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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 그가 나의 구원이었음을
[327호 커버스토리]
[327호] 2018년 02월 01일 (목) 11:10:01 이소은 월간 〈유레카〉 기자 goscon@goscon.co.kr

세월호 1인 피켓 시위는 분명 내 삶을 바꾼 도전이었다.(본지 2015년 8월호 ‘메멘토 0416’ 참고) 시위를 멈춘 것은 2016년 여름 즈음이었다. 당시 나는 헤어진 남자친구로부터 스토킹을 당했다. 매주 내가 사는 동네로 교회를 오는 그는 내가 피켓 시위를 하는 장소를 지났다. 그는 내가 피켓 시위 하는 것이 역겹다며, 자기 눈에 띄지 말라고 했다. 시위 도중 그를 마주쳐 몇 번 도망치기도 하다가 점차 발길을 끊었다. 못다 한 피켓 시위는 나에게 마음의 빚으로 남았고, 그래서 1인 시위를 주제로 글을 쓰는 것이 사실 민망하다.

그러나 ‘한 사람의 힘’을 주제로 한다면 꼭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한 사람이 세상을 바꿀 순 없어도, 세상을 뒤흔드는 것 정도는 가능하다는 이야기. 작년 겨울, 교회에서 겪은 일이다.

   
▲ 한 사람의 힘은 미약하나, 그리스도의 사랑에 힘입어 이웃이 되기로 마음 먹었을 때 비로소 진짜 공동체를 경험할 수 있었다.

한 사람 되어주기: ‘우리 교회는 다르다’고 믿었건만
작년 겨울 새가족순 순장이었던 나는, 교회에 발길이 뜸한 한 자매에게 전화를 걸었다. “요즘 왜 교회 잘 안 나와?”라고 물었다가 충격적인 소식을 들었다. 그가 교회에서 단기선교를 갔을 때, 선교사 X가 그 자매의 친구 A를 성추행했다는 것.

A는 X와 함께 지역 축제에 동행했고, 늦은 밤 X의 차를 타고 숙소로 돌아갔다. 깜깜한 차 안에서 X는 자신을 아빠처럼 생각하라며 계속 손을 잡아달라고 요구했다. 일방적으로 A의 손을 잡은 그는 손을 계속 주물렀다. 신체 접촉이 불편하다고 말하는 A의 손에 입을 맞췄다. 그리고 A에게도 자신의 손에 뽀뽀해달라고 요구했다. 아빠처럼 생각하라는 말을 계속하면서.

결혼 생활이 힘들다며, 성관계에 관해 이야기했다. 아내가 아파서 결혼 이후 섹스를 제대로 못했다고. 수치심과 공포가 몰려들었지만, 가로등도 없는 외진 거리, 그것도 말도 통하지 않는 외국에서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른다는 마음으로 창밖만 바라봤다.

X는 A에게 자기 집으로 가서 자자고 말했다. 아내가 없으니 집이 넓다고. A에게 그 말은 호의가 아닌 두려움으로 다가왔다. A는 계속되는 X의 요구에 “지금 다른 선교사님이 기다리고 계시다”며 말을 돌렸다.

자매는 친구 A의 소식을 듣고 1년 동안 상담치료를 받았다. 믿었던 선교사가 그런 짓을 한 것도 모자라, 그 사실을 안 다른 선교사 및 목회자들이 사건을 그냥 덮었다는 사실에 너무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이미 X 선교사는 A 자매 성추행 이외에도 여러 건의 성희롱 이슈의 중심에 있었고, 다른 교회 단기 선교팀이 왔을 때도 성희롱 발언으로 화두에 올랐다. 일터에서도 비슷한 문제가 있었다. 담임목사와 동료 선교사들은 X의 문제를 알고 있었고, 담임목사는 선교지를 찾아가 부부 관계 회복(?)을 위한 긴급 세미나(?)를 열기도 했다. X는 자신의 성중독 증세를 시인했다. 선교사들이 모여서 X의 문제를 위해 함께 회개하고 기도했고, X는 치료를 받겠다고 했지만, 이후 전문가의 도움을 받지 않고 사역을 계속했다.

