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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가 공적 공간이다
윌리엄 T. 캐버너의 《신학, 정치를 다시 묻다》(비아, 2019)
[348호] 2019년 10월 28일 (월) 17:41:52 최경환 goscon@goscon.co.kr
   
▲ ⓒ복음과상황

1. 저자의 관심: 국가 신화 해부
언젠가 스탠리 하우어워스의 신학을 비판하는 논문을 읽다가, 《베네딕트 옵션》을 쓴 로드 드레허는 ‘하우어워스의 학부생’이고 윌리엄 T. 캐버너는 ‘하우어워스의 대학원생’이라는 우스갯소리를 접한 적이 있다. 기독교만의 독특한 맛과 향을 내는 대안 공동체를 꿈꿨던 하우어워스의 신학을 저급하게 적용하면 《베네딕트 옵션》처럼 되고, 학문적으로 세련되게 다듬으면 캐버너의 신학이 된다는 의미였다. 국내에 처음으로 소개되는 윌리엄 T. 캐버너는 실제로 하우어워스에게 박사학위를 받은 가톨릭 신학자로서 최근 정치신학과 교회론 분야에서 주목받는 학자다.

근래 인문학의 중요한 관심사 중 하나가 바로 ‘종교의 귀환’(the return of religion)이다. 이는 지난 200년 서구 근대화와 세속화의 결과가 예상과는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진단에서 비롯됐다. 근대화가 지속되면 종교는 자연스럽게 사적 영역으로 후퇴하고 사람들은 신에게서 벗어나 자율성이 강화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런데 오늘날 서구 사회는 역으로 종교 인구가 증가하고 있고, 종교로 말미암은 갈등과 폭력은 이전보다 더 늘어났다. 근대 국가가 출현하면 종교가 지닌 근원적 폭력성과 편협한 세계 이해가 교정되고 정화될 줄 알았는데, 오판이었다. 오히려 근대 세계도 유사 종교가 성행하고, 그로 인한 폭력도 정당화되는 사례를 쉽게 목격할 수 있다.

종교는 사라지지 않았다. 다만 다른 방식으로 변모했을 뿐이다. 그래서 캐버너는 “세속적인 정치 이론은 실제로는 위장한 신학”이라고 말한다(13쪽). 미몽과 편견에 사로잡힌 종교적 세계관을 벗겨내 이성과 합리성으로 무장한 새로운 세계를 만들겠다는 근대 국가의 이상은 또 다른 신학에 사로잡힌 신화에 불과하다.

어떻게 해서 지방 농촌에 살고 있던 한 소년이 병사가 되어 세계 다른 지역으로 이동해 자신이 전혀 알지 못하는 이들을 죽여야 한다는 이야기에 설득되는 것일까? 이를 위해서 그는 국경의 실체를 확신해야 하고, 각 경계선 위에 우뚝 서 있는 더 넓은 국가 공동체와 자신이 깊고도 신비로운 연합을 이루고 있음을 상상해야 한다.(12쪽)

만약 국가가 만든 신화에 사람들이 사로잡히지 않았다면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하겠는가? 그러니 신의 죽음은 루이 16세의 목을 자르듯 단칼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근대 국가는 신학을 공적 영역에서 추방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은밀하게 내면화하여 자신의 입지를 공고하게 구축했다. 캐버너는 홉스, 루소, 로크의 저작을 통해 이런 근대 국가의 신학을 낱낱이 해부한다.     

2. 편집자의 선택: ‘비아’라는 브랜드
최근 도서 마케팅의 트렌드는 저자와 독자가 직접 만나고, 편집자가 마케터가 되어 독자와 소통하는 것이다. 비아 출판사는 이런 흐름에 걸맞게 ‘책 덕후’들을 직접 만난다. 그들의 취향을 정확하게 저격해 알찬 책을 출판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고급스럽고 반복적인 이미지 패턴을 통해 독자들에게 자기만의 브랜드를 확실하게 각인시킨다. 이제는 무엇이 비아의 색깔이고 취향인지 독자들이 정확하게 인식할 수 있다. 그렇게 비아는 단골을 조금씩 늘렸고, 이를 정기독자 제도와 연결해 어느 정도 안정적인 팬덤을 형성했다. 진정 작지만 알찬 출판사다.

