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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웠던 삶을 기리며
[이웃 곁으로, 이웃 속으로] 우리 시대 ‘소자’ 이야기
[339호] 2019년 01월 30일 (수) 13:14:18 김충호 goscon@goscon.co.kr
   
▲ 사진은 본문과 관계 없음

햇살보금자리는 노숙인 지원 시설로 영등포산업선교회 산하 기관이다. 이곳에서 일하며 인연이 닿은 노숙인들의 삶을 기억하며, 햇살보금자리의 의미를 되새겨 본다. 

돈을 빌려주던 S씨
2010년 3월, 햇살보금자리에 처음 출근하는 날 사무실 문 앞자리에 시선의 초점이 흐릿한 노숙인이 앉아 있었다. 그는 이따금 움찔거리며 주변을 경계하듯이 눈을 이리저리 굴리며 오랜 시간 앉아 있었다. 매일 같은 자리, 같은 자세로 앉아 있던 그는 햇살보금자리에 출석 도장을 찍듯이 그저 왔다가 저녁이면 돌아갔다. 그를 본 지 어느 정도 세월이 지났을 때, 그를 ‘담당’하게 됐다.

S씨는 10대 때 그의 지적장애를 감당하지 못한 부모에게 버림받아 거리 노숙을 시작했다. 거리 노숙을 하고 있던 S씨를 발견했던 사회복지사의 말에 의하면, 그는 쓰레기더미 안에서 잠을 잤고 보기에도 부패 상태가 심한 음식을 손으로 집어 먹었다고 한다. 햇살보금자리 실무자를 통해 ‘발견’된 S씨는 정신병원으로 인계되었고 상태가 호전되어 햇살보금자리로 되돌아온 것이었다.

이후 S씨는 햇살보금자리 임시주거지원사업(고시원 및 쪽방 월세 지원)을 통해 기초생활수급을 받게 되었고 고시원에서 한동안 생활했다. 기초생활수급을 받아 매일 같이 슈퍼에 가서 군것질하고 햇살보금자리에 앉아서 시간을 보내는 S씨가 지적장애가 있다는 것을 파악한 주변 노숙인이 그에게서 돈을 빌려 가 갚지 않는 일들이 자주 발생했다. “돈을 절대로 빌려주지 말라”고 아무리 말려도, S씨는 “언젠가는 갚을 것”이라며 오히려 나를 안심시켰다.

그런 그가 햇살보금자리에서 제공하는 무료급식을 드시다가 정수기에서 물을 마시고 제자리로 돌아가는 중에 쓰러졌다. 당직 근무자가 황급히 자동심장충격기(AED)와 인공호흡을 실시했고 119 구조대원이 도착하여 입안에 있는 음식물을 제거하고 다시 인공호흡을 실시했다. 이내 근처 병원으로 이송되었고 심근경색으로 추정된다는 이야기를 듣곤 가족과 친지 등의 연락처를 수소문하였으나 쉽게 알아낼 수는 없었다.

다음날 해당 병원을 통해 S씨가 뇌사 상태이며 장기기증센터에서 그의 가족을 찾고 있다는 이야기를 전달받았다. 그리고는 몇 시간 안 되어 장기기증센터는 그의 아버지와 연락이 닿았다. 아버지는 ‘30년 전에 버리다시피 하였고 형편도 마땅치 않아 장례를 치러줄 여력이 없다’고 했다. 그리고 ‘아들의 장기기증은 동의하며 장례는 참석하지 않을 것이고 장기기증센터에서 해달라’는 뜻을 전했다.
30년 전에 가족에게 버림받았던 S씨가 죽어서까지 버림받는 것 같아 마음이 쓰렸다. 그렇게 S씨는 외롭게 이 세상을 떠났다.

운동에도, 일에도 열정적이던 J씨
열정 가득한 축구단 동료 J씨 햇살보금자리에서는 매주 목요일마다 축구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왕년에 공 좀 차보셨다는 분들도 있고 축구는 처음 해보지만 혼자 지내는 것보다는 함께 어울리고 싶은 분 등 각자 다른 동기로 같이 공을 차며 논다. 실력에 상관없이 재미있고 건강도 챙기는 시간을 보내자는 취지로 처음 시작했던 축구 프로그램을 어느덧 6년째 진행하고 있다. 

