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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주민과 누리는 복음의 공공성
[323호 커버스토리] 마을을 품은 교회의 8가지 키워드
[323호] 2017년 09월 21일 (목) 17:56:24 이도영 더불어숲동산교회 담임목사 goscon@goscon.co.kr
   
▲ 지난 7월 28일, 더불어숲 페어라이프센터에서 '화성공정무역 시민네트워크 준비모임'이 열렸다. (사진: 더불어숲동산교회 페이스북)

올해 2017년은 종교개혁 500주년이다. 500주년을 맞아 한국교회는 종교개혁지 답사나 다양한 세미나를 열고 있다. 가장 많이 듣는 말은 종교개혁의 정신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말이다. 종교개혁의 정신은 무엇인가? 첫째는 교회 개혁, 둘째는 교리 개혁이다. 성경으로 돌아가 오직 믿음과 오직 은혜라는 바른 진리를 붙들어 교회를 바로 개혁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정말 그런가? 겉으로 보기에는 맞는 말인 것 같지만 제2의 종교개혁이 필요하다고 일컬어지는 지금 시대에 적합한 말은 아닌 것 같다.

종교개혁은 단지 교회 개혁이 아니었다. ‘기독교세계(크리스텐돔)’에서 이루어진 전반적인 개혁이었다. 정치, 경제, 학문, 문화, 도시, 국가에 관한 총체적 개혁이었다. 이 모든 개혁을 성경과 믿음과 은혜의 원리로 이루었다. 그때는 그것을 통해 중세시대(교회와 사회 전반)에 대한 근본적인 개혁을 일으킬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이 시대도 그럴까? 한국교회가 무너지는 데 지대한 공헌을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은혜와 믿음과 칭의에 대한 확신이 없을까? 지금의 위기가 종교개혁의 유산 자체에 내장된 문제가 발현된 것이라면 어떻게 할 건가?

그러므로 단순히 500년 전 종교개혁의 정신으로 돌아갈 것이 아니다. 500년 전 종교개혁이 성경과 은혜와 믿음에 근거한 예언자적 상상력으로 새로운 사회적 상상력을 제공하였듯이, 지금 이 시대에 절실한 예언자적 상상력을 새롭게 제시해야만 한다. 중요한 것은 루터가 한 말이 무슨 뜻인가 하는 것이 아니라 루터가 한 말이 무엇을 이루었는가이다. 지금 그와 같은 일을 하기 위해서는 어떤 말이 필요한가를 새롭게 물어야 한다.

구약이 사라지고, 복음이 사사화된 한국교회
현대 교회의 가장 큰 문제는 바로 “복음의 사사화”이다. 복음은 개인적이고 실존적으로 받아들여야 하지만 복음의 내용은 결코 사적이지 않다. 십자가의 복음은 곧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며, 공공의 장에서 선포되고 적용되어야 할 사실로서의 진리이다. 공적 진리로서의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을 통해 인간의 총체적인 상황을 바꾸는 무엇인가 발생했다는 선언이다. 복음은 개인적이고 인격적인 결단으로의 초대인 동시에 총체적인 사회생활을 위해서도 사실로 인정되어야 하는 공공의 진리이다. 다시 말하지만 성경에서 말하는 복음은 ‘공적 진리로서의 복음’이며 ‘공적 실천을 요구하는 복음’이다. 그런데 한국교회가 선포하는 복음은 개인 영혼 구원의 문제로 축소되었고, 철저히 개인주의적인 신앙으로 왜곡되었다.

그것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 바로 현대판 복음전도에는 구약이 없다는 점이다. 사영리나 브릿지 전도나 전도폭발 등을 보라. 구약이 없다. 왜냐하면 오직 영혼 구원만을 말하는 복음전도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구약에서 선포하고 있는 공적 복음이 생략되어 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구약을 성취하기 위해 오셨는데 구약을 생략하면 어떻게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을 알 수 있다는 말인가? 예수님의 취임 선언장으로 알려진 누가복음 4장에 보면 예수님은 이사야를 펼치신 후 그것을 이루려고 오셨고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다”고 말씀하셨다. 특히 이사야서를 통해 예수님은 자신이 이 땅에 희년을 성취하기 위해 오셨음을 강조하고 있는데, 한국교회에서는 희년에 대해 거의 가르치지 않는다. 어떤 분은 신앙생활하면서 ‘희년’이라는 말을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고 말한다. 한국교회는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을 제대로 가르치지 않고 있다.

