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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빙 빈센트〉와 함께 보는 ‘빈센트 반 고흐’ 영화들
[326호 시네마 플러스]
[326호] 2018년 01월 04일 (목) 11:42:50 최은 영화평론가, 필름포스 공동대표 @
   
 

반 고흐를 다룬 영화를 다섯 편 연달아 보는 호사를 누렸습니다. 1950년대부터 2017년, 미국, 프랑스, 영국, 네덜란드, 폴란드 등 국적도 서로 다르고 다큐멘터리에서 극영화, 애니메이션까지 장르도 다양한 영화들입니다. 〈러빙 빈센트〉(2017) 덕분입니다. 5년 동안 100여 명의 화가들을 동원해서 총 6만여 점의 유화로 제작해서 화제가 된 작품이지요. 33만 이상의 관객을 동원하며 개봉 한 달이 지났으나 아직 극장에 걸려 있으니 신통하고 기특하기도 합니다. 고흐의 힘일까요, 영화의 힘일까요?  

남은 자들의 숙제가 된 예술가의 죽음,
〈러빙 빈센트〉와 〈반 고흐: 위대한 유산〉(2013)


입소문과 달리 〈러빙 빈센트〉를 보는 일이 누군가에게 힘이 드는 일이었다면 둘 중 하나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영상의 물리적 속성이 주는 눈의 피로감 때문이거나, 고흐의 죽음에 천착하는 데서 오는 심리적 피로감 때문이거나. 다만 몇 가지 영리한 장치 덕에 시각의 피로감은 회복과 보상이 가능한 영화의 자산이 되었습니다. 영화 시작과 함께 화면 중앙에 떠오른 별 하나를 응시하고 있자면 그 별이 서서히 “별이 빛나는 밤” 전체로 이어지는데요. “밤의 카페 테라스”를 통과하여 “밤의 카페” 내부로 들어가는 카메라의 움직임이 관객들을 1891년 아를로 안내합니다. 일렁이는 별의 움직임에 호응하면서 최면에 빠지듯 고흐의 세계로 빨려들어가게 되는 거지요.

   
 

초반에는 이 작업이 잠시 현기증을 유발하기도 합니다. 붓 터치가 선명한 유화의 불균질한 프레임에 연속반응을 하면서 눈이 피로해지기 때문일 겁니다. 영화가 유화 프레임만을 고집하지 않고 회상 장면에 실사 촬영 베이스의 흑백을 사용한 것은 따라서 탁월한 선택이었어요. 피로감을 상쇄할 뿐 아니라 고흐의 삶을 차분히 되짚어볼 수 있는 여백이 되어주기도 하니까요. 게다가 일단 영상기법에 적응하고 나면 돌아오는 혜택이 큽니다. 점차 고흐에 동화되어가는 주인공의 눈을 통해 우리는 고흐의 명작들을 고흐 자신의 시선으로 보게 되는 기이한 경험을 하게 됩니다. ‘아, 고흐에게 이 풍경이 이렇게 보였구나…’ 같은 느낌이라고나 할까요.  

〈러빙 빈센트〉가 욕심냈던 다른 하나는 고흐 죽음의 비밀을 파헤치는 것입니다. 영화는 고흐 사후 1년, 우체부 롤랭의 아들 아르망이 고흐의 마지막 편지를 전달하기 위해 떠나는 여행을 따라갑니다. 남들처럼 고흐를 미쳐서 자살한 예술가쯤으로 알고 있었던 아르망은 파리를 거쳐 고흐가 생을 마감한 오베르를 방문하는 동안 그의 죽음에 의문과 책임을 느낍니다. 그리고 고흐의 죽음이 타살이라고 믿게 되지요. 〈러빙 빈센트〉가 공을 들인 이 논증이 완전히 새롭고 독창적인 것은 아닙니다. 

고흐의 조국 네덜란드에서 2013년 제작된 〈반 고흐: 위대한 유산〉은 이와 유사한 관점에서 그의 죽음을 다루고 있습니다. 테오의 아들이자 빈센트 반 고흐의 조카인 빈센트 빌렘 반 고흐는 큰아버지의 이름과 함께 그의 전작을 유산으로 받았지요. 하지만 고흐 사망 6개월 만에 세상을 등진 부친 테오와 가족들에게 평생 경제적 부담을 안겨주었던 고흐를 용서하지 못했던 조카 빈센트는 고흐의 그림들을 한꺼번에 처분할 곳을 찾습니다. 흥미롭게도 그는 그 돈을 고속철도에 투자하려 합니다. 자신의 과거를 붙잡는 ‘유산’을 벗어던지고 ‘미래’를 향해 가겠다는 거지요. 아이러니컬하게도 그가 거대한 유산과 짐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은 결국 고흐의 과거를 되짚는 여행을 통해 가능했겠지요. 〈러빙 빈센트〉의 아르망이 그랬듯이 말입니다.

