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5호 커버스토리]

   
▲ Photo by Priscilla du Preez on Unsplash

어디에서 어디로 가는가?
거의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죽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다 오후 다섯 시쯤 되면 뭔지 모를 이상한 평안이 찾아왔다. 아마도 곧 캄캄한 밤이 되면 모두가 나만큼 캄캄해질 거라는 생각이 그 해거름 녘을 가장 평화롭게 하지 않았을까 하고 그때의 감정을 더듬어본다. 그 시절 도서관에서 루 살로메의 《우리는 어디에서 어디로 가는가》라는 책을 빌려 읽었다. 책 내용에 대한 기억은 없지만 방황과 고민으로 가득했던 책의 전체 분위기가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내게 퍽 매혹적으로 다가왔었다.

유일하게 기억하는 한 문장이 책의 마지막에 있었는데, “하나님으로부터 하나님에게로”라는 말이었다. 책을 다 읽고 뭔가 대단한 기분으로 목사님에게 가서 질문했다. “우리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고 있나요?” 목사님은 성경은 읽지 않고 쓸데없는 책에 빠져 있다고 호되게 꾸중하셨다. 그 후로 루 살로메의 끝나지 않은 방황을 마치 내가 나서서 이어가야 할 것처럼 내적인 방황이 깊어 갔다. 대체 나는 어디에서 시작되었고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여기서 왜 이렇게 힘들게 헤매고 있을까? 어차피 죽을 건데 힘들게 살지 말고 죽은 것처럼 가만히 누워 있으면 어떻게 될까? 끝없는 질문들이 속으로만 계속 파고들었다.

그러다가 스물두 살 때 교회 언니에게 ‘큐티’라고 하는 성경 읽기 방식을 소개받았고, 그날부터 거의 매일 성경을 읽고 묵상하는 습관을 갖게 되었다. 실제로는 놀기 좋아하고 게으르고 누가 억지로 시키는 일은 하기 싫어하는 내 기질로 봤을 때 지금까지도 이처럼 꾸준히 뭔가를 하는 것 자체가 놀라운 일이다. 이는 오랫동안 훈련되고 길들인 어떤 습관의 힘으로 설명하기에는 부족함이 있다. 나는 어떤 습관을 잘 갖지 않는 편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렇게 지속적으로 큐티를 해오는 것은, 매일 성경을 읽고 묵상하고 또 묵상한 것을 기록하면서 내가 어디에서 시작되었고 어디로 가고 있는지, 그리고 지금 내가 서 있는 곳이 어디인지 그 주소를 알아가기 시작했던 것이다. 본회퍼의 말처럼, 나를 둘러싸고 있는 큰 배경을 보고 비로소 그 배경 속 어디 즈음에 내가 왜 서 있는지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렇듯 성경은 나를 둘러싸고 있는 큰 배경을 보는 것과 같았다. 나의 성경 읽기는 마치 뿌연 안개 속에서 길을 잃고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무서워하다가 하나씩 표지판을 발견하는 것과 같은 다행한 시간이었다. 조금 전까지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던 길에서 누군가 다가와 ‘여기 이쪽’이라고 안내해주는 길표를 만나는 시간이었다. “이 텍스트에 어드레스가 있는가?”라는 도전적인 질문처럼 성경은 하나님이 내게 말을 걸어오시는 특별한 말 걸기였고, 나 역시도 성경 읽기를 통해 하나님께 나만의 말 걸음을 다양한 방식으로 시도 때도 없이 할 수 있게 되었다.

얼마 지나 대학원에서 상담을 공부할 때였다. 자존감에 대해 공부하던 중에 ‘wanted baby’와 ‘unwanted baby’가 언급되었다. ‘wanted baby’는 임신을 원하는 부모가 태중에서부터 아이를 사랑하기 때문에 태어난 그 아이는 자존감이 높지만, ‘unwanted baby’는 원치 않은 임신을 한 부모가 태중에서부터 아이를 원망하기 때문에 아이의 자존감이 낮다는 내용이었다. 수업 중에 자신이 어떤 아이로 태어났는지 어린 시절의 분위기를 되짚어 가면서 대화하는 시간에 뜻밖에 많은 학생들이 ‘unwanted baby’였음을 고백했다. 내 차례가 되었을 때, 나는 오래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나는 태어나자마자 바로 외할머니 손에 맡겨져서 중학교를 다닐 때까지 부모와 떨어져 지냈으니 그 상황만 생각해도 나는 ‘unwanted baby’였다. 그런데 문득 그즈음 읽고 묵상했던 에베소서 1장이 선연하게 떠올랐다. 우리가 창세 전에 택함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또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한다는 하나님의 계획이 사도 바울의 찬송으로 고백된 내용이었다. 나는 내 육체의 부모로부터는 ‘unwanted baby’였고, 내 영적 부모인 하나님으로부터는 ‘wanted baby’였음을 고백할 수 있었다. 그만큼 하나님의 원함이 부모의 원치 않음보다 더 강했다고. 그리고 다시 한 번 내가 어디에서 비롯되었으며 또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확인하는 시간이 되었다. 그 후로도 지속적인 성경 읽기와 이런 주소 확인들을 거듭하면서 여러 순간의 크고 작은 흔들림을 견딜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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