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6호 사람과 상황] 2019 성서한국 전국대회에서 만난 청년들에게 묻다

   
▲ ⓒ복음과상황 정민호

‘2019 성서한국 전국대회’를 찾은 청년들을 만났다. 2005년부터 홀수 해마다 개최해 올해로 아홉 번째를 맞은 성서한국 전국대회는 ‘성서를 통한 배움과 실천을 지향하는 청년대회로 그리스도인의 사회적 책임을 함께 고민’하는 자리다. 올해에도 약 500명이 참여해 토론과 격려의 시간을 가졌다.
특별히 이번 전국대회의 주제는 ‘복음’이었다. 혐오, 폭력, 거짓이 난무하는 교회 안팎에서 ‘복음이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 것이다. 이웃에게 관심 기울이기 더 어려워지는 개인사 속에서도 여전히 세상을 밝히 비출 복음을 찾고자 전국대회를 찾은 청년들 생각이 궁금했다. 대회의 주제처럼 ‘오늘 여기에서’ 어떤 복음을 묻고 있는지 물었다. 대회 현장에서 10대 후반부터 20대 중반까지의 참가자 다섯 사람을 만나 인터뷰했다. 다채로운 주제로 많은 이야기가 오갔고, ‘공동체’ ‘페미니즘’ ‘신앙’ 등의 키워드가 겹쳤다.   


“복음은 사랑하는 이를 위해 몸을 던지는 것”
<복음과상황> 덕에(?) 태어난 노중수 씨

   
▲ 노중수 씨 ⓒ복음과상황 정민호

― 자기소개부터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성서한국에 참석하고 있는 노중수입니다. 교회 청년부 사람들과 함께 이곳에 왔어요. 이렇게 인터뷰를 하게 될지 전혀 몰랐는데요. 저는 복상과 아주 특별한 인연이 있습니다. 저희 부모님이 복상을 인연으로 결혼하셨거든요.

― 복상이 인연이 되어 결혼하셨다고요?
저희 어머니가 1999년 9월호부터 2000년 4월호까지 교회 안의 여성 차별을 고발하는 페미니스트로서 연재를 했어요. 2000년 4월호에 ‘이혼도 복음이다’라는 글을 쓰셨는데 독자 게시판에 ‘이혼은 죄다, 이게 어떻게 복음이냐’는 성토의 글이 올라왔다고 해요. 당시 아버지와 어머니는 서로 알지 못하는 사이였는데, 아버지께서 필자의 의도를 대변하는 반박 글을 그곳에 올렸다고 해요. 어머니는 하고 싶은 말을 대신해준 아버지에게 고맙다고 메일을 보내셨대요. 그렇게 두 분이 메일을 주고받다가 진지하게 만나게 되었다고 합니다. 두 분은 그 만남을 시작으로 교제하시다가 결혼을 하셨고요.

― 복상이 특별하게 느껴지겠어요.
특별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죠. 복상 덕분에 제가 태어날 수 있었고(웃음) 복상이 그때그때의 사회적 이슈를 복음의 시선으로 잘 담아낸다고 생각하니까요.

   
▲ "저희 어머니가 1999년 9월호부터 2000년 4월호까지 교회 안의 여성 차별을 고발하는 페미니스트로서 연재를 했어요." ⓒ복음과상황

― 그렇다면 ‘성서한국’에 참석하신 것도 복상 덕분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크게 보면 그렇게 말할 수도 있어요. 저는 성서한국을 비롯해서 기독연구원 느헤미야 등 비교적 진보적인 성향을 가진 단체에서 주최하는 집회나 강의에 참석하고 싶은 마음이 크거든요. 제가 기독교인으로서 세상을 넓게 보려고 하는 성향을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았다고 생각해요.

― ‘기독교인으로서 세상을 넓게 보고 싶은’ 목적이 성서한국에서 충족되고 있나요?
좀 이상해 보일 수 있지만, 개인적으로 저는 기독교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에 관심이 많아요. 예를 들면 ‘기독교는 왜 존재해야 하는가?’ ‘성서가 경전성을 내재할 수 있는가?’ 같은 질문들이죠. 이곳 성서한국에 와서 그 질문이 해소되진 않았지만 다른 면을 볼 수 있었어요. 현장에서 뛰는 활동가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분들은 근본적인 질문에 머물기보다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몸을 던지는 신앙인이셨어요. 저는 논리적으로 기독교의 본질을 찾고 있었지만, 오히려 그분들이 사랑하는 공동체를 위해 행동하고 싸우는 모습을 보면서 그것이 그리스도인의 본질이라고 느껴졌어요.

