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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모두에게 기적이 되는 만남
[338호 최은의 시네마 플러스] <나미야 잡화점의 기억>2017)
[338호] 2018년 12월 27일 (목) 16:52:57 최은 goscon@goscon.co.kr
   
 

“그래서 고민 상담실을 계속하겠다고? 땡전 한 푼 안 들어오는 일을?”
“돈이 문제가 아니야. 돈 버는 일이 아니니까 오히려 더 좋은 거야. 이익이니 손해니
그런 건 다 빼고 다른 누군가를 위해 진지하게 뭔가를 고민해 본 적이
지금까지 한 번도 없었어.”
- 히가시노 게이고,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현대문학)에서

아츠야(야마다 료스케), 쇼타(무라카미 니지로), 고헤이(칸이치로)는 아동 보육 시설 ‘마루코엔’ 출신 친구들입니다. 적당히 반듯하고 적당히 비뚤어져서, 필요할 때는 의기투합하여 좀도둑질도 하고 의적(?) 행위도 곧잘 하는 이들인데요. ‘일’을 치르러 나갔던 어느 날 밤 훔친 자동차가 말썽이어서, 세 친구는 폐가가 된 나미야 잡화점으로 숨어 들어갑니다. 날이 밝기를 기다리던 이곳에서 그들은 셔터 틈으로 누군가가 떨어뜨리고 간 편지를 읽게 되지요. ‘생선가게 뮤지션’이라는 이름으로 온 편지였어요. 건강이 좋지 않은 아버지의 생선가게를 물려받아야 할지 대학을 그만두면서까지 결단한 뮤지션의 길을 계속 가야 할지 묻고 있었습니다. 아버지도 물려받을 가게도 없는 세 청년에게는 배부른 고민이었겠지요.

몇 차례 까칠한 편지가 오가는 동안 세 친구는 충격적인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 편지는 32년 전의 시공간에서 날아든 것이고, 나미야 잡화점 안에서는 시간이 더디게 흐르며, 생선가게 뮤지션은 가수 세리(카도와키 무기)를 스타로 만든 노래의 작곡자라는 사실이었죠. 뮤지션에게 더 이상 모질게 굴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는 ‘음악을 해야만 하는’ 사람이었음을을 알게 되었거든요.

미래에서 온 청년들과 과거에서 편지로 상담을 청해오는 사람들, ‘정답’을 알고 있는 사람들과 길을 헤매는 사람들이 대화하는 신비로운 공간. 그들에게 나미야 잡화점은 혹시 두 세계를 이어주는 ‘나니아의 옷장’ 같은 곳이었을까요?

최초에 ‘고민’이 있었더라
히가시노 게이고의 동명 베스트셀러가 원작인 영화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은 1969년 나미야 잡화점이 ‘고민 상담소’의 역할을 시작할 무렵의 이야기로 출발합니다. 나미야(니시다 토시유키) 할아버지가 꼬맹이 손님들 상담 메모에 답을 해주는데요, “우주 비행사가 되고 싶은데 멀미가 심해요.” “어떻게 하면 시험에 백점을 맞을 수 있나요?” 같은 내용입니다.

재치 있으면서도 성실한 답장으로 상담 창구가 인기를 끌자 제법 심각한 내용이 들어오기 시작했죠. 유부남의 아이를 임신한 젊은 여성의 고민처럼요. 그런 경우 할아버지는 이른 아침 가게 뒤편의 우유 상자에 따로 답장을 넣어 둡니다. 개구쟁이들이라도 그 편지들은 함부로 열어보면 안 된다는 것을 모두 알고 있었어요. 그것은 일종의 약속이었습니다.

그런데 나미야 할아버지는 어쩌다가 이 일을 시작하게 된 걸까요? 원작에서는 할아버지의 이름과 아이들의 장난 때문이었다고 설명합니다. ‘나미야’ 할아버지의 이름을 ‘나야미(고민)’라고 부르며 아이들이 놀리면서 시작되었다고요. 하지만 심각한 고민을 보내온 사람들이 이리저리 서로 얽혀 있다는 점은 이 일에 그보다는 근본적인, 보이지 않는 힘이 개입되어 있다는 사실을 암시합니다. 예컨대 생선가게 뮤지션의 곡으로 유명해진 세리와 유부남을 사귀던 여성이 낳은 딸은 둘 다 마루코엔에서 자랐습니다. 나미야 잡화점에 숨어든 세 청년이 자란 보육원이었죠. 낮엔 회사에서 밤엔 바에서 일하던 여성 ‘길 잃은 강아지’도 같은 보육원 출신입니다. 대부분의 사연은 사적이고 은밀한 것들이었고, 그들이 모두 나미야 할아버지의 조언을 그대로 따른 것도 아니었는데요. 그들의 사적인 결정이 어떤 형태로든 마루코엔과 그곳 아이들을 보호하고 돌보는 결과를 가져왔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마치 마루코엔을 지키는 수호신이 일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어요.

