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7호 3인 3책]

교회의 종말

다이애나 버틀러 배스 지음  / 이원규 옮김
KMC 펴냄 / 2017년                 

몇 주간 다이애나 버틀러 배스의 《교회의 종말》을 들고 다니며 읽었더니, 지인들이 ‘졸업시험에 떨어지더니 본색을 드러내는 것이냐’고 물었다. 실제 책 내용은 그런 게 아니라고 변명을 해도 소용이 없었다.

어쩌면 나를 향한 질문은 교회를 둘러싼 어두운 그림자의 존재를 암시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자신이 속한 공동체가 위기에 처했다고 느끼면 ‘우리’와 ‘남’을 가르기 시작한다. 평화로운 시기에는 별 문제 되지 않았던 다양성이 공동체를 파괴하는 요소로 부상하는 현상도 같은 시점에 일어난다. 동시에 그 집단의 정체성에서 핵심이 무엇인지에 대한 정의가 시도되기도 한다. 어느 정도는 농담이었겠지만, ‘네가 교회의 종말을 획책하는 세력이냐?’ 같은 말이 사람들 사이에서 오가는 상황이 교회의 번영기라고 보기는 어렵지 않겠는가.

이 책 역시 교회의 위기에 대해 말한다. 저자에 의하면 미국에서 교회를 비롯한 전통적 종교의 쇠락은 종단과 교파를 가리지 않고 일어나는 현상이다. 20세기 후반에 이르러 미국인들은 종교적 소속을 불문하고 ‘종교적’이라는 단어를 싫어하기 시작했다. 신도가 늘고 있는 종교가 있긴 하지만 그들의 종교는 다음 세대에 전수되지 않는다. 대신에 ‘영적인 것’에 대한 추구는 증가한다. 명상은 인기 있는 프로그램으로 부상했고, 요가와 타로카드 같은 초자연적 요소를 전제하는 활동들은 여전히 성장한다. 전통적인 제도 안에 남아있는 종교인들 중에는 ‘영적인’이라는 단어에 위협을 느끼는 이들이 생겨났으나, 많은 종교인들은 자신들이 ‘영적이며 동시에 종교적인’ 위치에 있다고 여기는, 타협적인 위치에 서게 되었다.

《교회의 종말》이 훌륭한 점은 종교의 몰락과 영성의 부흥이라는 상황에서 긍정적인 면을 찾을 수 있게 도와준다는 것이다. 제도적 종교 안에서 바라볼 때 종교를 비롯한 여러 종류의 영적인 활동들 사이에서 오가는 이들은 ‘교회 소비자’로 보이나, 저자 관점에서 이들은 정체성을 찾아 순례하는 이들이다. 그들은 새로운 기회를 찾아 아메리카 대륙으로 이동한 이들처럼 자신이 태어난 땅을 떠나 새로운 기회를 얻으려 하고 있다는 것이다. 새로운 맥락 안에 자신을 둠으로써 새로운 정체성을 얻는 과정, 저자에 따르면 이것은 근대 이전의 기독교가 말하던 ‘믿음’과 유사한 것이다. 그리고 순례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특징짓는 삶의 방식이기도 했다. 아브라함도, 예수도 모두 순례하는 자들이었다.
미국인뿐 아니라 한국인들도 자신이 머무를 곳을 찾아 스스로 길을 떠난다. 전에는 들어보지 못했던 새로운 운동들이 나타나고 사라지는 사이에 한 사람의 정체성은 땅과 땅 사이를 옮겨 다니는 유목민의 그것처럼 계속 변한다. 사람들은 이 여정을 위한 지혜를 얻기 위해 영적인 활동을 찾는다. 다시 유목민의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어쩌면 이 시대에 부름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은 아브라함과 야곱의 무리처럼, 혹은 예수와 갈릴리 친구들의 무리처럼 유랑하는 이들이 아닐까?

기독교 전통은 새로운 영적 여정을 떠난 이들과 기존의 교회 안에 머무는 이들 모두에게 질문을 던진다. 양쪽 모두에게 질문을 던진다. 사실 하나님의 전체 백성 안에는 두 종류의 사람들이 언제나 있어왔으므로 이 질문은 전혀 낮선 것이 아니다.

‘순례의 길 위에 있는 당신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콘크리트로 지어진 교회당 속에 있는 당신은 순례하는 백성을 어떻게 환대할 것인가?’

*책에 자주 등장하는 ‘감독교회’는 미국을 기반으로 하는 성공회 관구 ‘The Episcopal Church’의 번역어이다. 
 

여정훈
대학원에서 신약성서를 공부하던 중 공부에 재능 없음을 느끼고 기독교 시민단체에 취직한 후 자신이 일도 못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일 못하는 사람 유니온’을 만들었다. 《일 못하는 사람 유니온》의 공저자 중 한 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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