― 다른 참가자들과도 이야기를 많이 하셨나요? 여기저기 삼삼오오 대화하는 모습이 많이 보이는데요.
교회에서 같이 온 사람들과 이야기를 했어요. 굉장히 다양한 생각을 들을 수 있었어요. 어떤 분은 저에게 “기독교를 논리적으로 보는 것만이 유일한 방법은 아닐 수 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쓰신 것이고 그것을 체험하고 믿는 게 신앙이다”라고 말씀해주셨어요. 또 다른 분은 “언어학 강의를 듣고 있는데, 성경 텍스트의 한계를 따져보면 참 그리스도인에 점점 더 가까워질 수 있다”라고 하셨고요. 같은 교회를 출석하고 있더라도 다양한 의견이 존재하는 것 같아요.

― 10대 후반의 또래 중에 교회, 공동체, 복음 같은 것에 관심을 갖는 사람이 드물잖아요. 성서한국에서 다루고 논의하는 다양한 주제가 중수 씨 세대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당연히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기독교 색채의 유무가 다를 뿐이지 사회를 살아가면서 모두가 직면해야 할 문제라고 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제 친구들도 이야기하고 배울 수 있는 자리가 생기길 바라지요. 다만 제가 좀 우려하는 부분은 설교의 접근성이 너무 떨어지지 않나 싶어요. 교회도 재밌어야 다닌다는 인식이 있는 우리 세대에 교회가 어떤 매력이 있을지 모르겠어요. 성서한국을 기대하는 마음으로 오는 친구들이 별로 없다는 이야기를 듣고, 교회가 뭔가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우선은 교회가 시대를 이끌어갈 역량을 갖추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초대교회는 시대의 상식을 허물었다고 들었어요. 각종 사회문제를 이야기하는 이곳 성서한국에 와서 신선한 충격을 받는 분도 있지만, 사실 저는 굉장히 편안함을 느꼈거든요. 소위 말하는 상식적인 이야기를 나눌 수 있으니까요. 사회에서 보면 상식에 속하는 수준의 이야기인데, 기독교는 그동안 그렇지 않았으니까 상식이 신선하게 들리는 것이죠.

― 대회 기간이 하루 남았는데요. 어떻게 보내실 건가요?
여기에 와서 많은 사람을 만났어요. 시위 현장이나 기독연구원 느헤미야 수련회에서 인사했던 사람들과 또 하나의 접점이 생기는 게 재밌어요. 머릿속으로 기독교의 근본성을 따지는 일만 했다면, 이런 식으로 많은 사람을 만나는 건 큰 의미가 없죠. 이렇게 사람들과 연결되는 것이 제게 매우 유익한 일이에요. 제가 알지 못했던 현장도 알게 되고 어떻게든 배울 기회가 되죠. 밤에는 룸메이트와 이야기를 나누려고요.

 

“복음은 ‘낮아짐’이 아닌 ‘마주 봄’ 아닐까요?”
생애 첫 성서한국 참가자 이은혜 씨

   
▲ 이은혜 씨 ⓒ복음과상황 정민호

― 어떻게 참석하시게 되었나요?
성서한국 대회에는 처음 와봤어요. 제가 다니는 교회가 ‘건작연’(건강한 작은 교회 연합) 소속인데 그 단체에서 교회 청년들에게 참가비를 지원해줘서 올 수 있었어요. 결정적으로는, 평소 백소영 교수님의 팬이었는데 이번 대회 주강사를 맡으셨다는 걸 알고 참석했죠.

― 백소영 교수님을 좋아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대학교 1학년 때 백소영 교수님 강의를 들었어요. 청교도 신앙과 경건에 대해 사회학적으로 접근하는 내용이었는데 정말 좋았어요. 몇 달 전에도 제가 두 가지 고민을 하고 있었을 때 교회에서 백소영 교수님의 설교를 들었어요. 첫 번째 고민은 ‘하나님이 왜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을까’였고 두 번째 고민은 ‘예수가 왜 여자가 아니라 남자로 오셨을까’라는 질문이었어요. 그 질문에 대한 답을 교수님께서 설교를 통해 해주셨어요. 이번에 성서한국을 통해서 그 답을 더 세밀하게 들을 수 있어서 좋았어요.

― 그런 고민이 오랫동안 풀리지 않았던 거네요.
그동안 기독교 공동체 안에서 페미니즘이나 창조 신화에 대해서 접할 기회가 없었어요. 그래서 혼자 싸워야 하는 일들이 있었죠. 대학교에도 대다수가 남성 교수님들이라서 페미니즘을 배울 수 없었고요. 따로 페미니즘을 공부하는 공동체나 책모임을 찾아보기도 했어요. 주먹구구식으로 인터넷 검색부터 했는데 장기적이고 공식적인 세미나들이 많지 않더라고요. 페미니즘 특성 자체가 하나의 지향을 가지고 있다고 하지만 그 과정과 방법이 워낙 다양하잖아요. 그래서 이제 막 페미니즘을 접한 제가 무언가를 배우려고 하니 혼란스러웠던 것 같아요.

