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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나온 책에 관하여
[352호 박용희의 독서일기]
[352호] 2020년 02월 19일 (수) 11:36:06 박용희 goscon@goscon.co.kr
   
예수, 역사와 만나다
야로슬라프 펠리칸 지음
/ 민경찬·손승우 옮김
비아 펴냄

가끔은 책이 생물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책이 태어나 죽기까지를 구체적으로 상상해보는 것이다. 이를테면, 기획자의 아이디어에서 잉태된 콘텐츠가 작가, 편집자, 디자이너, 제작자의 손을 거쳐 한 권의 책으로 탄생한다는 식이다. 세상에 태어난 책은 서점에 진열되어 독자들의 선택을 기다린다. 몇몇은 많은 사랑을 받으며 베스트셀러가 된다. 또 일부는 스테디셀러로 살아남아 오랫동안 독자들과 더불어 살아간다. 대다수 책은 잠시 매대나 서가에 머물다가 창고로 직행한다. 창고에 쌓여 있다가, 일정 시간이 지나 ‘절판’이라는 이름으로 사망 선고를 받는다. 용서점 한쪽에 자리 잡은 중고서적들은 그나마 간신히 살아남은 축에 든다고 생각하면 괜히 대견해지기도 한다. 

‘사라진 책들’의 운명
그렇게 사라진 책들 중 아주 극소수는 다시 기회를 얻어 출간되기도 한다. 출판사의 판단으로, 독자의 요청으로, 다양한 이유로 책들이 다시 출간된다. 기독교 서적 중에도 그런 책들이 꽤 있다. 최근에 다시 출간된 게르트 타이센의 《갈릴래아 사람의 그림자》도 오랫동안 절판이었다. 어떤 책들은 기회를 얻지 못하고 그대로 사라지기도 한다. 엘리자베스 피오렌자의 《크리스찬 기원의 여성신학적 재건》처럼 아예 거래가 없는 책들도 많다. 꼭 묵직한 신학서적만 그런 게 아니다. 레너드 스윗의 《교회 스타벅스에 가다》는 딱히 이유 없이 고가에 거래되고 있다. 마르바 던의 《약할 때 기뻐하라》도 마찬가지다. 

구하기 힘든 책들은 수집가들에게는 즐거움이지만 단지 책을 읽고자 하는 독자들에게는 꽤 불편을 안긴다. 책을 구하기도 어렵고, 가격은 터무니없이 비싸다. 정작 어렵게 구한 책은 오래된 판형과 편집으로 읽기가 만만치 않다. 책 상태가 나쁜 경우도 많다. 책을 펼치자마자 반으로 쩍 갈라지는 황당한 경험을 할 때도 있다. 이런 책들은 소장용으로만 가치가 있다. 용서점에도 손바닥만 한 판형의 《나를 따르라》가 있는데, 당시에 이 책을 어떻게 읽었나 싶을 정도로 가독성이 나쁘다. 다행히 본회퍼의 책은 대한기독교서회와 복있는사람에서 각각 새로운 판본으로 출간을 해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다시 출판된다고 무조건 환영받는 건 아니다. 야심 차게 다시 출간했지만, 독자들에게 별 관심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어떤 책들은 표지만 슬쩍 바꿔서 내기도 한다. 심지어 제목까지 바꾸고, 별도로 설명을 달지 않아서 신간인 줄 알고 두 번 구입하는 독자도 생긴다. 그렇게 다시 나온 책들은 매출에는 도움이 될지 몰라도 독자들에게는 안 좋은 기억을 남긴다. 어쨌든 책이 다시 나올 때는 충분한 이유가 필요하다. 책의 모든 요소가 변화의 고려 대상이다. 

다시 나와야 할 이유들
비아 출판사에서 얼마 전 출간한 《예수, 역사와 만나다》도 동연 출판사에서 《예수의 역사 2000년》이라는 제목으로 1999년에 출간되었다가 절판된 책이다. 그동안 이름만 들었던 책이었는데, 이번에 비아에서 ‘만나다’ 시리즈로 다시 출간했다. 비아는 얼마 전에도 게르트 타이센의 《갈릴래아 사람의 그림자》를 새로운 번역으로 독자들에게 소개하기도 했다. 그전에는 리처드 버릿지의 《복음서와 만나다》도 다시 낸 적이 있다. 세 권 모두 신학교에서 부교재로 사용할 정도로 쓰임새가 분명한 책이었는데, 그동안 잠들어 있다가 새롭게 독자에게 소개된 경우다. 

우선 표지가 눈에 띈다. 자세히 보면 예수의 얼굴을 모아서 하나의 형상을 만들었는데, 그게 예수의 왼쪽 눈이다. 동방정교회 전통에서 이콘의 왼쪽 눈은 예수의 신성을 상징한다고 하니, 분명 의도가 있는 구성이다. 이전 판에는 예수의 초상이 그려진 것으로 표지를 마무리했으니, 그보다 한발 더 나간 시도라고 봐야 할까? 

무엇보다 이 책의 본문을 펼치면 페이지마다 빽빽하게 채워진 각주를 볼 수 있다. 각 장마다 시대별로 참고해야 할 이름들이 빼곡하게 담겨 있기에, 이런 각주는 유용하다. 이 또한 개정된 중요한 요소다. 각 장을 시작하는 문단에는 다양한 십자가 문양이 등장하는데, 알고 보면 각각 의미가 있는 배치다. 다시 나온 책에서 이토록 세심한 변화와 배려를 발견하는 건, 독자가 누릴 수 있는 꽤 큰 즐거움이다. 

내용에 관한 측면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예수에 관한 책이 넘치도록 많지만(온라인 서점에 검색어로 ‘예수’를 넣으니 7,373개의 결과물이 나온다.) 대부분 주석서, 설교집, 혹은 교리서다. 이 책은 그와 결이 조금 다른데, 저자가 서문에 밝힌 것처럼 ‘사람들이 (예수를) 어떠한 의미로 받아들였나’ 하는 부분에 초점을 맞춘다. 시대별로 예수의 ‘상’을 어떻게 그렸느냐에 따라 얼마나 큰 변화가 있었는지를 보여준다. 책에서 언급되는 저명한 인물들을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숨이 가쁠 지경이다. 이런 화수분 같은 책이 절판되어 묻힐 뻔 했다니! 

얼마 전, 안양에 사는 독자 한 분이 대중교통으로 한 시간 이상 걸리는 용서점까지 찾아온 적이 있다. 취미로 신학 서적을 읽는 분이었는데, 최근에는 독일 신학자의 책들을 읽어가고 있다고 했다. 얼마 전까지 칼 바르트의 저작들을 좇아서 읽어왔는데, 그러다 보니 슐라이어마허에 대해서도 호기심이 생겨서 절판된 책을 구하러 온 것이다. 책방을 열고 이런 숨어 있는 열혈 독자들을 종종 만난다. 당연히 절판되었다가 이번에 새로 나왔다는 말과 함께 《예수, 역사와 만나다》를 권했다. 마치 선물을 받은 아이처럼 기뻐하던 손님의 모습이 떠오른다. 숨어 있던 책을 다시 세상으로 내보낸 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장면이었다. 

 

 

박용희
역곡에서 동네책방 '용서점'을 운영한다. 동네에서 이웃들과 온갖 작당을 하며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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