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3호 3인 3책] 기독교 역사 속 술 / 성기문 지음 / 시커뮤니케이션 펴냄 / 2017년

모든 책은 각자의 운명을 갖는다. 때론 전혀 기대하지 않은 책이 이른바 ‘대박’을 치고, 높은 기대를 받은 책이 (많은 경우) 저조한 판매율을 보이기도 한다. 어떤 책은 기이할 정도로 많은 사람의 손에 쥐어지고는 언제 그랬냐는 듯 기억 속에서 사라지고, 어떤 책은 놀랄 만큼 사람들 시선에 닿지 않다가 우연한 사건을 계기로 스테디셀러가 된다. 윌리엄 블레이크의 시는 200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다지 않던가. 신비롭다.

최근 나온 《기독교 역사 속 술》은 그리 유명한 저자도, 그렇다고 널리 알려진 출판사에서 나온 책도 아니다. 하지만 출간하고 얼마 되지 않아 〈뉴스앤조이〉 〈크리스천투데이〉 등 다양한 매체가 앞다퉈 이 책을 다루고, 또 얼마 되지 않아 페이스북 타임라인에 호평이 줄이었다. 누군가는 “당연하고 상식적이지만 놀랍고 조금 충격적”이라고 평했고, 한 인터넷 서점 독자서평란엔 “올 한 해 기독교-역사-인문학 서적 중 단연 최고”라는 평이 올랐으며, 또 다른 서평자는 ‘기독교인을 위한 술 교과서’라 말했다. 급기야 얼마 전부터는 이 책에 실린 내용을 팩트 체크하겠다며 심층 분석을 한 글이 한 매체에 연재되기 시작했다. ‘출간 → 언론사 서평 → 판매 증가 및 독자 서평 증가 → 판매 안정 및 심층 서평’이라는 황금 사이클이 완성된 것이다. 90%의 책이 아무도 모르게 나왔다 사라지고, 선택받은 10% 중에서도 이 사이클을 완성한 기독교 책은 1년에 다섯 권이 채 못 된다. “조금 충격적”인데다가 “기독교-역사-인문학 서적 중 최고”이며 “교과서”라는 데, 나도 책을 사서, 완독했다!

완독 후 김밥을 씹어 먹으며 나는 무엇이 “충격적”이었는지, 내가 알고 있는 상식이 무엇인지를 곱씹어보았다. 첫 문장이 비문이라는 점, 그리고 이후에도 무수한 비문이 계속 나온다는 사실을 언론과 개인을 막론하고 어떤 소개 글이나 서평에서도 언급하지 않았다는 점이 “충격적”이다. 또한 독서 후 새삼 떠오른 “상식”은 한국 기독교 인구 중 절반(천주교와 동방정교회), 그리고 나머지(개신교) 중 최소 절반은 술과 술 마시는 행위를 애초에 문제 삼지 않으며 더 나아가 성찬을 할 때 아무렇지 않게 술을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내 생각에 우선적으로 팩트 체크를 할 부분은 먼 옛날 이스라엘 백성이 술을 마셨느냐 안 마셨느냐가 아니라 (책을 읽은 이들이 종종 이야기하듯) 이 책이 정녕 기독교와 술을, 그리고 술 문제를 다룬 최초의 책이냐는 것이다. 사실 이미 2014년에 느헤미야 팟캐스트를 책으로 엮은 《정치와 술, 왜 못해?》(홍성사, 2014)에서 그 주제를 다루었다. 게다가 책의 핵심 이야기를 이미 저 책에서 했다.

이쯤 되니, 이 책은 저자 말대로 기독교에서 ‘술’이라는 것이 정녕 ‘판도라의 상자’이긴 한지부터 헷갈린다. 적어도 어느 순간, 어떤 관심에 의해 이 책이 그 자체로 ‘판도라의 상자’가 되었다는 것은 분명하지만 말이다.

다시 한번, 책이 독자에게 전달되고 읽히는 과정은 신비롭다. 그리고 ‘어떤 책’의 경우 그 과정은 신비하다 못해 난해하다. 모든 책은 각자의 운명을 갖는다는 사실을 믿는 나로서는 저 ‘판도라의 상자’의 궁극적 운명이 궁금하다. 남은 김밥을 마저 씹어 먹으며 베토벤의 〈운명〉을 들을까 쿨의 〈운명〉을 들을까 고민하는데 무슨 상관이냐는 듯 어머니께서 말씀하신다. “야, 이놈아. 소화불량 걸리지 않으려면 꼭꼭 씹어먹어라. 뭐든 간에.”

박용희
장신대 구내서점, IVP(한국기독학생회 출판부) ‘산책’ 북마스터로 일했다. 책, 여행, 사람을 좋아한다. 새해 들어 고양시 덕은동에 헌책방 ‘용서점’을 내고 책과 더불어 하루를 열고 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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