― 페미니즘 안에 다양한 결이 있는데, 그중에서도 특별히 백소영 교수님으로부터 의미 있는 답변을 들었다는 거지요?
맞아요. 벨 훅스의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문학동네)이라는 책을 보면 페미니즘을 모두를 위한 것으로 정의해요. ‘성차별주의와 그에 근거한 착취와 억압을 끝내려는 운동’이라고 하거든요. 그런 맥락에서 기독교는 페미니즘과 상반되거나 대립하는 위치가 아니죠. 백소영 교수님은 하나님 나라 운동이 페미니즘 운동과 같이 갈 수 있음과 그동안 왜 신앙적으로 많은 부분에서 죄의식을 느끼도록 받아들여졌는지 얘기해주셔요. 저에게는 페미니즘과 기독교가 양립 불가능하지 않다는 것 그리고 그걸 현명하게 논증하는 근거들이 필요했는데, 교수님의 책이나 설교가 제 필요를 채워주었어요.

― 페미니즘, 다양성, 공존 등의 주제가 오늘날 기독 청년들이 공통으로 가진 고민이기 때문에 성서한국에서도 다루고 있을 텐데요. 다른 참가자들과 페미니즘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셨나요?
저는 같은 교회에 속한 언니 두 분, 친구 두 명과 함께 이곳에 왔어요. 대회 기간 동안 다섯 명이 같은 방을 쓰고 있는데 저녁 집회가 끝나고 얘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어요. 어떻게 하면 내가 이 사회에서 온전히 ‘나’로 살아남을 수 있겠냐는 질문을 서로 주고받았어요. 제 대답은 대의(大義)나 직업적 소명이 아니더라도 사소한 일상에서 나의 권리를 찾을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었어요. 현실에서 내 목소리를 잃지 않기도 무척 어렵거든요. 언니들, 친구들과 이런 얘기를 하면 자연스럽게 공감하면서 “맞아, 맞아” 하거든요. 아, 그리고 여기서 부르는 찬양들은 가부장적인 내용이 들어간 곡이 없어서 좋았어요. 마음이 열려서 크게 찬양을 불렀어요. 그런데 함께 참석한 남자들에게는 아직은 이야기를 꺼내기 어렵더라고요.

― 그 ‘꺼내기 어려운 이야기’를 물어도 될까요?
개인적으로 특정 성경 인물이나 신학자의 권위가 필요 이상으로 크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여성 독자로서 주류 신학자의 책을 읽다 보면 불편함을 느낄 때가 있어요. 여성혐오적인 단어와 맥락이 자주 보여서요. 기독교 역사에서 종교적 업적이 있는 분이나 신학자를 언급할 때, 그들의 과오도 함께 이야기한다면 우리는 성경적인 삶이 무엇인지 더 깊이 고민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교회 안에서 여자를 대하는 태도와 논의는 정말 가슴이 답답해지는 문제이죠. 제가 경험한 바로는 ‘창조질서’ 이야기인데요. 남녀가 평등한 존재라는 이야기를 하려는데, 갑자기 남자가 먼저 존재했고 여자가 돕는 배필로 존재하기 시작했다고 말하면 그때부터 대화가 막혀버리는 거예요. 어떤 이야기를 해도 결국 다시 ‘기승전-창조질서’로 수렴되어 멈춰버리죠. 창조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논의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여성의 관점으로 발견한 계시의 파편들을 더 많이 받아들이고 싶고요.

― ‘오늘 여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어떤 복음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세요?
지금 시대적으로 필요한 복음은 그동안 강조되었던 ‘낮아짐’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보다 먼저 필요한 게 ‘마주 봄’이 아닐까요? 예수님도 낮아짐을 말하기 전에 높아지려고 했던 자들을 비판하셨잖아요. 누군가가 낮아지기 전에, 높아진 자가 내려오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뜻이 아니었을까요. 누군가에게 낮아짐과 순종을 요구하기 전에, 한 사람이 그 사람 자체로 온전히 서는 일이 먼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러려면 서로 마주 보는 과정이 꼭 있어야 하고요.

 

“예배를 드리고 싶었어요”
5년간 섬기던 교회를 떠난 박소영 씨

   
▲ 박소영 씨 ⓒ복음과상황 정민호

― 어떤 마음으로 성서한국에 오셨나요?
기존에 다니던 교회 청년부와 5년을 함께했지만, 사회를 바라보는 관점이나 그리스도인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부분은 늘 소통이 되지 않았어요. 오히려 대학의 선교단체 사람들과 소통이 더 잘 되는 편이었죠. 물론 선교단체 내에도 다양한 스펙트럼이 존재해요. 최근 제가 속한 선교단체 지방회에서 페미니즘과 동성애 담론으로 의견이 갈려 공동체를 떠난 친구들이 있어요. 교회 안에서는 동성애가 죄라고 배웠는데, 누군가는 아니라고 하니까. 기독교 동아리라고 들어왔는데 왜 세월호, 노학연대 등 온갖 포스터가 붙어 있느냐며 의아해해요. 제가 복음을 전달하는 방식에 실패한 건가 싶더라고요. 그래서 성서한국에 왔어요.(웃음)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 청년들을 만나서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 해서요.

