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6호 3인 3책] 제자가 된다는 것

                     

내 몸이 달라졌다. 양심도 없이 체중이 더 늘었고, 생애 처음 느껴보는 고통스러운 인후염을 앓았고, 몸속엔 치명적이지 않지만 무시해서도 안 되는 덩어리들이 나도 몰래 여기 저기 입주하여 세력을 키우고 있었다. 한두 달 전부터 조금씩 불편했던 위는 브래지어를 하기가 힘들 정도로 상태가 나빠졌으며 심지어 (우리 동네 치킨 ‘소믈리에’인) 내 치킨 의욕마저도 떨어뜨렸다. 버티고 미루다 받은 건강검진에서는 큰 병은 없으나 면역력이 많이 떨어졌으며 평소 생활 습관이 문제라는 결과가 나왔다. (안 그런 사람 어딨어욧!) 건강만큼은 과신하고 신나게 굴리던 내 장비, 몸이 과부하에 걸린 것이다. 

사실 예~전부터 친구들은 내 잠과 식습관이 최악이라고 지적해왔다. 급사해도 이상하지 않다고. 늘 노는 시간이 부족해 자는 시간을 야금야금 빼먹으며 살아왔다. 하루 평균 서너 시간 자고, 아무거나 주워 먹고 (주로 과자, 초콜릿, 빵으로 끼니를 때우고 단백질은 한밤의 치킨으로 충전하며) 살았으니 친구들 말이 맞…, 틀리진 않다. 꾸준히 하던 운동도 2016년 끔찍했던 무더위에 질려 슬슬 미루기 시작해 야식 먹은 다음 날만 찔끔거리길 1년이 넘어가니, 이제 더 이상 삐댈 구석도 없겠다. 믿고 설치던 건강을 잃어가니 비로소 ‘건강한 삶’을 생각할 상황에 떠밀렸다. 

‘건강한 삶’을 상상해 보았다. 먼저 기름, 설탕, 밀가루를 배제한 녹색 황색의 맹맹한 어떤 식물들이 주식으로 나온다. 매일 약간 힘들고 적당히 땀 흘리는 활동을 한다, 규칙적이고 충분한 수면시간을 확보한다. 이 모든 과정을 반복한다. 아, 상상만으로도 힘들다. 무엇보다 혼자 하려니 자신 없다. 

▲ 로완 윌리엄스 지음 / 김기철 옮김 / 복있는사람 펴냄 / 2017년

로완 윌리엄스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피폐한 상태로 말하자면 몸과 데칼코마니를 이루는 내 신앙 상태의 ‘건강한 신앙생활’을 상상하게 만든다. 로완은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간헐적으로, 생각날 때만 스승을 찾는 것이 아니라 스승과 늘 함께하는 ‘삶’을 사는 상태라고 했다. (어떻게 ‘늘’ 지키나요!) 그런데 이어서 로완은 제자도의 핵심은 믿음과 소망과 사랑인데, 이는 혼자 지키거나 이뤄야 하는 미션이 아니란다. 내 단독 의지와 확신에 달린 일이 아니라, 신뢰할 수 있고 인내해주고 열린 마음으로 우리를 품어주는 분을 만나 배워가고 자라가는 과정이며, 그분은 이 모든 과정에 나와 함께하고 서로 함께 있어 주는 법을 알려 줄 거라고 말한다. 게다가 그분은 인간이 엄청 약하고 한 번에 변하지도 않으며 혼자서는 제자로 살기 어렵기 때문에 늘 ‘돕는’ 존재가 곁에 있어야 한다는 걸 잘 알고 계신단다.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안심이다. 건강한 몸이건 신앙이건, 지금까지와 극단적으로 달라져야 한다면 부담이 크다. 시작도 어려운데다가, 혼자는 더더욱 힘들다. 그런데 주님이 처음부터 제대로 할 생각 말고 일단 같이나 있자고, 충분히 기다려주고 알려주고 받아주겠다 하시니 시작은 해보고 싶다. 게다가 ‘우리’가 함께하도록 하신다니 외롭지 않겠다. 내 몸에도 제자 되기를 적용해봐야겠다. 당장 지키기도 어려운 극단적 실천은 집어치우고 일단 운동부터 조금씩 다시 시작하고, 잠도 한 시간 정도는 일찍 자봐야겠다. 주변에 나를 감시하도록 도움도 청하고. (기독교는 적용의 종교 아니던가요?)

새해의 새로운 시작은 내겐 여전히 유효하다. 과거에도 앞으로도 별로일지 모르지만 그런 우리를 누구보다 잘 알고 함께하는 존재와 ‘시작’하는 새해는 몸도 신앙도 조금은 나아지리란 기대가 생긴다. 왜지? 이 책 때문인가?! 


심에스더
성을 사랑하고 성 이야기를 즐겨하는 프리랜서 성과 성평등 강사이자 의외로 책 팟캐스트 〈복팟〉 진행자. SNS 중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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