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서오세요. 최종편집 : 2018.12.3 월 14:38
기사검색
   
> 뉴스 > 커버스토리
       
삶의 갈피가 잡히고 빛이 번쩍하던 순간
[335호 커버스토리]
[335호] 2018년 09월 20일 (목) 15:42:37 문아영 goscon@goscon.co.kr
   
▲ 사진: www.pxhere.com

나의 살아감과 성경 읽기가 어떻게 만나느냐는 질문을 받고 편집자에게 물었다. “성경 대충 읽는 사람이 이런 글 써도 괜찮을까요?” “물론입니다”라는 답이 돌아왔으니 지금부터 시작되는 나의 이야기에 대한 책임(?)은 그 편집자에게 있음을 알린다.

성경이 내 삶과 처음 연결되었던 때
내가 스스로 사고하고 행동할 수 있는 발달단계에 도달한 것을 전제로, 내 인생에서 성경 읽기를 처음 접한 순간이 언제일까 생각해보았다. 무언가 드라마틱한 계기가 있었다면 이 글을 쓰기가 훨씬 수월했을 텐데, 곰곰이 생각해보아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럼, 언제 내가 성경 또는 말씀이라고 하는 것을 인지했을까?

기억나는 순간이 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였다. 선생님은 칠판에 한자를 쓰시고는 무슨 글자인지 전혀 모르는 우리를 위해 또박또박 읽어주셨다. “고진감래” “가화만사성”, 그러더니 부모님께 가훈을 여쭈어 적어오라는 숙제를 내주셨다.

부모님께 우리 집 가훈을 듣고 나는 충격에 사로잡혔다. 선생님이 보여준 가훈은 한자도 있었고 매우 짧았는데, 우리 집 가훈은 너무 긴데다 한자도 없었다. 이걸 숙제로 가져가면 혼이 날 것 같았다. 기대한 것보다 너무 길었던 우리 집 가훈과의 만남, 그 순간은 내게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우리 집 가훈은 갈라디아서 6장 9절이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이것이 내가 성경 구절을 또렷하게 인지한 첫 순간일 것이라 추정한다. 주일학교를 다니면서 성경 구절을 암송해서 ‘달란트’도 받고, 여름성경학교나 수련회 때면 밥을 먹기 위해 필사적으로 외웠던 성경 구절은 많았지만 이렇게 성경 구절이 하나의 단독적 문장으로 내 삶과 연결되어 주어진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알림장에 가훈을 적어 학교에 갔다. 선생님은 알림장을 책상에 펼치라 하고 책상 사이를 돌아다니며 숙제 검사를 했다. 숙제 검사가 진행되는 내내 심장이 두근거렸다. 선생님이 “이런 것은 가훈이 아니다”라거나 “너희 가훈은 왜 이렇게 이상하냐”고 할까 봐 걱정되었다. 하지만 선생님은 별말씀이 없으셨다. 다만 짝꿍이 우리 집 가훈이 진짜 길다고 동네방네 떠벌린 덕분에 우리 반에서 우리 집 가훈이 가장 길다는 사실은 확인되었다. 모르긴 몰라도 아마 우리 집 가훈이 전교에서 가장 길었을 것이다.

당시엔 가훈의 의미를 잘 이해하지 못했다. 선, 낙심, 피곤, 거두다, 이런 단어들로부터 왠지 좀 힘든 느낌이 들기는 했다. 자라면서는 선을 행하는 일이 낙심하게 되기 쉬운 일이고 많이 피곤한 일인가보다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머리가 많이 굵어진 후에는 “때가 이르면 거둔다”는 구절이 무책임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언제일지 모르는 ‘때를 기다리며 낙심하고 피곤하기 쉬운 선을 행하는 삶’이라니. 도대체 우리 부모님은 왜 이런 막막한 성경 구절을 가훈으로 정하셨을까. 이런 걸 가훈으로 정하는 건 미련한 일 아닌가.

얼마 전, SNS에서 갈라디아서 6장 9절을 마주쳤다. 그 구절을 적은 분은 한국의 지독한 경쟁 교육을 어떻게든 바꾸어 보고자 온 삶으로 애쓰고 계신 분이다. 최근 입시제도 공론화 과정과 관련해 마음이 상할 만한 일들이 계속되는 상황에 처해 있던 그분은 아침에 눈물로 기도하다가 이 말씀을 다시 만났고 “해나갈 수 있는 힘”을 얻었다고 하셨다.