― 선택 강의들이 있었는데 소영 씨는 뭘 들으셨나요?
“재난에 대한 신학적 의미”(박영식)를 들었어요. 이 강의는 한국 사회에 재난이라고 할 수 있는 사건들이 많이 벌어졌는데, 그리스도인의 입장을 제대로 들어본 적이 없어서 신청했어요. 단순한 위로 차원, 연대 차원은 알지만 신학적으로 재난의 의미와 그것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입장을 알고 싶었거든요. 또 ‘교회 밖의 교회로 살아가기’(양희송)도 들었어요. ‘가나안 성도’에 대한 표와 통계를 설명하는 개괄적인 내용이더라고요. 제가 가나안 성도 정체성을 갖고 있어서 구체적인 이야기를 듣고 싶었는데 좀 아쉬웠어요.

― 교회를 왜 안 나가게 되었나요?
제가 다녔던 교회 청년들은 교회에서 정치 이야기를 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니 제가 그리스도인의 사회 책임에 관해 말하면 늘상 예민한 사람으로 취급했지요. 그들은 기독교인으로서 사회적 감수성을 지니려 하지 않았어요. 결정적인 계기는 사역자 수련회 때였어요. 밤에 편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있었는데, 간사가 왜 목사님 사모님들은 젊고 예쁘냐고 질문했는데 전도사의 대답이 이래요. “신학생이 목회의 기술을 여자에게 쓰면 젊고 예쁜 여자를 만난다.” 또 제가 “교역자로 임명된 분들은 다 가정이 있는 분들인데 신학적인 이유가 있냐”고 물었더니 답하기를 “짝이 없는 사람 목회자로 임명하면 여자들이 들러붙어서 교회가 분열한다. 교회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결혼한 사람을 세워야 한다”라고 진지하게 설명했어요. 아무리 못생긴 사람도 강단에 서면 영적 권위 때문에 매력적으로 보여서 여성 성도들이 가만두지 않는다고요. 그 말에 다른 사람들은 다 고개를 끄덕여요. 문제를 제기하면 저만 이상한 사람 되는 거예요. 수련회가 끝나고 2주 후에 그 전도사님을 만나 직접 그 문제 제기를 했어요. 의미 있는 대답을 듣지는 못했고, 그 전도사가 청년부 목사를 대신해 예배를 인도하게 되면서 교회를 쉬어야겠다고 결정했어요.

― 어떤 이유로 5년 동안 버티셨나요?
첫 번째로는 제가 판단하는 마음이 교만하다고 생각했어요. 내가 느낀 걸 이분들은 접할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이해했고요. 그리고 기독교 공동체는 내 입맛에 맞는 사람만 포용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의 끈을 붙잡으려고 애쓰는 곳이잖아요. 그럼에도 ‘변화되는 세상’과 ‘머물러 있는 교회’의 벌어지는 차이를 온몸으로 느꼈어요. 몸과 마음이 갈려 나가는 기분이 들더라고요.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 사람들 속도에 맞춰서 천천히 얘기해야 했나 싶기도 해요. 최선을 다한 것 같지만…. 슬픈 말인데, 그분들이 참 착해요. 주일 아침부터 성가대 연습하고, 밤새워 교구 모임 준비하고, 교회 봉사 헌신적으로 해요. 그에 비하면 저는 교회에서 성실하지 못한 청년이에요. 예배만 드리고 가니까요.

― 주변에 교회를 떠나는 친구들이 많은가요?
많아요. 앞으로도 더 많아질걸요. 제가 선교단체 친구들에게 교회에서 들었던 황당한 이야기를 하면, 친구들도 비슷한 일을 겪거나 들은 거예요. 교회 목사가 예배 때 성희롱 발언을 해서 교회의 다른 청년에게 이야기를 했는데, 전혀 그 발언을 기억 못 한다는 거예요. 그런 말들에 너무 익숙해져서요. 이게 한국교회의 현실인가 싶었어요. 다행히 그 목사는 다른 문제로 인해서 쫓겨나듯 그만뒀다고 하더군요.

― 성서한국에 와서도 교회와 공동체에 대해 많이 고민했겠어요.
교회를 쉬겠다고 결심한 상태였고, 고민을 했어요. 교회로 돌아가서 홀로 투쟁하면서 버틸 것인가, 아니면 다른 공동체를 찾아볼 것인가. 그런데 내 마음대로 교회를 판단해서 내 입맛에 맞는 청년 공동체를 찾아가고 싶진 않았고요. 다만, 예배가 무척 드리고 싶었어요. 교회를 쉴 때 많이 울면서 슬퍼했던 건 하나예요. 나는 하나님께서 주는 메시지로 살아가려고 발버둥 쳤는데, 주일에 하나님의 집, 예수의 몸이라 할 수 있는 교회에 찾아가지 못하고 혼자 집에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무너지더라고요. 동시에 제가 그동안 예배에 갈급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마음 놓고 예배드릴 수 없는 기존 교회에 계속 다니기는 어렵다고 판단했어요. 성서한국 대회 전날에 교회의 한 사역자에게 편지를 보냈어요. 그 교회를 그만 다닐 거라고요. 일단 제 마음을 전했다는 후련함이 있어요. 5년을 수고한 저에게 주는 위안이랄까요. 나름 애썼고, 그것을 전달했다는. 후련한 마음 반, 자기 위로 반, 그런 마음으로 성서한국에 왔어요. 잘 즐기다가 갑니다.