고흐의 죽음을 미스테리로 다루면서 내리는 결론이 “사실은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라니 다소 허망하기는 합니다만, 두 영화는 모두 사인 자체보다 삶과 죽음을 받아들이는 고흐의 자세에 집중해보자고 권합니다. 〈러빙 빈센트〉의 마지막, 아르망이 전달하려던 그 편지에서 고흐는 테오에게 이렇게 썼습니다. “화가의 삶에서 죽음은 별거 아닌지도 몰라… 하지만 별을 보면 항상 꿈을 꾸게 돼. 혹시 죽음이 우리를 별로 데려가는 것은 아닐까.” 그러고 보니 고흐의 죽음으로 이끄는 여정을 영화가 일렁이는 별의 이미지로부터 출발했던 것은 생각보다 치밀한 작업이었군요.  

   
   
▲ <열정의 랩소디>(위)와 <반 고흐: 페인티드 위드 워즈>의 한 장면

 ‘살아 있는’ 고흐를 만나려면, 〈열정의 랩소디〉(1956)와 
〈반 고흐: 페인티드 위드 워즈〉(2010)

누군가의 시선을 통과한 재현이나 모사가 아니라, 고흐의 진품을 극영화에서 감상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일단 봐야 하지 않을까요? 지금 같으면 불가능한 일이겠지만 1956년에 빈센트 미넬 리가 연출한 〈열정의 랩소디〉는 고흐의 진품 회화를 카메라 조명 앞에 노출하는 모험을 감행했습니다. 고흐 역의 더글라스 커크와 고갱 역으로 강한 인상을 남긴 안소니 퀸의 열연으로도 유명하지요. 

이 영화는 벨기에 탄광에서 전도사 생활을 하는 고흐로부터 화가가 되기로 결심하게 된 배경과 그의 여인들, 아를 시기 고갱과의 동거와 광기, 죽음을 연대순으로 다루고 있는데요. 영화의 원제는 Lust for Life, 삶의 열정입니다. 종교적인 열정과 사랑의 열정, 예술가로서의 열정을 따라 그의 삶을 재구성하면서 〈열정의 랩소디〉는 고흐가 늘 ‘실패’했던 지점에 멈춰섭니다. 서툴고 세련되지 못한 열정이 그의 성공과 적응을 방해했다고 말이지요. 하지만 영화는 일관되게, 그럼에도 그가 늘 신앙과 믿음을 따라 ‘움직이는’ 사람이었다고 증언합니다. 벨기에에서 에텐으로, 뉘넨과 파리에서 아를로, 마침내 오베르로 늘 이동했던 이 열정의 사나이에 대해, 영화의 원작인 어빙 스톤의 《빈센트, 빈센트, 빈센트 반 고흐》(청미래) 역자인 최승자 시인은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반 고흐, 그는 천재가 아니라 오히려 둔재였으며, 그의 생애는 우뚝 솟은 고상한 정신의 최고 극점이 아니라 가장 낮고 더러운 땅에 입맞춤하며 흐르는 물로서 우리에게 남을 것이다.” ‘가장 낮고 더러운 땅에 입맞춤하며 흐르는 물’이랍니다! 한 사람의 인생을 이보다 더 멋지게 정의할 수 있을까요.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고흐를 재연한 〈반 고흐: 페인티드 위드 워즈〉는 고흐가 말하지 않은 것은 말하지 않고, 누군가에 의해 실제로 발언되지 않은 사실은 상상하거나 재구성하지 않겠다는 의지로 똘똘 뭉친 영화입니다. 고흐의 신앙과 작품 활동에 영향을 미친 작가들과 예술가들에 대한 정보들이 담백하면서도 흥미롭구요. BBC에서 제작한 다큐멘터리입니다만 어떤 극영화보다 고흐의 정서와 내면이 충실히 전달된다는 점도 이 영화의 큰 성취입니다. 

반 고흐와 관련해서 또 다른 유명한 작품이기도 하고 〈러빙 빈센트〉처럼 오베르에서의 고흐 말년을 집중적으로 다룬 영화로 모리스 피알라의 〈빈센트 Vincent & Theo〉(1991)를 여기서 나란히 소개하지 않은 점은 양해해주시기를 청합니다. 원제가 말해주듯이 빈센트와 테오의 삶을 병렬시킨 구성이 인상적입니다만, 프랑스 영화의 한없는 늘어짐과 (추정컨대 생략과 자체 검열에 의한) 갑작스러운 단절에 익숙하지 않은 관객에게는 불만스러울 수 있다는 점 정도만 언급하려고 합니다.  

새해 새날, 빈센트 반 고흐와 함께 떠나는 저와 여러분의 여정이 낮고 더러운 땅을 입맞춤하기에 주저함이 없기를, 그렇게 흐르는 많은 물 같기를 소원합니다. 

 

최은
중앙대학교 첨단영상대학원에서 영화이론을 공부했고(영화예술학 박사), 중앙대와 청어람아카데미 등에서 강의했다. 영화 연구자로 대중영화가 동시대 관객과 소통하는 방식에 관한 책을 집필하면서, 부르심에 따라 비정규직 말쟁이 글쟁이의 삶을 충실히 살고 있다. 저서로는 《영화와 사회》(공저), 《알고 누리는 영상문화》(공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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