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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와 친교에 관한, 삼위일체의 쓸모
[332호 3인 3책] 친교로서의 존재 / 요한 지지울라스 지음 / 이세형·정애성 옮김 / 삼원서원 펴냄 / 2012년
[332호] 2018년 06월 26일 (화) 16:38:49 여정훈 goscon@goscon.co.kr
   
 

몇 주 전 외국의 길거리에서 노방전도 중인 무슬림을 만났다. 두세 명의 동료와 함께 길거리에 상을 펴 놓고 이슬람 신앙 서적들을 나눠주고 있었다. 나는 책을 한 권 얻어 보려고 말을 걸었고, 그는 대뜸 나의 종교를 물어왔다. 나는 기독교인이라고 대답했고 곧 내가 실수를 저질렀음을 깨달았다. 그가 삼위일체 교리의 모순에 대한 30분짜리 설교를 시작한 것이다.

그의 논점은 확실했다. 예수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불렀고, 아버지에게 기도를 하는 사람이었고, 소화기관을 가진 유한한 존재였으므로 창조주 하나님일 수 없다, 경배의 대상은 오직 한 분 창조주 하나님이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의 말은 대부분 정확했다. 그는 예수가 사용한 언어와 그의 하나님 이해에 대해서도, 니케아 회의가 삼위일체 교리 형성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슬람과 기독교의 하나님 이해가 ‘삼위일체’ 교리에 의해 결정적 차이를 갖는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었다. 대체 이 차이는 왜 생겼으며 왜 기독교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가 된 것일까?
그리스에서 태어났고 페르가몬 교구장으로 임명된 정교회 주교이면서 서방교회에서 큰 인기를 누린 신학자이기도 한 지지울라스는 1985년 저작 《친교로서의 존재》에서 이 주제를 심도 있게 다룬다. 그에게 이 주제는 단지 옛 교부들의 논쟁이 남긴 화석이 아니라, 인간이 참된 삶을 얻는 길과 관련이 있었다. 그에 따르면 ‘인격’(person) 즉 자유로운 개인이라는 개념이 인간의 본질과 연결되는 경향은 그리스-로마 사상에서는 나타나지 않는다. 그들 문화에서 인간은 우주적 법칙인 로고스의 순리대로 살아가는 존재이다.

‘인격’의 본질을 자유와 연결시킨 이들은 기독교 교부들인데, 그들은 자유로운 행위를 통해 세상을 만드신 하나님에 대해 이야기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들이 예배 안에서 체험한 하나님은 어떤 원리에 의해 생겨나거나 소멸되는 존재도, 필연적으로 무언가 해야 하는 의무를 가진 존재도 아닌 온전히 자유로운 분이었다. 그리스도는 그 온전한 자유를 역사 속에서 구현했다는 점에서 인간에게 온전한 자유의 희망을 주고, 성령은 그리스도를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려 그리스도 사건을 역사적 실존의 예속으로부터 해방하고, 그리스도를 ‘마지막 아담’, 즉 종말론적 존재로 만든다. 이로써 온 세계는 새로운 현실에 초대된다. 또한 성령은 공동체를 친교하게 함으로써 종말론적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가 이 땅에 있게 한다. 중요한 것은 이 모든 것이 법칙과 인과관계로 이뤄지지 않고 성부 하나님의 자유로운 활동으로 촉발된다는 점이다.

저자는 교회가 하나님을 온전히 자유롭고 온전히 친교하는 분으로 믿어 왔으며, 인간 역시 그리스도와 성령을 통해 그와 같은 실존 양태를 가질 수 있다고 선포해왔다고 요약한다.

여기에 삼위일체 신앙의 의미가 있다. 2018년 한국에 사는 우리는 자유와 친교가 끊임없이 충돌하는 상황을 경험한다. 어떤 이들은 그들이 ‘빼앗긴’ 것으로 가정한 자유(혐오할 자유, 대상화할 자유 등)를 ‘되찾고자’ 살인까지도 저지른다. 이는 친교 가능성을 완전히 차단하는 행위다. 삼위일체 신앙은 자유와 친교에 대한 새로운 이야기를 들려준다. 인간은 주어진 조건의 제약을 넘어 온전히 자유롭고 온전히 친교하는 상태였던 적이 있는데,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가 바로 그 사례라는 것이다. 그 공동체는 함께 성찬을 나누며 온전한 상통을 더욱 갈망함으로써 그렇게 된다. 여기에 삼위일체 신앙의 쓸모가 있다.

*책에는 여러 오타와 오역이 나오지만, 우선 34쪽의 ‘인식론’을 ‘어원론’으로, 63쪽의 ‘견진성사’를 ‘확인’으로 교정하고 싶다.

*‘person’을 ‘인격’으로 번역할 때 대상의 됨됨이를 칭송하는 표현으로 오해될 수 있으나 더 나은 번역어를 당장 찾기 힘든 것도 사실이다. 맥락에 따라 ‘개인’으로 바꿔 읽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다. 

 

여정훈
대학원에서 신약성서를 공부하던 중 공부에 재능 없음을 느끼고 기독교 시민단체에 취직한 후 자신이 일도 못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일 못하는 사람 유니온’을 만들었다. 《일 못하는 사람 유니온》의 공저자 중 한 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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