 금욕 생활은 성의 구분을 뛰어 넘게 하는 면이 있었다. 금욕의 목적이 육체를 다스려 주님과 영적으로 더 친밀해지는 데 있었기에, 훈련을 통해 육체의 필요에 휘둘리지 않게 된 영혼들에게는 성의 표지 또한 희석되었을 것이다. 

그리스도교가 확장되고 도시가 발달하면서 사람들은 더 이상 사막으로 나가지 않았다. 그럼에도 홀로 주님과 대면하여 주님을 더 가까이 체험하고자 하는 열망은 여전히 남아서 그것이 anchoress와 같은 은자의 전통으로 남았다. (특히 영국에서 이 전통이 많이 발달했다고 한다.) 이들은 이 세상에 존재하되 속하지 않기 위해 도시 안에서 살되 스스로 거기서 ‘물러나’ 작은 공간 안에 자신을 가두었다.

줄리언이 머물렀던 작은 공간은 영국 노리치에 있는 ‘성 줄리언’이라는 교회에 딸려 있었다. 줄리언의 이름은 사실 줄리언이 아니다. Anchoress의 전통에 따라 자신이 기거하는 교회의 이름을 따서 줄리언이라고 불렸을 뿐이다. 본명은 알려져 있지 않다. 이러한 은자의 삶은 누구나 지원할 수 있었다. 남자나 여자, 신부나 수사나 수녀, 평신도도 가능했다. 결혼을 한 사람도 배우자가 이러한 삶의 방식에 동의만 한다면 anchoress나 anchorite가 될 수 있었다. 보통 남자보다 여자가 더 많이 이 길을 따랐는데, 여성에게 종교인으로 사는 길이 그만큼 제한되었기 때문이다.

줄리언과 나의 묘한 대비

   
▲ Statue of Julian of Norwich by David Holgate, west front, Norwich Cathedral

지원은 누구나 가능했지만, 지원자는 주교에게 자신이 이 삶으로 부름받았음을 검증받는 기간을 거쳐야 했다. 그 이유는 이 삶의 특성 상, 개인에게 많은 것이 달려 있기 때문이었다. 보통 수도원들은 그 수도원의 규칙이 있고 그 규칙을 감독하는 수도원의 일정과 동료 수행자들이 있지만, 스스로를 가둔 은자들은 오직 자기 자신만이 자신의 영적 생활에 책임이 있었다. 특히 여성들은 혹시 있을지도 모르는 성적 유혹을 방지하기 위해 고해 신부도 간헐적으로 만나고, 혹 남자 성직자와 대면해야 할 경우 제3자가 항시 있어야 하며, 얼굴도 가렸다고 한다. 이렇게 간섭자가 거의 없이 홀로 있는 상황에서 오직 기도에 전념하며 주님과 교제가 이루어지는 자신의 내적 세계에 집중하는 삶을 제대로 살아내려면, 이 삶에 대한 부름이 확실해야 했고 다른 동기가 있어서는 안 되었다. 혹 외형으로는 이 삶에서 요구되는 생활 패턴을 잘 따르는 것 같아도, 어느 순간 습관적으로 반복하는 삶이 되기 쉬웠고, 그러한 상태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라도 많은 자율성이 요구되는 삶이었다. 즉, 정말로 자신의 내면 세계에 깨어있을 수 있도록 기도 패턴이나 금욕의 방식을 자신에게 맞게 스스로 조율할 수 있는 자유가 anchoress에게는 있었다.  

또한 내면 생활에 집중하는 삶에 맞게 그것을 방해하는 모든 활동은 금지되어 있었다. 심지어 여성이라도 밥과 청소를 해주는 사람을 두고 자신은 그런 일로 방해를 받지 않아야 했다. 그래서 혼자 사는 삶이면서도 완벽하게 혼자는 아니었다. 자신을 위해 재생산 노동을 해주는 사람을 관리하는 것도 anchoress의 일이었고, 이들과는 자주 대면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렇게 도움을 주는 사람의 존재는 유혹이 될 수도 있었다. 기도 생활이 지루하거나 혼자 사는 삶이 외로워지면 수다를 떨 대상이 곁에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대놓고 나태해지지는 않겠지만, 자신이 어느 정도로 흐트러졌는지는 오직 자신만이 알 일이었고, 책임질 일이었다.

