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7호 사람과 상황] 복상이 주목했던 통일 연구자 강구섭 교수

분단 70년을 훌쩍 넘긴 시대. 여러 이유로 ‘통일’이라는 말이 시대착오적이라 여겨지는 시대다. 우리 사회의 절망적인 현실 앞에 통일의 중요성은 한참 뒤로 밀리거나, 심지어 위험을 부담해야 할 ‘문제’로 취급된다. 6월의 단골 주제였던 ‘분단’ ‘통일’은 여전히 곱씹을 만한지 확신이 들지 않았을 때 《독일 통일의 또 다른 이름들》이 출간됐다는 소식을 접했다. ‘독일 통일 30년을 돌아보며 한반도 통일의 미래를 생각하다’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을 쓴 저자가 17년 전 ‘복상이 주목한 100인의 그리스도인’에 선정됐던 인물임을 확인하고 곧바로 인터뷰를 요청했다. 며칠을 고민하던 강구섭 전남대 윤리교육과 교수가 인터뷰에 응했고, 5월 6일 전남대 교육융합관에 자리한 그의 연구실을 찾았다. 불공정이 만연해 희망을 찾기 어려운 사회에서 통일의 미래를 그리는 일이 가능한지 물었다.

강구섭 교수는 홈볼트 대학에서 '독일 통일 후 동서독 주민의 내적통합'이라는 주제로 박사 논문을 썼다. 북한대학원대학교 겸임교수, 한국교육개발원 통일교육연구실장, 통일부 정책자문위원 등을 역임했다. ⓒ복음과상황 정민호 
강구섭 교수는 홈볼트 대학에서 '독일 통일 후 동서독 주민의 내적통합'이라는 주제로 박사 논문을 썼다. 북한대학원대학교 겸임교수, 한국교육개발원 통일교육연구실장, 통일부 정책자문위원 등을 역임했다. ⓒ복음과상황 정민호 

- ‘복상이 주목한 100인의 그리스도인’(2004년 3월) 학술 분야에 선정된 바 있다.

인터뷰에 응해야 하나 고민을 많이 한 이유다. 그동안의 삶을 돌아보며 ‘100인’으로서 역할을 하며 제대로 살았는지 마음이 몹시 무거웠다. 대단하지는 않지만, 가지고 있는 역량보다 과분한 권위를 누리며 살고 있는데, 과연 그에 걸맞게 기여하고 있는지 자신이 없었다.

- 2000년대 초반부터 지금까지 ‘통일’ 관련 연구를 지속해왔다. 통일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나?

1970~1980년대 수준은 아니었지만, 여전히 정치·사회적으로 갈등이 심했던 1990년대 초반 대학에 입학해 사회에 눈을 떠가기 시작하며, 우리나라의 여러 사회문제가 분단에서 기인한 것이라는 나름의 결론을 내렸다. 교육학 전공과 연계해서 분단 문제를 어떻게 풀어갈까 고민하던 중에 ‘북한이탈주민의 남한 사회 적응’을 주제로 석사 논문을 썼다. 그때 분단을 극복하고 통일을 실현하는 일만큼이나 통일 이후를 대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되었고, 독일 사례를 연구하면 우리 사회에 더 기여할 수 있겠다고 판단해 독일 유학을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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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과상황 정민호 

- 10년 정도 독일에 머물면서 ‘독일 통일 후 동서독 주민의 내적통합’을 주제로 박사 논문을 썼다. 

통일 이후 동서독 주민들이 조화롭게 공존하기 위해 교육 영역이 어떠한 역할을 했고 어떤 성과를 거뒀는가에 관심이 있었다. 통일 초기에는 서독으로부터 이식된 제도를 잘 안착하는 일이 시급했고, 동독 주민들이 새로운 체제에 잘 적응만 하면 큰 갈등은 없을 거라 여기는 분위기였다. 그런데 동독 주민들은 하루아침에 새로운 제도와 체제에서 살아야 하는 처지가 됐고, 대규모 실업을 겪으면서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 유학 당시는 통일된 지 10년 정도밖에 지나지 않아서 동서독 양측의 갈등이 더 잘 보였을 것 같다. 

