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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 관하여
[320호 3인 3책]
[320호] 2017년 06월 28일 (수) 15:08:39 박용희 용서점 대표, 북마스터 goscon@goscon.co.kr
   
 

하나의 요리가 양념과 재료와 도구, 요리사 능력의 조합으로 만들어지듯 하나의 책도 본문과 자본, 저자 혹은 역자와 편집자가 지닌 능력, 그리고 표지의 조합으로 만들어진다. 제목은 요리로 치면 양념이다. 요리를 먹을 때 양념이 결정적이진 않듯 책을 읽을 때 ‘제목’이 결정적인 부분을 차지하진 않는다. 하지만 좋은 양념이 있다면, 그리고 요리사가 뛰어난 능력을 가질수록 양념을 잘 활용해 원재료가 가진 본연의 가능성을 최대로 이끌어내듯, 좋은 제목은 본문이 가진 가능성을 최대로 끌어낸다. 반대로 양념을 너무 많이 치면 재료 맛이 살기는커녕 오히려 떨어지는 경우도 있다. 양념도 여러 종류가 있어 후추, 소금, 설탕, 고추장처럼 특정한 맛을 확연하게 살리는 양념이 있고 다시마, 참기름, 간장처럼 상대적으로 은은하게 맛을 살리는 양념도 있다.

책을 읽을 때 내용을 꼼꼼히 살피며 읽는 게 기본이지만, 양념과 재료가 얼마나 조화를 이루는지를 따지며 읽는 것도 또 다른 재미가 있다. 이를테면 최근 출간된 《이것이 복음이다》(IVP) 같은 경우는 강한 양념을 잘 살려 쓴 요리다. 톰 라이트 저작을 꾸준히 낸 출판사답게 그가 지금까지 해온 복음에 관한 이야기를 가장 대중 친화적으로, 알기 쉽게 낸 책임을 본문을 자세히 살피지 않아도 직관적으로 알도록 해놨으니 말이다. 출판사가 이 책에 자신감을 갖고 있었다는 건 책 제목을 달리 해봤을 때 좀 더 분명하게 알 수 있다. ‘이것이 복음일까?’ ‘복음이란 무엇인가’를 썼다고 상상해보라. 밋밋하지 않은가.

예전에 소개한 《잃어버린 언어를 찾아서》(비아, 2016) 같은 경우는 반대로 은은한 양념을 잘 살려 쓴 요리다. 출판사가 ‘Speaking of Sin’이라는 원제에 갇힌 나머지 ‘죄’라는 무거운 단어를 어떤 식으로든 살려 썼다면(‘죄에 관하여’라든지 ‘죄를 말하다’든지, 좀 더 머리를 굴린답시고 ‘바바라 브라운 테일러 죄를 말하다’를 쓴다든지) 본문이 지닌 열린 태도와 산뜻함을 독자가 직관적으로 느끼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굴 소스라든지 송로버섯에 견줄 수 있는, 깊이가 느껴지는 제목을 써서 독자의 시선을 사로잡는 경우도 있는데 그 대표적인 예로 《텍스트가 설교하게 하라》(성서유니온, 2012)를 들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이 책이 많은 이의 관심을 끌어내는 데 제목이 50% 이상은 기여했다는 데 500원 건다(그리고 이 책을 산 사람 중에 완독자 수가 50%가 안 되리라는 데 50원 건다. 덧붙이자면 나도 그중 한 명이다).

양념을 잘못 쓴 것 같은 요리도 종종 있다. 이를테면 《내가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창세기에서 배웠다》(IVP)는 양념이 과한 나머지 원재료 맛을 잘 살렸는지 의구심이 들게 만든다. 《위로》 《언어의 영성》 《분별의 지혜》 같은 책을 지은 이가 갑작스럽게 창세기에서 모든 것을 다 배웠다니 어색한 것이다. 《페이스북 영성이 우리를 구원할까?》(홍성사)도 마찬가지. 원제 ‘Wisdom of Stablity’와 너무 먼 제목이라는 건 둘째 치고, ‘페이스북’이든 ‘페이스북 영성’이든 우리를 구원할 수 없다는 건 너무나 자명한 일이 아닌가.

양념과 재료만의 관계만을 따지더라도 요리에 대한 이야기가 풍성해질 수 있듯 제목과 본문의 관계만 좀 더 고민해보더라도 책에 관한 이야기는 더 풍성해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마음의 양식이라는 고결한 칭호를 얻었지만 우리의 책 이야기는 지나치게 재료 중심적이니 말이다.


 
박용희
장신대 구내서점, IVP(한국기독학생회 출판부) ‘산책’ 북마스터로 일했다. 책, 여행, 사람을 좋아한다. 새해 들어 고양시 덕은동에 헌책방 ‘용서점’을 내고 책과 더불어 하루를 열고 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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