은둔의 삶을 살지만 이들이 방을 전혀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교회 마당 정도까지는 나와도 되었다. 하지만 그 이상을 벗어나면 출교되었다. (은자가 되는 의식은 장례식처럼 엄숙했는데 자신이 평생 기거할 방으로 들어가면 마치 관 뚜껑을 닫듯 그 문을 닫았다고 한다.) 인터넷에서 노리치의 줄리언 이미지 검색을 해보면 간혹 고양이를 데리고 있는 여자의 그림이 있는데, 그 이유는 개는 안 되지만 고양이는 키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개는 나가서 사고를 치기도 하고 산책도 시켜야 해서 anchoress가 내면 세계에 집중하는 데 방해가 되었지만, 고양이는 그렇지 않은 동물로 여겨졌다. 물론 쥐를 잡아준다는 명목이 있었지만, 애완 동물처럼 고양이를 대했을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고독한 수행자에게는 말없는 벗이 되었으리라.

줄리언이 살았을 이러한 삶과 내 삶이 은유적으로 겹쳐졌던 이유는 무엇보다도 제한된 행동 반경과 한 가지에 집중된 삶 때문이었다. 줄리언보다는 조금 더 먼 거리까지 갈 수 있었지만, 차가 없이 내가 걸어서 다닐 수 있는 곳은 학교 그리고 근처 마켓과 스타벅스 정도였다. 그나마 스타벅스도 한 15분은 걸어가야 하는 거리에 있어서 잘 가지 않았다. 15분이 멀어서가 아니라, 캘리포니아의 땡볕을 받으며 걸어서 거기까지 갔다 오는 게 휴식이 아닌 일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결국 카페도 도서관 카페를 주로 이용했고, 나의 이동 거리는 기숙사와 캠퍼스의 왕복이 거의 전부였다. 그렇게 기숙사와 학교를 오가면서 나는 줄리언을 생각했다. 교회 마당 이상을 벗어나지 못하면서 기도의 삶에 전념했던 줄리언. 학교 캠퍼스를 벗어나지 못하면서 공부에 집중하는 나. 성과 속의 묘한 대비였다.

줄리언의 시대 vs. 우리 시대
줄리언의 시대와 이 시대의 큰 차이는 무엇보다도 종교의 지위일 것이다. 우리는 과학이 종교를 대체한 시대에 살고 있다. 그렇다고 종교가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신앙은 무엇보다도 개인의 문제가 되었으며, 더 이상 보편적 설명 체계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신비를 설명할 언어를 잃어버렸는지도 모른다. 그 언어를 상실한 시대에 지성 교육을 받은 나는 줄리언의 신비 체험과 비전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그의 생활 양식이 내게 다가왔던 것과는 달리, 그의 비전 기록은 그렇게 와닿지 않았다. 나는 신비 체험의 기록이나 비전의 기록을 의혹의 눈으로 먼저 바라보게 훈련받아온 지 오래다. 신비 체험이 모두 기이한 쇼처럼 되어버린 시대에 사는 탓이기도 하리라. 과학의 시대가 신비 체험을 쇼로 만들었는지, 신비의 언어를 상실해서 신비 체험이 쇼가 될 수밖에 없었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줄리언을 연구한 그레이스 잰슨(Grace Jantzen)도 줄리언의 신비 체험을 얼마나 진실된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그 체험이 거짓이라는 게 아니라, 그것이 그녀가 하는 종교적인 주장의 타당한 근거가 되느냐 하는 것이다. 잰슨은 신비 체험은 아무런 종교적 주장의 근거가 될 수 없으며, 체험 자체보다는 그것에 수반되는 신앙과 헌신의 생활 양식이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러한 생활 양식의 의미를 이해하려면 그러한 생활 양식이 추구하는 것에 대한 공감이 어느 정도 필요하다고 덧붙인다. 즉, 그리스도의 수난이 아무런 의미도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 수난을 모범으로 살고자 하는 사람의 체험을 제대로 다 해석할 수 없다는 뜻이다. 그렇게 본다면, 신비 체험에 대해서 더 회의적이 되는 이유는 줄리언의 시대와는 다른 대중성과 익명성의 사회에 우리가 살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리라. 우리는 같은 그리스도인이라 하더라도 상대를 잘 알기가 쉽지 않은 사회에 살고 있다. 또한 다양성이 키워드인 사회에서는 공통의 의미를 구현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나의 하나님과 너의 하나님이 같기보다는 다른 경우를 갈수록 많이 경험한다. 말하자면, 줄리언의 시대에 그의 체험과 기록이 가질 수 있는 반향이 오늘날에는 많이 달라졌다는 뜻이다.  

