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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사회선교운동의 미래를 꿈꾸며
[334호 무브먼트 투게더]
[344호] 2019년 07월 01일 (월) 17:26:17 임왕성 goscon@goscon.co.kr
   
▲ 지난 4월 말 청어람홀에서 열린 '복음주의 사회선교운동, 이웃의 목소리를 듣다'라는 주제의 포럼 장면. (사진: 성서한국 제공)

복음주의 사회선교운동이 정체기를 맞고 있다. 물론 이에 대한 판단은 보는 이마다 다를 것이다. 어떤 이는 현 상황을 침체기 혹은 쇠퇴기로 볼 수 있고, 아니면 원래부터 복음주의 사회선교는 없었다고 판단할 수도 있다. 각자의 판단은 다를 수 있지만, 어찌 됐건 현재 복음주의 사회선교운동이 제대로 작동되지 못하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원인이 무엇일까?

여러 이야기들이 들린다. 복음주의 사회선교운동을 조직하고 주도해가는 성서한국의 역량에 대한 문제제기에서부터 현장에서 30대 이하의 활동가를 찾아보기 어려운 인적 재생산 구조의 문제, 최저임금을 기준으로 평가되는 열악한 처우 등 많은 이야기들이 들린다. 일리 있는 진단들이고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다. 하지만 과연 그것들이 현재의 정체기를 극복할 수 있는 핵심인지는 확신이 없다. 더 근본적인 점검과 논의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간절하다.

특정 조직의 역량이나 활동가들의 처우 문제를 넘어 그간의 복음주의 사회선교운동에 대해 냉정하게 평가하고, 과연 지금도 이 운동이 필요한지, 필요하다면 운동의 목표와 대상은 무엇인지, 그 목표의 성취를 위해 어떤 조직이 필요하고, 또 어떤 인적·물적 자원이 필요한지, 그런 조직과 필요 자원의 안정적인 구축을 위해 어떤 지원을 할 것인지 이제는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할 때가 된 것 같다. 그렇지 않고 당장 눈에 보이는 문제들만 해결하면서 지지부진하게 운동을 이어가는 것은 언 발에 오줌 누는 격밖에는 되지 않을 것이다.

이에 성서한국에서는 2019년 한 해 동안 세 차례의 포럼을 열어 그간의 복음주의 사회선교운동을 돌아본 후, 현 상황을 진단하고 향후 운동의 목표와 방향을 전망해보는 시간을 가질 계획이다. 그 첫 시간으로 지난 4월 말 ‘복음주의 사회선교운동, 이웃의 목소리를 듣다’라는 주제의 포럼을 진행했다. 본격적인 논의를 시작하면서 복음주의 사회선교운동이 걸어온 그간의 역사를 살펴보고, 운동의 현재에 대한 내부자의 목소리 그리고 현장에서 함께 연대하며 복음주의 사회선교운동을 지켜본 기독교 진보 진영의 목소리, 또 이를 바라본 복음주의 교회의 목소리를 들어보고자 했다.

