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0호 에디터의 책꽂이]

아버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거룩히 여겨지소서,
당신의 이름이.

임하소서,
당신의 나라가.

이루어지소서,
당신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양식을,
우리가 하루 먹을 양식을
오늘 우리에게 주소서.

용서하소서,
우리의 빚을.
우리가 우리에게 빚진 사람들을 용서하듯이.

마소서,
우리가 시험에 들게 하지.
구하소서,
우리를 악한 자에게서.

당신에게 있습니다.
나라와 권능과 영광이
영원토록.
아멘.1)

‘기도’에 관심 많던 시절이 있었다. 그 열정이 옛일이 돼버려 씁쓸하지만, 7~8년 전 당시 내 기도 수업에 도움을 준 책들은 《사귐의 기도》·《사귐의 기도를 위한 기도선집》·《기도와 하나님을 아는 지식》·《구약의 위대한 기도》(IVP), 《성령이 도우시는 기도》(지평서원), 《기도합주회》(부흥과개혁사), 《기도의 능력》(크리스천다이제스트) 등이었다. 여기에 늘어놓으면 자칫 ‘흑역사’로 인식될 수 있는 은사주의 계통 책들도 있었다. 전부 다 지금 내 책장에는 남아있지 않다.

자연스럽게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인 주기도 해설서들도 읽었는데(주기도는 기도에 대한 일종의 모범 답안이었으니), 특히 기억에 남았던 부분이 김영봉 목사의 《가장 위험한 기도, 주기도》 머리말에 실린 주기도문 번역이었다. 어순과 반복법의 효과인지, 평균 22초, 길어도 30초 전후면 끝나던 주기도문이 낯선 울림으로 다가왔다. 말들의 의미를 더 상기할 수 있게 되어 기억에 남았던 모양이다.

읽은 지 오래되어 ‘느낌으로’ 말하면, 《가장 위험한 기도, 주기도》는 꽤 인상적인 제목처럼 복음의 가치에 맞게 생활을 하고 있는지 독자들 스스로 되묻게 하는 내용이 적지 않았다. 김영봉 목사의 다른 책들과 마찬가지로 부드럽고 정갈한 언어를 통해 묵상과 성찰의 분위기를 깔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이번에 ‘에디터가 고른 책’으로 《예수님의 기도 학교》(IVP)를 읽으면서 김 목사의 다른 책과 더불어 언급되기에 책장을 뒤졌다.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았다. 누구를 줘버렸던가, 중고로 팔았던가. 서너 차례 책장을 비웠는데, 그 속에 섞여 들어갔던가. 다른 주기도 해설서를 찾아보니 한국 저자들 책은 사라졌고, 쟁쟁한 번역서들만 남았다. 요즘 멍 때리며 습관적으로 외우고 있는 주기도문을 다시 묵상하기 위해 책들을 꺼냈다. 꽤 긴 시간이 지났는데도 살아남은(?) 주기도 해설서들을 정리해봤다.

알렉산더 슈메만의 《우리 아버지》(비아, 2020), 존 도미니크 크로산의 《가장 위대한 기도》(한국기독교연구소, 2011), 윌리엄 윌리몬과 스탠리 하우어워스의 《주여, 기도를 가르쳐 주소서》(복있는사람, 2006), 헬무트 틸리케의 《세계를 부둥켜안은 기도》(홍성사, 2008). 《우리 아버지》를 빼면 제법 오래되었고 몇 쇄를 거듭했던 책들로 기억한다. 이미 읽었다면 책에 얽힌 기억을 떠올려봐도 좋겠다. 새로운 기분에 젖어들 수도 있지 않을까(이 글을 쓰면서 내가 그랬다. 두 권을 다시 정독했다).

‘중언부언하듯이 익숙해진 말들을 내뱉는 데 여념이 없다.’ 그저 매주 예배 순서 중 하나로 주기도문을 떠나보내는 그리스도인들을 향해, 위 저자들이 공통적으로 언급하는 내용이다. 주기도에 대한 정의는 조금씩 다르지만,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는 이들에게 ‘예수님께서 직접 가르쳐 주신 기도’라는 점은 의미가 크다. 그리스도인 정체성을 나타내주는 대표적 기도라는 말이다. 그 해설은 당연히 어떤 시대(상황), 어떤 자리에서 쓴(말한) 것인지에 따라 꽤나 달라진다.

