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1호 이슈 톺아보기]

“지금부터 교단 탈퇴 찬반 투표를 온라인과 현장에서 동시에 시작하겠습니다.” 

담임목사가 공동의회에서 대한예수교장로회 합신 교단 탈퇴 여부를 묻는 투표를 시작하겠다고 선언했다(2021년 8월 29일 11시).

마침내 강을 건너는 순간이었다. 올해 4월 경기북노회(합신)에서 “김근주 목사와 여성 목사를 연말까지 사임하도록 권고한다”고 결의한 이후 약 4개월 만의 일이다. 지금 일산은혜교회는 다수 교인이 노회의 조치를 받아들일 수 없기에, 공동의회에서 교단 탈퇴 여부를 찬반 투표로 결정하고자 하는 것이다. 지난 4개월 동안 있었던 많은 일들이 떠올랐다.

어떤 결론이 날지 예측할 수 없었기에 막막했던 시간들…. 투표 결과가 어찌 되든지 여기까지 온 것만으로도 감사했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었다. 코로나 상황에서 교인들이 얼마나 투표에 참여할지 알 수 없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동시에 투표를 진행했지만 기권자가 얼마나 나올지, 찬성표와 반대표의 수치가 어떻게 나올지 정확하게 가늠할 수 없었다. 오후 6시에 투표가 완료되었다. 개표 결과, 재적 인원(세례교인) 604명 중 519명(86%)이 투표에 참여했고, 453명이 교단 탈퇴에 찬성했다. 재적인원 604명 중 453명의 찬성으로 재적인원 대비 3분의 2가 넘는, 75%의 교인들이 교단 탈퇴를 찬성한 것이다. 교단 탈퇴 의결정족수를 넉넉하게 초과했다. 교단 탈퇴와 관련한 교계의 법정 소송 사례(대법원)를 조사해보니 사례마다 결과가 달랐지만, 가장 보수적인 판례로는 재적인원의 3분의 2 참석(67%), 3분의 2 찬성(67%)이 있어야 했다. 그런데 이번 투표는 가장 보수적인 판례보다 투표율(86%)과 찬성률(75%)이 모두 넉넉하게 초과한 결과가 나온 것이다. 투표 결과가 발표되었을 때, 지난 4개월 동안 진행된 특별위원회 활동이 헛되지 않았고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것을 느꼈다.

전 교인 설문 조사를 실시하다

일산은혜교회는 작년에 외부 전문 리서치 업체를 통해 전 교인 설문 조사를 실시해 ‘정체성’을 비롯한 교회 모습을 돌아보았다. 각 교인의 생각을 구체적으로 알아야, 교인들이 원하는 교회로 변화를 시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교인의 공감을 얻어야 교회의 변화를 위한 여러 시도도 강한 추진력이 생긴다. 설문 조사 결과는 일산은혜교회가 뚜렷한 가치지향성을 지닌 공동체임을 보여주었다. 설문 결과를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교인들이 일산은혜교회를 출석하는 이유로는 “‘하나님 나라’를 지향하는 가치에 찬동하기 때문이다”가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 일반적으로 교회를 선택할 때는 “거리의 근접성” 요인이 중요하지만 일산은혜교회는 ‘근접성’의 중요도가 매우 낮게 나왔다. 교회의 방향성에 대해서는 “하나님 나라 복음과 희년 실천”이라는 지향 가치에 응답자 중 81%가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한편 “하나님 나라 복음과 희년 실천 대상 선정에 교인의 공감대가 부족하다”(17%)와 “하나님 나라 복음과 희년 실천에 교인의 참여가 부족하다”(14%)도 주요 개선점으로 지적되었다. 이는 목회자의 일방적 주도보다 교인의 자발적 참여로 교회 가치가 구현되기를 바라는 인식이 반영된 것이라고 분석됐다.