이렇게 축소되고 왜곡된 복음만을 받아들이는 한국교회는 개인윤리만 있지 사회윤리가 없고, 통전적인 복음에 대한 이해가 부재하다. 내면적 태도와 개인적인 도덕만을 말할 뿐이다. 개인이 예수 잘 믿으면 좋은 사회가 된다는 순진한 주장만 한다. 하지만 개인주의적 윤리만으로는 세상과 교회를 회복할 수 없다. 한국교회는 개인적으로 선해도 사회적으로 악할 수 있고, 도덕적으로 선하지만 기능적으로 악할 수 있다는 사실을 똑바로 직시해야 한다.

복음의 공공성을 살리는 교회
한국교회는 오직 구제나 자선, 그리고 노블레스 오블리주만 외치고 있다. 이것이 기독교의 윤리인가? 이러한 윤리는 선택적 윤리에 불과하고 정의의 문제가 생략되었다는 치명적 약점을 지니고 있다. 개인적인 차원의 죄만 이해할 뿐, 정사와 권세라는 악의 실체를 외면하고 사회적이고 구조적인 죄에 대한 문제의식이 부재하다. 하지만 기독교는 ‘자선’의 종교가 아니라 ‘정의’의 종교다. 하나님은 자신을 정의의 하나님이라고 소개한다(렘 23:5). 

성경의 핵심 사상은 ‘공의과 정의’ 혹은 ‘공평과 정의’, 즉 ‘미쉬파트와 체데크’이다. 미쉬파트가 교정적 정의라면, 체데크는 기초적 정의라고 할 수 있고, 미쉬파트가 절차적 공정성이라면 체데크는 실질적 공정성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아브라함을 선택한 이유는 자손을 공평과 정의를 행하는 자로 세울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며(창 18:19), 다윗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인 이유도 이스라엘을 공의와 정의로 다스리는 사람이기 때문이고(삼하 8:15), 아모스는 오직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하라고 외쳤다(암 5:24). 영어성경을 보면 구약에 나오는 미쉬파트는 거의 ‘righteousness’로 번역했고, 체데크는 거의 ‘justice’로 번역되었다. 미쉬파트와 체데크는 ‘righteousness’와 ‘justice’, 즉 공평과 정의다. 바로 이 ‘하나님의 의’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서 성취하셨다. 십자가에서 성취하신 하나님의 의는 ‘righteousness’와 ‘justice’, 즉 공평과 정의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영어 성경은 오직 ‘righteousness’라고만 번역했는데, 이는 오직 ‘개인적 올바름’만을 의미한다. ‘justice’가 사라져 버렸다. 이것이야말로 개인 차원의 복음과 영혼 구원의 복음으로 축소되고 왜곡된 현대교회의 복음이 초래한 기괴한 결과이다.

그러므로 제2의 종교개혁은 복음의 공공성을 회복하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더불어숲동산교회는 이러한 문제의식을 갖고 “하나님 나라의 신학과 십자가의 영성과 성령의 능력을 갖춘 급진적 제자 공동체를 통해 공교회성과 공동체성과 공공성을 회복하는 선교적 교회가 된다”는 비전을 품고 2010년 1월 화성시 봉담읍 동화리에서 시작된 교회이다. 여기에서는 공공성을 회복하는 선교적 교회를 위한 사역만을 소개하기로 한다. 지면 관계상 특히 두 가지만 강조하고자 한다.

