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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림 신앙의 사회적 쓸모
[338호 3인 3책]
[338호] 2018년 12월 27일 (목) 17:01:16 여정훈 goscon@goscon.co.kr
   
 

예수, 성전, 인자의 재림
로버트 H. 스타인 지음 / 안철훈 옮김
새물결플러스 / 2017년
                                   
십여 년 전 복음주의자를 자처하던 한 선배가 로버트 스타인의 책 《메시아 예수》를 권했었다. 그 책에서 저자는 복음서 속 예수의 기적들을 모조리 ‘팩트’로 입증하고 싶어 했다. 당시 존 도미닉 크로산과 존 쉘비 스퐁 등 ‘예수 세미나’ 저자들에 심취해 있던 나에게 스타인의 책은 거리낌을 유발했다. 이후 몇 년이 지나 작은 책 읽기 모임에서 《공관복음서 문제》라는 책으로 스타인을 다시 접했다. 두 번째로 만난 그는 의외로 상식적이며, 요약과 설명에서 탁월한 부분도 있었다. 그리고 오늘, 나는 그의 책을 한 권 추천하려고 한다.

그를 비롯한 ‘복음주의’를 지향하는 신학자들 글을 읽을 때 내가 불편한 이유는 이들이 기적, 부활, 재림 같은 주제를 수호하는 데 집착한다는 인상 때문이었다. 그런 요소들은 근대적 교육을 통해 형성된 직관과 충돌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최근엔 좀 다르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인간 삶에 적용되는 규칙들이 자연과학적 공식으로 환원되지 않는다는 말의 의미를 이해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한 법칙이 적용되는 층위를 잘 설정하는 단계는 매우 중요하다. 자연과학적 층위와 사회적 층위에는 다른 법칙이 적용되고, 이를 잘못 다루면 비극이 발생하기도 한다. 박노자가 《우승열패의 신화》(2005)에서 말하는 내용은 그런 면에서 매우 인상적이다. 그에 따르면 구한말 지식인들은 생물종 진화에 대한 다윈의 이론을 사회적 층위에 대한 것으로 오해해 일본의 통치를 ‘적자생존’의 결과로 이해하고 수용했다. 애국지사들이 순식간에 ‘친일파’로 돌아설 명분이 여기에 있었다는 것이 박노자의 진단이다.

근대 이후 사람들은 중세와 그 이전 사람들과는 달리 자연적 층위의 언어로 사회적 층위에서 일어나는 일을 말하는 데 익숙하지 않다. 천체, 지진, 질병 같은 단어들은 우리 뇌에 자연과학 회로를 켜라는 지시를 내린다. 이 회로의 작동으로 ‘별’과 ‘동정녀 출산’이 등장하는 성탄 이야기, ‘물질의 복제’ 혹은 ‘화학적 변화’를 소재로 하는 기적 이야기, ‘손상된 신체조직의 회복’을 다루는 부활 이야기, ‘하늘’과 ‘구름’이 언급되는 재림 이야기는 모두 자연과학 코너로 분류된다. 그리고 대개 분류되자마자 폐기된다. 직관적으로 이 이야기들을 지켜야 한다고 느끼는 보수주의자들은 이 폐기 과정을 막거나, 적어도 지연시켜 보려고 물리법칙의 ‘개방성’을 주장하는 전략을 펼친다. 하지만 효과적이지는 않다. 물리나 화학 영역에서 적용되는 법칙을 변경하는 절차는 해당 분과 전문가가 아니면 함부로 시도할 수 없다.

그럼에도 왜, 보수적 기독교인들은 성육신, 기적, 부활, 재림 같은 신앙의 항목들을 수호하는 데 노력을 기울이는가? 내가 이제 이해하는 바는 그들이 인간을 둘러싼 세계의 ‘개방성’ 또는 ‘변화 가능성’을 수호하고 싶어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기적적으로 개입하는 세계에 대한 이야기는 물리학과 생물학 층위를 다루는 것이 아니라 인간 삶의 사회적 영역, 그러니까 갈등과 화해, 사랑과 단절을 반복하는 타자와의 관계라는 층위에 대한 이야기다. 로버트 스타인은 《예수, 성전, 인자의 재림》에서 복음서 저자가 1세기 회중에게 ‘인자의 강림’을 언급할 때 바로 그런 효과를 노렸다고 정리한다. 사람의 아들은 언제 도래할지 모른다. 이 심상은 사회적 상상력의 영역에서 작동하도록 기획되어 있다. 이 심상을 되새김으로써 우리는 자신을 더 개방된 인간으로 만들며, 낯선 자(인자)의 도래를 통한 새로운 가능성의 출현을 기대함으로써 그 새로운 가능성 자체가 된다.

우리의 하나님이자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복스러운 소망에 관한 열망은 … 기독교 공동체의 소망과 열망의 핵심이었고, 지금도 그러하며, 앞으로도 계속 그러할 것이다. 이것이 기독교 공동체가 ‘나라가 임하시오며’ 그리고 ‘마라나타’라고 기도해 왔고, 기도하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 기도할 이유다. (219쪽) 
 

여정훈
대학원에서 신약성서를 공부하던 중 공부에 재능 없음을 느끼고 기독교 시민단체에 취직한 후 자신이 일도 못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일 못하는 사람 유니온’을 만들었다. 《일 못하는 사람 유니온》의 공저자 중 한 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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