 

“예수님이 여자로 왔어야 했는데…”
7년 만에 교회로 돌아온 유성 씨

   
▲ "저와 어머니는 가정폭력 경험이 있어요. 알코올 중독인 아버지가 술 끊으면 좋겠다, 때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런 기도를 많이 했죠." ⓒ복음과상황 정민호

― 소영 씨에게 유성 씨(가명)를 소개받았어요. 기독교를 떠났다가 페미니즘 신학을 접하고 7년 만에 다시 신앙 공동체로 돌아오셨다는 이야기가 흥미로웠거든요.
제 전공이 사회학인데, 페미니즘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기독교를 떠났거든요. 다시 종교 생활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어요. 대다수 페미니즘 담론에서는 기독교가 여성혐오적이라고 하거든요. 저도 그렇게 생각을 했어요. 백소영 교수님을 통해서 페미니즘 신학을 처음 접하기 전까지는요.

― 어떤 점에서 기독교가 여성혐오적이라고 생각하셨던 건가요?
너무 많아요. 일단, 제겐 낙태죄 문제가 제일 컸어요. 기독교계에서는 낙태죄 폐지를 반대하는 의견이 다수잖아요. 저는 낙태죄가 폐지되어야 한다는 입장이거든요. 또 제가 다녔던 교회는 여성의 순결성을 강조한 적은 없었는데, 다른 친구들 말을 들어보면 진짜 심하더라고요. 그러다보니 성적인 억압이 심하고요. 쉬운 예로, 교회 안에서 식사는 누가 담당하나요? 어머니들이 하시잖아요. 그리고 백소영 교수님이 이번 강의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성경이 쓰였던 시대적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텍스트만 읽으면 바울이 했던 말들이 ‘온건한 가부장제’ 발언이고요. 그런 것들이 교회가 여성을 억압하는 기제라고 생각해요.

― 교회를 떠나게 된 이유들이겠네요.
교회를 중학교 때까지 다녔어요. 교회 자체에 큰 반감을 가진 경험은 딱히 없었어요. 처음에는 개인적인 이유로 신앙이 무엇인지 회의가 밀려왔어요. 저와 어머니는 가정폭력 경험이 있어요. 알코올 중독인 아버지가 술 끊으면 좋겠다, 때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런 기도를 많이 했죠. 엄마는 하나님께 기도하면 이뤄주신다고 말씀하셨는데, 현실은 전혀 변화가 없었어요. 마치 램프 요정 지니한테 소원을 비는 것 같고, 스스로 너무 바보 같다는 느낌이 들었죠. 속고 있다는 생각도 들고. 그래서 그때부터 교회를 안 나갔어요. 그런데 제가 21살 때 아버지와 비슷하게 알코올 중독이 온 거예요. 우울증도 심했고요. 너무 힘드니까, 어떻게 해야 행복하게 살 수 있을지 계속 고민했어요. 그러다가 다시 종교가 생각난 거죠. 그래도 중학교 때까지 교회를 다니면서 의지했던 경험이 있으니까.

― 그래서 다시 교회로?
그런데 그때는 이미 페미니즘과 사회학을 깊이 접했을 때였어요. 아무리 좋은 경험이 있어도 기독교는 아닌 것 같다고 생각했죠. 기독교로 돌아가는 건 바보 같은 짓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다가 작년에 학교 선교단체와 페미니즘 동아리가 연합 세미나를 개최한다고 공지가 올라온 거예요. 사정이 여의치 않아서 그 세미나는 안 열렸는데, 그 공지를 보고 백소영 교수님의 책을 읽기 시작했어요. 그전까지는 페미니즘 신학이라는 존재도 몰랐고 사회 참여를 하는 선교단체가 있는 것도 몰랐거든요. 신기했어요.