첫째, 더불어숲동산교회는 지역과 세상을 섬기는 교회가 되려고 했다. 교회는 ‘지역 교회(로컬 처치)’이다. 지역 교회는 “구드 테루아르”(gout de terroir), 즉 그 지역의 향미를 드러내야 한다. 지역 교회는 지역의 고유한 맛과 향을 담아내는 믿음의 공동체다. 그렇게 뿌리를 내리고 꽃과 열매를 맺어 향과 맛을 낼 때 사람들은 편안함을 느끼게 되고 거기에 머무를 만한 어떤 가능성을 보게 된다. 로컬성은 지역에 뿌리를 내리고 지역의 일원이 되어 지역을 섬길 때 생기는 것이다. 그런데 현대의 교회들은 로컬성이 없다. 현대교회는 철저히 탈성육신화되고 탈현장화된 조직이 되어버렸다. 어떤 지역에 가도 교회가 똑같다. 로컬 처치가 아니고 유니버설 처치다. 지역성과 현장성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선교적 교회가 제기하는 매우 중요한 질문 중 하나는 이것이다. “교회가 그 지역에서 타 지역으로 옮겨진다면 그 지역은 무엇으로 그 교회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가?” 건물, 교통체증, 주차문제, 소음문제 등등? 이러한 현실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그 지역만의 필요를 알아내고 그 지역을 섬기는 일들이 없으니 지역주민에게는 교회가 필요없다. 지역 교회는 반드시 지역의 ‘공공재’ 혹은 ‘공유재’가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기에 지역이 교회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진정한 교회라면 지역이 교회를 붙들게 만들어야 하는 것 아닌가?

지역사회를 품는 ‘마을만들기 NGO’
더불어숲동산교회는 지역을 섬기기 위해 ‘페어라이프센터’라는 ‘마을만들기 NGO’를 만들어 섬겼다. 우리는 ‘페어 라이프’(Fair life)에 대한 구체적인 사역을 위해 8가지 키워드를 만들어 보았다. 첫 번째 키워드는 ‘함께 짓는 공간’이다. 마셜 맥루한은 “매체가 메시지다”라고 말했다. 매체 자체가 메시지를 준다는 말이다. 교회 공간도 마찬가지다. 아무 말을 하지 않아도 공간 자체가 메시지를 준다. 우리가 하는 모든 사역과 사용하는 모든 말과 몸담고 있는 모든 공간에 하나님 나라의 가치가 담겨있어야 한다. 공간 자체가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보여주는 표지라면 “공간 자체가 성례이다.” 특히 생태, 협동, 공유의 가치가 공간에 담기도록 했다. 리싸이클링을 넘어 업싸이클링 디자인을 추구한 이유이다.

둘째는 ‘공정무역’이다. 대형교회는 교인들만 이용하는 카페를 가지고 있고, 소형교회는 생존을 위해 카페를 운영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카페에도 하나님 나라의 가치가 담겨있어야 한다. 지속가능하고 참여하는 마을 만들기를 꿈꾸는 페어라이프센터는 지역주민과 소통하는 공간인 카페를 공정무역 카페로 운영하여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실현하려 했다. 공정무역 캠페인을 정기적으로 하였으며, ‘공정무역교실’을 통해 ‘공정무역 시민강사’를 양성하여 지역학교의 강사로 섬기도록 하고 있다.

셋째는 ‘문화예술’이다. ‘삶을 가꾸고, 마을을 일구며, 세상을 돌보는 공동체’를 추구하는 페어라이프센터는 작은 마을에서 나의 삶뿐 아니라 세상을 아름답고 지속가능하게 일구어 가는 새로운 일상의 레시피를 만들어 가며 그 일상의 조각보를 이어 새로운 마을을 만들어 가는 희망의 플랫폼이다. 이를 위해 새로운 일상의 레시피를 만드는 다양한 문화예술 워크숍을 진행하였다.

넷째는 ‘나눔과 환대’이다. 바자회나 벼룩시장, 크리스마스 마켓 등을 열어 그 수익금으로 외국의 분쟁지역 등에 평화도서관을 만드는 일이나 지역의 어려운 이웃을 돕는 일을 하고, 매년 지역 초등학교 졸업생들에게 교복장학금을 지급하고 있으며, 신명 아이마루(고아원)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섬기고 있다.

다섯째는 ‘사회적 경제(공유경제)’이다. 페어라이프센터는 그동안 봉사자들 중심으로 운영하던 ‘공정무역 카페’를 화성시 최초로 35명의 조합원으로 구성된 ‘화성시 제1호 사회적 협동조합 더불어숲’으로 전환했다. 이를 통해 사회적 경제를 일구며 취약계층을 돕고 지역사회 재생과 공익 증진에 힘쓰고, 지역사회를 위한 마을 만들기의 새로운 경제모델을 제시하고 있다. 조합원들 중 일부가 자발적으로 청소협동조합 ‘사람과 청소’를 만들어 새로운 협동조합 모델을 시험하기도 하였다.