꼭 그렇지는 않았다. 사실 일상에서 심각하게 목격할 수 있는 양측의 갈등은 많지 않았다. 학위를 시작할 무렵은 통일 후 10년 정도 지난 상황이어서 통일이나 내적통합이라는 주제가 독일 사회의 주요 이슈는 아니었다. 그렇다고 갈등이 전혀 없지는 않았다. 대체로 내재해있다가 은연중에 드러나는 방식으로 표출되었다. 겉으로 빈번이 드러나는 심각한 상황은 아니었다.

2004년 노동정책에 반발해 시위에 나선 동독 주민. (사진: 강구섭 제공)
2004년 노동정책에 반발해 시위에 나선 동독 주민. (사진: 강구섭 제공)

- 최근 독일 통일 30년을 돌아보는 책 《독일 통일의 또 다른 이름들》을 출간했다. 

통일은 제도적 차원에서 이뤄지는 것이기도 하지만, 개별 시민의 평범한 삶에서 시작된다. 독일에서 발생한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통일을 실제적인 삶의 과제로 생각하는 기회를 나누고 싶었다. 어떻게 보면, 순전히 동독 주민 관점에서 쓴 책이다. 우리의 통일을 준비하는 데 있어서, 통일을 일방적으로 수용해야만 했던 동독 주민이 느꼈던 어려움을 살펴보는 작업이 제법 의미가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 동독 주민의 어려움이란 어떤 것들이었나.

하루아침에 급격히 바뀐 사회 환경에서 느끼는 심리적 충격, 대량 실업 사태에 따른 공동체 파괴, ‘2등 국민’으로서의 패배감, 소외감 등이 대표적이다. 민주주의 체제가 충분히 경험할 시간과 기회 없이 그대로 동독에 이식되면서 동독 주민은 반감을 가질 수 밖에 없었다. 동독 출신 신학자이자 정치인인 리처드 슈뢰더는 “구서독은 2차 대전 이후 경제 부흥과 함께 민주주의를 경험했으나 동독의 경우 민주주의를 경제 파산과 함께 경험했다”고 지적한다. 통일 후 대규모 실업을 겪은 동독인들에게 민주주의는 경영자 입장을 대변하는 ‘정치’로 여겨졌다. 1990년 동독 주민의 민주주의 만족도는 60% 수준이었는데 1993년에 40%로 떨어졌고, 2019년에도 42%(서독 77%)에 머문다. 이런 정서가 최근의 난민에 대한 강한 거부감으로 이어진 측면도 있다.

- 한반도 통일을 상상할 때에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 현재의 정서로 보면 독일보다 더 심각한 갈등이 예상된다.

먼저 독일과 한반도 상황은 매우 다르다는 사실을 전제해야 한다. 동서독 통합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들을 남북의 문제에 그대로 대입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그럼에도 우리가 어떤 문제들을 맞닥뜨릴 것인가를 예상하게 해준다는 점에서 시사점이 있다. 남북한 상황은 동서독보다 훨씬 여의치 않다. 분단된 지 70년을 넘겼고, 북한을 적대적으로 여기는 성향을 지닌 주민들이 많다. 북한이탈주민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 낙인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것이 남한의 상황이다. 독일은 그 정도는 아니었음에도, 통일 후 갈등이 적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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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과상황 정민호 

- 통일된 지 30년이 지났는데 청소년들에게도 ‘동독 정체성’이 있다는 내용을 《독일 통일의 또 다른 이름들》에서 보고 놀랐다.

동독 주민 관점에서 내용을 다루면서 일부 사례가 마치 일상에서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처럼 오해할 수 있을 것 같아 조심스럽다. 통일 초반 나타났던 동서독 간의 사회·경제적 격차가 지금은 상당히 줄어들어 동독 주민이 처한 삶의 상황이 개선되었다는 사실은 객관적 수치로도 나타난다. 동독 출신이라는 것이 핸디캡으로 작용하는 사회도 분명 아니다. 우리나라의 지역감정처럼 평상시에는 크게 문젯거리가 되지 않다가 특정 상황에서 문화적 차이나 이질감이 드러나는 정도인데, 통일 후 태어난 이들이 겪는 감정도 비슷하다. 그들을 동독 출신이라는 색안경으로 바라보는 일부 서독 지역의 시각도 많이 개선되었지만 여전히 상존하는 동서독 간의 격차, 이에 대한 동서독 주민의 시각 차이 등이 혼재되어 청소년 세대 사이에서도 동독 정체성이 나타난다고 볼 수 있다. 경중을 따지자면, 북한이탈주민의 자녀들이 겪는 어려움이 훨씬 클 것 같다.