   
▲ 유성 씨 인터뷰는 성서한국 전국대회가 끝난 뒤 8월 7일에 한 카페에서 진행했다. ⓒ복음과상황 정민호

― 어떤 점이 신기하셨다는 거죠?
사회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은 종교를 가지기 힘들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선교단체에 사회학과 후배가 있는 거예요. 그래서 궁금해하다가 신뢰를 갖게 되고, 선교단체 수련회도 다녀왔어요. 그때부터 여성신학을 공부하면서 열심을 내고 있어요. 같은 관심을 가진 이들과 방학 중 모임으로 성서의 여성들과 관련한 책을 읽고 있고요. 한 책에서는 다윗과 밧세바를 언급하면서, 밧세바를 권력형 성폭행의 피해자라고 말해요. 남편을 죽인 왕과 결혼해서 아들까지 낳고 살아야 했던 거잖아요. 그럼에도 성경에서는 하나님이 다윗을 결국 버리지 않을 거라고 하니까… 저로서는 납득이 안 가더라고요. 모임 안에서 앞으로 더 다양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것 같아요. 문제는 저희 모임에서 읽을 수 있는 책이 너무 적어요. 19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에 여성신학 책이 많았는데 지금은 다 절판됐어요.

― 여기도 그 모임 사람들과 함께 온 건가요?
아뇨, 그렇진 않아요. 여기 와서야 그중 몇몇을 만나긴 했어요. 저는 주강사가 백소영 교수님이라고 하기에, 그거 하나만 보고 왔어요. 페미니즘 안에도 여러 갈래가 있고, 교수님 의견에 다 동의하는 건 아니지만 팬심으로 온 거죠. 제가 기독교 공동체에 돌아온 이유는 백소영 교수님이나 ‘믿는페미’처럼 페미니즘을 실천하는 분들이 기독교 안에 있기 때문이에요. 그분들이 성경과 기독교를 놓지 않는 것에는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죠. 그래도 여성 해방적인 부분이 있으니까 계시는 거겠지, 하고. 혼란스럽더라도 안심을 하는 거죠. 저도 공부를 더 해야 하고요.

― 그럼에도 답답한 부분이 많겠네요.
‘아버지’라는 용어 자체를 계속 써야 하는 이유를 잘 모르겠어요. 당시 ‘아버지’라는 단어를 통해 신을 더 가깝게 느낄 수 있도록 한 거라는 얘기는 어느 책에서 읽은 적 있지만요. 어느 정도 납득은 되지만, 2000년이 지난 지금도 쓰고 있다는 게 문제인 거죠. 어머니와 혼용이 되면 상관이 없을 텐데…. 어디 가서 ‘하나님 어머니’ 하면 이단이라 하잖아요.(웃음) 찝찝함 때문에 다들 안 쓰는 것 같아요. 백소영 교수님이 가부장제의 종결을 설명하면서 우리에게 아버지는 하나님밖에 없다고 하신 게 납득은 가는데, 한편으로는 하나님을 아버지라는 남성 명사로 가두어 불러도 되나 싶은 거죠.

― 사실은 성경이 정말 예수님이 약자로 오실 수 있었다면 남자아이가 아니라 여자아이로 와야 하는 것 아닌가? 예수는 여성의 목소리를 대변할 수 없는 것 아닌가? 라는 입장도 있죠.
사실 그 문제로 선택 강의를 맡은 박영식 교수님을 만나 개인 면담을 했어요. 성경을 페미니즘적으로 보려는 시도가 억지스럽고 정신 승리하는 느낌이 자꾸 든다고 말씀을 드리니까 교수님이 “그렇죠. 예수님이 여자로 왔어야 했는데…”라고 답하시더라고요.(웃음) 그게 제 딜레마인 것 같아요. 내가 공동체 때문에 억지로 이러고 있나 싶어요. 제가 아버지 문제가 떠올라서 하나님이 너무 원망스러울 때, 선교단체 사람들이 그걸 알고는 신경을 무척 많이 써줬어요. 그때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하나님 사랑은 뭔지 모르겠다. 그런데 내가 느낄 수 있는 사랑은 공동체에서 주는 사랑이구나. 내가 이걸 하나님 사랑이라고 느껴야 하나?’

― 신앙과 페미니즘이 공존할 수 없다고 보시는 건가요?
1차적으로 저는 페미니즘을 통해 구원을 받은 것 같긴 해요. 스무 살 때까지만 해도 화장을 안 하고 밖을 나올 수 없었어요. 화장을 하고 옷을 차려입는 게 습관이었고, 스스로 매여 있는 부분이 있었죠. 이것을 벗어나게 해준 게 페미니즘이고요. 여성들이 해방되려면 복음을 먼저 접하는 게 아니라 페미니즘, 사회학을 먼저 접해야 하는 시대예요. 그런 것들을 보면 여성들에게 복음이 해야 할 역할을 페미니즘이 했다고 주장할 수도 있겠죠. 페미니즘이랑 복음이랑 사실상 차별을 철폐한다는 의미에서 크게 다르지 않겠지만요. 탈종교 하고 싶은 기분이 들긴 해요. 그래서 페미니즘 신학 모임에서 이런 얘길 하니까, “탈종교 고민은 일주일에 한 번씩 드는 거 아니에요?” 하시더라고요.(웃음) 하지만 전 예수님이 페미니스트라고 생각해요. 예수님은 남자가 어떻다 여성이 어떻다 말씀하시지 않았으니까요. 이방인인 사마리아 여인에게 물을 달라고 하셨던 거나, 여성이 예수님께 향유를 부은 사건도 그렇고, 제자들이 믿지 않을 때 예수님의 부활을 보고 알린 것도 갈릴리 여인들이잖아요. 성경을 집필했던 기자들의 문제가 크지 않나 싶어요. 12명의 제자들 이외에 여성 제자들도 있지 않았을까요? 여성 제자가 쓴 성경도 있을 것 같은데. 그런데 이건 제 생각일 뿐이고, 확인할 길은 없네요.

