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9호 무브먼트 투게더2] 아시아 최초로 열린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대회’

   
▲ ⓒ복음과상황 이범진

지구상에 기본소득이 실현되기 원하는 연구자와 활동가들이 한국에 모여 사흘 동안 축제의 시간을 가졌다.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Basic Income Earth Network, BIEN)가 제16차 BIEN 대회를 7월 7일부터 9일까지 서울 마포구 서강대에서 열면서, 총 39개 세션을 마련한 것이다. 이 자리에 모인 200여 명의 참가자 및 발표자들은 ‘사회적, 생태적 전환과 기본소득’이라는 주제를 기점으로 기본소득의 의미를 되새기고 발전 방향을 모색하기 위해 다양한 세션을 오가며 소통했다.

대회 조직위원회의 ‘환영의 말’은 사뭇 진지하고 비장했다.

“비관주의자가 아니라 하더라도 우리 시대가 암울하다는 데 모두가 동의할 것이다. 신자유주의라는 이름의 지구적 자본주의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사회적 양극화를 낳았을 뿐만 아니라 아예 사회 자체를 해체하기까지에 이르렀다. 개인 및 집단들 사이의 반목, 도덕적 타락, 절망의 문화 등이 만연하고 있으며, 다시금 우리는 오래된 질문을 약간 수정해서 이렇게 던질 수밖에 없다. 야만인가 변화인가? 이것만이 아니다. 산업혁명 이후 지속되었고, 최근에 더욱 가속화된 자원 고갈과 기후변화는 인간의 삶 자체의 지속가능성에 의문을 던지고 있다. 그러니 이런 질문이 앞의 질문과 교차할 수밖에 없다. 파괴인가 생명인가? 이것이 이번 대회의 주제인 ‘사회적, 생태적 전환과 기본소득’의 배경이다.”

‘종교인의 눈으로 본’ 기본소득
이러한 기조 아래 구성된 세션들은 각 나라의 기본소득 적용 사례와 실현 과정을 접할 수 있도록 구성됐다. ‘여성과 기본소득’ ‘녹색과 기본소득’ ‘기본소득 청년운동, 어디서 시작할 것인가?’ ‘인권과 기본소득’ ‘종교와 기본소득’ 등을 주제로 한 강연이 진행되어 기본소득제도와 다양한 사회적 주제가 맞물렸다.

‘종교 섹션’에서는 이영재 목사(성서와설교연구원), 오동균 신부(대한성공회 대전주교좌교회), 이도흠 교수(한양대)가 논의를 이끌었다. 이영재 목사는 “레위인의 제일 임무는 공동체 안에 가난한 사람이 없도록 소득을 분배하는 것이었다”며 “하나님 창조세계의 자원으로 뭇 생명을 살아있게 하는 기본소득과 같은 제도는 레위기와 민수기가 계속해서 주장한 주제”라고 말했다. 또한 “세속국가에서 기본소득을 말하기 시작한 것은 하나의 혁명적 발상이다. 스위스에서 국민투표까지 진행된 것은 성령님이 교회 바깥에서부터 먼저 하나님 나라를 일으키면서 교회 안 성직자들을 깨우려는 게 아닌가 한다”며 기독교인으로서 기본소득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동기를 밝혔다.

오동균 신부 역시 “기본소득은 하나님 나라에 대한 현실적인 비전”이라고 보았다. 그는 ‘포도원 품꾼 비유’(마 20:1∼16)를 예로 들며 “나중에 온 노동자에게도 온전한 일당을 주는 주인의 마음과 기본소득을 실현시키려는 마음이 유사한 것 같다”고 말했다. 불교 관점에서 기본소득을 살펴본 이도흠 교수는 “불교는 타인의 빈곤을 멸해야 진정한 자유를 완성할 수 있다고 본다. 중생구원을 위해서는 기본소득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이 목사는 “가장 성경적인 노동은 타인과 생명을 살리는 노동이다. 종교개혁기를 거치고 자본주의사회가 되면서 노동관이 왜곡되었다. 내년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기본소득과 관련해 ‘성서로 돌아가자’는 운동을 펼쳐야 한다”고 참여자들을 독려했다.