내 마음에 불을 지폈던 한 구절
나는 평화교육 활동가로 살아가고 있다. 무엇이 계기가 되어 이런 활동을 하게 되었느냐는 질문을 받을 때가 있는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잊히지 않는 몇 가지 순간들이 있다. 2003년 가자지구에서 팔레스타인 거주지를 파괴하려는 이스라엘에 맨몸으로 맞서다 불도저에 깔려 사망한 레이첼 코리의 소식을 들었던 순간, 2008년 아프리카 우간다에서 자원 활동을 하며 나라는 존재의 작고 능력 없음을 깨달았던 순간, 2009년 용산 참사 직후 열렸던 집회에서 경찰의 힘에 밀리고 밀려 신용산역 개찰구로 쏟아지듯 ‘쫓겨나던’ 순간, 2011년 강정마을 구럼비 발파를 저지하던 사람들이 보내오던 다급한 신호들, 이런 순간들이 층층이 쌓이고 연결되어 내게 어떤 선택을 하게 하는 힘이 되었다.

레이첼 코리의 소식을 들었던 그때, 나는 대학교 2학년이었다. 사망한 레이첼 코리와는 두 살 차이였다. 어쩌다 들어간 대학에서 허송세월하며 사는 것 같았던 그때, 그녀의 죽음 앞에서 나의 삶이 너무나도 무용하게 느껴져 견디기 힘들었다.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아야 할지, 죽음을 각오하고 맞설 힘이 있는지, 진정 그것을 하고는 싶은 것인지, 내가 누구며 무얼 해야 하는지 도통 모르겠던 그 와중에 만났던 성경 구절이 있다. 이 말씀은 놀랍게도 내 마음에 불을 지폈다.

선행을 배우며 정의를 구하며 학대받는 자를 도와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 하셨느니라. (사 1:17)

당시에 이 말씀을 보며 인권변호사를 해야 하나, 막연히 생각했던 기억도 있다. 실제로 인권법을 전공하기 위해 대학원에 입학하기도 했지만 가야 할 길을 묻고 구하는 시간 속에서 나는 평화교육이라는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물론 지금 내가 하는 활동과 삶이 이 말씀에 부합하느냐고 한다면, 부족한 것은 여전히 참으로 많다. 하지만 나는 이 말씀을 만나고 말씀이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시 119:105)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알게 되었다. 삶의 갈피가 잡히던 그 순간, 정말 빛이 번쩍하는 순간이었다.

‘선을 행하는 삶이 무엇일까?’ 지금 내 나이보다도 젊었던 우리 부모님이 가정을 이루며 가훈으로 삼았던 성경 구절은 내 삶을 따라 나와 함께 흐르는 질문이 되었다. 이 글을 쓰며 80년대의 그 두 청년이 함께 꾸려갈 가정의 가훈으로 이 말씀을 정했을 때에는 과연 어떤 마음과 뜨거움이었을까 다시 찬찬히 헤아리게 되었다.

성경 읽기와 내 몫의 신앙, 그리고 내 몫의 삶
나의 성경 읽기는 때때로 무지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 몫의 신앙을 가지고 내 몫의 삶을 살고자 한다. 내 주변의 사랑스럽고 애틋한 많은 이들이 그리 살아가듯이. 이것은 결코 나 혼자 잘 살겠다는 의미가 아니다. 당신의 신앙을 존중하고 당신을 판단하지 않고 싶다는 것이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다. 생각하기도 전에 판단해버리는 순간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리고 판단하지 말라는 성경의 반복적인 메시지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온갖 판단의 집합소가 되지 않았는가? 이것 또한 물론 판단이다.

나의 신앙생활은 이렇게 혼란하다. 그러나 나는 이 혼란을 기뻐한다. 선이 무엇인지 묻고 찾아가는 과정 속에서 낙심하지 않고 피곤하지 않으면 무언가 거둘 것이라는 약속이 주는 막연함이 이제는 감사하다. 그때가 언제일지, 거두게 될 것이 무엇일지 모르겠으나 다만 바란다면 이 말씀이 이루어지기를 소망한다.

무리가 그들의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그들의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아니하리라. (사 2:4)

 

문아영
피스모모(www.peacemomo.org)라는 평화교육 단체를 2012년에 설립하여 함께 운영해오고 있다. 실천적으로 사유하는 삶에 관심이 많다. 네 마리의 고양이, 새촘이, 우아, 레오, 라라와 함께 살고 있다.

     관련기사
· 세계의 앓음을 같이 앓는 일에 대하여· ‘한 책의 사람’ 되기를 갈망하며
· 말씀의 우물에서 스스로 길어 마셔야 한다· 아버지 빈소에서 성경을 읽다
문아영의 다른기사 보기  
ⓒ 복음과상황(http://www.gosco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전체기사의견(0)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전체기사의견(0)
복음과상황 기사제보 광고문의 제휴안내 오시는길 개인정보취급방침 청소년보호정책 이메일주소무단수집거부
서울시 서대문구 창천동 506-10 산성빌딩 104호 우)120-836 | 전화 : 02-744-3010 | 팩스 : 02-744-3013
발행인 : 김병년 | 이사장 : 박종운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병년
Copyright 2008 복음과상황.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oscon@gosco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