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2호 무브먼트 투게더] 제3회 ‘모두를 위한 기독교 영화제’ 장다나 프로그래머 인터뷰

ⓒ복음과상황 김다혜<br>
ⓒ복음과상황 김다혜

‘행복’이라는 단어를 들을 때마다 난감해진다. 행복하냐고 물었을 때 ‘행복하다’고 답할 것 같은 주체를 선뜻 떠올리기 어려워서다. 제3회 모두를 위한 기독교 영화제(이하 ‘모기영’, 2021.11.19-21.)의 주제가 ‘행복’이라고 했을 때 걱정이 앞선 이유다. 다소 뻔할 수 있는 이 주제를 어떻게 재밌게, 동시대적으로 풀어낼 수 있을까. 교회와 세상, 그리스도인과 비그리스도인을 잇고자 하는 플랫폼이라면 이 주제를 어떻게 기획해야 할까. 본지 기자들의 고민과 결이 비슷한 느낌이 들어서, 문득 모기영 프로그램 팀에 소속된 이들이 궁금해졌다.

그중 장다나 프로그래머는 단편영화에 강점이 있다. 단편영화를 배급하는 회사에서 근무했으며, 현재 부산국제어린이청소년영화제와 매드영화제에서도 단편영화를 주로 담당했다. 또 영화진흥위원회 영화문화교육팀 객원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영화 전공 수업도 맡고 있다.

10월 1일 서울 마포구 빅퍼즐문화연구소 근처 카페에서 장다나 프로그래머를 만났다. 그는 프로그래머 본연의 일과 더불어, 매주 발행되는 뉴스레터 ‘주간 모기영’에서 영화 칼럼을, 모기영 유튜브 채널에서 ‘영화로운 모기씨’ 코너의 제작을 맡고 있다. 그에게 이번 영화제 상영작들에서 읽을 수 있는 다양한 행복의 모습에 대해 들었다.

- 이번 영화제 주제를 평범하다고 생각할 분들도 있을 것 같은데요.

지난 주제들이 ‘하루’(1회) ‘괜찮지 않다’(2회)였는데, 이번에는 가슴 따뜻한 얘기로 채워보고 싶었어요. 그러다 보니 ‘행복’이라는 테마를 정하게 되었죠. 상영작 중에는 행복을 추구하는 과정에 관한 영화도 있고요. 행복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영화, 행복에 관해 이야기하는 약간 슬픈 영화도 있어요. 작년은 코로나 이슈가 굉장히 강했잖아요. 우리 각자에게 있는 내면의 어두운 부분에 조금이라도 회복을 주자, 이 시대에 행복한 길은 무엇일지 다 함께 한번 고민해보자 싶었어요.

- 기독교가 행복과 무슨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그리스도인들은 ‘행복해야 한다’, 즉 구원을 받고 복을 받아야 한다는 강박과 ‘행복해도 될까’, 즉 행복을 추구하는 일이 이기적이거나 세속적인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 사이에서 흔들리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무엇을 행복이라고 정의하느냐가 중요할 텐데요. 세상은 우리에게 안락한 집과 좋은 학벌, 안정적인 직장, 건강 등이 있어야지만 행복할 수 있다고 말하죠. 저는 그것과 다른 종류의 행복이 있다고 생각해요. 예수님처럼 가진 것을 다 내주고 행복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를 수 있으면 가장 좋을 텐데, 늘 현실은 ‘불행하다’는 감각으로 우리를 몰아넣죠.

- ‘기독교인들은 세상이 말하는 행복을 누리면 안 되냐’ 묻기도 하고, ‘기독교인들이라면 누가 보아도 행복해야 하는 것 아니냐’ 주장하기도 하고요.

‘(행)복의 근원’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에 누구보다 열심히 복을 빌기도 하죠. 궁극적인 행복을 추구하면서 일상의 소소한 행복을 놓치거나 무시하기도 하고요. 그럴 때 빠지기 쉬운 유혹은, ‘진짜 행복’과 ‘가짜 행복’을 나누고 우리는 ‘진짜 행복’, 예를 들면 영적 구원이나 이타적 삶을 추구하는 사람이라며 자기 자신을 높은 곳에 올려놓는 일 같아요. 경험상 그다지 행복한 일은 아니더라고요. 하나님이 우리를 그렇게 홀로 고고하게만 살도록 이 험한 세상에 보내신 것 같지는 않아요. 모든 영화에 붙어있는 ‘씨네토크’에서 각자가 생각하는 행복에 대해 정답 없이 이야기를 나눌 텐데요. 개인적으로 저는 나와 이웃의 약함과 구조적 악함을 명확히 알면서도, 조금 더 예수님이 하셨을 것 같은 일에 가까운 길을 선택하기로 결심하는 삶 자체가 의미 있는 행복을 만들어내는 것 같아요. 이번 개막작 〈행복한 라짜로〉는 바로 그런 이야기를 하는 작품이고요.