우리, 같이 싸워보자
자매는 교회를 떠나겠다고 했다. 아무렇지 않은 듯 교회에 나와 웃으며 지내는 것도, 주일마다 담임목사의 설교를 듣는 것도 너무 힘들다고 말했다. 매주 아무에게도 말 못하고 맨 뒷자리에 숨어 앉아, 예배 시간을 눈물로 보내는 것이 괴로웠다고 했다.

혼란스러웠다. ‘왜 우리 교회가 주관하는 선교지에서 일어난 성추행 사건을 해결하지 않았을까?’ ‘담임목사와 선교사들이 사후 관리를 해야 하지 않았나?’ ‘선교사 X는 피해자들 누구에게도 사과하지 않았는데, 어째서 아무도 X에게 사과하라고 하지 않은 걸까?’ ‘왜 피해자들이 더 있는지 조사하거나 교회 차원에서 도와줄 생각을 하지 않았던 걸까?’

자매를 설득했다. 같이 목사님을 만나보자고 했다. 처음엔 정말 오해가 있었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교회가 함께 해결해야 하지 않겠냐고, 교역자를 만나보자 이야기했다. 우리는 교회 전도사를 통해 담임목사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담임목사가 전도사를 통해 전한 답변은 이랬다. “그래서 내년부터는 후원 안 하려고 했다”고. 자매를 만나보겠다는 말도 없었다. 내가 먼저 담임목사와 자매가 만나도록 해달라고 부탁하자 “너희가 원하면 만나주시겠단다”라는 답변을 들었을 뿐이다.

자매가 목사를 만났다. 목사는 X의 성희롱을 몰랐다고 했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몰랐다”라고, 나중에는 “다른 일은 알았지만 그건 몰랐다”라고, 그 후에는 “대충 듣긴 했지만 이렇게 심각한지 몰랐다”라고 말했다.

약 한 달을 교인들 모르게, 담임목사와 교역자와 대화를 이어갔다. 담임목사는 자신은 할 일을 다 했다고, 자기는 책임이 없다고, 어쩔 수 없었다고 말했다. 미안해하지 않았고, 질책을 회피하려는 태도로 일관했다.

담임목사의 태도를 보고 자매는 〈뉴스앤조이〉에 연락을 취했다. 담임목사에게도 언론에 연락했다고 이야기했다. 담임목사는 나에게 전화해 자매를 말리라고 했다. 통화 내용을 녹음하지 말라는 당부와 함께. 교회를 혼란하게 하면 안 된다는 말은 세트 메뉴처럼 따라왔다. 전쟁의 시작이었다.

세례 요한이라나 뭐라나
사실 내 깊은 ‘빡침’은 담임목사의 다음 행동에서 기인한다. 목사를 만나고 돌아온 자매가 “내가 X 선교사를 만나기로 했다”라고 전했다. 상황을 들어보니 대화 중 답답했던 자매가 “그럼 저라도 X를 만나볼까요?” 했더니 “그래 줄래? 그게 좋겠다”라고 했다는 것. 머릿속에서 전구가 터지는 느낌이 들었다. ‘미친 거 아닌가?’ 하는 생각과 함께.

제정신이라면 못 만나게 해야 했다. 성추행범인데, 일 년이나 상담을 받았다는데, 어쩜 저렇게 비겁한가. 어쩜 저렇게 공감할 줄도 모르나. 화가 났다. 결국 자매가 X를 만나는 자리에 나와 청년 몇 명이 몰래 대동했다. 자매는 쓴웃음을 지으며 두꺼운 옷을 껴입고 가겠다고 말했다. 죽이면 어떻게 하냐고 우스갯소리로 말했지만 두려워하고 있었다.

