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1호 3인 3책] 아빠가 책을 읽어줄 때 / 생기는 일들 / 옥명호 지음 / 옐로브릭 펴냄 / 2018년

“아, 오늘도 조금밖에 못 놀았어!”

어느 화창한 봄날 연휴, 아침부터 저녁까지 안과 밖에서 놀고, 뛰어 놀고 앉아서 놀고, 먹고 놀고 종일 놀던 어린이가 마무리로 두 시간의 만화 시청 후에 겨우 누운 잠자리에서 내뱉은 탄식이다. 이쯤 되면 인간에게 ‘조금’이란 무엇이며 또 ‘많이’는 무엇인지 다시금 생각해볼 일이다. 자려고 누워 조잘조잘 남은 에너지마저 쏟아내는 저 입을 막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책을 집어 든다. 책을 읽어준다니 좋아하는 어린이에게 엄중한 경고를 날린다. “엄마 책 읽는 동안 말 한마디라도 하면 바로 책 덮을 거야!!”

흔히 아이들에게 책을 권하거나 읽어줄 때 떠오르는 이유들이 있다. ‘1.교육적으로 좋은 영향(언어발달이나 논리력)을 준다, 2.비싼 전집을 구매했으므로 뽕을 뽑아야 한다, 3.읽는 동안은 말을 덜하고 운이 좋으면 잠이 들기도 한다’ 등등. 안 좋은 이유는 별로 없다. 책을 좋아하지만 아이들에게 읽어줄 때는 일처럼 느껴져 빨리 해치워 버리고 싶은 마음이 든다. 그래서 읽어주는 중에 아이가 질문하거나 자기 생각을 말하면 짜증을 내고 조용히 듣기만 하라고 말할 때도 가끔…, 많다. 성질 버려가며 책을 읽어주려는 이유 중에 좋은 부모가 되고 싶은 마음이 조금도 없다면 거짓말일 거다. 하지만 그 과정이 짜증과 부담을 유발한다면 계속하는 게 과연 맞을까?

책 때문에 생기는 고민은 책으로 풀어야 한다더니, 《아빠가 책을 읽어줄 때 생기는 일들》이 눈에 들어왔다. 일단 제목부터 마음에 든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빠가 책을 읽어줄 때 나쁜 일은 생기지 않고 좋은 일이 더 많으니까 엄마 말고 ‘아빠’가 읽어주면 참 좋겠다는 이야기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한데 저자가 말하는 책 읽어주기는 나의 그것과는 달랐다. 선원이었던 아버지와 함께 보낸 시간이 거의 없었던 저자는, 자신의 아이들과는 충분한 시간을 보내고 싶었고, 함께한 그 시간이 따스한 추억으로 남길 바랐다. 하지만 현실은 여의치 않고 밤늦게 들어오기 일쑤라 시간을 보내기는커녕 대화할 틈도 없었다. 그래서 선택한 방법이 바로 책읽기였다.

그런데 나는 어쩌다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기 시작한 걸까… 첫째, 책은 내게 쉬운 도구이기 때문이다… 둘째, 책을 읽어주며 아이들과 오롯이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좋았기 때문이다… 내겐 다른 무엇보다 ‘책’이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보내기에 가장 간단하면서도 유용한 수단이었기 때문이다… 더 늦기 전에, 아이들이 아빠와 함께하는 자리를 불편해하거나 슬금슬금 피하기 전에, 오늘부터 당장 ‘옳은 일’ 하나를 시작해 보면 어떨까. 그런 점에서 책 읽어주기는… 작지만 강력한 사랑의 고백이자 행동이다.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줄 때 정말 중요한 것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은 마음, 나에게 맞는 방법을 찾기, 그리고 꾸준한 실천에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자녀에게 책 읽어주기로 씨름하는 나 같은 부모에게 새로운 관점을 제시해줬다. 첫째, 책 자체가 목적이 아니어도 된다. 소통의 수단으로 바라보면 덜 부담스럽다. 둘째, 책 읽어주기가 나와 안 맞는다면 다른 방법을 찾아도 괜찮다. 셋째, 책 읽기는 아이들이 잠들기 전 머리맡에서 15분 정도만 읽어줘도 추~웅분 하다. 넷째, 아빠가 10년 정도 해주면 엄마와 아이들에게 여러 면에서 좋다. 사실 네 번째 이유 하나 만으로도 이 책은, 훌륭하다.

 

심에스더
성을 사랑하고 성 이야기를 즐겨하는 프리랜서 성과 성평등 강사이자 의외로 책 팟캐스트 〈복팟〉 진행자. SNS 중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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