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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고 깊은 계단
[336호 다르거나 혹은 같거나] 발달장애인 청년 김영진 이야기
[336호] 2018년 10월 29일 (월) 16:18:24 김영준 goscon@goscon.co.kr

#01
아직 영진 씨는 발화(發話)가 되지 않는다. 엄마를 ‘엄마’라고 발음하지 못한다. 입술을 살짝 눌러 미음(ㅁ)을 발음할 수 없다. 자음과 모음으로 적을 수 있는 소리를 내지 못한다. 표기할 수 없는 모음으로만 영진 씨의 말을 적을 수 있다. 엄마를 발음할 수 없는 영진 씨는 엄마를 부를 수 있을까. 입술과 혀를 섬세하게 움직여야 하는 자음을 발음하지 못하지만, 소통을 못하는 건 아니다.

낮과 밤 사이 저녁 어스름에 주방 일을 하다 보면, 전등불 켜는 걸 깜박하곤 한다. 해거름 빛이 남아있어 불편한지 모른 채 저녁 식사를 준비하고 있으면, 영진 씨는 켜야 할 전등 스위치를 정확하게 찾아내서 전등을 켜준다. 싱크대 위가 환해져서 뒤돌아보면, 영진 씨가 환하게 웃고 있다. 영진 씨는 말을 못하지 싶지만, 달콤하게 사랑을 표현한다. 발화하지 못해도, 말할 수 있다. 영진 씨는 엄마라 발음하지 못하지만, 엄마를 부를 수 있다.

잔소리도 한다. 한 번은 영진 씨 어머니께서 비닐 팩에 들어있던 냉동 고등어를 식탁 위에 올려놓았었다. 고등어 팩을 본 영진 씨가 주방 서랍에서 가위를 꺼내 팩의 입구를 자르고는 손가락으로 프라이팬을 가리켰다. 냉동됐던 고등어는 굳이 해동하지 않아도 된다는 듯, 깜빡 고등어를 놓고 있는 엄마의 손을 덜어주기 위해 가위질을 해주고, 바로 고등어를 굽지 않으면 고등어 살이 부서지기 때문에 빨리 구우라며 잔소리하듯 손가락으로 냄비를 가리키는 것이다.

선생님을 돕기도 한다. 수업이 끝나면, 영진 씨는 휠체어를 밀어 교탁 아래 서랍을 열고는 지우개를 꺼내 칠판을 닦는다. 앉은 자리에서 닦기 때문에 칠판 전체를 닦지 못하지만, 영진 씨가 할 수 있는 만큼 선생님의 수고를 대신한다. 선생님께서 무얼 하시는지 관심이 있고, 선생님께서 하시는 일을 함께하고 싶다고 돕는 손길로 말한다.

음절과 단어로 소리를 빚어내지 못하는 영진 씨의 발음은 투박한데, 하고자 하는 말은 투명하다. 투박한 영진 씨의 발음을 옮겨 적긴 어렵지만, 투명한 의도는 항상 이해된다. 불가에서 가르치는 염화미소(拈華微笑)처럼, 말하지 않아도 충분히 소통한다. 투박해도 투명한 말이 있다.

투박하나 투명한 영진 씨의 말을 담고 싶었다. 태풍 ‘콩레이’ 영향으로 비가 쉼 없이 내리던 밤에 영진 씨와 영진 씨 부모님과 밤늦도록 대화했다. 영진 씨의 투명한 말과 삶을 김 목사가 투박하게 번역한다.

 

   
▲ 보행 훈련 중 장애물 건너기

#02
부상당한 프로 운동선수가 수술 후 받는 재활 치료는 대단히 고통스럽다고 한다. 선수 생활을 계속할 수 있을지 불안 속에서 재활 치료를 받으며 훈련해야 하기 때문일 거다. 불안해서 더 혹독했을 재활 치료를 떠올리며, 운동장으로 복귀한 선수들이 인터뷰 중에 먹먹해 하는 경우가 잦다. 막막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 막막했던 시간을 떠올리며, 강하고 빠른 몸을 다시 갖게 된 순간 먹먹해졌을 것이다.