교회가 지향해야 할 가치가 ‘하나님 나라와 희년 실천’으로 수렴된 가장 큰 이유는 목사님들이 설교 시간에 지속적으로 이를 강조했다는 데 있을 것이다. 설교를 통해 하나님 나라라는 추상적인 개념이 공의와 정의, 사랑 등 실행할 수 있는 보다 구체적인 개념으로 설명되었고, 이로 인해 교인들은 교회가 그 정체성에 맞게 지속적으로 거듭나기를 바라고 있었다.

교회 정체성을 묻는 설문 조사 결과에 비추어볼 때, 동성애와 여성 목사 안수 문제를 이유로 김근주 목사와 여성 목사인 한선영 목사를 해임하라는 노회의 권고안을 교회가 받아들이기는 처음부터 어려웠다.

대화와 숙의를 위한 공청회를 열다

올해 4월 당회에서는 노회 측의 ‘두 명의 목사 해임 권고안’에 대한 “특별위원회(특위)”를 구성해 이 사안과 관련한 모든 것을 논의하기로 의결했다. 특위는 당회 장로 5인, 명예장로·원로권사·권사회 각 1인, 목자·목녀(소그룹 리더) 각 2인, 안수집사 2명, 서리집사 남녀 각 2인, 청년부 남녀 각 2인(총 22명)으로 구성하기로 했다. 2년 전에도 ‘담임목사 청빙위원회’를 구성해 후임 목사를 청빙한 선례가 있었기에 특위를 구성하는 일은 크게 어렵지 않았다.

특위의 목표는 충분한 숙의 과정을 통해 교인들 의견이 충분히 반영된 결정을 하는 것이었다. 특위 위원 선정 과정에도 당회와 담임목사는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 그룹별 모임에서 자체적으로 자율적으로 선정했다. 청년부에서부터 권사회까지 그룹별 대표로 구성된 특위는 이후 각 그룹별 카톡방에서 활발한 토론을 통해 나온 의견을 특위 회의에서 발표하고 토의하면서 자연스럽게 교인들 의견을 모으고 소통했다. 특위는 원활한 활동과 깊이 있는 토의를 위해서 4개 분과로 구성했다. 1팀은 교단과 노회의 관계(교계의 교단 탈퇴 사례 연구), 2팀은 노회 결의에 대한 교회의 입장(노회 공청회, 김근주 목사 공청회 진행), 3팀은 교회 방향성(교회 정체성 재확립), 4팀은 커뮤니케이션(소통)에 집중해 논의를 이어갔다. 4개 분과 활동을 통해 중요한 어젠다를 실행할 수 있었고, 전 교인과 소통하면서 공동 합의를 이루어가려고 애썼다.

교인들 의견을 모으는 데는 무엇보다도 노회 측과의 공청회와 김근주 목사와의 공청회를 진행한 일이 큰 역할을 했다. 노회 공청회에 앞서, 특위에서는 전 교인을 대상으로 노회 측에 하고 싶은 질문을 구글 설문을 통해 모았다. 유사한 질문들을 추려서 총 6개의 사전 질문을 준비했다. 노회와 김근주 목사가 함께 참석하는 공청회는 아니었기 때문에 가급적 신학적 논쟁이 될 만한 주제는 피하면서 노회 조치의 이유와 근거, 일산은혜교회 정체성과 반하는 부분을 중심으로 질문을 구성했다. 공청회는 예정된 1시간을 훌쩍 넘어서까지 진행되었다. 공청회를 마친 후 대다수 교인은 노회 측과 생각 차이가 너무 커서 협의가 어렵겠다는 쪽으로 기울었다.

특히 교인들은 “노회의 조치가 일산은혜교회의 정체성(하나님 나라 복음 - 공의, 정의, 사랑, 희년 실천)과 반하는 조치가 아니냐”라는 질문에 노회 측이 “교회가 사회복지기관이 아니지 않느냐”고 답한 것을 납득할 수 없었다.

