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몸을 살다》 / 아서 프랭크 지음 / 메이 옮김 / 봄날의책 펴냄 / 2017

“이 정도면 통증이 심했을 텐데 그동안 안 아팠어요?” 의사는 신기한 듯 내게 묻는다. “글쎄 참을 만은 했어요. 어느 정도여야 아프다고 말할 수 있나요?” 나는 정말 궁금해 물끄러미 묻는다. 참고 참다가 병원을 가면 경험하는 일상이다. 아픈 상태와 괜찮은 상태의 경계는 어떻게 확인할 수 있을까? 사르르, 콕콕콕 쑤시듯, 빨래 쥐어짜듯, 뭉근하게….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언어 중 내 통증을 정확하게 전달할 언어라는 게 존재하기는 할까? ‘제 몸은 스스로 챙길 줄 알아야 하는’ 어른이 된 지 꽤 되었지만 나는 내 몸에 관해 해맑게 무지했다. 세상의 모든 언어를 궁금해 했지만 정작 몸이 전하는 언어(통증)에는 지독히 무심했다. 이런 현상은 병이나 죽음을 삶의 적이자 실패로 간주하는 세계관과 무관하지 않다. 유한한 인간인 나는 필연적으로 그 병이나 죽음에 맞서 싸우는 전사가 되어 작은 승리를 거두다가 결국 패배할 것이 뻔했다. 그러니 최대한 그 전투 상황을 유예시키며 사는 것이 최선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택한 방편이 ‘의도적 무심'이었다.

내 몸에 무심하다는 건 나에게만 무심하다는 뜻이 아니다. 내 주변의 ‘아픈 사람’에게도 그러하고, ‘생산 기계’의 효율을 앞세워 아픈 사람을 추방하는 사회의 동조자로 살아간다는 뜻이기도 하다. 내 몸에 일어나는 일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이란 결국, 질환이라는 단어로 다 설명 못하는 무수한 ‘다른 방식의 삶’을 만나고 살아내는 과정이다. 《아픈 몸을 살다》의 저자가 준 통찰이다.

10년간 달리기를 해온 39세 건강한 남성이 어느 날 길에서 쓰러진다. 심장이 잠시 멈춘 것이다. 공포와 절망 속에서 묻는다.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지?” 더 큰 공포와 절망은 15개월 뒤 찾아온다. 고환암에 걸렸다. 그제야 그는 질병으로 분류되는 삶을 직면하고, 통증으로 말하는 ‘몸의 언어’에 주목하기 시작한다. 책은 저자가 살아낸 ‘아픈 몸’에 관한 기록이다. 암으로 예기치 않은 삶을 사는 그는 “질병이 없는 인생은 불완전할 뿐 아니라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통증이란) 몸 바깥에 있는 무언가에 맞서 전쟁을 벌이는 것이 아니라 그저 몸이 몸 자신에게로 돌아오는” 과정임을 경험한다. 그 과정을 통해 잃어버린 순간들을 ‘애도’하며 “고통과 상실은 삶과 대립하는 것”이 아님을 깨닫는다.

책을 읽으며 내 ‘의도적 무심’이 사실 나를 질병으로부터 보호하는 게 아니라 질병을 통해 “살아 있다는 것의 가치”와 “무엇이 가치 있는지, 균형 잡힌 삶이 어떤 것인지” 배울 기회를 박탈한 건 아닐까 생각했다. “고통과 상실은 삶과 대립하는 것”이 아님에도 나는 아픈 몸을 부정함으로 ‘생로병사’라는 인간의 질서에 속한 나를 존중하지 못했다. 그렇게 자신으로부터 존중받지 못한 내가 누구의 아픈 몸을 존중할 수 있을까. 그러므로 아픈 몸이란 개인의 일이기도 하지만, 사회적 과정이어야 한다. 아프다는 건 “다른 사람들과 내가 연결되어 있음을 아는 것”이다.

책을 덮으며 저자의 말 한 부분을 떼어 노트에 적어놓았다. 머지않은 미래에 아픈 몸을 살게 될 나에게 보여주려고. 또 다른 아픈 몸을 이해하고 사랑하기 위해.

“많은 것을 잃겠지만 그만큼 기회가 올 겁니다. 관계들은 더 가까워지고, 삶은 더 가슴 저미도록 깊어지고, 가치는 더 명료해질 거예요. 당신에게는 이제 자신의 일부가 아니게 된 것들을 애도할 자격이 있지만, 슬퍼만 하다가 당신이 앞으로 무엇이 될 수 있는지 느끼는 감각이 흐려져선 안 돼요. 당신은 위험한 기회에 올라탄 겁니다. 운명을 저주하지 말길, 다만 당신 앞에서 열리는 가능성을 보길 바랍니다.” (17쪽) 

 


오수경
대학에서 문예창작을 전공했지만 글쓰기 울렁증이 있고, 책을 많이 사지만 읽지는 않고, 사람을 많이 만나지만 부끄럼이 많고, 내성적이지만 수다스럽고, 나이 먹다 체한 30대, 비혼, 여성이다. 사훈이 ‘노는게 젤 좋아’인 청어람에서 열심히 일하는 척하며 놀고 있다. 지은 책으로 《일 못하는 사람 유니온》(공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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