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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들어 사는 사람도 시민입니다
[353호 이웃 곁으로 이웃 속으로]
[353호] 2020년 03월 19일 (목) 11:32:34 이한솔 goscon@goscon.co.kr

 

‘님비’와 상식 사이
오래 전 ‘휴거’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휴먼시아 거지’의 줄임말로 공공임대주택 휴먼시아에 거주하는 사람을 뜻하는 혐오 표현), ‘갈 때까지 갔구나’ 싶었습니다. 그런데 끝이 아니었습니다. ‘휴거’는 어느새 ‘엘사’(LH 주택에 사는 사람)로 대체되어, 초등학생들 사이에서 널리 쓰인다고 합니다. 세 들어 사는 사람, 즉 임대주택 세입자를 향한 사회의 차별과 혐오는 한국 사회에서 오랜 기간 끊이지 않고 이어져왔습니다. 재작년에는 역세권 청년주택을 ‘빈민 아파트’로 지칭하는 아파트 소유자들도 있었습니다. 초등학생 사이에서 ‘휴거’니 ‘엘사’니 하는 표현이 등장한 것은, 전혀 특이한 일이 아닌 것입니다.

어릴 적, 임대 아파트를 가리키며 ‘자기 집이 없는 사람들이 사는 곳’이라고 (묻지도 않았는데) 기어코 알려주는 어른들이 많았습니다. 그 말을 들으면서도 ‘돈만 꼬박꼬박 내면되지 그게 이상한 건가?’ 하고 이해하지 못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자극적인 언어로 행해지는 혐오와 차별이 아니더라도, 일상에 스며든 불편한 정서가 특정 계기를 통해 발화되는 경우는 자주 경험할 수 있습니다. 특히 당연한 상식으로 생각했던 이야기가 격렬한 혐오 반응으로 돌아와 당혹감을 느끼는 경우도 많습니다.

   
▲ 지난해 말 연희동 공공주택 님비 반대 기자회견. (이하 사진: 이한솔 제공)

연희동 청년공공주택이 지역 주택 소유자들의 ‘님비’(NIMBY, ‘Not In My BackYard’의 줄임말로 지역/집단 이기주의 행동을 뜻함)로 인해 진통을 겪고 있습니다. ‘2인가구의 법률혼 기준을 요구하지 않기에, 가족제도 상 약자도 제도적으로 지원 가능한 주택’이라는 내용이, “성소수자 등 사회적 약자들의 입주가 인근 학교 교육 환경에 침해를 줄 수 있다”며 님비로 수렴되고 있습니다. 반대를 조직화하기 위해 혐오를 이용한다는 것은 제게는 상식을 넘어선 일이었습니다. 이는 연희동만이 아니었습니다.

성남시 행복주택 신축 과정에서도 시설 퇴소자를 공격하는 혐오 표현이 등장했으며, 서울시 강서구 특수학교와 은평구 여명학교 등을 향해서도 지역의 님비 정서에 의한 집단행동이 있었습니다. 이런 일이 반복될 때마다 ‘세 들어 사는 사람은 끊임없이 자기를 증명해야 하고 결코 평범하게 정착할 수 없구나’ 하는 슬픈 감정이 차올랐습니다. 돌이켜 보면, 제 상식은 사실 ‘상식’이 아니었을지도 모릅니다.

‘누구’를 위한 주거 정책인가
세 들어 사는 사람들이 시민에서 배제되고 있다는 사실은 정책에서도 드러납니다. 정부가 내놓는 부동산 정책은 10억, 20억의 주택 소유자를 어떻게 공정하게 통제할지에 집중합니다. 고가 주택가격을 잡아야만 정부 정책은 성공했다고 평가받습니다. 언론에서는 10억짜리 부동산에 대한 이야기만 나오다보니, 사람들도 그게 당연하다 생각하고 집을 소유하는 것에만 몰두합니다. 

