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6호 심에스더의 독서일기] 《싱글 라이프》

   
▲ 《싱글라이프》심경미 지음 아르카 펴냄/ 2019년

비혼은 사회적 현상
얼마 전 성서한국에서 선택특강을 진행했다. 평소답지 않게 두 번의 강의가 모두 사전 마감되는 영광을 누렸는데 그 이유는 내 ‘브랜드네임’ 때문(!)은 아니었고, 사회·문화·종교적으로 지속적으로 관심을 받고 있는 주제인 ‘비혼’의 공로였다.(흥!)

그런데 써놓고 보니 사실 관심이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말인지 헷갈린다. 관심이라기보다는 근심, 참견, 충고의 대상에 ‘비혼’의 위치가 더 가깝지는 않나 하는 의심이 든다. 기독교 공동체 내에서는 더욱.

어찌됐든 사전 마감이 보여주듯이 (관심 때문이든 그로 인한 고심 때문이든) 사람이 꽤 몰린 만큼 다양한 질문과 이야기들로 강의가 채워지리라 기대했다. 그런데 웬걸, 참가자들이 미리 보내온 질문을 통해 진행되어야 할 강의건만, 생각보다 질문이 별로 들어오지 않았다. 한 강좌에 70-80명의 사람이 신청했는데 질문은 한두 개 정도. 물론 중요한 질문들이었지만, 관심에 비해서는 현저히 적은 수였다. 왤까? 생각보다 많은 기독교인은 ‘비혼’을 선택하기도, 혹은 비혼에 처해지기도, ‘관심’을 가지기도 하지만 막상 ‘비혼’에 대해 구체적으로 생각해보려 할 때 무엇을 물어야 할 지, 스스로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으며 가져야 하는지 잘 모르는 건 아닐까? 또 막연히 세상의 관점이 아닌 ‘성경적’인 관점을 가져야 한다는 압박감에 쉽사리 말하기 어려운 지점이 있을지도 모른다.

머리가 아팠다. 쏟아지는 질문을 통해서 조금은 편안한 진행을 꿈꿨던 나는 어떤 식으로 강의를 진행해야 할 지, 무슨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지, 멘붕이었다. 게다가 가장 큰 문제가 하나 있었는데 나 스스로가 ‘비혼’ 상태가 아니라는 점이었다! 애가 둘이나 있는, 결혼 생활 12년 차 인간인 내가 비혼에 대해서 깊이 있게,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인가. (물론 간절히 ‘비혼 상태’를 꿈꾸고 있다는 건 별개로 하고서.) 간절히 바라서 우주가 도왔는지, 강의를 며칠 앞두고 동쪽과 서쪽에서 ‘비혼’에 대해 아주 관심이 많은 귀인들을 만나게 되면서 팀을 꾸려 강의를 진행하게 되었다. 나름 기획회의를 통해 비혼과 관련한 사회적·종교적 키워드를 찾아서 정리하고, 강의 때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강의에 참여한 사람들과 일방적이지 않은 ‘소통’을 시도했다.

키워드 중 하나로 ‘비혼’의 ‘의미’를 생각해보기로 했다. 비혼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누가 비혼인지 등의 이야기를 해보자는 취지였다. 비혼의 의미를 생각해보면 현재 결혼 상태가 아니거나, 결혼 제도 안에 들어가 있지 않은 모든 경우가 비혼에 해당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예를 들면 혼인 경험 없는 1인 가구를 비롯하여 법적으로 가족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동성애 커플, 사별이나 이혼 등의 다양한 이유로 동거를 선택하고 있는 이성 혹은 커플, 다양한 공동체 등을 모두 비혼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가족이란 이렇게 혈연/비혈연 관계는 물론이고, 비혼의 다양한 구성원으로 이뤄질 수 있다.) 우리는 막연히 ‘비혼’을 생각할 때 ‘결혼 안 하고 혼자 사는 어떤 개인’으로 떠올리기 쉽지만, 사실 ‘비혼’은 다양한 원인과 결과들의 층위로 이뤄진 사회적인 현상임을 알 필요가 있다. (특히 이런 ‘앎’은 기독교 공동체 내에서 더욱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싱글 라이프’ 시대, 교회의 역할은?
키워드를 정리해가다 보니 기독교 가치관 안에서 ‘비혼’이 얼마나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지는지 더 명확히 느낄 수 있었다. 즉 ‘비혼’은 ‘성경적이지 않다’라는 생각이 기독교 공동체 내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비혼’의 여러 형태 중에서도 ‘1인 가구’로써, ‘싱글 라이프’를 사는 사람들에 대해 교회 내의 시선이 곱지 않았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터인데 가장 대표적인 두 가지가 바로 1. ‘인간이 독처하는 것이 좋지 않아 보여’ 파트너를 지어주셨는데 혼자 사니까 말 그대로 ‘좋지 않아 보이고’, 2.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하나님의 지상 명령을, 혼자서 아기도 안 낳고 살면서 어기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그런 식의 번성하라는 말은, 혼자 사는 남성은 무능력하고 혼자 사는 여성은 이기적이라고 맘대로 판단하기 딱 좋은 구절인 듯하다.

강의를 준비하며 읽었던 《싱글 라이프》에 따르면 “2015년 인구 주택 총조사 결과, 일인 가구가 520만 3,000가구로 전체(1,911만 1,000가구)의 27.2퍼센트를 차지해 2인 가구(499만 4000가구, 26,1퍼센트), 3인 가구(410만 1,000가구, 21.5퍼센트) 등을 제치고 가장 흔한 가구 형태가 되었”다. 따지고 보면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원인은 얼마든지 찾을 수 있는 일이기에 그 이유는 따로 설명하지 않겠다. 중요한 건 이미 비혼 상태의 사람들이, 그중에서도 또 1인 가구가 우리 사회의 가장 흔한 형태로 존재 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기독교의 가치관은 사회의 이러한 변화에 관심이 별로 없다. 여전히 “교회는 결혼과 가정이 하나님이 만드신 절대적인 제도라고 보는 시각이 강해서, 결혼은 독려하지만 싱글 라이프”와 ‘비혼상태’에 대해 부정적이거나 소극적이다. 속으로만 부정적으로 여기거나 소극적이기만 해도 그나마 다행일 텐데, 《싱글 라이프》 저자에 따르면 비혼인 자신의 상태에 대한 “교회 안팎에서 시전하는 막말과 무례함에 화가” 나고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자신에게도 답답”함을 느끼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강의를 통해 사람들과 소통하며 우리는 저자와 비슷한 의문을 가지고 있음을 깨달았다. “도대체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을 설파하는 교회 공동체에서 왜 싱글(비혼)을 배려하지도 존중하지도 않는가?” 그리고 왜 변화하는 세상에 대해 관심을 갖고 공부하지 않는가? 비혼이 단순한 트렌드가 아니라, 다양한 이유로 사람들이 선택하는 삶의 방식이라면 이제 기독교 공동체도 변화되어야 할 때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둘 중 하나는 해야 하는데 한 가지는 우리의 강의를 듣는 것이고, 나머지 하나는 《싱글 라이프》를 읽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강의는 끝났다. 그렇다면 당신의 선택은?
 


심에스더
성을 사랑하고 성 이야기를 즐겨하는 프리랜서 성과 성평등 강사이자 의외로 책 팟캐스트 〈복팟〉 진행자. SNS 중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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