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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트만을 따라 성경의 언어 속으로
[327호 3인 3책] 기독교 초대교회 형성사 / 루돌프 불트만 지음 / 허혁 옮김 / 이화여자대학교출판부 / 1993년
[327호] 2018년 02월 01일 (목) 14:50:19 여정훈 신학도 goscon@goscon.co.kr
   
 

열렬한 창조과학 신봉자였던 중학생 때 내게 세상은 너무 근시안적 안목을 가진 사람들로 가득한 곳이었다. 사람들이 과학 법칙들에 집중한 나머지, 그 법칙들을 언제든 바꿀 수 있는 전능하신 하나님 존재는 신경 쓰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내게 창조과학은 ‘과학’ 혹은 ‘합리성’과 대립되는 개념이 아니라, 무지한 지도자들이 은폐한 세계의 진상에 접근하는 진지한 탐구였다. 성경은 전능하시고 세상 밖에 계신 하나님이 정한 법칙에 대해 알려주는 책이었다. 내게 요구되는 건 성경에 표기된 조항들을 충실히 지키기였다. 그러나 성경이 역사적인 단계에 따라 형성된, 문학적 작품이라는 관점을 접한 이후 성경이 내 생각보다 훨씬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안엔 역사 안에서 벌어진 전쟁, 고난, 가난, 희망에 대한 이야기가 정교하게 짜인 니트처럼 엮여 있었다.

게르하르트 로핑크는 70년대에 쓴 《당신은 성서를 어떻게 이해하십니까?》(분도출판사)에서 “엄마, 저 하늘 위에 하나님이 계셔?”라고 질문하는 한 아이의 예화를 소개했다. 이 질문은 과학적 사실에 대한 호기심이 아니라 세계 안에서 자신의 지위, 혹은 세계와 올바로 관계 맺는 법을 알고 싶은 것이었다. 기독교 전통에서 하나님은 온 세계의 주관자인 동시에 인간 개인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는 존재로 그려져 왔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저 하늘 위에는 우주가 있단다. 전능한 백발노인은 거기에 없지” 같은 대답은 질문자의 의도를 충족시키지 못한다.

성경 읽기도 마찬가지다. 성경의 이야기들을 탄생시킨 질문들이 어떤 것이었는지를 놓친다면 성경과 우리의 대화는 평행선을 달릴 것이다. 1884년 독일 올덴부르크에서 태어나 1920-1950년대까지 매우 열심히 활동한 성서학자 루돌프 불트만은 이러한 상황을 진지하게 다룬 인물이다. 그는 성서의 자료들을 신화, 민담 등으로 나누고 그 의미를 당대의 맥락에서 읽어내려 했기에 성서를 문자적으로 읽는 이들은 물론, 합리적 기독교를 추구하던 자유주의자들도 불편하게 했다.

그의 후기 저작인 《기독교 초대교회 형성사》는 성경 이야기들이 당대 사람들에게 미친 효과를 파악하는 소위 ‘양식비평’적 방법론이 잘 반영된 동시에 종말론적 신앙의 가치를 감동적인 문체로 표현했다. 그에 따르면 기독교 신앙은 역사를 통해 말씀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구약성서로부터 물려받았으며, 예수에게서 결단을 요구하는 ‘종말론적’ 하나님에 대해 배웠다. 이 신앙은 세상으로부터 한 걸음 물러나 관조하는 것을 좋은 상태로 여기던 스토아학파의 이상과도, 인간의 운명을 천체의 영향에 종속된 것으로 본 밀의종교들의 사상과도, 개인주의적 신비주의로 수렴된 영지주의자들의 종교와도 달랐다.

신약성경을 쓰고 읽었던 그리스도인들은 자신들을 과거가 아닌 종말론적 미래에 의해 규정되는 존재로 여겼는데, 그 미래는 다름 아닌 ‘하나님의 은혜’(185쪽)였다. 예수를 통해 새 언약의 백성이 된 교회는 ‘약속의 자녀’(188쪽)이기에 과거 사건으로 규정되지 않는다. 다만 볼 수도 없고 다 이해할 수도 없는 하나님의 ‘영’(205쪽)을 따름으로써 지금 하나님 나라를 살 수 있게 된 사람들이다.

사회 전반에서 적폐 청산이 한창이다. 과거가 현재를 어떻게 붙잡고 있는지를 동시대적으로 목격하고 있는 우리 세대는 이제 어떻게 더 나은 미래를 현재로 불러올 것인가? 초대교회가 갖고 있던 희망에 대한 불트만의 탐구는 오늘의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익하다.

 

여정훈
대학원에서 신약성서를 공부하던 중 공부에 재능 없음을 느끼고 기독교 시민단체에 취직한 후 자신이 일도 못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일 못하는 사람 유니온’을 만들었다. 《일 못하는 사람 유니온》의 공저자 중 한 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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