그동안 출판사는 책 만드는 과정을 독자에게 공개하지 않았다. 아니 굳이 할 필요가 없었다. 편집, 교정, 디자인, 인쇄 등의 프로세스는 독자에게 감춰진 출판사의 속살과 같았다. 그런데 최근에는 책 한 권이 나오기까지의 과정 자체를 마케팅 소스로 활용하는 출판사가 늘고 있다. 비아 출판사는 독특하게도 저자의 원고를 편집자들이 함께 윤독하는 모습을 공개한다든가, 표지 디자인을 고르는 과정을 고스란히 SNS에 공개한다. 책을 기획하고, 집필하고, 편집하고, 판매하는 모든 과정을 마케팅 소스로 활용한 것이다. 그리고 독자들은 SNS에 인증사진을 찍어 올리면서 출판사에 대한 애정을 보여준다.

비아 출판사의 시작부터 주목하며 응원했던 나는 그동안 출판사가 어떻게 진화하는지 지켜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처음에는 해외 유명 저자들의 책을 문고판 형식으로 출간하면서 출판 경험을 쌓아가더니 이제는 참신한 시리즈를 기획해서 한국 기독교의 빈틈을 하나씩 채워가기 시작했다. 이번에 나온 캐버너의 책은 ‘비아 제안들’ 시리즈의 여섯 번째 책으로, 이 시리즈는 기독교 전통을 새롭게 해석하고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이 책은 국내에 거의 소개된 바 없는 급진 정통주의(radical orthodoxy)와 신학적 정치학(theological politics)이라는 새로운 신학 사조의 선봉에 선 윌리엄 T. 캐버너의 전체 신학을 개괄적으로 보여주는 책이다. 이 책을 읽으면 무엇이 그토록 급진적인지, 정치학에 왜 신학이 개입하게 되는지를 분명하게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은 저자, 역자, 그리고 출판사 모두가 한국교회와 기독교를 향해 던지는 ‘새로운 제안’이다.   

3. 비평가의 시선: 무엇이 진짜인가?
캐버너는 국가, 시민사회, 세계화라는 세 개의 개념 속에 있는 ‘유사 신학’을 폭로한다. 특별히 그는 오늘날 유행하는 공공신학을 날카롭게 비판한다. 그에 따르면 공공신학자들은 국가와 시민 사회가 분리되었다고 당연하게 전제하고, 그 속에 교회의 자리를 어떻게든 만들어 보려고 노력하는 이들이다. 다시 말해, 오늘날 자유주의자들이 만든 틀 안에서 기독교가 공론장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공적 이성’이라는 공통의 규칙을 잘 준수해야 한다고 공공신학은 말하는데, 이 과정은 좋게 말해서 ‘대화’이지만 나쁘게 말하면 ‘타협’이라는 지적이다. 캐버너는 이런 타협에 분노한다.

공적인 장에 들어가기 위해 교회가 치러야 할 대가는 그리스도교적 발언을 공적 이성의 기준에 따라 스스로 규율해 자신의 특정한 진리 주장을 굴복시켜야 한다는 점이다.(132쪽)

기독교가 세상을 향해 공적 진리를 주장하기 위해 자신의 카드를 모두 포기해야 한다면, 그건 과연 기독교를 위한 것인가, 아니면 민주주의를 위한 것인가? 신학은 공적인 것에 복종해야 하는가, 아니면 신학이 공적인 것을 만들어야 하는가? 이러다 “그리스도교의 상징들은 사회 윤리라는 분쇄기를 통과해 공적으로 소화될 수 있는 정책으로 나와야만” 하는 것 아닌가?(134쪽) 그리스도교가 가지고 있는 고유성, 독특성, 그 맛과 향, 그것을 분쇄기에 넣어서 형태도 없이 뭉개버리면, 우리는 왜 굳이 이런 과정을 용인해야 하는가?