1999년에 태어난 스무 살 청년 영진 씨는 20년째 재활 치료와 훈련을 받고 있다. 보건복지부에서는 영진 씨를 지적·뇌병변 중복 1급 장애인으로 이해한다. 지적·뇌병변 1급 장애인 영진 씨는 갓난아기였을 때 젖을 빨 힘이 없어, 엄마가 숟가락에 젖을 짜 떠먹였다. 연체동물처럼 늘어져 있었고, 조각상처럼 조용했다. 생후 4개월이 됐을 때, 재활 치료를 시작했다. 목 가누기, 뒤집기, 배밀이, 기어 다니기 등의 재활치료를 받았다. 지적장애가 심할 경우 스스로 몸을 움직이려 하지 않는다. 치료사는 때로 불쾌한 자극을 주어서라도 움직이지 않는 아기의 몸을 강제로 움직이게 한다. 꼬집어서 고개를 들게 하고, 간질여서 등을 들썩이게 하거나 팔을 뻗게 한다. 다리를 강제로 오므리게 해서 앞으로 배가 밀리게 한다.

갓난아이는 자기 주먹을 보고 깜짝 놀라 울기도 한다. 얼굴 중앙에 입이 있다는 걸 갓난아이는 잘 모른다. 손이 제 것이고, 자기 얼굴에 입이 있다는 걸 알게 되는 것도 학습이다. 나아가 손에 음식을 들고 입에 넣게 되는 ‘손과 입의 협응’이 가능하기까지 시간이 걸리고 나름의 학습이 필요하다. 손과 입이 협응하여 스스로 음식을 입에 넣게 되기까지 영진 씨는 오랜 재활 치료를 받았다.

두 살 때 영진 씨는 엄마의 도움을 받아 숟가락을 잡고 밥을 뜨는 훈련을 했다. 3년 후 다섯 살 때 영진 씨는 손에 숟가락을 쥐고 밥 위에 숟가락을 얹게 되었다. 1년 후 여섯 살 때 밥을 얹은 숟가락을 입까지 올릴 수 있었다. 그로부터 6년이 지나 열두 살 때 숟가락으로 밥을 떠 입에 넣을 수 있었다.
재활 치료를 받은 지 20년이 된 지금은 고등학교 1학년이 됐고, 특수체육과 음악 치료, 수중 치료를 받고 있다. 20년째 재활 치료와 훈련을 받고 있는 영진 씨에게 인터뷰 요청을 했다. 영진 씨는 20년 동안의 재활 기간을 떠올리며 먹먹해 하지 않았다. 영진 씨는 앞니를 드러내 씨익 웃어주며 인터뷰에 응했다. 장애인으로 살면서 20년 동안 재활 치료와 훈련을 받으며 단 한 번도 인생이 막막하다 여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20년 재활 기간을 떠올리며 굳이 먹먹해질 이유가 없는 것이다.

   
▲ 제일 좋아하는 형과 함께

#03
인터뷰를 진행할 때 영진 씨는 지난 시간을 떠올리며 먹먹해 하지 않았지만, 영진 씨 부모님의 눈은 젖어 있었다. 영진 씨가 열 살이 되었을 때 손을 잡고 걸을 수 있게 되었는데, 영진 씨가 걷기 전 10년 동안 아버지는 극도로 우울하셨다고 한다. 어떤 사람의 위로에도 화가 났고, 목사의 오랜 기도마저 거절하고 싶었다. 하나님을 향한 욥의 욕에 공감했고, 욥의 신음 소리를 들었다. 10년 동안 그렇게 ‘욥기’를 살았다고 하셨다. 그러던 중에 다른 장애인 가족과 함께 성서를 읽고 기도하는 모임을 꾸리게 됐는데, 첫날 읽은 말씀이 요한복음 9장 1~3절이었다.

예수께서 길을 가실 때에
날 때부터 맹인 된 사람을 보신지라
제자들이 물어 이르되 랍비여
이 사람이 맹인으로 난 것이 누구의 죄로 인함이니이까
자기니이까 그의 부모니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

예수께서는 장애의 원인에 대해 굳이 말하지 않고, 장애인을 통해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 있다고 하신다. 장애 원인을 알 순 없지만, 장애인에게서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 나타날 것이다. 영진 씨 아버지께서는 이 말씀을 듣고, 절망의 계곡에서 산마루로 오르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장애인에게서,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 나타난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보려거든 장애인의 곁에 있으라. 장애인의 곁이 신학 하는 자리다.