줄리언의 기도 생활은 어릴 적부터 시작되었는데, 그리스도의 고난을 체험적으로 이해하게 해달라고 기도했고, 죽을 정도로 아프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그리고 실제로 서른의 나이에 그는 죽을 정도로 아팠으며, 그 아픈 와중에 그리스도의 수난에 대한 비전을 보았고, 병이 나은 후 자신이 본 것을 기록했다. 처음에는 일단 보고 들은 대로 기록했고, 그후로 20년간 자신의 비전에 대해 깊이 묵상한 후 신학적 통찰을 더해 또 하나의 기록을 남겼다. 그 분량의 차이 때문에 전자는 짧은 텍스트(short text), 후자는 긴 텍스트(long text)라 불린다. 일찍부터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은 은유적 의미로라도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진 규범 같은 것이었지만, 죽을 정도로 아프게 해달라는 그의 기도는 좀 의아스럽다.

줄리언 연구가인 잰슨은 이 기도에 대해서 “죽음을 기억하고 그것의 임박성을 인식하는 것은 인생을 가리는 사소한 것들을 거두어내고 영원한 의미가 있는 것들에 집중할 수 있게 해준다”는 사실을 그녀가 알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줄리언은 자신의 기도대로 죽도록 아픈 와중에 (종부 성사까지 받은 상태였다) 그리스도의 수난을 비전으로 보았고, 그녀가 궁극적으로 깨달은 메시지는 이 세상의 죄와 악에도 불구하고 전적으로 의지할 수 있는 하나님의 사랑이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모든 것이 잘 될 것이다”(All shall be well, all manner of things shall be well)라는 말은 바로 줄리언이 본 환상에서 그리스도로부터 받은 말씀이다. 그녀는 체험을 통해 이 지식을 얻었고, 그것을 신학적으로도 풀어낼 수 있었던 드문 여성이었다.

여성 은자의 수사학
앞에서 말했듯 신비가는 신비한 체험으로 신을 경험한 사람들이다. 종교의 시대에는 이렇게 얻은 지식도 제대로 검증만 받는다면 사회적 권위를 가졌다. 교육이나 사회적 기회가 제한되었던 여성들에게는 이러한 체험이 남성과 대등한 자리에 설 수 있는 유일한 기회였다. 물론 (남성들로 이루어진) 고해 신부나 기타 권위 있는 성직자들로부터 검증을 받아야 했기에 완전히 대등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줄리언이나 아빌라의 테레사처럼 일단 체험의 진정성이 확인되고 나면 이들은 자신의 체험을 글로 써서 널리 알릴 수 있었고, 그 글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것으로 인정받았다. 그리고 이렇게 글을 쓴 사람들은 종종 자신은 여자라 무식하고 나약하지만 하나님이 이렇게 쓰라고 명하시니 그 명에 어쩔 수 없이 따른다는 수사학을 구사했다. 그러나 이들이 남긴 글을 읽어보면 사실은 전혀 무식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이들의 수사학은 질서를 위해 정해진 여성의 표지의 변형이다. 바울이 고린도전서 11장에서 여자가 예언을 할 때는 머리를 가리라고 한 것은 여자가 권위 아래 있다는 표시를 하기 위함이었는데, 그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어떠한 방식으로든 여자는 남자와 다르다는 표시가 되어야 했고, 현실 사회에서 그 다름은 거의 언제나 위계로 나타났다. 따라서 여성 신비가들이 글을 쓰면서도 ‘지금 활용하는 이 문자라는 도구는 원래 남성의 전유물이지만 모든 것을 초월하시는 하나님이 그 도구를 내게 쓰라고 하시니 순종한다’는 수사학을 쓴 것은, 남녀 모두가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대원칙과, 남자와 여자는 어떻게든 (차등 있게) 구분되어야 한다는 현실의 요구 사이의 절충안이라고 할 수 있다.