하지만 대한민국에서 10억짜리 주택에 이해관계가 걸린 사람은 몇 퍼센트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절반의 세입자, 그리 비싸지 않은 주택 문제 해결이 정부의 더 우선적인 역할 아닐까요? 지난 20년간 주택의 자가소유 비율은 변화가 없었습니다. 절반의 세입자를 불완전한 존재로 두고 자가소유 관련 문제에만 매달리는 것이 좋은 정책일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집을 소유한 사람과 소유하고 싶은 사람으로만 나누는 오늘의 구도에서는 정책의 전향적인 변화를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주택 소유자’와 ‘소유 희망자’라는 이분법
이쪽 일을 하다보면, 언론사에서 전화가 자주 옵니다. 대부분 좋은 취재를 준비하고자 연락하지만, 때로는 기사가 주장하고자 하는 논리에 맞는 코멘트만 따내려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루는 어떤 기자가, 청년들 대부분이 집을 사고 싶다는 통계가 나오는데, ‘민달팽이’는 청년들을 위한 단체라면서 왜 집을 갖고 싶어 하는 청년을 위한 정책을 제안하지 않느냐고 물었습니다. 제가 원하는 대답을 해주지 않자 기자가 다소 격앙되어서, 민달팽이가 ‘일반적인’ 청년의 요구를 잘 모른다고 비판했습니다.

그런 반응이 놀랍지는 않습니다. 그 기자의 눈에는 세상이 집을 ‘소유한 사람’과 ‘소유하고 싶은 사람’으로만 나뉠 뿐, 결코 ‘소유한 사람’과 ‘빌려 쓰는 사람’의 구도로는 보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목돈 좀 모은 친구들이 집을 사는 게 좋은지 물어보면, 저 역시 그냥 사라고 대답합니다. 집을 소유한 사람과 소유하고 싶은 사람으로만 나누는 한국 사회에서, 빌려 쓰는 사람은 보통의 시민이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2년마다 이사할 생각을 해야 하며, 월세/전세 폭등을 불안하게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세 들어 사는 사람들을 향한 차별이나 혐오를 경험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임대주택에 거주한다는 이유만으로 학교에서 자녀가 ‘엘사’니 ‘휴거’니 놀림을 받는다면, 누가 감히 집을 사지 말라고 권하겠습니까?

   
▲ 2013년 목동 행복주택 님비 반대 기자회견 사진

프랑스, 독일 등 서구 국가도 ‘님비’는 존재한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10년, 20년 계속 세입자로 사는 이유는, 빌려 쓰는 사람도 보통의 시민으로 인정받기 때문입니다. 님비가 똑같이 존재하더라도 세입자가 평범한 시민으로 존중받는지 그렇지 않은지 여부에서 한국과 근본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세 들어 사는 사람도 보통의 시민입니다. 누구도 주택 소유자에게, 그 지역에서 누군가를 차별하고 배제해도 된다는 권리를 준 적이 없습니다. 우리는 집을 소유한 완전한 자와 아직 소유하지 못한 불완전한 자로만 세상을 구분함으로써, 주택 소유자에게 마치 그런 권리가 있는 것처럼 용인해 왔는지도 모릅니다.


집문서 유무로 차별하지 않는 사회를 위하여
집문서가 있어야만 시민인 것은 아닙니다. 20년 전만 하더라도, 공공 영역에서 사람을 평가할 때 경상도 출신이니 전라도 출신이니 지역에 대한 차별적인 발언이 자연스럽게 들렸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은 몰상식한 사람으로 취급받습니다. 

2020년대는 지난 10년과는 다르게, 세 들어 사는 사람들에 대한 차별적인 언행이 너무나 몰상식한 일이 되어 차마 꺼낼 수 없는 그런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공공임대주택이 들어선다고 하면, 마치 의례적 절차인 양 일단 혐오와 차별적 언행으로 반대부터 하는 그런 시대가 끝났으면 좋겠습니다.

독자들께도 간곡히 요청합니다. 공공주택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향해 그것이 잘못된 일임을 이야기해주십시오. 공공주택에 대한 지역사회의 지지와 응원이 공공으로 하여금 혐오와 차별을 용인하지 않게 만드는 힘이 됩니다. 제도적으로는 ‘님비 방지법’이 제정될 수 있도록, 세 들어 사는 사람들의 권리를 위해 노력하는 정치와 정책을 응원해주시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우리 스스로 세입자를 향한 부정적인 인식을 극복해야 합니다. 상식이 아닌 말을 익숙하게 여기지 말아주십시오. 다시 한 번, 힘주어 말합니다. 집문서가 있어야만 시민인 것은 아닙니다. 우리 주변에 ‘시민’이 더욱 많아지는 그런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한솔
민달팽이주택협동조합(minsnailcoop.com)과 사단법인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hanbit.center)에서 활동 중인 투잡러. 노동과 주거 영역에서 더 나은 내일을 맞이하고자, 다양한 작당과 기획을 벌이고 있다. 대학 때 복수전공으로 신학을 선택하며, 기독교의 사랑에 대해 작게나마 관심을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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