초기의 애매한 신학적 정체성
복음주의 사회선교운동이라고 할 수 있는 가시적인 활동들이 시작된 것은 1980년대지만, 운동이 시작되는 데 미친 자극과 영향력에서부터 보자면, 그 시작은 1940년대 이후 미국에서 시작된 신복음주의 운동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빌리 그레이엄, 칼 헨리 등을 중심으로 미국에서 1942년에 시작된 신복음주의운동은 기본적으로 신학적 자유주의에 경계심을 가진 신학적 보수주의를 견지하고 있었다. 그뿐 아니라 이 운동은 근본주의자들의 분리주의와 반지성주의에 반대하면서 그들이 취하고 있는 사회적 무책임을 비난했다. 이러한 신복음주의 운동의 영향을 받아 미국에서 설립되어 국내에 들어온 대학 선교단체, 또 국내에서 진행된 빌리 그레이엄의 전도집회 등에 영향을 받으면서 복음주의 사회선교운동이 시작되었기 때문에, 그 시작에 있어 신복음주의운동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다. 이것은 대단히 중요한 사실이다. 오늘의 복음주의 사회선교운동이 신복음주의의 세례를 받고 시작되었다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왜냐하면 당시 신복음주의 운동은, 배덕만 교수의 지적과 같이 근본주의와 자유주의 사이에서 명확한 자기 위치를 찾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오늘의 복음주의 사회선교운동 또한 처음부터 자기의 명확한 신학적 정체성과 위치를 정리하지 못한 채 시작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영향이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로잔언약’을 통한 신학 기반 마련
복음주의 사회선교운동은 시작부터 이렇게 애매한 신학적 정체성을 가지고 시작되었기 때문에 주로 캠퍼스 안에 머물 수밖에 없었고 활동의 대부분이 개인 전도와 개인 회심에 집중되어 있었다. 그러던 상황에서 1974년 스위스 로잔에서 ‘제1회 세계복음화국제대회’(이하 로잔대회)가 개최되었다. 로잔대회는 1974년 7월 16일부터 25일까지 스위스 로잔에서 148개국 2,473명의 복음주의 대표들이 모여 합의된 신학적 선언문인 ‘로잔언약’을 발표하는데, 로잔언약에는 개인 구원과 사회참여를 그리스도인의 동등한 의무로 규정하면서 그리스도인은 “모든 억압으로부터 인간을 해방시키려는 하나님의 관심에 동참해야 한다”고 선언했다. 이 로잔언약은 복음에 있어서 개인 전도와 사회참여의 지위에 대한 이런저런 논란들을 명확하게 정리해주었다. 그리고 이 선언문은 당시 참여한 각국의 지도자들에 의해 148개국에 소개되면서, 복음 전파에 있어 개인 전도와 사회참여의 관계와 지위에 관한 중요한 이정표를 만들었다. 하지만 안타까운 것은 한국에서도 이 로잔대회에 65명의 대표들이 참여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는 박정희 정권 치하였기에 〈로잔언약〉이 한국에 바로 소개되지 못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우리는 19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의 비극을 경험했다. 광주의 비극을 겪으면서 복음주의 그리스도인들의 고민은 깊어질 수밖에 없었고, 그러던 차에 로잔언약이 소개되어 사회참여에 대한 신학적인 배경을 마련하면서 복음주의 사회선교운동은 비로소 본격화되기 시작한다. 아마도 본격적인 복음주의 사회선교운동의 시작은 1986년 ‘기독교문화연구회’(이하 기문연)와 〈대학기독신문〉이었을 것이다. 기문연은 그동안 복음주의 사회선교운동의 몰역사성에 대한 반성 가운데 도시빈민운동과 야학, 노동운동을 전개하였고 방학 때는 ‘공활’ ‘농활’ 등을 통해 적극적인 현장 활동을 전개했다. 그리고 이후 ‘복음주의청년연합’(복청)과 ‘복음주의청년학생연합회’(학연)가 연속적으로 등장했고, 복청학연은 1987년 대선에서 활발한 공정선거감시운동을 전개했다. 이후 군사정권에서 조작한 공안 사건으로 기문연이 탄압받으면서 복음주의 사회선교운동은 큰 시련기를 겪고 복청도 해체기에 들어가지만, 복음주의 사회선교 활동가들은 1990년대 초 〈복음과상황〉을 창간하면서 운동의 흐름을 이어갔다.

그리고 손봉호 교수에 의해 1987년 설립된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이하 기윤실)은 또 하나의 중요한 복음주의 사회선교운동의 흐름을 만들어냈다. 기독교인의 영적 각성과 윤리적 결단을 동일시한 기윤실 운동은 허다한 지성인들에게 공감을 일으켰고, 교회개혁실천운동, 좋은교사운동, 기독법조인운동 등 다양한 방면으로 뻗어 나갔다.

사회선교운동의 쇠퇴, 그리고 성서한국
전두환 정권 말기부터 활발한 활동을 벌이던 복음주의 사회선교운동은 김영삼 문민정부에 들어서는 의미 있는 운동을 이어가지 못했다. ‘새벽이슬’을 중심으로 캠퍼스 내에서 학생회운동이 일어났으나 1996년 한총련 사태를 겪으면서 학내와 대사회적으로 학생운동의 영향력이 급격히 쇠퇴하던 시기였기에 별다른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다.

그리고 IMF 외환위기와 함께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면서, 시민사회운동은 방향성의 대전환을 맞이하게 된다. 그간의 민주화를 위한 ‘정치 투쟁’에서 IMF로 대변되는 신자유주의 경제체제에 저항하는 ‘경제 투쟁’으로의 전환이었다. 기존 정치 투쟁이 국가권력과의 싸움이었다고 한다면 경제 투쟁은 국가만이 아니라 더 구체적으로는 자본과의 싸움이었다. 그런데 자본과의 싸움은 필연적으로 마르크스 이론과 맞닿을 수밖에 없었다. 이에 신복음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사회선교운동의 애매한 정체성은 반공을 기치로 내건 한국교회의 영향에서도 자유롭지 못했기에 더 소극적으로 변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중에 2002년 6월 할렐루야교회에서 개최된 성서한국 제1회 수련회를 계기로 복음주의 사회선교 제단체와 교회들을 묶은 ‘성서한국’이 출범하면서 다시금 운동을 정비하게 되었다. 이후 복음주의 사회선교운동은 성서한국을 중심으로 한국교회에 사회선교사 제도를 소개하고, 각 단체 간 협력과 연대를 통해 다양한 현장들에서 활동을 이어갔다. 하지만 시대의 변화와 함께, 각 단체 내부에서 지속가능한 운동 전략과 다음 세대들을 양성해내지 못함으로 전반적으로 복음주의 사회선교운동은 침체될 수밖에 없었다.