같은 맥락에서, 바울의 언어가 후기로 갈수록 교회 안에서 여성의 역할에 더 많은 제약을 가하는 것을 보면, 그가 예수의 재림이 지연될수록 현실 사회에서 교회가 분란 없이 살아갈 수 있는 방편을 고민했던 듯하다. (혹은 예수의 재림 때까지 교회가 현실 사회와 큰 마찰없이 지낼 수 있는 방편으로서 한 조언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그러나 교회가 제국의 종교가 된 후에는 이 ‘분란 없음’에 더 큰 방점이 찍히게 되었고, 교회 안에서 여성의 역할은 수도원에서 기도하는 것으로 축소되었다. 다음 번 글에서 더 자세히 다루겠지만, 여성들이 이러한 교회의 방식에 문제를 제기하기 시작한 것은 종교개혁 이후인데, 딱히 개신교가 더 진보적이어서가 아니라 이미 종교가 사회에서 힘을 잃어 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줄리언은 교회 마당의 경계를 벗어나지 않으면서 하나님을 더 깊이 알기 위해 기도에 전념했고, 나는 학교 테두리 안에 머물면서 교회/종교와 여성의 관계를 이해하기 위해서 공부에 전념했다. 줄리언과 달리 내 밥은 내가 알아서 챙겨 먹어야 했지만, 살림도 하고 애도 키우고 돈도 벌다가 내 입 하나만 챙기며 오직 공부만 하니 엄청난 자유였다. 그러나 나 혼자 좋으라고 누리는 자유는 아니지 싶었다.

줄리언과 같은 anchoress는 그 지역사회의 후원이 있었기 때문에 생존할 수 있었다. 수도 생활을 하니 많이 먹을 일은 없겠지만, 일손까지 두고 살아야 하는 이 생활은 경제적 후원 없이는 불가능했다. 가족이든 친구든 지인이든 아니면 선의의 익명인이든, 이들이 아무런 노동도 하지 않고 오직 기도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경제적인 면을 책임져 주어야 anchoress로 살 수 있었고, 이러한 경제적 후원은 anchoress가 지역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공통된 인식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실제로 이들이 기거하는 공간에는 두 개의 창이 있었는데, 하나는 예배당을 향하고 하나는 길 쪽을 향했다. 예배당으로 향한 창은 자기 거처를 벗어나지 않고 미사에 참석하게 하기 위함이었고, 길을 향한 창은 기도를 부탁하러 찾아오는 마을 주민들을 위한 것이었다. 줄리언은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영적 지도도 하고 기도도 해주었다. 이러한 사역이 자신의 기도 생활을 대체해서는 안 되었지만, anchoress의 삶의 중요한 부분이었다.

내 유학 생활과 줄리언의 삶은 제한된 행동 반경과 한 가지에 집중된 생활이라는 데까지만 유비 관계가 성립하지만, 나 역시 공부할 수 있기까지 주변의 도움을 받았다는 점과 이 공부의 궁극적 용도를 생각할 때 두 생활의 유사성을 조금 더 확장해도 되지 않을까.

자신의 소명을 발견하는 것은 결국 세상에서 자신의 쓸모를 발견하는 것과도 같다. 쓸모의 발견은 자신에게도 자존감을 주지만 남에게도 도움이 된다. 그래서 쓸모다. 유학 생활에서 마음껏 공부할 수 있는 자유와 더불어 한번씩 대책 없이 밀려오는 고립감은 이 쓸모가 점차 보이면서 잦아들었고, 자유와 고립감은 함께 가는 동반자임을 알게 되었다. 줄리언이 스스로를 고립시킴으로써 얻은 기도 생활은 자신의 쓸모를 안 사람이 얻은 자유이기도 했을 것이다. 그리고 쓸모는 수행이 있어야 비로소 제대로 발현된다는 것도 유학 생활 중에 얻은 중요한 통찰이다. 

 

양혜원
본지 해외편집위원. 서울대에서 불문학을, 이화여대 대학원에서 여성학을 공부했다. 1997년부터 번역가의 길에 들어서 유진 피터슨, 헨리 나우웬, 존 스토트, 톰 라이트, 알리스터 맥그래스 등 주요 기독교 저자들의 책을 번역했다. 미국 Claremont Graduate University에서 종교학 박사 학위를 받고, 올해 9월부터 일본 난잔종교문화연구소에서 연구 활동에 들어갈 예정이다. 《유진 피터슨 읽기》 《교회 언니, 여성을 말하다》 등을 썼다.

     관련기사
· 루터가 낯익어서 망친 학기 혹은 역사의 과정 이해하기
ⓒ 복음과상황(http://www.gosco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전체기사의견(0)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전체기사의견(0)
복음과상황 기사제보 광고문의 제휴안내 오시는길 개인정보취급방침 청소년보호정책 이메일주소무단수집거부
서울시 서대문구 창천동 506-10 산성빌딩 104호 우)120-836 | 전화 : 02-744-3010 | 팩스 : 02-744-3013
발행인 : 김병년 | 이사장 : 박종운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병년
Copyright 2008 복음과상황.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oscon@gosco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