J씨는 축구 프로그램이 가장 왕성하게 진행하던 때 함께했다. 그는 넓은 운동장을 쉼 없이 뛰어다니고 공을 소유했을 때는 지체 없이 앞으로 멀리 차는 것을 좋아했다. 그가 축구 프로그램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이유는 체력도 기르고 다이어트를 하기 위해서였다. 축구를 하기 전에 팔굽혀펴기와 철봉 체조로 몸을 예열할 정도로 운동에 열정이 있는 분이었다.

그런 열의라면 무슨 일인들 못할까. J씨가 성실하게 축구시합을 하는 모습을 본 햇살보금자리 일자리 담당자가 특별자활근로를 권하여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예상대로 결근 없이 성실하게 활동하였고 다른 분이 결근할 경우 대신 근로를 해주기까지 했다. 이를 통해 일에 대한 자신감이 붙으셨는지 휴무 때에는 영화나 드라마의 보조출연자(엑스트라) 알바를 하러 지방에 자주 내려가셨다.

그러던 어느 날 J씨는 채식을 하겠다고 선언하셨다. 그래서 축구 활동 후 같이 식사하기에 어려움이 많았다. J씨가 가장 좋아했던 음식은 어묵국으로 무료급식을 드실 때, 어묵을 한가득 쌓아놓고 흐뭇한 미소를 지으셨는데… 식단 조절과 운동 때문인지 점점 야위어갔다. 

노숙인 분들 중에는 하루 세끼를 챙겨 먹기 위해 급식소를 부지런히 돌아다니는 분도 있지만, 하루에 한 끼만 드시는 분도 있다. 당연히 영양 불균형으로 고생하는 분들도 적지 않다. 그래서 J씨에게 일주일에 한 끼 정도는 육류를 챙겨 드시라고 했으나, 채식을 하며 당신 삶이 눈에 띄게 좋아졌다며 거부하셨다.

영양과 관련하여 대화한 지 얼마 안 되어 시설에서 밤잠을 주무시고 아침에 일어나는 시간에 급하게 가슴이 안 좋다고 하시며 119를 불러 달라고 하셨다. 급하게 119 호출을 하여 병원에 입원하였고, 일주일 뒤 후천면역결핍증(AIDS)으로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는 무연고 사망자로 분류가 되어 (사)나눔과나눔에 도움을 받아 무연고 1일 장례를 진행했다. 별다른 영정사진이 없어 축구 유니폼을 입고 있는 J씨의 사진을 확대하였다. 조문객은 축구단 동료 외에 없었다.   

문을 열어주지 않는 폐쇄적인 M씨 
M씨는 햇살보금자리에서 운영하는 매입임대주택 반지하에서 거주하고 있었다. 사례관리(case management)를 위해 그의 초기상담일지(Intake)를 확인해보았는데 이름과 주민번호 외에는 별다른 내용이 없었다. 당시 상담자에게 여쭤보니 완강하게 “다른 내용은 말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는 것이다.

그는 일을 하며 기초생활수급을 받는 조건부 수급자였다. 아침에 일찍 나가서 수급 일을 하고 집으로 돌아와 종일 텔레비전만 보는 것이 무료하여 야간에 전단지 돌리는 일도 겸하고 있었다.

M씨는 핸드폰이 없어 집 전화가 유일한 연락 수단이었는데 연락이 잘 닿지 않아 불편했다. 어느 날 월세가 미납되어 연락했지만 전화를 받지 않았다. 며칠 동안 아침 이르게도 전화하고, 저녁 늦게도 연락을 취했으나 연락이 닿지 않았다. 하는 수없이 직접 찾아가 문을 두드렸다. 같은 건물에 사는 입주민이 그를 본 지 꽤 된 것 같다는 말도 듣고 불안한 생각이 들어 관리자 보조키로 조심스레 문을 열었다.

M씨가 문 앞에 있었다. 가만히 서 있었다. 그러고는 “남의 집 문을 왜 함부로 여냐”고 역정을 냈다. 이래저래 불안한 마음에 실례를 무릅쓰고 문을 열게 되었다고 말씀드리며 밀린 월세를 내달라고 하니, 밀린지 몰랐다며 내겠다고 하셨다.