새로운 전환기를 가져온 사건은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였다. 세월호 참사 이후 시민들은 대거 광장으로 쏟아져 나왔고, 기독인들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광장에 나와 외치는 경험이 없었던 기독인들은 광장에서 어찌할 바를 몰랐고,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이 깊었다. 그때 성서한국을 중심으로 복음주의 사회선교 단체들이 연합하여 매주 광장에서 세월호 추모 기도회를 열었다. 이는 복음주의 사회선교운동이 평범한 기독 시민들과 만나게 된 중요한 계기였다.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복음주의 사회선교운동의 대중화가 일정 부분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동력은 자연스럽게 촛불 정국으로까지 이어졌다. 물론 촛불 정국에서 복음주의 사회선교단체들이 특정한 역할을 맡지는 않았지만,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광장으로 나온 많은 기독인들이 촛불집회에 결합하게 되었다.

하지만 ‘촛불 정부’ 등장 이후로 전반적인 시민사회운동이 정체기를 맞고 있고 복음주의 사회선교운동도 마찬가지다. 이는 촛불 민심으로 세워진 문재인 정부에 대해 미진한 부분이 보이더라도 적폐청산과 한반도 평화를 향한 대의 가운데 비판적 ‘지지’로나마 함께해야 한다는 시대적 압박 때문이기도 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아직까지 문재인 정부는 통일외교 분야 외에는 뚜렷한 성과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촛불 민심의 한 축이었던 세월호 참사 진상조사마저도 진전이 없으며, 노동정책은 후퇴했고, 재벌 친화적인 정책과 행보가 계속되고 있다.

그뿐 아니라 지난해 제주에 들어온 예멘 난민들에 대한 우리 사회의 반응에서도 확인되었던 것처럼 정부 정책만의 문제가 아니라 타자에 대한 우리의 혐오 인식과 반응은 위험한 수준이다.

이런 현실에서 정체기에 처한 복음주의 사회선교운동을 어떻게 다시 일으킬 수 있을 것인가?

첫 번째 포럼, 이웃의 이야기를 듣다
성서한국에서 마련한 지난 1차 포럼에서 강경민 목사(기독연구원 느헤미야 이사장)는 이와 관련하여 복음주의 사회선교운동에 대한 신학적 정체성을 명확히 정리할 필요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신학이 뒷받침하지 않는 운동은 지속적인 생명력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이다. 이는 복음주의 사회선교운동이 신복음주의라는 애매한 신학적 정체성에서 시작되었다는 태생적인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의미 있는 지적이다. 물론 로잔언약이 지금까지 복음주의 사회선교운동의 중요한 신학적 배경이 되어주었지만, 더 정교한 신학적 논의와 정리를 통해 복음주의 사회선교운동의 신학적 기반과 정체성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곧 복음주의 사회선교운동의 방향성과 함께 경계를 설정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와 관련해 방인성 목사(하나누리 대표)는 새 시대에 맞는 사회선교 방법론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현장에 나가 보면 운동 방법과 예배가 너무도 진부하고 옛것에서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각각의 현장 상황에 맞는, 또 변화된 세대에 맞는 적합한 운동 방법에 대한 연구와 도전이 필요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같은 맥락에서 김종일 목사(동네작은교회 담임)는 “싸우되 즐겁게, 투쟁하되 유쾌하게, 거대한 담론이지만 내 삶에 유의미한 것이 되도록 재미있고, 흥이 나고, 기대가 되는” 운동 방법론을 개발해야 한다고 했다. 한편 방 목사는 근본적으로 지금의 열악한 복음주의 사회선교운동의 활동 조건을 개선하지 않고서는 운동의 지속성을 담보할 수 없으므로 복음주의 사회선교단체와 활동가들을 위한 재정 마련 TF팀을 구성해서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해보자고 제안했다.