정교회 사제이자 전례신학 대가인 슈메만이 구소련인들을 대상으로 전한 라디오 강연을 묶은 《우리 아버지》는 읽으면서 묵상에 잠기기 좋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 등 각 구절 해설은 주기도의 다른 구절들과 공명하며 그 뜻이 어떻게 하나로 잇닿는지 보여준다. 주기도 구절을 어떻게 음미하면서 입 안에 맴돌게 해야 할지 알려주듯, 해설할 때 설명을 이어가다가 몇 차례나 해당 구절을 언급하며 되뇐다. 이런 식이다(다음의 글은 왜 이 책 제목이 ‘우리 아버지’(Our Father)인지도 짐작하게 해준다).

우리 아버지

이 말은 다른 모든 간구를 가능하게 하며 그 모든 간구에 의미를 불어 넣습니다. 가장 깊고도 근원적인 의미에서 그리스도교는 거룩하신 그분의 아버지 됨fatherhood에 기반한 종교입니다. 이는 그리스도교가 지적 개념 혹은 철학적 추론이 아닌 사랑, 우리의 전 생애에 흐르고 있는 사랑, 이 인격적 사랑의 체험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뜻입니다.

우리 아버지

주의 기도를 여는 이 첫 번째 말에 이 모든 암시가 담겨 있습니다. 그리고 이 호칭에 우리는 “하늘에 계신”이라는 말을 덧붙입니다. 그리하여 모든 기도가(그리고 그 기도와 함께 우리의 전 생애가) 하늘로 들려 올려집니다.

《가장 위대한 기도》는 ‘역사적 예수’ 연구로 유명한 진보 신학자인 존 도미니크 크로산의 저작으로, 복음주의권에서는 다소 급진적으로 읽힐 수 있다. 사실 출간 당시만 해도 해석에 있어 파격적인 느낌을 받았는데, 내가 변한 탓인지 지금 다시 훑어보니 과하지는 않다.

크로산은 주기도가 유대교의 중심에서 나온 기도이며 ‘혁명적인 선언’이라고 이야기한다. 구약을 비롯한 신약성서의 배경, 시편에 많이 등장하는 대구법·점강법 등을 활용한 구조 분석, 정의를 강조하는 예언자들의 메시지와 분배를 강조하는 희년 사상 등을 끌어와 주기도를 해설한다. 특히 하나님 아버지를 ‘지구의 집주인’으로 표현하는데, 이는 도처에 만연해있는 정의롭지 못한 제국의 폭력적 구조를 지적하기 위함이다. 크로산은 성경이 주목하는 정의가 ‘분배적 정의’ ‘회복적 공의’임을 지적하며 주기도를 통해 비폭력적 예수의 복음을 강조한다.

“어떻게 하나님께서는 예수가 처형되도록 “뜻하실” 수 있었는가? 또한 어떻게 예수는―혹은 다른 사람일지라도―그처럼 불의한 제국의 폭력을 “뜻하신” 하나님께 대해 “당신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할 수 있는가?” 등, 주기도를 살펴보며 떠오르는 물음들을 직설적으로 검토하며 인식에 충격을 주는 것도 특징이라 할 만하다.