김근주 목사 공청회는 이보다는 차분하게 진행되었다. 몇몇 교인은 공청회를 통해 동성애에 대해 새롭게 이해했다고 밝혔다. 여성 목사 안수에 대한 김 목사의 설명은 성경 말씀을 어떻게 해석하는 것이 바람직한지에 대한 성찰의 장을 열어주었다.

특위에서는 두 번의 공청회를 통해서 교인들 생각이 어느 정도 정리되었다고 판단해 노회의 ‘목사 사임 권고안’에 대한 두 번째 전 교인 설문을 통해 찬반을 진행하기로 했다. 설문 결과, 참여자 401명 중 ‘해임 반대’ 343명(86%), ‘해임 찬성’ 41명(10%), ‘기타’ 17명(4%)으로 나왔다. 공동의회 투표 결과와 의견 비율이 유사했다.

현실적인 문제들

최종적으로 교단을 탈퇴하려면 공동의회 찬반 투표를 통해 확정해야 했다. 교회 전문 변호사에게 자문을 구한 결과, 소속 교단 탈퇴 내지 소속 교단 변경은 사단법인 정관 변경에 준하는 요건을 갖출 것이 요구되며, 민법상 사단법인 정관은 총 사원 3분의 2 이상이 동의해야 변경할 수 있으므로, 교회도 사단법인에 준하여 총 재적 교인(세례교인) 3분의 2 이상의 동의를 받는 것이 안정적이라는 의견을 받았다.

공청회 이후 진행되었던 설문 결과를 생각하면 투표자의 3분의 2 찬성은 어렵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었지만, 총 재적 교인(세례교인) 604명 중 3분의 2의 찬성(403명)을 장담할 수는 없었다. 최대한 투표율을 높이는 수밖에 없었다.

투표율을 올리는 데 한몫한 것은 청년부에서 작성한 ‘카드 뉴스’였다. 왜 총 재적의 3분의 2 이상이 투표해야 하는지, 투표 참가율이 이에 못 미칠 경우 어떤 문제가 생기는지 등을 알기 쉽게 만들었다. 카드 뉴스 제작 그 자체가 청년들이 이번 사안에 얼마나 진지하고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지를 알려주었다. 청년들이 이를 자발적으로 만들었다는 사실에 감동하는 분들도 많았다. 투표 생각이 없던 교인들도 관심을 가질 수 있는 분위기가 만들어졌고, 이런 분위기에 힘입어 86% 투표율과 총 재적 교인 75% 찬성이라는 투표 결과가 나왔다.

교단 탈퇴가 확정된 이후 여자 집사 카톡방에는 일산은혜교회가 앞으로 가야 할 길을 생각하는 글이 올라왔다.

저는 마치 갈라진 홍해의 마른 바닥을 건너며 언제 물이 다시 덮칠지 모르는 두려움 속에서 한 걸음씩 조심스레 내딛는 마음입니다. 우리는 출애굽의 이스라엘 민족처럼 이전에는 전혀 가보지 못한 새로운 길을 내는 행렬에 함께 서있습니다. 두렵고 떨리지만 그간의 모든 과정과 결과가 우리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라 믿으면서, 성도님들을 의지하며 겸손하게 거룩한 행렬에 참여하고 싶습니다. 서로 다양한 의견을 자유롭게 나누면서, 많은 발자국으로 땅이 굳듯이 굳게 디뎌서 새길을 평탄하게 만들어가면 좋겠습니다.

이전에 가보지 못한 새로운 길을 내는 행렬에는 마음이 같았던 분들뿐 아니라 생각이 다른 분들도 함께 갔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들의 생각과 마음을 더 헤아리고 품으며 가야 할 것이다.

박찬욱
일산은혜교회 안수집사. 2019년 일산은혜교회 후임목사 청빙위원회, 2021년 특별위원회로 활동했다. 30년 동안 직장 생활을 하고 은퇴한 후 평범한 자영업자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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