여섯째는 ‘배움(교육)’이다. 페어라이프센터는 지역의 열악한 환경 속에 있는 청소년들을 위해 작은 예술대안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토요일만 열리는 예술학교는 2013년 경기문화재단에서 프로젝트를 수주하고, 성도들의 재능기부를 통해 커뮤니케이션 디자인을 배우고, 직접 노랫말을 만들고, 음악을 작곡하고, 뮤지컬 각본을 쓰고, 춤을 배우는 과정에서 대안적 가치를 배우고 있고, 창작 뮤지컬 공연까지 마쳤다. 2014년 봄에는 제주도 공정여행과 ‘세월호 참사’를 노래한 ‘잊지 않을게 0416’이라는 노래를 작곡하였고, 가을에는 <빅이슈>를 판매하는 노숙인 아저씨들과 함께 가판과 합창 발표를 하였다. 2015년에는 경기도 교육청에서 야심 차게 밀고 있는 ‘꿈의 학교’로 전환하여 ‘마을 공동체 교육’이라는 신개념의 교육을 선도하고 있다. 꿈의 학교는 “화성으로 간 스쿨버스”라는 제목으로 진행됐다. 버스를 타고 (유명 대학의 교수가 아니라) 지역 내의 숨은 고수를 찾아가는 콘셉이다. “화성으로 간 스쿨버스”의 부제가 “우리 동네 재미있을 지도”다. “지도”가 키워드다. 배워야 할 것을 주입식으로 암기하는 것이 아니라 ‘같이’ 여행하며 ‘가치’ 있는 삶이 무엇인지 배우고 ‘대안적 지도’를 만들었다.

일곱째는 ‘생태’이다. 화성을 생태도시로 바꾸는 비전을 가지고 있으며, 일회용 쓰는 것을 지양하기 위해 자신의 컵을 가지고 와서 사용하고 있으며, 가급적 지역 내 푸드와 제품 그리고 생협 제품을 구입하고 있다. 또한 텃밭 가꾸기 등으로 로컬푸드를 시험해보았고, 공간 자체를 생태적 관점에서 세팅하였고, 업싸이클링운동과 아나바다운동을 실생활에 적용하고 있으며, 에너지 자립마을에 대한 구상과 함께 생태를 차기 과제로서 우선순위에 두고 있다.

마지막은 ‘플랫폼’이다. 새로운 생태계를 만드는 공동체가 세상에 강력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다. 플랫폼이란 자발적인 참여자들의 상호작용으로 새로운 가치와 혜택을 제공해줄 수 있는 상생의 생태계를 말한다. 공간을 개방하고 연결하고 협력하고 공유함으로 창조적인 시너지가 이루어지는 플랫폼을 만들기 위해 교회가 ‘큐레이터’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본다. 처음부터 페어라이프센터 공간을 지역주민들이 적극적으로 활용하게 했으며, 이렇게 지역과의 소통이 이루어지기 시작하면서 ‘마을의 공유 공간’(플랫폼)으로서의 기능이 활성화되고 있고 지역 내의 여러 단체들이 먼저 찾아와 공간을 활용하기를 원하고 있다.

‘쿡 창의요리 연구소’에서 ‘동화쿡 요리쿡(3회)’을, ‘화성환경운동연합’에서 ‘숲 안내자 양성과정(8회)’을 진행했고, ‘화성시 보육교직원 교육’ 같은 굵직한 세미나들과 화성시 ‘창의지성센터’의 강의가 화성시 지정으로 교회 공간에서 열리고 있다. 자체적으로 진행하던 ‘마을학교’를 ‘화성의제21 실천협의회’와 함께 ‘마을, 새로운 세상을 꿈꾸다’라는 주제로 진행하여 〈오마이뉴스〉 오연호 대표, 환경운동가 최병성 목사의 강의와 세월호 유가족 간담회를 개최했다. 올해도 전체 프로그램 중 정승관 선생님(전 풀무고 교장), 양정숙 씨(로봇다리 세진이 어머니)의 교육특강과 임완수 박사를 모시고 진행하는 ‘커뮤니티 맵핑’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또한 ‘화성시사회적공동체지원센터’에서 주관하는 2015년 마을만들기 활동가 워크숍 ‘여우마을 (여기서 우리 마을을 이야기하자) 워크숍’이 되었다. 그 외 크고 작은 사역들이 페어라이프센터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