X는 자매에게 허위 사실을 유포할 경우 법정 공방을 펼치겠다고 협박했다. A 자매의 일은 “기억나지 않는다”라고 일관했다. 애정 표현이고 용기를 북돋워 주는 행동이라고 변명했다. 자매가 대화를 녹음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자 ‘불법 녹음’이라며 다그쳤다. 그날 우리는 기자를 만나 사건의 경위를 밝히고 그간 경험한 목회자의 무책임을 고발했다.

이어서 지리멸렬한 싸움이 계속되었다. 담임목사는 우리가 교회를 공격한다고 주장했다. 애초부터 교회를 무너뜨릴 마음이었다고. 홈페이지 글로 공방전을 펼쳤다. 목사는 꼬리 자르기에 급급할 뿐 사건을 해결할 의지도, 자매를 만나 마음을 풀 생각도 없었다. 우리와는 대화하지 않으면서 예배 설교 때, 페이스북 글에서 우리를 언급했다. 자신을 세례 요한에 비유하며 “침묵하고 있을 뿐 내가 입을 열면 걔네는 끝난다”라고 말했다.

우리가 마치 ‘신천지쯤’ 되고, 교회를 공격하려는 ‘악당’인 것처럼. 덕분에 교회 안에서 소문만 무성해졌다. ‘신천지설’, 돈 받으려고 그런다는 ‘거지설’, 교회 무너뜨리려 한다는 ‘사탄설’. A가 가상의 인물 아니냐는 얘기도 있었다. 이쯤 되니 ‘종북’이라고 안 하는 게 어딘가 싶었다.

우리도 계속 홈페이지와 페이스북에 글을 쓰며 맞섰다. 간담회도 개최했다. 요지부동이던 목사는 간담회를 개최한다는 말에 간담회 전에 어떻게든 만나자며 교회 권사님을 통해 계속 연락해왔다. 나와 둘이 만난 자리에서 목사는 자매의 카톡을 프린트해 보여주며 “얘가 먼저 나를 공격했다. 내가 피해자다”라고 말했다. 자매의 말투가 공격적이라는 말이었다.

신실한(?) 공감 능력에 박수를!
간담회에서 많은 교인이 교회와 담임목사의 책임을 물었다. 간담회 이후 우리는 목사와 대화했다. 상황이 불리하게 돌아가자 목사는, 너무나 간단하게 “처음부터 언론에 알린 게 아니었어? 그럼 오해했네”라고 말했다. 이미 우린 신천지 아닌 게 이상한 사람이 됐는데, 뭐 그건 넘어가기로 했다. 대화를 이어갔고 마무리가 잘 되는 듯했다. 목사는 어쨌든 우리에게 사과했고, 교회가 나서서 일을 해결하겠다고 했다. 목사와 우리는 합의를 거쳐 홈페이지와 페이스북에 마무리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목사는 선교지로 가 X를 만나고 왔다. X가 골방에서 기도만 하고 있고, “정말 미안해하는 것 같았다”라고 말했다. 담임목사는 X를 만나 진술서를 받았지만, 우리가 법적으로 이용할까 봐 그 진술서를 파기했다고 전해왔다. 아, 정말 그의 신실한(?) 공감 능력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끝까지 실망만을 안고 우리는 떠났다. 3개월 내내 X를 신고하려 했지만 물증이 없었는데, 우리는 증거 하나 잡으려고 밤을 새워가며 인터넷을 뒤지고 법안을 찾아봤는데, 목사는 코앞의 증거를 파기했다니.

묻고 싶다. 왜 목사는 X가 뉘우쳤음을 판단할 자격이 자신에게 있다고 생각했을까. 자신은 피해자가 아니고, 하나님은 더더욱 아닌데. 나라면 싸워서라도 뺏었을 텐데.

이웃이 되는 것은 이웃을 얻는 것이니
과연 X는 옆자리에 건장한 형제가 앉았어도 ‘용기를 북돋워 주려’ 뽀뽀를 했을까. 신천지 운운하며 악의적인 소문을 낸 교역자는 미안해하긴 할까. 교회 돈 받으려고 그런다던 사람들은 돈 한 푼 안 받고 교회 떠난 우리를 고꾸라진 악마라고 생각할까.