마루코엔의 원장은 수호신과 같은 인물로 설립자였던 자신의 누나를 생각합니다. 젊은 날 세상을 떠난 누나 아키코는 한때 신분이 낮은 남성과 사랑에 빠졌다는데요. 나미야 할아버지가 마루코엔과 연결되는 것은 바로 이 대목에서입니다. ‘아가씨’를 사랑해서 차마 넘보지 못할 인연을 꿈꾸던 젊은 나미야는 홀로 얼마나 많은 날을 번민했을까요. 누구보다 간절히 고민을 나눌 누군가를 필요로 하지 않았을까요. 결국 오래 전 그의 고민과 선택의 결과가 새로운 인연을 남기고, 그 자잘한 인연의 끈들이 이어져 그 날 밤의 ‘기적’이 있었던 거겠지요.

“그 사람이 행복했으면 좋겠어.”

나미야와 아키코의 선택이 마루코엔의 설립에 영향을 미치고, 생선가게 뮤지션의 고민이 세리의 미래와 관계되고, 장난으로 시작된 좀도둑 청년들의 답장이 다시 마루코엔의 운명과 만나는 인연의 고리는 삼십 년에서 백 년에 가까운 시간과 차원을 넘나드는 판타지가 됩니다. 다만 나미야 잡화점 너머의 이웃들은 천년만년 먼 세상에서 구원자가 도래하기를 마냥 기다리는 이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어설프게나마 타인에게 답이 되어주려 애쓰고, 의도치 않은 방식이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서로가 서로에게 구원자가 되어 주었죠. 이를테면 나미야는 차라리 ‘현실’이고 ‘현재’입니다. 나의 사적이고 사소한 선택이나 누군가의 은밀한 고민이 나 자신 또는 내가 속한 공동체와 무관한 일이 아니라는 깨달음이 도래하는 시공간이기 때문이지요. 우리 사는 이 세계가 그렇지 않던가요. 수전 손택처럼 생각해보자면, 타인의 고통은 어떤 형태로든 나의 특권과 연결되어 있지요. 아니면 동일한 고통이거나요.

그 밤 나미야 잡화점은 아츠야와 친구들에게 특히 그런 깨달음의 공간이었습니다. 시간이 어긋난 탓에 나미야 할아버지 대신 ‘길 잃은 강아지’ 씨에게 답을 쓰게 된 아츠야는 그로 인해 무책임하게 자신을 낳고 코인로커에 버린, 한 번도 보지 못한 엄마를 생각하게 됩니다. 처음엔 ‘길 잃은 강아지’에게 분노와 원망을 투사하다가 그의 진심을 읽게 되지요. 쇼타와 고헤이가 그 상담을 통해 처음으로 타인의 행복에 관심을 두며 자신들의 존재감을 발견했다면, 아츠야는 ‘길 잃은 강아지’의 행복으로 스스로를 치유하고 사람에 대한 믿음을 얻었습니다. 버림받고 학대받아 스스로 하찮다고 느꼈던 그들의 삶이 달라졌어요.

보육원을 벗어나 냉혹한 세상에서 각자도생해야 했던 세 청년이 생애 처음으로 타인을 위해 머리를 맞대고 진지하게 고민을 합니다. “그 사람이 행복해졌으면 좋겠어.” 세상에서 가장 큰 기적이 이제 막 발생했어요. 돌아올 이익에 대한 계산 없이, ‘나’를 넘어서는 기적. 올 한 해 우리에게도 이런 기적이 찾아올까요?

 

최은
중앙대학교 첨단영상대학원에서 영화이론을 공부했고(영화예술학 박사), 중앙대와 청어람아카데미 등에서 강의했다. 영화 연구자로 대중영화가 동시대 관객과 소통하는 방식에 관한 책을 집필하면서, 부르심에 따라 비정규직 말쟁이 글쟁이의 삶을 충실히 살고 있다. 저서로는 《영화와 사회》(공저), 《알고 누리는 영상문화》(공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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