이런저런 소그룹 모임과 세미나, 마을학교 등을 통해 페어라이프센터의 공간이 2014년부터는 플랫폼으로서 제 기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2015년 가을 페어라이프센터 공간 활용도를 조사해보니, 뜨개질, 영어, 바느질, 독서클럽 등 주간 소그룹 워크숍이 20여 개 정도 진행됐고, 공정무역 교실, 꿈의 학교, 도서관은 예술학교, 학습동아리 등 마을공동체 교육 프로그램이 200여 회 진행되었으며, 일반 카페 이용자가 1,000여 명 그리고 다양한 대관프로그램을 통해 마을 주민 2,000여 명 정도가 이 공간을 이용했다. 앞으로의 과제가 있다면 우리 부부가 관여하지 않아도 이런 결과가 나오도록 하는 것이다.

   
▲ 작년 9월 더불어숲동산교회에서 열린 '마을과 도시 컨퍼런스' 행사. '화성, Fair City를 꿈꾸다"를 주제로 열렸다. (사진: 더불어숲동산교회 페이스북)

소외된 자들을 섬기는 교회
마을을 섬길 때 고자세를 버리고 협력자로서 함께 사역을 해야 한다. 마을만들기를 전도의 수단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 마을 주민들과 시민사회의 주체들이 교회의 진정성을 알도록 해야 한다. 그러면 그들이 먼저 다가온다. 우리의 경우 ‘화성의제21’과 ‘마을만들기지원센터’와 함께 다양한 마을만들기 사역을 했다. 당시 이런 일도 있었다. 어느 모임에서 ‘공동주택 프로젝트’를 하기에는 땅값이 너무 비싸서 다른 지역에 새로 개척해야겠다는 농담을 던졌다. 그런데 지역주민들이 이렇게 말했다. “다른 곳으로 가지 마세요. 저희가 싼 땅을 알아봐 드릴게요.” 그분들의 말을 듣고는 ‘아, 우리를 마을만들기 운동의 파트너로, 지역주민과 시민사회의 일원으로 받아들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분들이 정말로 우리 교회가 코하우징을 할 수 있는 아주 싼 땅을 알려주셨다는 사실이다.

둘째로 이 땅의 소외된 자들을 위한 교회(타자를 위한 교회)가 되어야 한다. 할 말이 많으나 한 가지만 하겠다. 2014년 4월 16일에 세월호 참사가 터졌다. 이 참사 앞에 한국교회는 어떻게 반응했는가? 세상과 똑같이 ‘가만히 있으라’ ‘침묵하라’고 말했다. 혹은 비상식적인 말들로 세월호 희생자들과 유가족 그리고 함께 아파하는 이들에게 도리어 상처를 주었다. 나는 이것이 그동안 한국교회가 이 땅의 소외된 자들을 위한 교회가 되지 못했기에 발생한 자연스러운 결과였다고 생각한다. 오늘날 한국교회는 무엇이 문제인가?

첫째로 한국교회는 상처 입은 자들의 고통과 약자들의 울음에 반응해야만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다. 둘째로 기독교는 피해자들의 탄원을 신원하시는 하나님의 정의에 동참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다. 현실 기독교의 가장 큰 실수 중 하나는 가해자의 죄가 사해지는 것만을 강조했을 뿐, 피해자의 수치와 상처와 탄원에 대해서는 귀 기울이지 않았다는 데 있다. 십자가가 가해자의 죄만을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피해자의 탄원 또한 해결한다는 사실을 외면한 데 있다. 셋째로 기독교는 예언자적 종교임에도 불구하고 그 사명을 감당하지 않았다. 세월호 희생자가 있는 안산의 교회마저도 세월호에 대해 설교할 수 없었다고 한다. 왜 이렇게 되었는가? 왜 한국교회 강단은 예언자적 외침을 상실해버렸는가? 