시간이 많이 지났다. 결국, 피해자 A양은 아직도 사과를 받지 못했고, X 선교사 성희롱 사태를 해결하겠다던 교회는 감감무소식이다.

한 사람의 힘은 미약하다. 나와 자매는 항상 우리의 부족함을 탓했다. ‘돌아간다면 더 잘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 ‘더 잘 싸울 수 있지 않을까?’ ‘우리 너무 역부족이지 않나?’

하지만 돌이켜보면 그렇지 않다. 자매는 용기 있게 경험을 이야기했고 나도 최선을 다해 자매와 함께했다. 우리는 부족했고 미약했지만, 생각보다 많은 변화를 이끌었다. 교역자들을 만나고 교인들에게 소식을 알렸다. 몇 번의 간담회를 열고 기자를 만났고 변호사를 만났다. (사임이라는 것이 마뜩찮지만) X는 사임했고, (교회 사람들이 비판한 것처럼) 교회를 ‘뒤흔들고’ ‘혼란에 빠뜨렸다’.

교인들은 우리를 ‘분열하는 자’라고 불렀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버티는 이유는 그들과 같았다. 복음에 빚진 마음,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에 빚진 마음이 없었다면 나는 자매와 함께하지 않았을 거다. 나를 움직인 것은 내 두려움보다 크신 그리스도의 사랑과 신실함이었다.

나는 그 사랑을 힘입어 자매가 어떤 선택을 하든 그녀의 이웃이 되기로 마음먹었다. 그러자 내가 생각해온 공동체 패러다임이 자꾸 변했다. 건물로의 교회가 아닌 사람으로서의 교회. 우리는 연대했고 비로소 공동체가 됐다. 진짜 관계, 진짜 신뢰, 진짜 사랑이 우리 안에 싹트는 것을 경험했다. 내가 자매의 이웃이 되겠다고 생각하자 나는 이웃을 얻었다.

한 사람이 있었다: 성녀가 아니지만 창녀도 아닙니다
나에게도 ‘한 사람’이 있었다. 나를 우울과 절망에서 건져낸 한 사람.

세월호 피켓 시위를 멈추게 한 나의 전 남자친구를 떠올리면, 2년 6개월이 지났지만 저릿하게 아프다. 2년 남짓 사귀던 남자친구에게 이별을 통보하자 그는 나를 스토킹하기 시작했다. 헤어지기 전 관계를 했다는 이유로 그는 나를 창녀 취급했다. 내가 다른 남자를 만난다는 상상에서 그는 헤어나지 못했다. 나보고 “남자 몸만 밝히는 여자”라고 말했다. 나와의 성관계 사실을 페이스북에 올리겠다고 협박하던 그 앞에서 나는 생애 처음으로 무릎을 꿇었다. 제발 나에게 그러지 말라고 빌고 또 빌었다.

매일 전화하고 문자를 보냈다. 답을 하지 않으면 협박을 지속했다. 자고 일어나니 전화가 80통 와 있던 적도 있다. 제대로 잠도 못 잤다. 다른 사람 휴대폰이 울려도 깜짝 깜짝 놀랐다. 연락을 받지 않으면 집으로 전화해 내 친구라고 부모님을 속였고, 학교에 있는 내가 연락을 받지 않자 내 친구들에게 연락했다. 길거리의 남자들이 온통 그 사람으로 보였다. 비슷한 그림자만 보여도 덜덜 떨었다.

나를 칼로 찌르고 자기도 죽어버리고 싶다고 했다. 자살하겠다고 찾아오기도 했다. 나를 ‘사랑’해서 그런다고 했다. 1분 후에는 다시 나를 저주했다. 개 같은 인생이라며, 자기 인생을 내가 망쳤다고, 내가 가해자라고 말했다. 자기를 피해 다니라고, 자기 눈앞에 띄지 말라고 했다. 그러고는 보고 싶다고 계속 전화해서 나를 불러냈다. 일일이 나열하기엔 너무 길고 끔찍하다. 헤어진 후 석 달이 지날 때까지 계속됐다. 정신이 피폐했고, 죽지 못해 매일을 살았다.

