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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한 영웅의 이야기로부터 시작하기
[3인 3책] 마가의 실패한 영웅 예수 이야기
[339호] 2019년 01월 30일 (수) 13:22:39 여정훈 goscon@goscon.co.kr
   
 

마가의 실패한 영웅
예수 이야기


김현정 지음
한들출판사 펴냄 / 2018년           

한 동물구조단체의 대표가 다른 실무자들과 후원자들 모르게 구조한 동물들을 죽이고 있었다. 그 단체는 ‘안락사 없는 보호소’라는 구호를 앞세워 많은 지지와 후원을 받고 있었기에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그들의 자기 홍보 중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거짓이었다.

한병철은 《타자의 추방》에서 우리를 둘러싼 우울감의 문제가 모든 것이 상품화된 상황과 관련되어 있다고 진단했다. 상품에는 부정적인 측면이 없다. 상품은 소비자에게 이질적인 것이 아니고 동일한 것, 균질한 자아의 세계를 확장하는 도구이다. 앞에 언급한 단체는 스스로를 시장에 나와 있는 다른 상품들처럼 꾸몄다. 그들은 다른 단체들에게 있는 부정적 측면이 없는 상품이었다. 완벽하고 긍정적인 측면만 가진 이 단체에 대한 후원을 ‘구매’하면 후원자는 그가 꿈꾸는 이상적 동물 구조를 현실에 구현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이상은 구현될 수 없는 환상이었고, 단체의 후원자들은 좌절감을 맛보아야 했다.

요 몇 년 동안 유행한 ‘사이다’로 종결되는 서사 역시 비슷한 상황의 산물이다. 이 이야기에는 똑똑하고 능력 있는 사회적 약자와 무능한 권력자가 등장한다. 주인공은 명석한 두뇌와 초인적 업무 능력으로 (주로 직장상사인) 적이 가진 모순과 무능함을 드러내고, 그가 아무 말도 못하는 사이에 자리를 박차고 나온다. 주인공이 반박 불가능한 승리를 거두는 이 순간에 발화자와 청중은 답답함이 해결되는 ‘사이다’의 순간을 누린다. 그런데 많은 경우 사이다 서사가 꿈꾸는 세상은 구조적인 변화를 겪지 않는다. 구조에 속한 주체의 권력 관계만 ‘일시적으로’ 역전될 뿐이다. 다음날 출근했을 때 직장 내의 직급은 그대로일 것이기 때문이다.

소비를 통해 이상을 성취하는 이야기와 ‘사이다’ 서사는 필연적으로 절망으로 이어진다. 이 이야기들이 유행하는 세상은 완벽하고 이후로도 변할 수 없는 개인들, 하나의 완벽한 우주를 이루는 마음들로 가득하고 그 평행우주들은 서로 만날 수 없다. 만약 만남이 이루어진다면 그것은 충돌과 대폭발로 종료된다. 우리 시대는 더 나은 이야기를 필요로 한다. 그 이야기는 현실의 정치와 경제에서 소외된 이들이 감정을 이입할 수 있는 이야기인 동시에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이 자신을 열고 타자와 대화할 수 있도록 하며, 구조적인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마가의 실패한 영웅 예수 이야기》는 마가복음의 예수 이야기를 여러 다른 서사와 비교하며 예수 이야기가 어떻게 발화자와 청중을 사로잡았는지를 감동적으로 보여주는 책이다. 마가복음의 예수는 그를 소비하기만 하면 무한한 안정감을 얻는 상품으로 그려지지도 않고, 적들에게 돌이킬 수 없는 패배를 안겨주는 영웅이 되지도 못한다. 그는 때때로 승리를 거두지만 결국 십자가에 처형당하는 것으로, 저자의 표현에 의하면 ‘실패한 영웅’이 되는 것으로 삶을 마감한다. 그러나 놀랍게도 이 이야기에는 힘이 있다. 이 이야기는 현실을 마주하게 하는 동시에 부활이라는 새로운 현실을 말하기 때문이다. 부활은 계획대로 된 것도 아니고 추진력을 얻기 위해 무릎을 꿇은 상황도 아니었다. 그것은 실패 이후, 예상 불가능했던 완전히 새로운 상황에 열린 마음을 갖게 되었을 때 볼 수 있는 것이었다.

“서민들이 좋아하는 이야기의 주인공은 왕의 후손이 아니다. 자신들처럼 보잘 것 없는 집안에 태어났으나 하나님의 선택을 받아 강력한 힘을 얻고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는 자이다. … 존경할 만큼의 범상함을 가지되 또 한 편으로는 자신들처럼 연약한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는 자이다.”(283쪽) 
 


여정훈
대학원에서 신약성서를 공부하던 중 공부에 재능 없음을 느끼고 기독교 시민단체에 취직한 후 자신이 일도 못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일 못하는 사람 유니온’을 만들었다. 《일 못하는 사람 유니온》의 공저자 중 한 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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