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3호 3인 3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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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장 바니에, 스탠리 하우어워스 지음
김진선 옮김 / IVP 펴냄 / 2010년

두 아이가 태어나기 전 가장 머리가 아팠던 일은 다름 아닌 이름을 짓는 일이었다. 예쁘고 부르기 쉬울 뿐 아니라 삶의 방향성과 가치관을 담은 이름을 짓겠다고 얼마나 많은 이름들을 적어보고 불러보았던지. 하여간 그런 고민과 시간을 들여 탄생한 이름이 첫째는 고유, 둘째는 해서이다. 고유는 생각할 고, 넉넉할 유를 써서 조급한 세상에 휩쓸려 살지 말고 충분히 생각하고 성찰하며 살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해서는 함께 해, 천천히 갈 서를 써서 혼자만 앞서 가려 하지 말고 늦더라도 함께, 천천히 가줄 수 있는 사람이 되길 바라는 마음을 담은 것이다. 그러나 바람은 바람일 뿐, 아이들은 충분히 자기만 생각하며 성질 급하게 자라나고 있다.

생각해보면 아이들이 이름대로 살지 않아서 혀를 끌끌 차는 일도 많지만 이름처럼만 살게 될까봐 걱정하는 마음 역시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이름을 지을 땐 세상의 속도에 따르지 않기를, 다른 사람과 더불어 살기를 바라놓고도 막상 너무 뒤처지고 손해만 보면 어쩌나 고민한다. 우리가 지향하는 가치관과 삶의 그림에는 인내, 여유, 함께함 등과 같은 의미가 담겨 있길 바란다. 하지만 지금의 세상이 우리에게 보내는 메시지는 속도, 효율, 합리성 등에 압도적으로 가깝다고 볼 때, 우리의 바람과 세상의 요구 사이에서 불화하지 않고 화평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 그게 가능하기나 할까?

장 바니에는 지적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상호 돌봄을 실천하며 공동생활을 하는 국제적 공동체 네트워크 ‘라르쉬’ 설립자다. 그는 신학자 스탠리 하우어워스와 나눈 대화를 엮은 책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에서 장애인과 공동체 생활을 통해 누리고 있는 화평한 삶에 대해 이야기한다. 장애인은 빠르고 생산적이며 합리적인 사람들이 인정받는 시대에서 가장 소외된, 이른바 ‘비효율적이고 비정상적인’ 존재이다. 세상은 이들을 충분한 시간과 인내, 함께할 장소가 필요한 연약한 존재들로만 본다. 그러나 바니에와 하우어워스는 이들을 하나님과 우리를 연결해주는 존재로 소개한다. 또한 ‘비정상’인 이들이 ‘정상’ 세상의 가치관과 ‘연약하고 뒤처지는’ 것이 두려워 바람대로 살지 못하는 우리 사이에 존재하는, 불의와 고통의 틈으로 우리를 초대하는 역할을 한다고 말한다.

“우리가 모든 해답을 아는 것은 결코 아니지만, …그것은 불의와 고통이라는 거대한 틈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된다. 그것은 이른바 ‘정상’ 세계와, 연약하고 힘이 없다는 이유로 내몰리고 제외되거나 시설에 수용된 사람들 심지어 세상의 빛을 보기도 전에 죽임을 당하는 이들 사이에 놓인 틈이다. 우리는 바로 이 틈을, 사람들을 초청하는 자리로 삼고 이 초청에 응해달라고 요청한다. … 우리는 복음의 비전으로 돌아가야 한다. … 그것은 인류가 하나 될 수 있다는 약속이며, 일치와 평화와 용납의 비전이다. … 이 변화는 우리 사회의 밑바닥에서부터 시작될 것이다.”(28-29쪽)

‘충분히 생각하며 느리더라도 타인과 함께 걸어가는’ 삶은 ‘연약하고 손해 보는 삶’이다. 스스로도 피하고 싶고 사랑하는 이에게 작정하고 권하기도 힘들다. 하지만 내가 선택하지 않아도 연약함은 우리 삶의 일부이고, 심지어 연약해져야만 누릴 수 있는 삶의 아름다움과 화평이 있다. 그렇다면 어찌 할까. 외면하고 모른 채 살아갈 것인가, 손해에도 불구하고 서로가 서로에게 화평을 이루는 통로로 살기를 결심할 것인가. 이게 정말 손해이기만 할까? 질문들이 눈에 보이는 실천으로 이어지기를 스스로에게 소망해본다.

심에스더
성을 사랑하고 성 이야기를 즐겨하는 프리랜서 성과 성평등 강사이자 의외로 책 팟캐스트 〈복팟〉 진행자. SNS 중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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