복음주의 교회 입장에서 복음주의 사회선교운동에 대해 평가한 김종일 목사는 운동의 현장이 목회자들로만 넘쳐나는 점을 지적했다. 이것은 곧 사회변혁의 주체이며 일터와 생활신학의 현장을 지키는 성도들을 또다시 주변인과 방관자로 만드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복음주의 사회선교운동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성도들이 주도적으로 운동을 끌고 갈 수 있는 토대와 기회를 제공해주어야 하는 점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현장에 젊은이가 없다’는 점도 지적했다. 심지어 50대들이 소장파라는 것이다. 김 목사는 “예수의 하나님 나라 운동은 젊었다. 패기가 넘치고 들과 바다, 골목과 광장을 오가는 운동이었다. 내밀한 모임의 의식화도 있었지만 축제와 만찬, 웃고 떠들고 신나는 한 판 축제의 장의 연속이었다. 30대들이 소리 지를 수 있는 현장이 기획되어야 한다. 비장하고 결의에 찬 운동에 대한 거부감을 갖는다면, 웃고 떠들고 신나게 소리 지르는 현장으로 다시 튜닝을 할 필요도 있다”고 했다. 그는 복음주의 사회선교운동이 목회자나 활동가가 아닌 일반 성도들이 중심에 설 수 있는 운동, 특별히 젊은이들이 축제와 같이 참여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론이 필요함을 지적한 것이다.   

기독교 진보진영 관점에서 복음주의 사회선교운동을 평가한 김준표 목사(촛불교회)는 복음주의 운동 그룹의 강점으로 현장에 대한 헌신성을 꼽았다. 김 목사는 “복음주의 운동 그룹은 신앙에 대한 진지함과 열정이 바탕이 되어 현장에 대한 헌신성이 높다. 현장에 참여하기까지 신중한 숙고의 시간을 가지기에 조금 더뎌 보이기도 하지만, 한번 결정된 일에는 목회자, 활동가뿐 아니라 교회 구성원들의 참여도가 높다. 목회자 중심의 개인적 참여가 아니라, 교회 구성원 전체가 한마음으로 참여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고 했다. 하지만 아쉬운 점으로, “문화활동에 비해 정치적 입장을 요하는 사회참여에 대한 폭이 좁다는 점이다. 세월호 참사 문제나 다양한 청년문화운동에는 관심을 갖지만, 첨예한 정치적 갈등을 보이는 영역에서는 주저하는 모습이 있다. 4대강 개발 반대운동, 용산 참사와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문제 등에는 참여했지만, 이후 사드(THAAD) 철회, 파인텍 및 콜텍의 장기 노동 분쟁 현장에서 마주하기가 쉽지 않았다. 최근 동성애/페미니즘 등 정치적으로 민감한 상황에 대해서는 더욱 목소리 내기를 주저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김준표 목사는 복음주의 사회선교운동의 경계와 확장성에 대해 뼈아픈 지적을 했다. 이는 앞에서 지적한 신학적 정체성과도 맞닿아 있는 문제로 ‘과연 우리의 운동이 누구와 함께 어디까지 가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와 정리가 시급함을 다시 한번 상기시켰다.

다시, 성서한국으로
이렇게 첫 번째 포럼에서 우리는 현 복음주의 사회선교운동에 대한 안팎의 목소리에 담긴 여러 이야기를 들었다. 신학적 기반에서부터 활동가들의 처우에 이르기까지 제기될 만한 이야기들이 거의 대부분 논의의 장에 올려졌다. 그렇다면 이제 다음은 이 사안들을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이다.

두 번째 포럼은 성서한국 전국대회 기간 중 이틀(8월 1-2일, 오전)에 걸쳐 대회장(한국성서대학교)에서 진행된다. 이 자리에는 복음주의 사회선교운동의 선배와 후배, 활동가와 목회자, 성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들을 초청할 계획이다. 그리하여 함께 원탁에 앉아, 첫 번째 포럼에서 올라온 이야기들을 가지고 판을 벌여볼 것이다.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편하게 웃고 떠들면서 함께 머리를 맞대볼 것이다. 누구에게 책임을 묻고, 누구에게 떠넘기고, 누구만을 믿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우리가 주체가 되어 다시 시작하는 복음주의 사회선교운동의 다음 장을 위해 신나는 난장판을 벌여보면 좋겠다. 함께 모여서 웃고 떠들다 보면 뭔가 나오지 않겠는가?

 

임왕성
새벽이슬교회 목사. 성서한국 사회선교국장, 새벽이슬 간사, 교회개혁실천연대 집행위원, 평화누리 실행위원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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