#04
열한 살에 초등학교 1학년이 되었다. 한 시간 정도 비장애인 친구들과 공부를 하고, 특수학급으로 이동하게 되는데, 한 시간 동안 영진 씨는 교실의 중심이었다. 선생님께서 바른 자세로 앉거나 발표하는 학생에겐 영진이 옆에 앉아서 알림장을 쓸 수 있는 상을 주셨기 때문이다. 담임선생님께서 학습 태도가 좋고 수업 시간에 발표 잘하는 학생에게 특별한 상을 주신 것이다. 모범 학생에겐 또, 한 시간 동안 영진 씨 짝꿍이 되거나, 영진 씨에게 동화책을 읽어 줄 수 있는 자격을 주셨다. 같은 반 친구들은 기저귀를 차고 있고, 말하지 못하고, 글을 쓸 수 없고, 뛰어다니지 못하는 영진 씨의 알림장을 써주고 짝꿍이 되고 동화책을 읽어 주기 위해 수업 태도를 바르게 하고 발표를 잘하기 위해 애썼다. 같은 반 친구들과 함께하는 시간은 짧았지만, 적어도 한 시간 동안 영진 씨가 교실의 중심이었다.

초등학교 3학년 학예회 때다. ‘둥글게 둥글게’ 노래에 맞춰 춤 공연을 했다. 춤을 출 수 없는 영진 씨는 교실 복판에 서 있고, 친구들이 영진 씨를 중심으로 왼쪽, 오른쪽으로 돌면서 ‘둥글게 둥글게’ 노래를 부르며 춤을 췄다. 친구들의 시선과 손짓은 영진 씨에게 집중되었다. 영진 씨가 움직이지 않고 원의 중심을 지키고 서 있었기 때문에 친구들의 대형은 흐트러지지 않았다. 오른쪽으로 돌고 왼쪽으로 돌며 대형의 반지름은 늘어나기도 하고 줄어들기도 했지만, 움직이지 않고 중심을 지키고 서 있는 영진 씨 덕분에 둥근 모양을 유지할 수 있었다.

때론 오른쪽으로 때론 왼쪽으로 돌며 ‘둥글게 둥글게’ 노래하며 춤추기 위해서는 중심을 잃지 않아야 한다. 움직이지 않는 지적·뇌병변 중복 1급 장애인 영진 씨가 북극성처럼 중심이다. 중심을 잃지 않아야 한다. 장애인이 중심이다.

#05
학예회 때 흔들림 없이 중심을 지켰던 영진 씨는 움직임이 심한 친구들이 교실에서 공부할 때, 학교에서 복무하는 공익근무요원의 손을 잡고 운동장 트랙을 돌았다. 바닥을 끌듯 내딛는 영진 씨 걸음 뒤엔 먼지가 일지 않는다. 발자국도 깊이 파이지 않는다. 교실에서 공부하고 있는 친구들의 동요를 일으키지 않겠다는 듯, 먼지를 일으키지 않고 자국도 패이지 않게 영진 씨는 공익근무요원의 손을 잡고 운동장을 돌았다. 함께 걷는 공익근무요원의 발자국도 영진 씨처럼 가볍다. 영진 씨의 속도를 따라 천천히 걷다 보면, 빗은 머리에서 떨어진 분홍 머리핀이 묻혀 있고, 치토스 빈 봉지엔 모래가 차 있고, 축구공 가죽 조각은 더 이상 튀지 않았고, 유행 지난 캐릭터 장난감은 마침내 자유를 누리고 있었겠다. 달리지 못하는 영진 씨와 공익근무요원 둘이서만 걷는 운동장은 어느 때보다 고요했지만 비어 있는 건 아니다.