― 여성이 해방되려면 복음보다 페미니즘을 공부해야 한다는 말씀이 인상적이네요.
저는 페미니즘 공동체에도 있어 봤어요. 다른 교집합 없이 페미니즘으로만 모인 곳이요. 그런데 의외로 괴로웠어요. 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 욕밖에 없어서요. 너무 화가 나는 사건이 있으면 그거 공유하면서 욕을 하는 거예요. 물론 모든 페미니즘 공동체가 다 그런 건 아니겠죠. 더 생산적인 이야기나 다른 일을 하시는 분들도 분명히 있을 거예요. 그런데 제가 속했던 페미니즘 공동체는 얘기가 결국 비관주의로 흘러갔어요. 우리가 욕을 하거나 시위에 나간다고 해도 달라지는 게 없고, 변화는 너무 더디니까요. 사실 그 더딘 변화를 감내하면서도 꾸준히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진정한 사회 운동이 되는 거잖아요. 그런데 저는 당시에 에너지가 부족해서 감정적으로 힘들었어요. 결국 제가 여성운동을 하기에 부족했던 거죠. 그런데 신앙 공동체에서 나오는 담론은 다르죠. 해방적인 부분을 항상 추구하고 있잖아요.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제가 만난 기독교 공동체 안에서 나오는 담론은 사회문제를 정말 많이 얘기하지만 “이 세상은 망했네요” 하지 않고 우리가 뭘 할 수 있는지, 교회나 단체에서 해방적인 부분을 끊임없이 찾아내려 하거든요. 

― 그 지점이 신앙 공동체의 존재 이유일지도 모르겠네요.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모여서 뭔가를 하려는 습성이 있잖아요. 저는 그런 공동체가 많아야 사람이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것 같아요. 신앙 공동체 안에서 서로를 보듬어주려고 하는 거요. 복음을 기반으로 해서 아무 조건 없이 사랑하겠다는 그런 결단들을 하시잖아요. 그게 잘 안 될 때도 많지만요.

   
▲ 성서한국대회 성찬식 ⓒ복음과상황 정민호

― 성서한국 전국대회에는 첫 참석이었고, 잘 마쳤는데요. 
백소영 교수님을 직접 만나 뵙고 페이스북 메시지를 보낼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 특히 좋아요. 그리고 평소 페미니즘 주제로 말하면 피로해지곤 했는데, 성서한국에서는 그렇지 않았어요. 각자 교회에서 어떤 성차별을 받았는지 얘기하면서도, 비관주의로 빠지지 않았던 이유는 백소영 교수님의 강의, 페미니즘적인 강의 덕분 아니었을까요? 그걸 듣고 우리가 기분이 좋았으니까. 한 가지 아쉬운 점을 꼽으라면, 조별 활동이 잘 안 되더라고요. 저는 아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괜찮았지만, 혼자 오셨던 분들은 힘겨웠을 거 같아요. 전반적으로 좋았어요. 한국 기독교가 아주 망하지는 않았구나, 망하진 않겠구나 생각했어요.(웃음)

 

“우리는 이단보다 나은가요?”
자원봉사 스태프 신연섭 씨

   
▲ 신연섭 씨 ⓒ복음과상황 정민호

― 대회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데요. 참여하시게 된 계기가 있나요?
성서한국 전국대회는 말은 많이 들어봤지만, 참여는 처음 해봐요. 이번에 장로회신학대학교 대학원의 ‘교회 밖 현장실천’이라는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스태프로 지원하게 되었어요. 저는 주로 지원국에서 봉사하고 있습니다. 수련회장 안팎으로 인원이나 물건을 수송하는 역할이고요. 이외에는 현수막 설치, 주차 안내, 식사 도우미, 선택 특강 보조, 숙소 관리, 물품 구매 등 상황마다 빈자리를 메우고 있어요.

― 교회에서 교역자로도 일하면서 많은 집회를 다녀봤을 것 같아요. 이곳만의 특징이 눈에 보이던가요?
자유로운 분위기가 신기해요. 참가자와 봉사자들 모두 전체적으로 자유롭게 누리고 있는 점이 신선해요. 봉사자 입장에서 볼 때 이런 자유로운 분위기는 서로에 대한 신뢰로 느껴져요. 덕분에 더욱 적극적으로 봉사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고요. 참가자들은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 집회 장소가 아닌, 사석에서도 적극적으로 토론하고 의견을 나누고 있어요. 이게 성서한국 전국대회의 가장 큰 특징이자 장점이라고 생각해요.