- 최근에 우리 사회에서 독일 교육 시스템이 모범 사례로 논의되고 있다.

우리가 참고할 만한 내용이 분명 많지만, 지나치게 이상적인 관점에서 접근하는 태도는 경계해야 한다. 독일 교육도 문제점이 적지 않다. 입시를 예로 들면, 독일도 경제력 상위 25%, 하위 25% 간 대학 진학률이 10배 정도 차이가 난다. 부모의 고등교육 이수 비율에 따라 자녀의 진학률도 3배 차이가 난다. 다양한 사례를 보며 우리의 체제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는 일은 필요하지만 독일 교육의 강점만을 말하면서 우리 교육은 왜 이 모양인가 한탄하고 자조하는 분위기가 유발되는 것은 안타깝다. 우리의 문제를 제대로 들여다보고, 그 문제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고민해야 한다.

- 독일은 대학 서열이 없고, 입시 경쟁도 치열하지 않다고 들었다.

연방주마다 차이가 있기는 한데 일반적으로 독일에서는 초등학교 5학년(우리나라 기준) 때 진로가 상당 부분 결정된다. 인문계로 갈 학생, 직업계로 갈 학생이 어릴 때 정해지는 건데, 교사들의 권고가 영향을 많이 끼친다. 교사의 권고에 학생의 가정환경이나 학부모 배경이 고려된다는 점이 문제다. 학생에게 가능성이 보여도 이주민 가정이면 직업계를 권고하는 식이다. 이에 대한 비판이 적지 않고 이러한 구조를 완화하기 위한 시도도 계속 이뤄지고 있지만 쉽게 바뀌지는 않고 있다. 2017년 조사에 따르면, 독일의 89개 국립대학 총장 가운데 동독 출신은 한 명도 없었다. 극단적 대학 서열 구조가 없는 것이라든지 교육체제에 바람직한 측면이 있지만, 그렇다고 무조건 무비판적으로 보려고 하는 시각에는 문제가 있다고 본다. 해외 사례를 통해서 영감을 얻을 수는 있지만, 우리가 필요로 하는 즉답을 얻기는 어려운 것 같다. 우리 문제는 결국 우리 안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 문제를 축소하거나 한 면에서만 보지 않고 정직하게 적극적으로 논의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독일 통일의 또 다른 이름들 - 독일 통일 30년을 돌아보며 한반도 통일의 미래를 생각하다 / 강구섭 지음 / 전남대학교출판문화원 펴냄 / 15,000원
독일 통일의 또 다른 이름들 - 독일 통일 30년을 돌아보며 한반도 통일의 미래를 생각하다 / 강구섭 지음 / 전남대학교출판문화원 펴냄 / 15,000원

- ‘현재의 구성원이 희망을 품을 수 있는 사회여야 통일의 희망도 품을 수 있는 사회다’라는 메시지가 《독일 통일의 또 다른 이름들》의 일관된 흐름인데, 그렇다면 우리는 통일과도 점점 멀어지는 것 아닌가.

통일 자체가 아닌 남북이 상생하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통일의 진짜 목적이라면, 지금부터 상생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통일 이후에는 지금보다 훨씬 많은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부딪치면서 갈등도 훨씬 커질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고용 문제,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 문제, 주거, 빈부 격차 등과 연결된 불평등을 해결하지 못하면서, 단순히 통일만 되면 새로운 기회가 펼쳐질 거라고 말한다면 통일 후 발생할 수 있는 갈등을 지나치게 과소평가하는 것이다. 단기간에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없다. 낙관적 사고로 인내심을 갖고 장기적인 접근으로 해결해가야 한다. 수십 년에 걸쳐 누적된 구조적 특성을 단기간에 해결할 수는 없다.

- 당장 우리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갈등을 해소하고, 다양한 분야에서의 사회통합을 이뤄가는 일이 통일을 위해서라도 중요한 과제인 것 같다. 실마리를 어디서부터 풀어가야 할까?

상생이나 통합이 말처럼 쉽지는 않다. 마르크스의 테제 중에 ‘철학자는 세계를 다양한 방식으로 해석하지만 중요한 것은 세계를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가에 있다’라는 말을 자주 떠올린다. 사회 현상과 상황에 대한 해석도 중요하지만, 실질적으로 변화를 만들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가의 문제는 정말 차원이 다른 지점이다.