다음 날 실제로 월세를 납부하시고는 몇 달 안 되어 보증금 인상을 통해 월세 임대를 전세 임대로 전환하셨다. 그러시고는 이제는 월세 낼 일 없으니 되도록 본인 집에 오지 말라고 하셨다. 하지만 얼마 안 되어 건물 정화조 비용을 걷게 되면서 M씨 집 문을 두들기게 되었다. 지난 만남 때 ‘다음에 방문을 하면 문을 열어달라’고 부탁을 해놔서 그런지 ‘비교적’ 금방 문을 열어주셨다. M씨에게 정화조 요금을 내야 한다고 말씀드리니 “전세로 전환했는데 왜 또 비용이 발생하느냐”며 역정을 내셨다. 차근차근 설명해 드리자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해당 비용을 주셨다.

서울에 폭우가 내렸던 어느 추석, 햇살보금자리에서 운영하는 매입임대주택 반지하가 모두 침수되었다. 반지하 집을 돌며 상황을 파악하며 M씨 집을 들르게 되었다. M씨 집 복도부터 물이 발목까지 차 있었고 문은 열려 있었다. 침수로 인해 갈라진 바닥과 어떻게든 피해를 줄이고자 물이 닿지 않는 곳에 쌓아둔 가전제품 사이에 M씨는 누워 자고 있었다. M씨를 깨워 해당 구청에서 지원이 가능한 부분과 햇살보금자리에서 지원이 가능한 부분을 설명했다. M 씨 성격상 역정을 내시겠거니 하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풀이 죽은 표정으로 “알겠다”고 하실 뿐이었다. 피해 복구 뒤에 만난 M씨는 이전과 조금 달랐다. 조용한 성격과 전화를 안 받는 것은 같았으나 역정을 내지는 않았다. 3년 뒤, 관리자 보조키를 다시 사용해 M씨의 집에 들어가야 했을 때는 응급조치할 기회도 없었다.

거리에서 고함을 지르던 N씨
N씨는 영등포역 대합실에서 노숙하는 노숙인이었다. 그는 볼 때마다 음주 중이었고 계속해서 괴상한 웃음소리를 냈다. 갑자기 고함을 내질러 거리 노숙인과 주변 행인에게 빈축을 샀다. 거리 상담을 하는 아웃리치 상담원들도 쉽게 접근할 수 없는 분이어서 멀찌감치 떨어져 위급상황 유무만 파악하는 정도였다. 그런 N씨가 음주를 하지 않고 멀쩡한 상태로 상담을 요청해왔다.

N씨는 스스로 알코올 의존증으로 노숙을 시작했다고 했다. 그는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염전으로 끌려가 한동안 일을 했고 염전 현장이 너무 추워 발이 동상에 걸려 발가락 두 개를 절단하게 되었다. 발가락 절단 후에야 염전 일에서 해방이 되었고, 그 후로 상경하여 영등포에서 노숙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그는 돈에는 관심이 없었고, 단지 방에서 생활하고 싶다고 했다.

거리에서 본 N씨는 감정 기복이 크고 이상한 웃음소리를 계속 냈기에, 혼자서 주거생활이 가능한 상황인지 고민이 되었다. 일단 정확한 개입을 위해 정신건강증진센터 의뢰를 고려했고, 안정적인 상담 장소가 필요할 것으로 보여 영등포 쪽방으로 임시주거지원을 진행했다. 정신건강증진센터를 통해 환청, 환시, 환각, 우울증, 조증이 있는 정신분열증 진단을 받은 그는 진단을 근거로 기초생활수급을 신청할 수 있었다. 정신건강증진센터는 N씨가 자해와 타해가 우려된다는 소견도 덧붙여, 사례관리를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우려와 달리 N씨는 정신과 약도 잘 먹고 주변 노숙인과도 조금씩 관계가 좋아졌다. 다만 주변 행인들의 폭행으로 얼굴에 멍이 들어 한동안 치료를 받았다.

N씨의 쪽방을 방문할 때마다 누워서 콧노래 부르는 모습을 자주 보았다. 다른 방과 달리 항상 텔레비전은 늘 꺼져 있었고, 짐이라곤 약봉지와 수건 한 장이 담긴 가방이 전부였다. 소박하게 살던 N씨는 어느 날 쪽방에 누워 있는 상태로 죽음을 맞았다. 심장마비였다. 영정사진은 따로 없었고, 조문객으로 사회복지사와 아웃리치 상담원 외에는 없었다.


김충호
2010년 3월 영등포산업선교회 햇살보금자리에 입사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기본적인 권리를 제공하고자 고민하는 사회복지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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