노동의 의미가 바뀌어야 한다
기본소득이라는 주제가 여전히 대중적으로는 생소하게 여겨지는 만큼 ‘기본소득을 이해시키는 방법’이라는 세션도 인기리에 진행됐다. 독일 ‘나의 기본소득’ 프로젝트의 운영책임자 아미라 예히아는 클라우드 펀딩 등 다양한 경로를 통해 기본소득 기금을 마련, 현재까지 무작위로 추첨된 36명에게 1년간 기본소득 월 1천 유로(약 126만 원)를 지급했다. 쇼핑 금액의 일부가 기본소득운동에 적립되는 클라우드 카드도 있다. 가맹점은 천여 곳이 넘는다. 판매액의 5%가 적립되는 콜라도 유통된다. 약 315만 명이 이 프로젝트와 연결되어 있다. 2014년 7월부터 이 프로젝트가 시작된 것을 감안하면 놀라운 속도다.

   
'나의 기본소득' 프로젝트의 운영책임자 아미라 예히아(좌)와 제현주 롤링다이스 대표 ▲ ⓒ복음과상황 이범진


프로젝트 운영책임자 아미라 에히아 씨는 말한다.

“콜센터 직원이던 분이 기본소득을 받으면서 급여가 훨씬 적은 유치원 교사로 직업을 바꾸었다. 원래 하고 싶었던 일을 시작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후 결혼하고 아기도 낳고 잘 살고 있다. 기본소득이 사람들의 생계뿐 아니라 존재 방식을 바꾸면서 삶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

아울러 그녀는 유럽뿐 아니라 아시아에도 이런 운동이 확산되도록 돕겠다는 뜻을 전했다.

같은 세션에서 제현주 협동조합 롤링다이스 대표는 기본소득이 확산되려면 일과 노동을 새로운 방식으로 상상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쉽게 말해 ‘기본소득을 받으면 사람들이 일을 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라는 비판에 대해 ‘그렇지 않다’고 대응하는 것도 방법이겠지만 “꼭 일을 해야만 하는 것이냐”는 근원적인 물음도 던질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제 대표는 “‘사람은 일을 해야 한다’라는 명제를 의심하고, ‘일을 꼭 해야 한다’는 윤리적 강박에 시달리고 있지는 않은지 성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일이란 개념을 자본주의사회에 공헌한 대가를 받는 것으로 한정할 것이 아니라 매우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가사노동뿐 아니라 취미와도 같은) 일로도 확장해 생각할 필요가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것이 사람들로 하여금 기본소득을 권리로 여기고 욕망케 하는 출발점이 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시혜의 대상이 되는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에, 기본소득을 ‘복지의 확장’으로 개념화할 것이 아니라 나 개인을 위하여 적극적으로 받아내야 할 권리로서 이해시킬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인공지능과 보편기본소득의 권리’를 주제로 강연한 강남훈 교수(한신대 경제학)도 직업이 사라져 가는 시대이기에 노동의 의미가 변화될 수밖에 없음을 지적했다.

“인공지능으로 인해서 직업이 사라지므로 사람들의 생존을 위해서는 기본소득이 필요하다. 직업이 사라져 가는 시대에서 노동의 의미를 새롭게 생각해야 한다. 인공지능이 만든 물건들이 잘 팔려서 경제가 순조롭게 재생산되기 위해서도 기본소득이 필요하다. 그러나 더욱 강력하게, 우리 모두가 인공지능의 생산에 참여하고 있으므로, 우리 모두는 인공지능에 대한 재산권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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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회권, 기본소득 논의의 성경적 토대 (2015년 5월호)
     장길섭, 후쿠시마ㆍ세월호ㆍ쌀 수입 그리고 농민기본소득 (2015년 4월호)
     남기업, 지대와 기본소득이 만나면… (2014년 3월호)
     강남훈, “기본소득, 사회구성원 전체를 위한 근본 대안”(인터뷰) (2014년 3월호)
     강원돈, 기본소득은 ‘일용할 양식’이다 (2014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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