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6호 다르거나 혹은 같거나] 발달장애인 청년 김영진 이야기

▲ 친구와 악기 놀이

#01
아직 영진 씨는 발화(發話)가 되지 않는다. 엄마를 ‘엄마’라고 발음하지 못한다. 입술을 살짝 눌러 미음(ㅁ)을 발음할 수 없다. 자음과 모음으로 적을 수 있는 소리를 내지 못한다. 표기할 수 없는 모음으로만 영진 씨의 말을 적을 수 있다. 엄마를 발음할 수 없는 영진 씨는 엄마를 부를 수 있을까. 입술과 혀를 섬세하게 움직여야 하는 자음을 발음하지 못하지만, 소통을 못하는 건 아니다.

낮과 밤 사이 저녁 어스름에 주방 일을 하다 보면, 전등불 켜는 걸 깜박하곤 한다. 해거름 빛이 남아있어 불편한지 모른 채 저녁 식사를 준비하고 있으면, 영진 씨는 켜야 할 전등 스위치를 정확하게 찾아내서 전등을 켜준다. 싱크대 위가 환해져서 뒤돌아보면, 영진 씨가 환하게 웃고 있다. 영진 씨는 말을 못하지 싶지만, 달콤하게 사랑을 표현한다. 발화하지 못해도, 말할 수 있다. 영진 씨는 엄마라 발음하지 못하지만, 엄마를 부를 수 있다.

잔소리도 한다. 한 번은 영진 씨 어머니께서 비닐 팩에 들어있던 냉동 고등어를 식탁 위에 올려놓았었다. 고등어 팩을 본 영진 씨가 주방 서랍에서 가위를 꺼내 팩의 입구를 자르고는 손가락으로 프라이팬을 가리켰다. 냉동됐던 고등어는 굳이 해동하지 않아도 된다는 듯, 깜빡 고등어를 놓고 있는 엄마의 손을 덜어주기 위해 가위질을 해주고, 바로 고등어를 굽지 않으면 고등어 살이 부서지기 때문에 빨리 구우라며 잔소리하듯 손가락으로 냄비를 가리키는 것이다.

선생님을 돕기도 한다. 수업이 끝나면, 영진 씨는 휠체어를 밀어 교탁 아래 서랍을 열고는 지우개를 꺼내 칠판을 닦는다. 앉은 자리에서 닦기 때문에 칠판 전체를 닦지 못하지만, 영진 씨가 할 수 있는 만큼 선생님의 수고를 대신한다. 선생님께서 무얼 하시는지 관심이 있고, 선생님께서 하시는 일을 함께하고 싶다고 돕는 손길로 말한다.

음절과 단어로 소리를 빚어내지 못하는 영진 씨의 발음은 투박한데, 하고자 하는 말은 투명하다. 투박한 영진 씨의 발음을 옮겨 적긴 어렵지만, 투명한 의도는 항상 이해된다. 불가에서 가르치는 염화미소(拈華微笑)처럼, 말하지 않아도 충분히 소통한다. 투박해도 투명한 말이 있다.

투박하나 투명한 영진 씨의 말을 담고 싶었다. 태풍 ‘콩레이’ 영향으로 비가 쉼 없이 내리던 밤에 영진 씨와 영진 씨 부모님과 밤늦도록 대화했다. 영진 씨의 투명한 말과 삶을 김 목사가 투박하게 번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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