- 왜 〈행복한 라짜로〉에 주목하셨나요? (※스포일러 주의)

저 같은 경우 주인공 라짜로가 제가 알고 있는 예수와 겹쳐진다고 생각해서였는데요. ‘행복’이라고 얘기했을 때 모든 프로그래머가 머릿속에 떠올리고 있던 영화이기도 했어요. 라짜로는 담배 농장에서 일하는 청년인데, 여러 사람에게 착취당하지만 계속 그들을 옆에서 도와주는 인물이에요. 그러다 이름에서 드러나듯 죽었던 라짜로가 부활하는 사건이 벌어져요. 어릴 적부터 교회에서 들었던 부활 사건, 특히 예수의 부활이라고 하면, 모든 것을 쓸어 없애고 다 새롭게 할 것만 같은 어마어마한 임팩트가 있잖아요. 영화에서 라짜로는 죽기 전 친구와 했던 작은 약속 하나를 지키려고 부활하거든요. 교회에서 묘사하는 부활 사건과 비교했을 때 무척 초라하게 그려지죠. 그런데 그런 초라한 부활이 제게는 더 큰 임팩트를 주더라고요. 제 삶을 돌아봤을 때, 저를 생각해주는 누군가의 작은 희생과 부활들이 지금의 저를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성경 속 예수의 부활과 관련한 일련의 흔적들을 받아들이는 데 있어서 생각의 전환을 줄 수 있는 영화인 듯해요.

라짜로는 시공간을 초월해서 젊은 모습으로 다시 나타나는데, 이때 영화 속 사람들 반응은 대조적이에요. 무릎을 꿇고 그를 신으로 여기다가, 시간이 지나자 군식구가 늘었다며 허드렛일을 시키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해 감동하고 집중했다가도, 삶의 자리로 돌아와서는 마음속에서 옆으로 치워버리는 우리 모습과 닮아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도 라짜로는 그런 낮은 자들과 함께하죠.

- 라짜로는 그런 삶에서 행복을 느꼈을까요?

저는 라짜로가 곁에 있는 사람에게 행복을 준다고 느꼈어요. 행복이라고 했을 때 우리는 무척 즐거운 감정을 떠올리지만, 행복은 사실 감정과 분리해서 얘기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닐까요? 예를 들면 이타적인 마음 같은 것, 또 누군가를 위한 희생이라고 하는 것이요. 본인은 고통스러울 수도 있겠지만 또 다른 마음에서는 그것 자체가 본인에게는 가장 큰 기쁨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 다른 상영작을 살펴보니, 가족을 다루는 영화가 많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그중에서 〈박강아름 결혼하다〉에 관심이 갔어요.

사람들이 가족 안에서의 행복에 대해 진짜 많이 고민하는 것 같아요. 지금 라인업보다 네다섯 배 정도 많은 영화를 살펴봤는데, 거의 80%가 가족 이야기를 주로 하더라고요. 〈박강아름 결혼하다〉는 제가 제일 추천하고 싶은 영화이기도 해요. 매일 싸우고 육아 때문에 힘들어하는 평범한 부부 이야기가 나와요. 아내는 자기가 하고 싶은 공부를 위해 프랑스로 유학 온 상황인데, 그곳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남편은 가사 노동을 담당하죠.

이 작품이 가진 큰 힘은 영화 자체라기보다 관객들 반응인 것 같아요. 처음 이 영화가 상영될 당시 영화가 끝나자마자 관객들이 “저 남자 너무 불쌍하다”고 얘기하는 거예요. 우리 엄마들은 항상 가사 노동을 해왔고, 그것이 여성에게 당연한 일로 여겨져 왔잖아요. 그런 상황을 놓고 보면, 가사 노동을 하는 남편이 불쌍하다고 보는 시선 자체가 되게 이상하더라고요. 우리 사회 도처에는, 당연하다고 여겨지지만 당연하지 않은 일들이 너무 많잖아요. 영화는 이를 전복해서 보여주면서 ‘너 어떻게 생각해?’라고 물어보죠.

