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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성과 통합이 미래를 위한 기초입니다
[343호 커버스토리] 한국을 찾아온 난민 여성 이야기 1
[343호] 2019년 05월 27일 (월) 16:00:43 미야 goscon@goscon.co.kr
   
▲ 지도에서 가운데 색칠된 부분이 콩고민주공화국. 수도는 킨샤사, 공용어는 프랑스어. (이미지: 위키미디어 코먼스)

저는 콩고민주공화국에서 온 난민입니다. 정치적 사유로 급박하게 나라를 떠나 2004년 7월 한국에 왔습니다. 르완다 스파이라는 혐의를 받아 갑자기 쫓겨나다시피 조국을 떠났습니다. 보호받을 나라를 찾아 온 것이지요. 이게 제 이야기의 시작입니다.

난민 인정을 받기까지 두려움으로 지낸 7년 
어릴 때 막연히 한국은 영어를 공용어로 쓴다고 생각했었는데, 한국에 온 후에야 제가 잘못 알았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외국인으로서 가장 힘든 부분은 언어였습니다. 한국인과 대화하는 것은 어려웠지요. 나는 한국인들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고, 그들도 나를 이해하지 못했으니까요.

처음 1년은 너무 힘들었습니다. 익숙한 것이 하나도 없었으니까요. 직업이 없었고,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것도 없었고, 심지어 제대로 음식을 찾아 먹을 수도 없었습니다. 한국 음식은 콩고 음식과는 너무 달랐거든요. 적응하는 게 너무 힘들어서 처음엔 내내 빵과 우유만 먹었지요.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어서 처음 며칠은 인천에 있는 호텔에서 머물렀고, 그러다 만나게 된 나이지리아 사람이 콩고 커뮤니티를 소개해주었습니다. 돈이 다 떨어지면서 나를 손님으로 받아준 콩고 사람과 함께 지냈는데, 그도 콩고로 돌아가야 하는 날이 오면서 나에게 콩고인 친구들 중 한 명을 소개해주었습니다. 그 친구가 나를 도와주었고, 우린 함께 살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결혼했고 사랑스러운 두 아이를 낳았답니다.

2006년 6월 세계난민의날 행사에서는 처음 ‘나비’(박진숙 에코팜므 대표)를 만났습니다. 그땐 우리 둘 다 언젠가 우리가 함께 일하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지요. 그러다 2007년에 난민 지원단체인 ‘피난처’를 통해 우리는 다시 만났습니다. 난민을 돕는 피난처에서 나비가 자원봉사자로 일하고 있었고, 곧 한글반 선생님이 됐으니까요.

저는 2004년에 한국에서 난민 신청을 했지만, 2011년이 되어서야 난민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습니다. 기다리는 시간은 너무 길고 고통스러웠고, 본국으로 송환될지 모른다는 두려움 속에서 살았습니다. 운이 좋게도 주위 친구들이 필요할 때마다 저를 격려해주었습니다. 

치유와 소통의 도구, 그림 작업
모든 사람은 때때로 표현하기 힘든 감정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림을 그리고 색칠을 하는 것은 내가 대화하고 스스로를 표현하는 방법입니다. 

저는 2008년에 피난처에서 나비와 함께 ‘다문화공방’ 프로젝트를 했습니다. 그림을 통해서 자존감을 높이고 아프리카의 아름다움을 보여줄 목적이었죠. 처음에는 주로 사파리의 동물이나 아프리카의 시골 마을을 그리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스스로를 그림으로 표현하는 방법을 배웠습니다. 그림을 그리는 작업은 나를 치유해주었고, 이제는 예술이라는 게 내가 가진 감정들, 생각들을 전달할 수 있는 통로라고 생각합니다.

   
▲ 미야가 그린 그림 <희망> : 고향을 떠나 어디로 갈지 모르는 막막한 마음으로 들판을 바라보는 여인. 등에 업힌 아이가 희망을 준다.

‘난민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것
난민 여성으로 일상을 살아가는 것은, 사람들에게 인간으로서 받아들여지도록 노력해야만 한다는 점에서 그 자체로 상당한 도전입니다. 많은 경우 사람들은 단지 ‘난민 여성’이라는 사실 하나로만 나를 바라보니까요. 난민 여성인데 직업이 있고, 제가 어떤 사람이며, 제 감정이 어떻다는 사실을 알고 나면 사람들은 간혹 혼란스러워했습니다.

2009년 이후로 줄곧 저는 프리랜서 아티스트로 에코팜므와 협업했고, 2014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직원으로 일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곧, 외국인도 현지 나라에서 받아들여지고 통합될 수 있으며, 현지인들과 함께 협업하며 일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에코팜므는 다양성이 곧 우리의 자산이라는 걸 이해했어요. 이는 미래로 나아가는 한 단계이며, 저는 우리 단체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미야
에코팜므 실무자이자, 차기 대표. 세계시민교육 강사와 아티스트로 활동 중이다. 두 남자 아이를 키우며 한국 사회에서 이주 여성 리더로 성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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