나름 여러 사람에게 도움을 구했다. 친밀했던 어느 목회자는 나를 도와줬지만, 내가 그 형제에게 “나도 부끄럽게 생각한다. 미안하다”라고 답하도록 지시했다. 회개하라고 나를 꾸짖고, 정결하라는 말씀을 보냈다. 스토킹 문자를 ‘무시하라’며, 동시에 형제가 자살할까 걱정된다고도 말했다. 여전히 그분은 나에게 소중하지만, 그때의 조언들은 나를 매몰되게 했다.

내가 사랑해 마지않는 부모님도 그랬다. 아빠는 한숨을 푹 쉬었고 엄마는 나에게 실망했다고 말했다. 물론 부모님은 그에게 분노했고, 나를 사랑하고 항상 내 편이라고 말해주었지만, 나는 자책감이 들어 부모님께 도움을 요청할 수 없었다. 내 친한 친구 한 명은 “그 오빠가 너를 정말 사랑하나 봐”라고 말했다. 많이 사랑하지 않으면 그런 행동을 할 리가 없다는 거였다.

그들은 ‘적당히’ 내 편이었지만 싸움은 온전히 내 몫이었다. 하지만 나는 싸울 힘도, 가진 언어도 없었다. 무기력했고, 우울했고, 괴로웠다.

한 사람, 그가 나의 구원이었음을
1년을 모른 척 지냈다. 나아질 줄 알았던 마음은 잘 낫지 않았다. 5층 건물에 자취하던 나는 뛰어내리면 어떻게 될까를 자주 상상했다. ‘죽을까?’ ‘머리부터 떨어질까?’ 시간 감각도 점점 없어졌다. 자주 지금이 몇 월인지 헷갈렸다. 5월인데 뜬금없이 겨울옷을 찾았다. 온종일 다른 일을 하고 있지 않으면 불안하고 우울한 생각이 들었다. 이유 없이 울다 그치기를 반복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선배와 저녁을 먹었다. 왜 그 선배에게 내 이야기를 했는지 모르겠는데, 내 속에서만 맴돌던 얘기가 입 밖으로 나왔다.

선배는 내 얘기를 들으며 엉엉 울었다. 그리고 나에게 미안하다고 했다. 자기가 알지 못해서 미안하고, 내가 그런 일을 겪어서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선배는 ‘가스라이팅’(gaslighting)에 여전히 젖어 있는 나에게 내 잘못이 아니라고, 내가 피해자라고 계속 말해줬다. 그가 했던 행동이 스토킹이고, 범죄고, 폭력이라는 것을 알려줬다. 이후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사방팔방 힘썼다. 애석하게도 이 일은 아직 완전히 해결되지 않았다.

여전히 문제는 현재진행형이지만, 선배는 나의 ‘한 사람’이고, 적어도 내 인생만큼은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그는 나를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건져냈다. 그날의 만남이 없었다면 나는 여전히 나를 증오하고, 두려움과 자책감에 시달리며 살아가고 있었을지 모른다. 그날 그는 나의 복음이고 구원이었다. 회복이고 해방이었다. 그리고, 선배가 있었기에 나도 그 자매에게 손 내밀 수 있었다.

한 사람이 되는 법은 이런 게 아닌가 싶다. 가만히 있으면 해결되겠거니 생각하지 않는 것, 위로의 말 한마디로 내 일을 다 했다고 여기지 않는 것, 행동하지 않으면서 기도하고 있다고 말하지 않는 것. 내가 하지 않으면, 아무도 하지 않음을 아는 것.

굳이 이 땅에 한 사람으로 오신 예수를 기억한다. 세리와 창녀를 찾아가고, 사마리아 여인에게 복음을 전하신 저항적 예수를 경배한다. 하나님은 여전히 신실하시다.

 

이소은
사회 초년생이다. 청소년 인문교양 월간지인 〈유레카〉에서 기자로 일한다. 페미니스트(이면서) 페미니스트가 되어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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