- 영화 자체를 감상하는 일도 재밌지만, 보고 나서 사람들 반응을 관찰하는 일도 영화를 재밌게 보는 방법인 것 같아요.

맞아요. 우리의 집단적 반응이 예상을 뚫고 나오는 경우도 있는데요, 저는 그게 시스템에 균열을 일으키는 행위처럼 보이더라고요. 계속 의문을 던지고 흔들어보고 구멍을 내보고 했을 때, 우리가 생각하지 못했던 그 실체가 무엇인지 불편함을 계속 직시하게 하는 것, 그게 영화가 가진 힘이라고 생각해서요. 특히 단편영화에서 그런 힘이 잘 드러나는데요. 감독들이 장편을 찍기 전에 만드는 습작 정도로 보는 경향도 있는데, 단편영화에는 짧은 시간에 한 방을 훅 날리는 치기 어린 반항 같은 특유의 매력이 있거든요. 시간이 한정적이다 보니 유려함은 부족할 수 있지만, 자기가 표현하고 싶은 것들을 강하게 드러낼 수 있어요. 개인적으로 이번 상영되는 단편영화 중 〈나를 위한 스코어〉를 추천하고 싶어요.

- 어린이 씨네토크를 진행하시는 〈고릴라 별〉도 가족에 대한 고민이 담긴 영화죠.

이 애니메이션 영화에는 보육원에서 지내는, 엄마가 없는 아이가 나오는데요. 고릴라가 이 아이의 엄마가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어요. 인간과 비슷하지만 다른 존재인 고릴라를 배척하는 여러 모습이 펼쳐지죠. 이 고릴라는 아이의 아픔을 가장 잘 쓸어 안아주는 존재이기도 해요. 실제로 감독이 해외로 입양된 한국계 감독인데, 본인 삶에서 마주했던 가족에 대한 고민들을 이 작품에 고스란히 녹여냈어요. 국내에 배급될 예정이 없어 희소가치도 있고요.

우리가 요즘 ‘같음’과 ‘다름’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그 기준을 어떻게 정하느냐에 따라 우리 세계가 틀에 갇혀버리거나, 누군가에게 아픔을 줄 수 있잖아요. 나와 다른 존재가 가장 친한 친구가 될 수 있다는 이 부조화를 우리는 과연 어떻게 생각할 수 있을까 고민하면서 ‘너라면 어떻게 할래?’라고 물어볼 수 있을 것 같아서 선정했어요. 어린이들은 어른들보다 유튜브나 영상 문화에 더 익숙하지만, 영상을 통해 생각하고 얘기를 나눠볼 기회는 상대적으로 적은데요. 재미뿐 아니라 삶에서 적용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는 훈련이 되지 않은 친구들은 나중에 무분별한 영상들을 흡수하거나 가짜 뉴스에 경도될 수도 있거든요. 그래서 제가 함께하고 있는 부산국제어린이청소년영화제는 영화 읽기 교육도 하고 있어요.

- 영화를 볼 때 어린이들은 어른들과 어떤 차이가 있다고 보시나요?

성인들은 대부분 씨네토크를 통해 자기 삶을 반추하는데, 아이들은 앞을 바라보더라고요. 자기가 지금까지 해보지 못했던 생각을 새롭게 하는 경험도 많이 하고요. 영화에 나오는 수많은 삶의 이야기들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이 사람은 왜 이런 선택을 했을까?’ 던져만 줘도 아이들만의 순수한 답을 내놓기도 하더라고요. 어른들은 정형화되거나 편견에 사로잡힌 답들이 생각을 지배하잖아요. 아이들도 그런 질문을 통해 건드려주지 않으면 그 시절을 흘려보내고 나중에는 틀 안에 박히더라고요. 그래서 그전에 틀에 박히지 않은 생각을 할 수 있게끔 질문을 던져주는 거죠.

- 폐막작 〈행복의 단추를 채우는 완벽한 방법〉도 가족 이야기인데, ‘돌아온 탕자’ 스토리가 전복되어 깔려있더라고요.

성경과 달리 영화에서는 첫째 아들이 집을 나가고, 상실한 아들을 찾아 헤매는 아버지 옆에 항상 붙어서 도와주는 둘째 아들은 불만이 많죠. 이별과 상실을 경험한 사람과 남아있는 사람들끼리의 회복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영화예요. 가족이면 누군가를 떠나보낼 수도 있고, 다시 만날 수도 있고, 새로운 사람이 들어올 수도 있는 거잖아요. 과연 그 내부에서 우리는 서로의 목소리를 잘 들어주고 살고 있나 싶더라고요. 그런 면에서 가족 간의 행복을 살펴보는 건 행복을 외부에서 찾기보다 다시 한번 내 안을 돌아보는 일인 듯해요.

