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8호 커버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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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사람들의 권리
‘경제’는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재화나 서비스를 생산·유통·소비하는 개인과 기업 그리고 국가 활동이다. 또한 우리 삶에서 차지하는 비중과 역할이 점점 커지는 갈등의 진원지이기도 하다. ‘경제학’은 사람을 추론하고 상상하고 통찰하여 부(富)와 재화와 용역을 생산하고 소비하는 일상의 활동을 분석하는 사회과학으로 궁극적 목적은 ‘분배’에 있다. 18세기 자본주의 탄생과 발전은 지구 자체에는 파멸을 예고하는 문명이었고, 미래를 담보로 현재를 사는 방식이었다. ‘시장’은 물질적 필요를 충족시키고 가난과 질병 등으로부터 인류를 탈출시켰지만, 자본주의가 고도화되면서 강자가 약자를 착취하는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경기를 해야 하는 사회 불균형을 심화했다. 불평등한 경제 성장은 소득 격차를 가중하고, 교육의 불평등은 기회의 불평등으로 이어져 민주사회를 질식시킨다. 심지어 시장경제의 역동성과 효율성 그리고 생산성마저 떨어뜨려 공동체를 위기로 몰아넣을 수 있다.
근대 국가의 출발은 정치적 경제적 특권이 없는 민주사회, 기회가 평등하게 주어지는 사회였지만, 자본주의는 인간을 사물로 여기고 삶의 방식에까지 극대화와 최적화를 적용했다. 특히, 제품과 서비스에 대한 생산과 소비 그리고 분배하는 과학적 규범적 가치의 개념을 ‘효용’으로만 축소해 경제학을 빈곤하게 만들었다. ‘시장’은 사회적 비용과 편익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는 ‘외부성의 한계’를 노출해 사회문제를 증폭시켰다. 자본주의 주류 경제학은 인간을 호모에코노미쿠스(Homo economicus, 경제적 동물)라고 생각하는데 “이러한 인간들이 만나 행동하는 곳이 ‘시장’이고, 시장은 효율적이고 가장 완벽한 경제 제도이며, 스스로 잘 작동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전통적 시장은 상호성과 관계성 문화 속에서 발전했고, 재화와 용역에 대한 ‘거래’는 실제로 상품의 만남이 아니라 인간적 요소가 함유되어 작동하는 살아 있는 장(場)이었다.
인간의 이타주의 사고에 회의적이었던 근대 경제학의 아버지 애덤 스미스가 중시한 것은 사람의 ‘관계성’과 ‘공감’이었다. 그는 ‘인간’을 관계적 실체로 서술하였으며, ‘시장’을 도덕적으로 자유로운 곳이라 믿었고 공동체적이고 인간적인 발전을 위한 장소로 인식하였다. 또한 “인간은 이기심을 가지고 있지만 타인의 운명에 관심을 가지며 타인의 행복을 필요로 한다”면서 문명사회 안에서 인간에겐 언제나 거대한 대중의 협동과 지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지난 200여 년 동안 세계 경제의 고민은 ‘희소한 자원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활용할 것인가’였다. 더 진보한 좋은 국가는 부유한 사람들이 얼마나 잘 사는가로 평가되는 것이 아니라,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이 복지 혜택과 권리를 얼마만큼 누릴 수 있는지로 평가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