운동장을 함께 걷던 공익근무요원에게 목표가 생겼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은 목표였다. 복무 기간 2년이 지났을 때, 영진 씨가 다른 사람 손을 잡지 않고 운동장을 걷게 되기를 바라면서 하루하루를 채워 갔다. 고요하면서도 가득한 운동장에서 2년이 지나가고 복무 기간이 끝났을 때, 공익근무요원은 영진 씨 어머니에게 죄송하다고 말했다. 영진 씨가 아직 독립 보행을 못해 죄송하다며 울었다고 한다. 2012년 초등학교 특수학급에서 공익근무요원으로 복무하며 영진 씨의 손을 잡고 천천히 운동장을 걸었던 청년은 지금도 천천히 걷는 누군가의 손을 맞잡고 먼지를 일으키지 않으며 찬찬히 자기 길을 걷고 있을 것이다. 그렇게 신학 하며 살고 있을 것이다.

   
▲ 친구와 악기 놀이

#06
요새는 계단 위를 열심히 걷는다. 특수체육 시간에 울퉁불퉁하게 매트를 쌓아 오르내리는 훈련을 받게 되면서 아버지의 손을 잡고 나무 계단 오르내리기를 좋아한다. 이미 경험한 넓은 운동장 너머, 높은 세상에 대한 호기심일까. 호기심만큼, 좋아하는 만큼, 열심히 한 만큼 영진 씨는 높이 올라갈 수 있을까. 영진 씨는 어디까지 올라갈 수 있을까. 지적·뇌병변 1급 장애인 영진 씨는 얼마나 높이 닿을 수 있을까.

대개 사람들은 높고 높은 고지를 향해 올라가려 하고, 충분히 오르지 못하면 실패한 인생이라 여겨 좌절하거나 부끄러워하는데, 이제 1층에서 2층까지 아버지 손을 잡고 계단을 올라가는 영진 씨는 앞으로 얼마큼 오를 수 있고, 얼마나 올라가야 하는 걸까.

열 살 때부터 걷기 시작했고, 아직 독립 보행을 못하는 영진 씨의 계단은 높은 곳에 있는 계단이 아니다. 비장애인이 모르는 계단이 있다. 영진 씨가 요새 오르는 계단은 이미 올라온 계단의 끝자락에서 다시 이어진 계단이다. 영진 씨는 자신만 아는 깊은 골짜기에서 시작된 계단을 이미 올라왔다. 공익근무요원의 손을 놓고는 운동장을 걷기 힘들지만, 영진 씨는 깊이 파인 계곡에서 시작된 가파른 계단을 이미 이만큼 올라왔다.

산사람들은 산이 있어 산을 오른다고 한다. 산사람에게는 얼마나 높이 올라갔느냐가 중요한 까닭에 첨단 장비와 적지 않은 훈련비를 기업에서 후원받아 자칫 생명이 위험할 수 있는데도 산을 오른다. 그렇게 칸첸중가를 오르고, 케이투(K2)를 오르고, 마침내 지구에서 제일 높다는 에베레스트라 불리는 초모룽마산에 오른다. 그런데 말이다.

해발 8,848m 높이의 초모룽마를 오른 산사람도 오르지 못할 계단이 있다. 발달장애인들이 헤치고 올라온 ‘깊은 계단’이다. 발달장애인 영진 씨는 초모룽마 따위와 비교할 수 없는 깊이를 헤쳐 왔다. 비장애인이 디딜 수도 헤아릴 수도 없는 ‘깊은 계단’을 발달장애인 영진 씨는 헤쳐 왔다. 초모룽마의 높이가 가소로운 깊은 계곡이 있다. 거기 초모룽마를 뒤집어 심어 놓은 곳보다 더 깊은 곳에서 시작됐을 계단을 영진 씨는 이미 올라왔다. ‘깊은 계단’을 올라온 영진 씨가 이깟 1층에서 2층으로 올라가는 나무계단을 버거워하는 건 무능이 아니다. 그래서 말이다.

“발달장애인의 인생은 올라선 높이가 아니라, 헤쳐 온 깊이로 평가받아야 한다.”

 

김영준
소설을 좋아하고, 그림을 찾아본다. 《그림 속 성경이야기》라는 책을 썼고, ‘문학 속 성경이야기’라는 모임을 진행한다. 발달장애인 지원을 위한 사회적협동조합 ‘파파스윌’에서 이사 노릇한다. 이주민들과 함께 검정고시를 준비한 인연으로 이주민과 선주민이 함께 공부하는 교육협동조합을 준비 중이다. IVF 사회부 간사이고, 민들레교회 목사다. 김포에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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