― ‘오늘 여기의 복음’에 대해 교역자로서도 고민을 많이 할 것 같은데요.
어떻게 하면 청년, 학생들의 삶과 괴리가 없는 복음을 전할까 고민해요. 그리스도인이 독단적으로 비쳐지고 교회가 불통의 상징으로 전락한 세상에서, 기독교의 복음을 설명하는 것이 참 어려워요. 속 시원히 교회를 변호하고 싶지만, 교역자인 저도 여전히 확실한 답을 갖지 못한 채 고민하고 있습니다.

― 그런 고민을 붙들고 깊이 씨름할 수 있는 장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 것 같아요.
그래도 이곳에 와서, 오늘의 한국 사회를 살고 있는 한 사람의 청년 그리스도인이자 교역자로서 제가 가진 고민이 혼자만의 고민이 아니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어요. 특히 백소영 교수님의 특강이 마음에 와닿아 큰 격려가 되었어요. 하지만 이런 특별한 모임의 장이 아닌 일상에서 과연 어떻게 여러 세대와 여러 사람들을 다양하게 접촉하면서 소통할 수 있을지 고민이 더욱 깊어지네요.

― 청소년·청년 담당 교역자이기에 더 실제적인 고민을 하게 되겠네요.
요즘 이단들이 청년들에게 접근할 때, 청년들이 겪는 신앙의 고민들을 아주 교활하게 잘 짚어가며 활용하고 있어요. 제가 있던 곳에서도 몇 번 신천지 피해를 겪었는데요. 큰 피해는 없었지만 그 과정에서 반성하게 되는 점이 있었어요. 내가 과연 그 이단들보다 진정성 있게 청년들을 대했을까? 그랬다면 그들이 미혹되는 일들도 없었을 텐데…. 내가 성경을 제대로 알려주었더라면, 성경을 잘 알려주겠다는 그들의 말에 혹하지 않았을 텐데, 하는 뼈아픈 반성이었죠. 결국 진심으로 사랑하며 소통하는 게 중요한데, 문제는 그게 쉽지 않다는 거겠죠.

   
▲ 복도에서 공연을 즐기는 참가자들 ⓒ복음과상황 정민호

― 어느 시대나 마찬가지였겠지만, 특히나 요즘 청소년들은 사회 이슈에는 관심이 없다는 말들을 많이 합니다.
매주 청소년들을 만나는 입장에서는 동의하기 어려운 말이에요. 요즘 아이들은 오히려 사회 이슈에 아주 예민하게 반응해요. 과거에 청소년들의 전형적인 고민으로 여겨진 ‘친구’ ‘가족’ ‘성적’ 등을 넘어서 요즘은 ‘동성애’ ‘성 평등’ ‘혐오’ ‘차별’과 같은 사회 이슈에 대해 아주 큰 관심을 보여요. 이런 이슈들을 고민하며 자신의 종교관, 정치관, 세계관을 형성해가고 있지요. 그래서 이런 양날의 검과 같은 고민을 함께해줄 선배가 필요한 것 같아요.

― 이런 대형 집회가 청소년을 비롯한 젊은 세대에 도움이 될까요?
저는 이번에 처음 와봤는데요. 여느 다른 집회와는 달리, 전해지는 메시지가 우리의 거친 현실을 잘 반영해서 좋았습니다. 기존 집회들이 너무 원론적이어서 현실과 거리가 먼 이야기를 듣게 될 때가 많았거든요. 현실과 거리가 있는 메시지에 억지로 ‘나를 죽이며’ 따라가는 경험을 하기도 했고요. 하지만 이번 성서한국 전국대회의 집회나 진행 방식에서 전달되는 메시지는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장을 간과하지 않는다’는 거였어요. 강압적으로 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참가자들 각각 받아들이는 속도를 존중하면서 결과적으로 ‘지금, 여기’에서의 자발적 변화를 끌어낸다는 점이 정말 색달랐어요. 이런 점들 때문에 전국대회는 다음 세대의 청소년과 청년에게 조금 더 친절하게, 가까이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물론 많은 부분 시행착오를 거치며 다듬어야겠지만요. 저에게 현실과 사회를 고민할 힘을 키울 수 있는 에너지를 준 것처럼, 충분히 다음 세대의 청소년들에게도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봐요.

― 요즘 신대원 분위기는 어떤가요? 성 소수자 혐오를 반대했다는 이유로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도 있는데요.
최근 들어 신학생들에게 어떤 입장을 갖게 하는 압박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각각 다른 사람들의 서로 다른 ‘상식’들이 부딪치는 공간 같아요. 신학적인 문제에 관해서, 혹은 상식에 대해 분명한 자기 입장을 가지지 못하면 몰상식한 사람으로 여겨질까 봐 걱정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다들 치열하게 자기 답을 찾고 있는 것 같아요.

 

진행 이범진 기자, 김다혜·정민호 수습기자 goscon@gosco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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