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6호 무브먼트 투게더]

방사능 쓰레기를 쏟아내는 ‘문명사회’

조금 길게 보면 100년, 짧게 보면 지난 50년 동안 우리 사회는 이른바 근대화(=산업화, 공업화, 도시화, 서구화)를 일관되게 추구해왔다. 달리 말하면 우리 사회가 지난 50~100년 동안 오로지 ‘비농업화’ 또는 ‘반농업화’의 길을 숨 가쁘게 달려왔다는 뜻이다. 비농업화/반농업화, 경제성장/개발의 결과는 무엇일까? 그것은 지난 2011년 3월 11일에 일어난 후쿠시마 핵발전소 폭발사태가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후쿠시마 사태는 우리 문명세계의 인간들이 통제 불가능한 맹독물질(방사능)과 영원히 일상을 함께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었다.

후쿠시마의 핵발전소는 왜 폭발하였을까? 미증유의 쓰나미 때문에 사고가 일어났다지만 사고가 난 핵발전소 4기는 모두 설계수명을 연장하여 가동하던 낡은 발전소들이었다. 수명이 다한 낡은 원자로를 연장 운행한 까닭은 무엇일까? 돈 때문이다. 돈 이외에는 아무 것에도 주의하지 않는 기업의 이윤추구 때문이다. 기업의 이익을 위해 일본 정부는 최소한의 안전장치인 각종 제도적 법적 규제 장치를 완화하거나 폐지하여 낡은 핵발전소를 가동할 수 있도록 하였다.

후쿠시마 사태로 인해 발전소 주변 20~30킬로미터 이내에 거주하던 후쿠시마 주민들 10만 명 이상이 난민이 되었고, 농장과 어장은 방사능으로 오염되어 농사를 지을 수도, 고기를 잡을 수도, 그것을 먹을 수도 없게 되었다. 일본 국토의 70퍼센트가 방사능에 오염되었다고도 한다. 일본이라는 나라 자체가 이미 침몰하는 세월호 신세가 되고 말았다.

동경전력과 일본 정부는 사고를 수습하는 시늉만 할 뿐, 후쿠시마 사태는 4년이 지난 지금까지 전혀 수습되지 못하고 있다. 아니, 수습이 전혀 불가능하다. 일본이라는 나라는 기업의 탐욕스러운 이윤추구 때문에 지속 불가능한 나라로 전락한 것이다. 이것이 근대화, 경제성장, 개발의 최종적 결론이다. 전기를 사용하기 위해 날마다 우리의 삶터에 방사능 쓰레기를 쏟아내는 사회를 문명사회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 "이제 농민 인구는 고작 5퍼센트밖에 되지 않는다. 사멸 직전에 있는 농업, 농촌, 농민을 살려내기 위하여 농민기본소득을 먼저 실험해 볼 필요가 있다."(사진: 복음과상황 자료사진)

반농업화의 결과, 후쿠시마 사태와 세월호

그렇다면 우리 사회는 어떠한가? 후쿠시마 사태를 가까이에서 보면서도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우리 정부와 기업들은 (23기도 모자라서) 핵발전소를 더 지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다. 심지어 설계수명이 다한 월성원전을 온갖 편법을 동원하여 재가동하려 하고, 이미 수명이 다된 것을 10년이나 연장하여 7년째 가동해 온 고리원전 사용 기한을 재연장하려는 무모한 시도를 하고 있다. 제정신 가진 사람이라면 감히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고리원전과 월성원전 주변 20~30킬로미터 안에 거주하는 주민이 350만 명인 것을 생각하면 핵발전소에서 사고가 날 경우 후쿠시마 사태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대참극이 벌어지리라는 것은 아무리 무식한 사람도 예측할 수 있다.

사실 핵발전소 사고는 경제성장-개발-반농업화의 최종적 결과의 한 사례에 불과한 것이다. 현 정부는 기업의 무제한적인 이윤추구를 위하여 각종 규제완화, 규제철폐를 무분별하게 자행하고 있다. 문제는 기업이 막대한 이윤을 얻어 자본을 축적하고 성장하더라도 비정규직 노동자의 수는 갈수록 늘어만 가고, 청년실업은 증가하고, 일자리는 줄어들고, 환경파괴는 가속화된다는 사실이다. 2013년 한 해 동안만 명예퇴직과 해고를 당한 노동자가 87만 명에 이르고 65살 이상 노인 자살률은 10만 명 당 80명으로 세계 1위이다. 한국 청소년 사망 원인 1위도 자살이다. 경제성장-개발이 더 이루어져도 일자리가 늘어나고, 임금이 오르고, 삶의 질이 향상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이제 분명히 알게 되었다.

2014년 4월 16일에 일어난 세월호 침몰 사건도 후쿠시마 사태와 본질에서 조금도 다르지 않다. 국가와 공모한 기업의 무제한적인 이윤추구행위의 결과로 일어난 세월호 사태는 온갖 편법을 동원하여 수명을 연장하고 중·개축하여 무리하게 운행하다 사고가 났고, 그 수습도 제대로 되지 않는 무책임한 행태가 계속된다는 점에서 후쿠시마 사태와 동일하다.