이 영화에서 아버지로 나오는 배우가 빌 나이(Bill Nighy)인데요. 외모는 되게 시니컬하게 생겼으면서 걸걸하고 약간 꼰대 같은 느낌인데, 반전 매력이 있는 배우예요. 팔색조처럼 코미디, 넉살스러운 연기, 멜로 등 연기할 때 다양한 변신을 하죠. 이번에 상영하는 다른 영화에서도 나오는데, 함께 살펴보시는 것도 영화제를 색다르게 즐기는 방법이겠네요.

- 이번 영화제가 어떤 모습이면 좋겠다고 생각하시나요?

저는 교회 바깥에 있는 분들이 관심을 기울여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사회적으로 기독교는 너무 신뢰를 잃었다는 생각이 드니까 안타까워서요. 한편으로는 그렇게 기독교를 욕하는 이유가 뭘까 생각해보면, 사람들이 아직도 기독교를 향한 관심과 희망, 기대를 놓지 않고 있어서가 아닐까 싶어요. 그분들에게 얘기해주고 싶은 게 있을 때 제일 접근성이 좋은 건 결국 사람들이 좋아하는 영화라는 매체라고 생각하는데요. 모기영은 〈십계〉나 〈쿼바디스〉처럼 전형적인 기독교 영화는 아닌데, 현실적인 이야기들을 풀어낼 때 기독교적 고민도 할 수 있는 영화를 소개하죠. 그럼 안 믿는 사람들도 그 영화에 관심이 있어서, 아니면 ‘기독교 영화제인데 왜 이런 영화 틀지?’ 궁금해서 올 수 있잖아요. 기독교인들은 그들만의 플레이가 강하고, 교회는 모임 중심이기 때문에 외부 사람이 들어가기 쉽지 않아요. 모기영이 교두보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해요.

제2회 모기영은 코로나로 전편 온라인 상영으로 진행했다. 상영작 〈69세〉의 씨네토크를 사전 녹화하는 모습. (사진: 모기영 제공)
제2회 모기영은 코로나로 전편 온라인 상영으로 진행했다. 상영작 〈69세〉의 씨네토크를 사전 녹화하는 모습. (사진: 모기영 제공)

- 모기영의 지속 가능성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3회쯤 되면 고민이 깊어지실 것 같은데요.

10년이고 100년이고 지속되리라고 기대하면서 모기영에 참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다만 우리의 문제의식에 대해 한 스텝씩 나아가보자는 거죠. 갔는데 ‘이게 아니었네’ 하면 좀 뒤로도 가볼까 하는 거고요. 모기영이 지속되려면 비슷한 문제의식이 있는 분들이 자꾸 모여야 하는데, 그러려면 비슷한 생각을 품은 사람들을 자꾸 발굴하는 ‘장’이 필요해요. 저 같은 경우 문제의식을 갖고 계속 기독교 문화 쪽에서 활동하고 싶은데 함께할 멤버들이 다 숨어있는 거예요. 교회에 나가서 그런 멤버들을 찾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요. 그래서 ‘여기 여기 모여라’고 외치는 역할을 모기영이 하고 싶은 거예요. 특히 영화·예술 쪽 종사자들에게는 그래도 자기 숨통을 트고 속내를 얘기할 수 있는 곳이었으면 하고요.

- 개인 활동에 대한 재밌는 계획도 있으신가요?

서울 전세난 때문에 친한 친구들끼리 모여서 ‘행고재’라는 공동체 주택을 지어서 살고 있는데요. 이 이야기를 같이 책으로 쓰고 있고 저는 6년째 다큐멘터리로도 찍고 있어요. 서로의 빈틈을 조금씩 도와주면서 지내는 얘기를 담았어요. 다큐멘터리를 통해서는 변화를 한눈에 볼 수 있잖아요. 우리는 늙어가고, 아이들은 커가고, 살면서 벌어지는 별별 사건과 사고가 담기더라고요. 언젠가 다큐멘터리로 완성할 예정인데 ‘잘되면 언젠가 모기영에서 틀어줄까?’ 하고 있어요.(웃음) 

※ 예매 문의(모두를 위한 기독교 영화제 카카오채널

진행 김다혜 기자 daaekim@gosco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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