실천신학자 윌리엄 윌리몬과 기독교윤리학자 스탠리 하우어워스가 쓴 《주여, 기도를 가르쳐 주소서》는 원서가 출간된 1996년 당시 미국의 사회·정치 상황을 염두에 두고 있다. 10년 뒤인 2006년에 한국에 출간되어 2021년인 현시점과 비교하면 시기상으로도 그렇고 상황적으로 거리가 있지만, 이 책이 주목하는 메시지는 여전히 유효하다. “스탠리 하우어워스가 우리에게 왔다. 그의 절친한 단짝인 윌리엄 윌리몬과 함께”라는 ‘소개의 글’(김기현)이 보여주듯 《주여, 기도를 가르쳐 주소서》는 하우어워스가 한국에 잘 알려지지 않았을 시기에 출간된 그의 첫 번역서다. “주기도를 기도하는 것처럼 평범하기 그지없는 실천들이 실은 얼마나 급진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지” 주목하기를 바랐다는 저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만일 세상의 갈등에서 어떤 탈출구를 찾고 싶어 기도하러 온 사람이 있다면, 이 기도는 다시 그를 세상 소동의 중심부로 밀어 넣는다. 기독교 신앙은 대단히 공적이다. 주기도는 공적인 행동처럼 밖으로 소리내어 기도하게끔 되어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라. … 주기도를 기도하는 것은 우리 그리스도인이 할 수 있는 가장 도전적이고, 정치 참여적이고, 공적인 일 가운데 하나다.

《세계를 부둥켜안은 기도》는 헬무트 틸리케가 1944년부터 1945년까지 전쟁의 참화가 고스란히 남아있는, 폐허가 가득한 곳에서 전했던 주기도문 설교를 묶은 것이다. 그는 고백교회에서 활동하며 나치를 계속해서 비판했던 신학자로, 시대의 양심이었다. 뛰어난 설교가로도 이름을 알렸다. 독일 동포가 저지른 죄악상을 꾸짖으면서도 전쟁의 참상 가운데 하나님의 위로와 소망을 구하는 이 설교는 특별할 수밖에 없다. 군데군데 각주로 나오는 내용들이 당시 상황을 알려준다.

“1944-45년 독일 패망 무렵, 연합군의 공습이 이어지던 때에 독일 슈투트가르트에서 회중에게 전한 주기도문 설교” “그 전에 있었던 직접 공습으로 교회마저 희생되어 처참한 잿더미로 변했지만” “이 설교는 공습경보와 공습 때문에 중단되었습니다. 잠시 뒤에 재차 공습이 있었고, … 병원교회의 나머지 부분도 완전히 파괴되었습니다.” “공습경보 때문에 설교는 중단되기 일쑤였고, 때로는 아예 설교를 할 수 없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오랜만에 읽어보니, 전과 다르게 오늘날 시대 감수성과 맞지 않아 보이는 표현들을 일부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개인과 국가가 겪은 당대의 비극적 풍경, 복합적 감정을 마주하면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용기 있게 선포하는 것은 그 자체로 힘이 있다. 이 책은 세계를 이끄시는 하나님 아버지를 향한 신앙이란 무엇일까, 그 믿음의 고백인 주기도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질문하게 만든다.

주기도문은 진실로 세계를 부둥켜안은 기도입니다. 세상에는 소소한 일상의 일이 있는가 하면 ‘세계사의 시각에서 바라봐야 할 문제’도 있습니다. 행운의 시간이 있는가 하면 끝 모를 처절한 고통의 시간도 있습니다. 민간인이 있는가 하면 군인도 있습니다. ‘늘 동일한 수고의 시간’이 있는가 하면 재난이라는 섬뜩한 비상사태도 있습니다. 아무 염려 없는 어린이들이 있는가 하면 어른들을 노심초사하게 만드는 문제들도 있습니다.

온 세상이 주님의 손 안에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기도하면서 그 세상을 하나님께 들어 올릴 때 세상은 우리 손 안에도 들어 있습니다. 바로 그 기도로 이 세상을 새롭게 보게 되는 것, 그보다 더 위대한 일이 있을까요?

■ 각주

1) 《가장 위험한 기도, 주기도》(IVP, 2013)에 수록된 이 번역은, 김영봉 목사가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주어·동사·목적어 등의 어순이 고정되지 않고’ ‘강조하고자 하는 단어를 맨 앞에 두는 경우가 많은’ 헬라어 원문을 고려해 주기도문을 새로 옮긴 것이다. 앞쪽에 나오는 단어를 반복법으로 강조해서 표현했다.


강동석 기자 kk11@gosco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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