우리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갈등을 극복하고 내적통합을 이룬다는 것은 개인 단위에서 접근할 문제는 아닌 것 같다. 개인에게 필요한 부분을 꼽는다면 서로 공감하는 역량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근데 공감도 개인 단위에서 그냥 이루기에는 한계가 있다. 많은 문제가 개인 혹은 집단의 이익, 이해관계에 촘촘히 엮여 있기 때문이다. 결국 공적 이익을 개개인의 사적 이익과 최대한 부합하도록 제도화하는 방식으로 공감대를 형성하는 길이 가장 현실적이다. 우리가 대의를 좇아 촛불을 들고 광장에 나설 수는 있어도, 그 대의를 위해 자기 이해와 이익을 포기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인간이 지닌 도덕적 역량이 그리 크지 않기 때문이다.

- 지금 우리 사회의 ‘불평등’을 들여다보는 게 의미 있는 첫걸음이 될 수 있겠다. 강준만 전북대 전 교수는 오랫동안 ‘지방은 서울의 식민지’라고 거센 비판을 해왔다. 광주에서 생활하시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실제로 체감하는 부분이 있는지?

4년 전 이곳에 자리를 잡고 가족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그동안 내가 얼마나 서울 중심으로 사고하며 살아왔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진짜 놀랐던 것이 광주에서 생활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세미나에 참석하기 위해 대구로 가려고 보니 직통으로 갈 수 있는 열차가 없었다. 동서 지역 간에 기차 노선이 많지 않다는 점을 알고는 있었지만 생활에서 체감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차원이었다. 모든 것이 서울, 수도권으로 통하는 사회에서 이 지역 정치인들도 서울만 오가니 대구나 부산행 기차가 없다는 사실에 불편함을 느끼지 않았을 것이다. 불편함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은 문제를 자기의 문제로 인식하기도 어렵고 결과적으로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에도 한계가 있는 것 같다. 지역 불평등을 피부로 느끼는 불편한 사람이 소리를 내고 공론화해야 하는 것 같다.

- 앞서 독일의 89개 국립대학 총장 중 동독 출신은 한 명도 없었다고 했는데, 다른 분야는 어떤가?

전체적으로 독일 사회 주요 요직에 동독 출신이 포진한 비율은 1.7%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동독 주민이 전체 인구의 20% 정도임을 고려할 때 매우 낮은 수치다. 16개 연방주 헌법재판소장 가운데 동독 출신은 단 1명뿐이었고, 연방정부 각 부처의 실장급 고위 공직자 109명 중 4명만이 동독 출신이었다. 동독 주민은 능력에 따른 차이를 넘어 보이지 않는 차별이 작동한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고, 분노로 이어지고 있다. 통일 후 서독의 체제가 이식되는 과정에서 불가피한 측면을 고려하더라도, 30년 세월 동안 서독 측이 강력한 네트워크와 정보를 이용해 새로운 기회를 계속 독식한 것은 비판받을 수밖에 없는 부분이라고 평가되는 게 중론이다.

- 우리나라도 주요 관료들의 이율배반적 행동이 구설에 올라 분노를 산 경우가 많다. 공정을 말하면서 불공정에 기대고, 평등을 말하면서 불평등을 고착시키는 사례들이 많은데….

자녀에게 좋은 기회를 주려고 하는 마음은 모든 부모의 인지상정이라 말하기 어려운 부분인 것 같은데, 주요 관료들이 ‘사교육 필요 없다’ ‘아이의 선택이 중요하다’라고 강조하면서 막상 자기 자녀에 대해서는 말과 다른 모습을 취하고 자신의 역량을 총동원해 자녀에게 어떻게든 유리한 스펙을 만들어주려고 하는 모습이 대중에게는 소위 말하는 ‘내로남불’로 보일 거다. 그런 사람들이 개혁을 말하니 공감을 얻지 못하는 것 아닌가.

- 우리 사회가 더 공정해질수록 통일 과정에서 발생할 갈등도 줄일 수 있겠다. 교사가 될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데, 공정이나 통일 관련 이야기는 어떻게 하는지 궁금하다.