쌀 수입 개방, 5% 남은 농민마저 소멸 위기

쌀 수입 전면 개방사태는 또 어떤가? UR, GATT, WTO, FTA 등 자유무역협정과 자유무역협정을 위한 기구들은 본래 기업의 이익을 위해 설계되었다. 그중에서도 세계무역기구(WTO)는 1995년 1월 1일 발족 이후 유례없이 강력한 힘을 가진 새로운 지구 규모의 상업기관이자 지구 차원의 독재기구로서, 이 기구의 권력자들은 민주적으로 선출된 바 없는 초국적 기업의 중역들이거나 통상관료들이다. 또한 우리의 음식, 건강, 안전, 일상생활, 환경, 일, 우리의 미래에 대하여 기업이 통제권을 장악하고 기업의 이익을 극대화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기구로, 우리의 건강과 안전, 인권과 민주주의를 일관되게 침략하여 우리를 노예로 만들어왔다. 

WTO는 실상 자유무역이 아니라 강요된 무역을 제도화한 것이다. WTO 출범 이후 20년이 지난 지금 우리 사회는 그 어느 때보다도 심각한 빈곤층의 증가, 실업률의 증가, 실질임금의 하락, 환경파괴, 사회적 붕괴, 그리고 무엇보다도 농업, 농촌, 농민의 몰락을 경험하고 있다. 

이제 쌀 수입 전면개방 사태로 인해 5퍼센트밖에 남지 않은 농민들이 역사 속에서 소멸될 위기에 놓였다. 정부는 513퍼센트라는 높은 관세를 부과하여 쌀 수입을 막겠다고 하지만, 원래 자유무역은 무역장벽을 없애자는 것이므로 관세율 자체가 협상의 대상이 되어 고율관세를 지켜낼 수 없을 것이다.
값싼 수입쌀이 밀려들어오면 수입원조 밀가루 때문에 1950년대에 우리 땅에서 밀농사가 사라진 것처럼, 결국 벼농사와 벼농사를 짓는 농민들이 이 땅에서 사라져 버릴 것이다. 거대 기업의 이익을 위해 이 땅의 농민들이 죽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농민들만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벼농사는 우리나라 기후풍토에 가장 알맞은 농사이다. 그 뿐 아니라 단위 면적당 곡물생산량이 가장 많아 우리나라 식량자급에 가장 큰 기여를 해왔다. 게다가 벼농사는 단지 식량을 생산하는 기능만 해온 것이 아니다. 대기 중 탄소를 흡수하고 산소를 배출하는 대기정화기능, 지하수 함양, 홍수 조절, 토양유실 방지, 생물다양성 유지 등 생태적으로 대단히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돈으로 가치를 환산할 수 없는 것이다. 

벼농사의 소멸은 우리의 생존에 필수적 공공재인 안전한 식량의 안정적 생산을 불가능하게 할 뿐 아니라 생존 토대인 생태계를 돌이킬 수 없이 교란할 것이다. 이것은 한반도가 방사능에 오염되는 것에 필적할 만한 대재앙이 될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긴급히 필요한 것은, 농업 농촌 농민 문제가 단지 농민의 문제가 아니라 한반도 주민 전체의 생존이 걸린 우리 모두의 문제임을 깨닫는 일이다.

산업화-경제성장-개발-세계화-반농업화의 결과 지속 불가능한 사회에 도달했다면 이제 우리는 지속가능한 소농중심의 순환경제사회로 전환해야만 한다. 소농중심의 순환사회로 가기 위해서는 대외 무역 의존 경제에서 농업, 농촌, 농민을 살리고 지방을 활성화하고 내수경제를 살리는 경제로 가야 한다. 농업, 농촌, 농민에게 투자하여 지방을 활성화하면 다양한 일자리가 만들어지고 식량 자급도를 끌어올릴 수 있다. 농촌이 살만하다면 도시의 과밀한 인구가 농촌으로 이주해올 것이다. 이런 점에서 많은 도시문제는 실은 농촌문제인 것이다. 

‘농민기본소득’ 실험이 필요하다

이 모든 문제를 풀 수 있는 현실적인 방책은 전 국민 기본소득이다. 과거와 같은 경제성장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노동자로 산다는 것은 더 이상 가능하지 않다. 노동 과정과 그 결과물이 우리의 생존 터전을 날마다 파괴 한다면, 우리는 기업과 수출, 임금을 위해 일하기를 거부해야만 한다. 그리하여 우리는 우리 자신을 위해 일해야 한다. 우리 자신의 자유로운 삶을 위해 일하려면 고용과 임금을 분리하여, 대한민국 국민이면 누구나 당연한 권리로서,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는 당연한 권리로서, 기초적 생존에 필요한 기본소득을 배당받을 수 있어야 한다. 이렇게 되면 많은 사람들이 두려움 없이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전 국민 기본소득 제도가 시급히 시행되도록 노력해야 하지만, 이에 앞서 사멸 직전에 있는 농업, 농촌, 농민을 살려내기 위하여 한시적으로 5~10년 동안 농민기본소득, 또는 농촌주민기본소득을 먼저 실험해볼 필요가 있다. 이제 농민 인구는 고작 5퍼센트밖에 되지 않는다. 적은 예산으로도 시작할 수 있기 때문에 군 단위 지방자치단체에서 의지만 있다면 실험해볼 수 있다. 이것은 돈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 의지의 문제이다. 

“사람이라면 임금노예로 일하는 것을 거부해야 한다.” 
“사람들이 생계를 꾸려가야 한다는 공포에서 벗어나면 세상엔 풍요가 넘쳐날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기쁘게 일할 것이다.” 
- D. H. 로렌스  

 

장길섭
<녹색평론> 편집장을 지냈으며, 현재 풀무학교 전공부 선생이자 농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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