캐버너에게 ‘진짜 세계’는 바로 그리스도교의 전례, 성사, 교리를 통해 구현되는 세계다. 세속 사회가 보여주는 공적 가치, 공공선은 가짜 세계, 거짓 현실에 불과하다. 캐버너는 근대 국가가 그어 놓은 공·사 구분을 해체해서 교회야말로 진짜 공적 공간이라고 말한다. 가짜 평화, 가짜 정의를 선전하는 세속 국가에서 교회는 그리스도의 평화를 신실하게 실천함으로 각자의 지역에서 이를 전파하는 공적 공간이 된다. 굳이 복음을 세상의 언어로 가공하거나 중립적인 언어로 번역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복음 그 자체에 이미 세상에 새로운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힘이 있다. 그 힘이 세상 사람들을 빛으로 초대한다.

캐버너는 성찬을 통해 이런 정치학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성찬을 통해 우리는 옆에 있는 낯선 타자를 자신의 이익이라는 렌즈로 보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신비로운 몸의 동료 지체로 보도록 훈련을 받는다.”(153쪽) 성찬을 통해 인종과 국경을 초월해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자매라는 새로운 관계를 만들 수 있다. 국가도 어찌하지 못하는 새로운 시민권을 교회가 부여할 수 있다. 복음의 본질, 그리스도교의 핵심을 포기하지 않으면서 세상과 다른 방식으로 세상에 새로운 충격과 도전을 줄 수 있다. 그렇다면 과연 누가 진짜 공적 존재인가?

4. 독자의 취향: 더 많은 커뮤니케이터가 필요하다
누구나 고전이 중요하고, 고전을 읽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고전을 읽는 것은 정말 지루하고 힘들다. 요즘같이 즉흥적이고 현실적이며 감각적인 책이 쏟아지는 시대에 고전을 읽으려면 많은 용기와 여유가 필요하다. 예전 같으면 대학원에서 힘들게 홉스나 루소의 책을 읽으며 낑낑대고 있을 대학원생들도 지금은 학문의 쓸모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다. 교수들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언제 잘릴지 모르는 대학에서 전문적인 연구에 몰입하기보다는 대중을 상대로 쉽고 재미있게 강의할 수 있는 기술과 능력을 개발해야 부수입이라도 마련할 수 있다. 어느 한 모습을 비난하고 싶지는 않다. 누군가는 골방에서 고전을 낑낑대고 읽으며 그 의미를 풀어내야 하지만, 또 누군가는 그 내용을 대중이 먹기 쉽게 잘 요리해야 한다. 때로는 자극적인 인스턴트 음식도 필요하다.

캐버너는 대중이 쉽게 접근하지 못하는 고전을 자유자재로 다룰 줄 아는 전문가다. 그리고 고전을 읽으며 얻은 통찰을 현대 사회에 정확하게 적용할 줄 아는 커뮤니케이터다. 캐버너는 자신이 읽었던 책들의 핵심을 최대한 간략하게 정리해 신학적 정치학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활용한다. 이것이 바로 급진 정통주의자들이 근대 세계를 비판하는 하나의 방법이다. 그들은 신학과 정치가 절대 분리되지 않으며, 중세와 현대가 맞닿아 있다는 것을 계속해서 드러낸다. 그리고 고전 속에서 근대의 문제점을 극복하는 길을 찾는다.

하지만 이 책은 쉬운 책이 아니다. 일단 그가 다루고 있는 사상가들이 상당히 많고, 논의의 구조도 꽤 복잡하다. 그런 점에서 우리에게는 또 다른 커뮤니케이터가 필요하다. 캐버너의 신학을 우리의 입맛과 상황에 맞게 재조정해서 적용해줄 커뮤니케이터 말이다. 전문적인 신학자나 정치학자가 아니어도 좋다. 그저 캐버너의 논지를 정확하게 파악해서 독자들이 이해할 수 있는 쉬운 언어로 설명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이런 능력을 갖추는 것이야말로 정말 어려운 일이지만) 커뮤니케이터이면 된다. 그런 능력자들이 많이 나오면 좋겠다. 이 책을 번역한 역자에게 그런 기대를 걸어본다.


 

 

최경환
학부와 대학원에서 신학과 철학을 공부했고, 남아공 프리토리아 대학교에서 공공신학을 연구했다. 현재는 과신대(과학과 신학의 대화) 기획실장으로 일하면서 인문학&신학연구소 에라스무스 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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