몇 해 전에 몇만 명이 출석한다는 교회의 목사님께서 퇴임할 때 다섯 가지 참회라는 제목의 양심적인 고백을 했다. 인상적인 내용 세 가지만 소개하면 이렇다. “1. 조국의 민주화운동이 한창일 때 민족 역사의 한복판에서 아무런 기여를 하지 못하고 방관자로 살아온 일, 그리고 지도하던 젊은이들을 깨어있는 역사의식을 가지고 역사의 마당에 서도록 인도하지 못한 것을 참회합니다. 2. 목회의 마당에서 마음으로는 소외되고 연약한 성도들과 가난한 성도들을 돌보는 목회를 하고자 했으나 실제로 시간을 내어 그들의 눈물과 아픔에 제대로 동참하지 못한 것을 참회합니다. 3. 올곧게 살아가지 못하는 성도들, 특히 교회 내 부유한 기득권층들이 상처받을 것이 두려운 나머지 회개를 촉구하는 예언적 설교를 제대로 못 한 것을 참회합니다.”

어느 초대형교회 목사님의 이 퇴임사가 한국교회의 정체성을 그대로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단순히 대형교회의 목사님들이 예언자적 설교를 하지 못한 것이 문제가 아니라, 예언자적 설교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대형교회로 성장한 것은 아닌지 돌아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더불어숲동산교회가 이런 교회가 되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세월호 참사가 터졌을 때 피를 토하며 설교했다. 그랬더니 핵심멤버 세 가정이 교회를 떠나려 해서 모두 만났다. 만나보니 내 미숙함 때문이지 모두 교회를 사랑하는 분들이었다. 대화 후 일단 남아있기로 했다. 어떻게 되었을까? 모두 적극적인 참여자나 지지자가 되어주셨다. 매주 수요일마다 합동분향소 유가족 부스에서 자수공방을 통해 세월호 유가족을 섬기는 일, 청소년부와 함께 한 ‘안전사회 캠페인’, 세월호 참사 1주기 광화문 집회, 세월호 유가족 목요기도회, 성탄연합예배 등에 동참했다. 가장 중요한 결과는 이를 계기로 교회에 ‘사회선교부’가 생겨났다는 점이다. ‘사회선교부’는 이 땅의 소외된 자들을 위한 기독교인의 정치 참여를 고민하고 실천하는 부서이다.

한국교회가 위기라고 한다. 주요 교단들이 파악한 바로는 한국교회의 교인 수는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고, 30-40대가 매년 10만 명 이상 교회를 떠나고 있다 한다. 심지어 ‘가나안 성도’가 100만 명에 이른다고 하고 혹자는 300만 명 정도 된다고도 한다. 위기는 단지 숫자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2013년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의 사회적 신뢰도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비기독교인들이 가장 신뢰하는 종교 1위는 가톨릭(47.0%), 2위는 불교(38.0%) 순으로 답했으며, 기독교는 겨우 12.5%에 불과했다. 가히 제2의 종교개혁이 필요한 상황이다. 해법은 ‘복음의 공공성’을 회복하는 방법밖에 없다. 마을만들기 사역을 통해 지역을 섬기고 소외된 이웃을 위해 공적 이슈에 반응할 줄 아는 교회, 즉 공평과 정의를 실천하는 ‘페어 처치’가 될 때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이도영
총신대와 총신대 신학대학원에서 공부했다. 대학교와 대학원 시절에 ‘새날을 사는 사람들’이라는 단체의 공동대표로 섬기면서 변혁적 공동체 운동에 전념하였다. 공군 군목을 마치고 안산동산교회의 부목사로 섬긴 후, 2010년 1월 화성시 봉담읍에 더불어숲동산교회를 개척하여 “공교회성과 공동체성과 공공성을 회복하는 선교적 교회”라는 비전을 실천해왔다. 저서로 《기적을 만드는 1%의 힘》과 《내 생에 가장 아름다운 용기, 고백》이 있으며, 한국선교적교회네트워크(MCNK) 학술팀과 교회2.0목회자운동의 실행위원회를 섬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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