사회적 불평등이나 빈부 격차는 독일에서도 상당히 심각한 문제다. 실업,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이 등이 불평등의 주요한 요인으로 제시되고 있지만, 무엇보다 계층에 따른 차이와 같은 개인의 선택이 아닌 임의적 요소의 영향이 문제의 원인으로 제기되고 있다. 지금 재직하고 있는 학교에는 이 지역에서 학업 성취 수준이 좋은 학생들이 많이 들어오는데, 학생들에게 ‘지금 있는 자신의 위치를 자기 노력의 결과로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지금의 위치가 순전히 자기의 능력이나 노력에 기인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성취했다고 자부하는 것, 내가 누리고 있는 것이 순전히 나의 노력에 의한 것이 아니라 내가 속한 사회와 공동체 속에서 타인의 도움과 협업을 통해 이룬 것이라는 사실을 인정할 때 서로 존중하는 안정된 사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학생들에게 통일은 먼 미래의 문제가 아니라 현실의 문제라는 점, 그리고, 통일은 결과보다 과정이 더 중요하다는 점을 많이 강조한다. 현실의 불공정과 부조리를 해소하지 못하고 있는데, 갑자기 통일이 된다고 해서 이러한 심각한 문제들이 해결되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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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과상황 정민호 

- 독일 통일 과정에서 ‘월요기도회’의 역할이 컸다. 교회가 공공의 이익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돌아볼 수 있는 사례 같다.

동독 시절의 교회는 거의 유일하게 정권으로부터 자주권을 인정받은 곳이었다. 그렇다고 교회가 아무런 제약 없이 드나들 수 있는 곳은 아니었다. 신앙을 가진다는 것이 동독 사회에서는 크고 작은 불이익을 감수해야 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통일 전 동독 주민은 나름대로 소박한 행복과 기쁨을 누렸으나 한편으로는 독재체제에 대한 불만이 계속 누적됐다. 이때 답답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자기 생각을 나눌 수 있는 공간이 교회였다. 신앙적 차원을 넘어 누구든 답답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 찾아올 수 있는 그런 공간이 교회였다. 그렇게 교회 공간에서 독재정권에 저항하는 운동이 시작됐다. 반면, 우리나라는 교회가 너무 많이 민심을 잃은 상태라 걱정된다. 그러나 지금 가진 공간이나 인적 자원을 활용하면 할 수 있는 일이 정말 많다. 육아, 보육, 노인빈곤, 외국인 학생 등 관심을 기울일 곳이 얼마나 많은가. 교회가 불평등이나 불공정 문제를 직접 해결하기는 쉽지 않겠지만, 할 수 있는 역할은 많다. 각박한 사회에서 뒤처진 이들에게 쉴만한 물가는 되어줄 수 있지 않을까.

- ‘통일’이라는 말 자체가 시대착오적으로 들리는 시대다.

베를린에서 기차로 1시간 정도 가면 프랑크푸르트 오더라는 작은 도시에 도착하는데, 걸어서 다리를 건너면 폴란드에 갈 수 있었다. 특별한 검문 없이 자유롭게 국경을 오가는 것이 그들에게는 자연스러운 일상이었다. 우리는 수십 년 동안 유지되어온 갈등이 너무 익숙한, 분단이 상수가 된 세상에 살다 보니 자연스러움과 부자연스러움의 관념이 바뀌지 않았나 싶다.
꽤 오랜 시간, 통일 문제에 대해 고민은 하고 있지만 상황이 그리 좋아진 것 같지는 않아 답답함을 많이 느끼게 된다. 그냥 시간이 지난다고 문제가 해결될 것으로 생각하지는 않고 각 개인이 우리 사회를 더 나은 사회로 만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겨우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복음과상황 정민호 

- 분단의 모순을 학문적 주제로 떠안은 지 30년 세월이 흘렀다. 신앙적 동기가 없지 않았을 것 같다.

대학 때 선교단체 활동을 하면서 예수님이 막힌 담을 허무신 것처럼 새로운 세상을 열어 소외된 이들도 함께 회복되는 사회를 만들겠다는 포부도 있었다. 30년이 지났는데 그만큼 앞으로 나아갔나? 냉정하게 볼 때, 아닌 것 같아서 부끄럽다. 특별히 나아진 것 없는 우리 사회의 아픔들을 보면 지난 경험들이 슬프게 느껴질 때도 있다. 우리 앞선 세대들은 적어도 빈곤의 문제는 해결한 것 같은데, 우리 세대는 후세대를 위해 별로 기여한 게 없는 것 같아 괴로울 때가 있다. 

진행 이범진 편집장 poemgene@gosco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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